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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 읽기

<양왕용의 시 읽기 49>손진은의 이슬

작성일 : 2021.10.02 10:09

<양왕용의 시읽기 49>

 

이슬        /손진은

 

왕관처럼 둘러쓰고 있었다

콩밭도 바랭이도 감나무 잎새도

바알간 발가락의 새들도

 

새벽 밭길 가다 보면

내 무릎에서 깨지는 고 투명한 심장들이

안쓰러웠다

 

대기가 추위와 붙어 낳은 그들

하늘 품에 안겨 있다가

벌레 소릴 배음으로

서운거리며 장가드는 왕자들을

 

손 내밀어 반기는 대지의 신부들

몰래 솟구치는 꽃망울들

 

소나기 말고

장마비는 더더욱 말고

매일 밤 자는 머리맡에

몰래 타는 목 적셔주는

또록또록 뜬 눈동자 같은 것 있었으면 싶었다

 

가끔 부릴 죽지에 묻고 있다가

해가 보금자리 걷어내면

날개 파닥이며 하늘로 돌아가기도 하는

작은 새 같은 그들

-시집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2021)

 

<약력> 1960년 경북 안강 출생, 경북대학교 국문과 학, ,박사학위 받음, 경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대구 영동교회 장로, 1987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1995매일신문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 시와 경계 문학상,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시집 두 힘 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 상으로 풀어 놓다등 다수, 연구논저 시창작교육7

 

손진은 시인은 ,학부의 학과는 다르지만 필자의 경북대학교 후배이다. 손 시인은 78학번으로 1979년 가을에 영남대학교로 옮긴 김춘수 시인에게서 1년 반을 배운 마지막 제자이다. 그러나 그는 김춘수 시인의 추천을 받지 않고 20대 후반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당당하게 등단했다. 그리고 문학평론도 겸하고 있다. 그와 필자는 같은 개신교 장로이다. 그래서 필자와 같이 개신교 출신 시인들의 동인인 <열두 시인 동인회> 회원이며 최근에는 <동북아시아 기독교 작가회의> 회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까지 현역 장로로 교회의 여러 활동에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그가 올해에 시집을 내었는데 그것이 <2021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 되었다. 손 시인은 매사에 진지하면서도 긍정적인 인격과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 역시 이러한 인격과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의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손 시인 자신도 밝히고 있지만 그의 유년 시절 고향에서 만난 사물들과 일상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슬역시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 시 속의 화자 는 새벽이슬을 바라보며 밭일을 나가는 농부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의 그 자신이라기보다 유년시절 아침에 밭일 나가는 아버지 혹은 그 아버지를 따라 나선 어린 손 시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의 제재인 이슬은 아침 해가 솟으면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이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이슬의 소멸 즉 덧없음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손 시인의 이 작품에서는 소멸에 대한 인식은 둘째 연 마지막 행인 안쓰러웠다를 제외하고는 거의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이른 아침 풀잎이나 나뭇잎에서 발견되는 투명한 이슬들이며 해가 솟으면 아름답게 빤짝이는 순간의 이슬들이다.

이 시를 지배하고 있는 시적장치는 주로 비유(직유, 은유, 활유, 의인법들을 포함)이다. 그것들은 주로 이슬의 보조관념들이다. 시의 서두부터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맨 첫 시어 왕관은 직유이며 이 보조관념이 이 시를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투명한 심장’, ‘장가드는 왕자’, ‘대지의 신부’,‘솟구치는 꽃망울’, ‘또록또록 뜬 눈동자’,‘하늘로 돌아가는 작은 새등 한결같이 아름다운 사물들이다. 이러한 비유들로 인하여 이 시는 마치 동화 속의 어린이가 풀잎에 매달린 이슬을 바라보는 것처럼 한 폭의 환상적인 그림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연에서 이슬의 소멸을 날개 파닥이며 하늘로 돌아가기도 하는 작은 새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그의 개신교 신앙이 내포된 인식이다 즉, 이슬이 사라진다는 것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인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기독교적 상상력이라 볼 수 있다.

난해하거나 관념적인 시들이 범람하는 요즈음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시를 우리에게 선물한 손 시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