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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2.15 12:41 수정일 : 2024.02.15 12:45
레테의 강
/박명호
K씨는 최근 정년으로 백수가 되었다.
시간에 쫓기는 신세에서 시간을 쫓는 신세로 바뀌었다.
그날 K씨는 구청과 은행 볼일이 있었다. 걸어서 반 시간 거리에 있지만 가능한 천천히 움직여서 한 나절을 보낼 요령이었다. 구청과 은행 사이에 온천천이 있어 시간보내기는 딱이다. 온천천 돌다리를 느릿느릿 건너다가 느릿느릿 유영하는 잉어 떼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큰놈이 가장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리의 가장자리를 왔다 갔다 하던 큰놈이 앗차 하는 순간에 돌다리 돌기둥 옆 빠른 물살에 쓸려 내려갔다. 그놈은 몸집이 커서 몸을 되돌리려 하지만 돌기둥 사이가 좁아 그냥 아래로 쓸려갔다. 돌다리 위아래는 콘크리트 벽이 있다. 그 벽은 작은 폭포가 된다. 잉어들이 아무리 힘이 좋다고 하지만 물이 얕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구조다. 잠깐 한눈팔다 다른 세계로 밀려나 버린 불귀(不歸)의 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옆에 긴 다리의 외가리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K씨는 돌다리를 건너 둑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갑자기 돌다리 건너 풍경이 무지개처럼 몽롱해진다. 전생을 망각한다는 ‘레테의 강’ 너머 세계 같다. 불귀 불귀, 돌아갈 수 없음... 외가리처럼 멍하니 그쪽 세계를 본다. 담배연기는 시름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