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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9.30 10:25
살아남은 자의 슬픔
/양선규
"팔뚝 하나를 잘린 자는 손가락 하나 잘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김서령, <여자전>)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 여시 살아오면서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도박판(승부를 걸던 일들)에서 그랬습니다. 그때의 일들을 자세히 적어서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목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하고요. 오늘은 그 서막으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타짜든 사이비 타짜든, 전업(專業) 수준으로(삶의 목표가 오직 그것으로) 도박판에서 몇 년을 구르다 보면, 승부는 염력(念力)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터득하게 됩니다. 그런 수준에서는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운하는 것은 하수(下手)들이나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직 평정과 인내를 바탕으로 한 자기와의 싸움이 결국은 승자의 길로 자신을 안내하는 첩경(捷徑)임을 알게 됩니다. 내 패를 보고 얼른 상대 패를 짐작할 수 있는 집중도 그 경지에서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그런 집중이 가능해야 판의 기운을 나의 의지 안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염력의 운용이 사람에게 가능해진 연후에 기계에도 적용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도박사가 되려면 우선 자기를 이겨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굳이 도박판이 아니더라도 세상사 모든 것에는 ‘염력의 경지’가 개입합니다. 상대가 사람이든 기계든, 그들과 싸울 때에는 반드시 내 염력이 먹힐 때와 ‘씨알도 안 먹힐’ 때가 있습니다. 판에 집중하다 보면 그 느낌이 금방 옵니다. 제가 해본 모든 큰 싸움들은 판에 패가 돌기 전에 이미 그 승부가 결정이 나 있었습니다. 이기는 감이 오지 않고 반신반의하던 싸움은 결국 모두 패했습니다. 진정한 도박판에서는 "따는 게 장땡이다(꿩 잡는 놈이 매다)"와 같은 수준 낮은 격언은 아예 없습니다. 그 말은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서 한 푼 한 푼 따서 모은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싸움판의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도박판을 지배하는 ‘율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기는 자만이 딸 수 있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이기고(무엇으로가 아닙니다) 무엇을 지는가? 어떻게 승기를 잡는가? 그것은 경지(境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면 누추해집니다. 일기일경(一機一境), 오직 몸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일기일경은 주로 선가(禪家)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깨달음의 경지는 한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의 구체성’에 속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 문자적 의미는 ‘각자 깨치는 길이 따로 있다. 그 길에 들지 못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다. 깨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열심히 정진하라.’ 정도가 될 것입니다.)
세간의 이(利)를 추구하는 도박판이 아니라, 가진 것 안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싸움의 기술’에서도 염력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집중해서 내 마음이 세상을 흔들 수 있을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상대의 패를 알기 위해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고수들의 행색(行色)입니다. 어디서나 하수들은 조급합니다. 상대의 수(手)를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의욕만 앞서서 마구 패를 노출합니다. 한 장 한 장, 내 패가 다 드러나고 길이 막혀 결국은 상대의 기(氣)에 압도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오금이 저려옵니다.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은 쓰이고 패는 늘 자기 마음대로 날뜁니다.
싸움판을 전전하면서 느낀 게 또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든 기계든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만유인력의 법칙(비유입니다. 부처님도 돌아가실 때 "모든 것은 변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에서 자유로운 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됩니다. 매번 같은 사람들과 싸워도 싸움판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면모의 상대를 만납니다. 동지나 친구는 오직 수사에 불과합니다. 변치 안는 게 하나 있긴 합니다. 칼을 든 자들은 누구나 복수(復讐)의 염(念)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수에는 수많은 동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수의 방법 역시 각양각색입니다. 정정당당하게, ‘내 뼈 하나를 주고 상대의 목을 받아오는’ 복수도 있고, 비겁하게, 암수를 써서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야비한 복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도 암수를 날리고 싶을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우산 양심’이든 ‘구두 양심’이든 스스로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기도 합니다.
타고난 승부사들, 진정한 타짜는 ‘내 팔뚝 하나를 주는 복수(復讐)의 미학’을 아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누구나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입니다. 누구도 이 싸움판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부모의 원수를 통쾌히 갚고, 수많은 적을 만들어 내 자식에게 또 한판의 복수극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입니다. 다만, ‘내 뼈 하나를 주는 복수의 미학’은 스스로 깨쳐야 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싸움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도요.
참, 도스토예프스키도 유명한 도박사였다는 건 다 아시죠? 그의 언행에 대해서 잘 요약한 글이 있어 인용합니다.
...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와 '투전고'의 저자 유승훈 씨는 도박꾼을 도박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병적 심리로 '도박자들의 오류'와 '통제의 착각'을 꼽는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이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회전 원판과 주사위의 마력을 내뿜는 룰렛에 광적으로 몰입했다.
심리학 용어인 '도박자들의 오류'란 실패를 거듭할수록 드디어 성공할 때가 왔다고 도박자들이 확신하는 이상심리를 뜻한다. 슬롯머신을 계속 당기면서 이번에야말로 잭팟이 터질 때라고 지나친 기대심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도박꾼들은 또 자신이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통제의 착각'에 빠지곤 한다. 다시 말해 판의 결과를 훤히 꿰뚫고 있으며, 자신의 예지력은 반드시 맞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형편없이 '똑똑한' 도박중독자들은 '돈을 딸 수 있다'는 불합리한 신념을 파멸할 때까지 견지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통제의 착각'에 얼마나 깊숙하게 함몰됐는지는 유럽 여행길에서 여비를 모두 날리고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나타난다.
"미샤 형, 나는 룰렛의 비결을 찾았고 그 비결로 한 번에 1만 프랑을 땄어. 다음날 또 룰렛을 했는데 너무 흥분해 비결을 적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만 돈을 다 잃었어. 저녁 때 다시 비결에 따라 룰렛을 했더니 또 3천 프랑을 쉽게 땄지 뭐야. 이러니 어찌 내 비결이 맞는다고 믿지 않을 수 있겠어?"
이토록 확신했던 '비결'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통치 못했다. 형이 보내준 돈을 탈탈 털리고 시계까지 전당포에 잡혀야 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룰렛을 통제했다기보다 룰렛이 도스토예프스키를 통제한 셈이 됐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중독에 주목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자살'이라는 논문을 썼다니 러시아의 대문호는 문학뿐 아니라 심리학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셈이다. (임형두, ‘도박중독자 도스토예프스키’)
평생을 도박중독자로 살아오면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진정 몰랐습니다. 중독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돌이켜 보면 어떻게 좋은 세월을 만나서 이런저런 도박판을 전전하며 살아온 나날들이었습니다. 판에서 강제로 쫒겨나지 않고 그나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도 적을 수 있는 것을 큰 복이라 여깁니다.
<소설가 /대구교육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