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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60> 경적

작성일 : 2021.09.21 04:15 수정일 : 2021.09.21 04:23

경적警笛    /박명호

 

비가 부슬부슬 뿌린다.

이런 날은 운전대를 접고 선술집에서 소주잔이나 기울이는 게 딱이다. 택시 경력 십 년째인 정남씨도 한때는 꽤 낭만이 있었고, 시인 꿈도 있었다. 부산역 앞에서 젊은 아가씨 둘이 손을 들었다. 경험상 그 아가씨들은 필시 멀리서 왔을 테고, 십중팔구 해운대를 가자 할 것이다.

태종대 가요.”

그러나 차에 오른 그녀들은 뜻밖의 장소를 말했다. 연인처럼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뭔가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영도다리를 건너 해안가를 지날 즈음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거운 것 같아 일단 택시를 멈췄다. 오지랖 넓다 욕먹어도 그녀들의 틈을 살필 참이었다.

추가 요금을 받지 않을 테니 경치구경이나 하시지요.”

그녀들은 고마워하며 택시에 내려서도 서로의 손은 놓지 않았다. 그리곤 몇 곳을 둘러보더니 바로 돌아왔다.

뭐 도울 일이 없을까요?”

정남 씨는 기왕 가는 물살이라 용기를 내었지만 그녀들은 고개만 갸웃 하고 말았다. 그사이 택시는 태종에 도착했다. 그녀들은 고맙다며 돌아서갔다.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비 탓이겠지... 하며 정남 씨는 자신의 감상을 차단하고 운전대를 돌렸다. 영도다리 부근 네거리에서 신호를 받아 막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어린 소년 하나가 뛰어들었다. 급하게 핸들을 꺾고 경적을 눌렀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쪽저쪽 경적들이 빵빵거렸다. 그때 길 저편으로 사라지는 소년 대신에 조금 전 그 아가씨들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 그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들에게서 느꼈던 무거운 분위기는 바로 죽음의 그림자였다. 정남 씨는 역주행이었지만 꺾은 핸들 그대로 그녀들이 있는 태종대로 내달려갔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