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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4.22 11:54
<금주의 순우리말>127-감궂다
/최상윤
1.통새미* : 가르거나 쪼개지 않은 전체. 주로 ‘통새미로’. ‘통새미째’의 형태로 쓰인다. 비-온새미.
2.푸솜 : 타지 않는 날 솜.
3.항정 : 돼지, 개의 목덜미. 또는 양지머리 위에 붙은 소고기.
4.갉아먹기 : 맞히는 대로 따먹는 돈치기.
5.감궂다 : □태도나 외모 따위가 불량스럽고 험상궂다. □논밭 따위가 일하기 힘들게 거칠고 험하다.
6.날바람잡다* : (사람이)바람이 들어 함부로 헤매고 돌아다니다.
7.당나귀기침 : 당나귀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여러 번 하는 기침, 곧 백일해나 오래된 감기를 앓을 때에 흔히 하는 기침.
8.맏물 : 그해에 맨 먼저 나온 푸성귀나 해산물, 과일, 곡식 따위. 같-첫물, 상-끝물.
9.반빗아치 : 반찬을 만드는 일을 하는 계집 하인. 준-반빗.
10.산벼락 :(‘죽음을 간신히 면할 정도로 맞는 벼락’의 뜻바탕에서) ‘몹시 혼이 남’을 비유. 혼-‘날벼락’은 아무 잘못도 없이 뜻밖에 당하는 꾸지람. ‘불벼락’은 불호령 같은 호된 꾸중.
+살맛 : 성행위에서, 상대편의 육체로부터 느끼는 쾌감.
◇반세기 전, 우리나라는 현재와는 달리 산아제한(産兒制限)이 사회적 추세였다.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등등이 정부가 내 건 인구 정책의 구호였다.
그런데 내자는 자식을 낳았다 하면 딸, 딸, 또 딸이었다. <대(代)가 끊친다>며 태산 같은 걱정을 하시는 시어머니의 눈치에 전전긍긍해 하던 내자는 드디어 네 번째는 득남하였다. <하늘을 날 것 같았다>는 내자의 소감이었다. 손자를 끌어안은 나의 어머니는 <이제 죽어도 조상님께 볼 면목이 생겼다>며 손자를 애지중지 내려놓지 않았다. 네 명의 자식놈을 둔 나도 <야만인>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농담을 들어도 싫지 않았다. 온 집안의 걱정거리가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넷째 놈이 고교 2학년 때였다. 입시 공부는 하지 않고 ‘날바람잡는’ 녀석을 수상히 여긴 내자가 녀석의 책가방을 몰래 뒤져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가방 속에서 10원짜리 동전이 수북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 ‘갉아먹기’ 놀음에 얼이 빠졌음을 직감하자 순간 내자는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마치 하늘이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그동안 여덟 식구의 쪼달린 살림에 그래도 아들놈 건강을 챙기느라 ‘반빗아치’가 되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만물’을 챙기고, 때로는 딸들 몰래 ‘항정’ 반찬도 잊지 않았던 일들이 오히려 허망했다.
그러나 내자는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교원자격증 소유자답게 녀석을 꿇여 앉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감궂게’ 꿇어앉은 녀석 앞에 책가방 속의 동전을 면전에 ‘통새미로’ 쏟아 부었다. 전모가 밝혀지자 내자의 ‘산벼락’에 넷째는 순응, 고교생활의 정도를 걷게 되었다.
이로부터 거의 한 세대가 지난 오늘, 우리사회의 중견 역할을 다하고 있는 넷째로부터 제대로 반포지효(反哺之孝)를 받아 볼 즈음에 당신은 명계(冥界)로 훌쩍 떠나고 말았으니 아, 만사휴의(萬事休矣)...... .
<문학평론가/ 동아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