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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 읽기

<양왕용의 시 읽기 51> 정호승의 낙과

작성일 : 2021.10.14 01:08

낙과落果 /정호승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햇빛에 대하여

바람에 대하여

또는 그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

 

내가 지상에 떨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견딜 수 없었던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정호승 낙과落果(문학사상2021.7 p74)

 

<약력>

1950년 경남 하동 출신 대구에서 성장,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하여 석사학위 받음, 1972한국일보신춘문예 동시, 1973대한일보신춘문예 시,1982조선일보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등단, <반시>동인 참여,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서울 예수,새벽편지,외로우니까 사람이다,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내가 사랑하는 사람,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영한시집부치지 않은 편지외 여러 언어로 번역된 시집과 동화집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상화시인상 등 수상

정 호승 시인을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1967년 봄이었다. 당시 필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면서 김춘수 은사님의 소개로 대구의 명문 사학 대륜중고등학교 시간 강사로 나갔다. 66년에 시단에 이름을 올린 애숭이 시인이었던 때였다. 그 때 정호승 시인은 대륜고등학교 3학년으로 필자가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다. 졸업을 앞두고 경희대학교 문예장학생으로 가기 위하여 평론을 하나 써 경희대학교 학보에 당선되었다면서 필자에게 경희대학교 국문과로 진학하게 되었다고 인사차 와서 만나게 되었다. 정 시인의 5년 후배인 대륜중고 출신의 시인으로 필자가 직접 가르친 시인으로는 지금 단국대 총장을 하고 있는 김수복 시인, 하종오 시인 그리고 장옥관 시인 등이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인연으로 정 시인은 데뷔 과정을 거쳐 대한만국의 이름 있는 시인이 되었으나 실제로 수업은 받지 않은 필자를 은사 대접을 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에 근무할 때에는 들릴 때마다 만났고 식사대접도 한 번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해서 이제사 글로 표현하게 되어 미안하기도 하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시적 기법을 통하여 독자들을 감동시키기보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독특한 시적 명상을 통하여 그것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하여 감동시킨다. 그는 이러한 시작태도를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는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라고 이 시를 발표한 지면에서 밝히고 있다. 낙과落果역시 그러하다. 이 시의 제재는 폭풍우에 떨어진 낙과이면서 동시에 낙과는 이 시의 화자이기도 하다.

낙과는 원래 좋은 상품이 되어 과수원 주인에게 경제적 소득과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하는데 갑자가 닥친 폭풍우로 떨어지면서 절망을 가져다준 사물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러한 인식을 뒤집고 있다. 시적화자 낙과의 말을 통하여 그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절망이나 낭패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하고 있다. 그가 책임을 지는 대상은 그를 자라게 한 햇빛과 바람 그리고 인간 즉 과수원 주인까지 포함한 전체이다.

그가 어떠한 형태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둘째 연에 나와 있다. 사랑한다는 것이다가 바로 그 부분이다. ‘낙과사랑으로 그를 있게 한 모두, 심지어 떨어지기를 기다린 기다림 그를 고통으로 내몬 폭풍우의 폭력까지 사랑 하는 것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땅에 떨어짐 자체도 자기희생으로 땅을 사랑한 것이라 결말을 맺고 있다. 낙과들이 땅에 떨어져 썩어짐으로써 땅을 부요하게 하고 과목을 더욱 튼튼하게 하여 장래에는 더욱 좋은 과일을 탄생시킨다는 자연의 순환법칙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인간의 난개발로 인한 기상이변의 한 양상인 폭풍우까지 시랑한다는 것은 원수까지 사랑하고 인간의 모든 죄를 혼자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을 연상시킨다. 펜데믹 시대에 이러한 위기상항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은 사랑, 그것도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시라는 생각이 든다. (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