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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10.22 11:52
싸움의 기술⑰ - 도시의 무정
/양선규
어제 출근길은 본의 아니게 도시 순환로를 타고 우회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집사람을 대구역 인근의 번개시장에 태워다주고 출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건어물이나 견과가 필요할 때 간혹 들르는 곳입니다. 생선이 필요할 때는 칠곡의 매천시장, 육고기가 필요할 때는 경산의 도매시장, 커튼이나 소파를 수리할 때는 서문시장, 무거운 생수묶음 같은 것이 필요할 때는 가까운 백화점(배달서비스) 슈퍼, 생필품은 코스트코나 이미트, 상비약은 반월당 지하상가의 대형약국, 아내의 ‘쇼핑센터’는 그런 식으로 정해져 있어서 가정 기사인 제가 한 번씩 순환선을 일주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출근길은 이를테면 도시 1차 순환선과 2차 순환선 일부가 걸쳐지는 코스였습니다. 제 도시의 1차 순환선은(다소 주관적일 수도 있습니다) 시가지 중심(대구 중앙로와 동성로 일대)을 가장 근거리로 한 바퀴 돌아서 가는 길입니다. 물론 0.5차 순환로도 있습니다. 중구 대안동 일대(경상감영공원과 중부 경찰서 사이길)를 거쳐서 대구시청으로 빠지는 길이 그것입니다. 어제는 대구역 앞을 통과해서 수창초등학교 길, 달성공원 앞을 거쳐 서문시장, 계산성당, 반월당을 돌아서 남문시장, 명덕로터리로 돌았습니다. 명덕로타리는 2차 순환선의 중심 거점입니다. 혼자서 그렇게 일 없이 도시를 배회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마 어제의 출근길에서 모종의 힐링(healing)이 있었던 것일까요?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가벼운 느낌이었다는 ‘느낌적 느낌’이 듭니다. 오늘 아침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합니다. 먼 곳도, 새로운 곳도 아니고 일상으로 마주하는 낯익은 장소와 길들이 힐링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힐링은 장소가 관건이 아니라 그 장소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모든 생물은 생명을 부여받고 육체를 형성될 때부터 스스로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보유한다고 합니다. 강요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지속적으로 ‘힐링’을 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페이스북도 힐링 공간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만나기 싫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고 살고 싶은 것은 현대인간 모두의 열망입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많은 사회적 관계를 포기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유기체의 일원으로서의 존재감이 크게 상실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에서의 지적 교류와 경험의 공유는 인간집단 내에서 겪을 수 있는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달래고 자기표현의 본능도 충족할 수 있는 좋은 힐링 활동이 됩니다. 칼 포퍼가 말한 ‘미래의 열린사회’가 이미 도래해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열린사회는 유기체적인 특성이 없으므로 점차 내가 <추상적 사회>라 부르고자 하는 사회로 될 것이다. 열린사회는 구체적이거나 실제적인 인간집단 및 그런 실제적인 집단체제가 갖는 특성은 상당히 잃어버릴 것이다. 이 점은 거의 이해되지 않고 있는데, 과장된 표현을 써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실제로 아무와도 대면하지 않는 사회 - 모든 일이 타이프된 편지와 전보로 의사교환을 하고, 또 밀폐된 자동차로 나다니는 고립된 개인에 의해 처리되는 사회 - 를 생각해 볼 수 있다(인공수태는 인간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는 번식까지도 허용할 것이다). 이런 허구적인 사회가 <완벽한 추상적 사회나 비인격적 사회>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흥미있는 점은 우리의 현대사회가 그 양상의 여러 면에서 이런 완벽한 추상적 사회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언제나 혼자서 밀폐된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거리에서 우리를 지나쳐 걸어가는 수천의 얼굴과 대면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그렇게 한 것과 거의 비슷하다. 즉 우리는 같은 보행자들과는 대체로 아무런 개인적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와 유사하게 무역협회의 회원이란 회원권을 갖고 낯모르는 서기에게 기부금을 내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는 친밀한 인간적 접촉을 거의 갖지 않거나 전혀 갖지 않고 익명과 고립 속에서, 그리고 그 결과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사회는 비록 추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 사회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를 갖고 있다. <중략> 출생이라는 우연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인간관계와 아울러 새로운 개인주의가 발생한다. 그와 유사하게 정신적 결속은 생물학적 결속이나 육체적 결속이 약화된 곳에서 그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장점들은 있지만, 어쨌든 간에 이러한 예들이 보다 구체적이거나 사실적인 사회집단과 대치되는 보다 추상적인 사회가 의미하는 바를 명백하게 밝혀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현대 열린사회가 교환이나 협동과 같은 추상적인 관계에 의해 상당한 기능을 한다는 것도 분명하게 해줄 것이다(경제이론과 같은 현대 사회이론이 주로 관계하는 것은 이런 추상적 관계의 분석이다. 이 점은 뒤르껭과 같은 대다수의 사회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뒤르껭은 사회란 실제적인 사회집단에 의하여 분석되어야 한다는 독단적인 신념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칼 R. 포퍼(이한구 옮김), 『열린사회와 그 적들』 중에서]
칼 포퍼가 사회 변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예측하고 있었습니다만, 페이스북을 위시한 sns, 휴대폰 앱, 힐링 산업, 악성 바이러스의 등장과 같은 구체적인 미래의 품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그런 것들까지 알았다면 좀더 재미있는 설명이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인간은 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부단히 해오고 있습니다. 칼 포퍼의 설명도 그것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오늘은 도심을 벗어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이나 다녀올까 합니다. 여행 역시 대표적인 힐링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여행을 통해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을 하나씩 체크하는 것도 ‘추상적인 사회’에서 존재감을 확보하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소설가 /대구교육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