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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 읽기

<양왕용의 시 읽기 48> 조달곤의 기수역汽水域

작성일 : 2021.09.26 10:58

 

기수역汽水域* /조 달 곤

 

낙동강 하구둑을 지난다

 

흘러온 낙동강 물이 남해 바다와 만나는 곳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처음 몸을 섞는 곳

그 사랑의 힘으로 사시장철 물아지랑이가 피던 곳

 

산란을 위해 찾아드는 물고기들의 고향

자연 양수羊水로 넘치는

 

생명의 자궁이었던

모천이었던

 

내 어릴 때의 놀이터였던

애기 재첩을 줍고 말똥게와 놀던 곳

 

그 많던 철새들의 울음소리와

끝없이 갈대숲으로 일렁이던 곳

 

낙동강 하구둑을 지난다

바닷물 침입을 온몸으로 막고 서 있는

기수역을 온통 집어삼킨

 

*민물과 바닷물이 자유롭게 섞이는 곳

-시집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2021)

 

<약력> 1941년 부산 출생, 경북대 사범대 국억교육과 졸업, 동아대학교 (문학박사)

문학 21로 등단, 경성대학교 국문과 교수 역임. 정년 전부터 밀양 다원에 집을 마련하여 전원생활을 하고 있음. 시집 뒤란이 시끌시끌해서,곤을동을 지나며, 연구논저 한국근대시문학연구,한국모더니즘 시학의 지형도.

 

조달곤 시인과 필자가 처음 만난지도 꽤 오래 되었다. 1964년 대학 2학년 시절 군에서 제대한 조 시인과 함께 경북대학교 대학 연극에 함께 관여하면서부터이다. 그는 그해 경북대학교 학보사 주최 전국 대학생현상모집 시부문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조 시인은 곧 졸업 후 부산으로 떠나고 필자는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69년 조 시인의 소개로 경남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같이 부산에서 살게 되었으며 남다른 인연을 쌓았다. 그는 부산의 중등교사 서울의 유명학원 강사를 거쳐 경성대학교 시학 교수가 되면서 시를 부지런히 썼다. 이번의 시집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2021 세종도서문학나눔>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기수역>의 제목은 낯설다. 그러나 조 시인은 한글 제목 옆에 한자를 병기해 놓고 각주까지 밝히고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자유롭게 섞이는 곳이라는 뜻인데 이 시에서는 낙동강 물과 남해 바닷물이 만나는 곳 즉, 하단下端으로 알려진 낙동강 하구이다.

조 시인의 고향은 낙동강 기슭의 학장鶴章이라는 농촌 마을이었다. 지금은 사상구 학장동으로 근처에 사상 구청도 자리 잡은 도시가 되었지만 조 시인의 유소년기에는 낙동강을 끼고 조금만 내려가면 을숙도가 있는 강촌이었다. 조 시인은 이 마을에서 560m 구덕산을 넘어서 경남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도보였다.

이 시는 시적 화자 즉 조 시인이 그의 유년기의 추억의 공간인 낙동강 하구의 하구둑을 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낙동강 하구둑은 낙동강 하구 유역의 염해 방지를 위하여 19839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8711월 완공한 방조제이다. 이 공사를 위하여 우리나라 국토 건설 공사에 도입된 환경영향평가제도를 19813월 맨처음으로 도입한 공사였으나 처음부터 각계의 입장에 따라 그 건설에 대한 찬반의 입장이 대립되기도 하였다. 썰물 때에 상류 21Km까지 바닷물이 역류하여 물금취수장의 취수를 위협하였고 김해평야의 농업용수 학보도 시급하였다. 반면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 파괴와 수질 악화 등의 역기능도 있었다. 지금은 수문은 열어 다리 기능만 하고 있지만 여전히 염수 피해와 농업용수 확보를 걱정하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하구둑을 조 시인은 첫 연에서 낙동강 하구둑을 지난다라는 현재형 문장의 한 행으로 지나고 있다. 그러나 둘째 연부터 그는 과거를 회상한다. 따라서 문장도 과거회상 시제가 된다. 조 시인에게 기수역2-4연에서 우선 인류의 원초적 장소로 인식된다. 즉 낙동강물과 남해바다가 만나 처음 만나 사랑의 힘으로 몸을 섰으며 아름다운 물아지랑이가 피던 곳이요, 물고기들의 모천으로 생명을 잉태하던 곳인 것이다. 다음으로 5-6연에서 그의 유년기의 순수한 체험 공간, 애기 재첩 줍고 말똥게와 놀던 곳이요 그 때 들은 철새 울음소리와 갈대숲이 일렁이던 곳으로 회상한다. 이 두 부분은 한결같이 과거회상으로 현재에는 상실된 공간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 시인은 낙동강물과 바닷물이 자유롭게 만나는 것을 억제하는 하구둑이 결코 반가운 존재가 될 수 없다. 마지막 일곱째 연에서 다시 현재형으로 돌아와 바닷물과 낙동강물을 차단한 하구독에 대한 원망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요즈음 기후변화라는 펜데믹에 전전긍긍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러한 모천귀향의식의 시가 보다 흥미롭게 읽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왕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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