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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가요산책19> 김추자의 카츄샤의 노래

작성일 : 2021.09.18 10:19

 

시가 있는 가요 산책 (19)

 

김부자, 카츄샤의 노래

 

이승주 (시인)

 

 

 

잠든 세상의 지붕 위로, 잠든 세상의 이불 속으로도 소록소록 함박눈이 내려 쌓이는 야심한 밤이다. 나 혼자 깨어 있는 이 불면의 야심한 밤에, 시 공부하는 저녁 모임에 시 창작 강의를 하러 가면서 차 안에서 들었던 카츄샤의 노래가 시마(詩魔)와 함께 찾아왔다. 유튜브에 접속해 김부자의 노래를 찾아 어둠 속에서 이어폰을 끼고 듣는다. 부산의 박명호 소설가는 만주 일기의 프롤로그에서 모든 감동이란 첫 경험에서 일어난다고 하여 공감하였는데, 야심한 이 밤의 정적과 어둠의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김부자의 노래가 새삼 감동 속으로 나의 불면을 이끈다. 낭랑한 기타 음()이 열고, 이어서 그 기타 음을 삼키고 압도하는 색소폰의 전주(前奏)가 생의 파노라마처럼 웅장하다. 샘물 같은 순정한 첫사랑의 기타 선율, 샘물 같은 첫사랑이 도도한 강물을 이루어 마침내 노을이 타는 바다에 이르도록 이끄는 웅장한 색소폰의 선율…….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얼어붙은 마음속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엾어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떠나간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보내드린

첫사랑 맺은 열매 익기 전에 떠났네

내가 지은 죄이기에 끌려가고 끌려가도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보고파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떠나간다

 

노래에도 임자가 따로 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김부자가 불러야 마땅했다. 카츄샤가 된 김부자의 노래가 카츄샤의 비련의 사랑과 삶 속으로 나를 이끈다. 색소폰과 드럼의 반주와 더불어 애절히 심금을 울린다.

 

시의 말은 압축과 생략으로 정제한 말이며 또한 천연덕스럽게 하는 거짓말이기도 한데, 더러 노래는 이 같은 시의 말을 빌려 거기에 박자와 가락의 옷을 입힌다. 카츄샤의 노래도 그렇다. 물론 노래의 마디를 생각하고 카츄샤의 삶을 한 노래 속에 압축적으로 담기 위해 그러하기는 하겠지만, 여기서, ‘찬바람은 내 가슴에 불고 흰 눈도 내 가슴에 쌓이는데라고 하지 않고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라고 하여 서술어를 과감히 생략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또 얼어붙은 마음속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라니?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라니? 모닥불은 마음속에 아니라 대지 위에 피우고, 찬바람이나 흰 눈은 내 가슴이 아니라 대지 위에 불고 대지 위에 내려 쌓이겠는데 그렇다면 얼어붙은 마음속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라는 말이나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라는 말은 다 거짓말 아닌가. 이렇게 따지면 거짓말이 틀림없겠으나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우리네 인생을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거짓의 노랫말은 참말보다 더한 참말로 우리의 심금에 와닿지 않은가. 좋은 시가 천연덕스럽게 하는 거짓말이기는 하나 참말보다 더한 참말로 공감과 울림을 주듯이.

 

어둔 허공으로부터 굵은 눈송이가 성큼성큼 내리는 야심한 밤이라서일까, 카츄샤와 나타샤, 언뜻 서로 비슷하게만 느껴지는 낯선 이국적인 이름 탓이랄까. 한바탕 실컷 카츄샤의 노래를 듣고 나서 바깥 베란다로 눈길을 돌려 내리는 눈을 보니 문득 함박눈 속에서 나타샤가 떠오르는 건 웬일인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카츄샤의 노래가 카츄샤의 곡절(曲折) 많은 삶의 서사, 즉 도련님과의 첫사랑과 이별의 슬픔 그리고 그리움을 절절히 노래하는 데 반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나의 외로움과 쓸쓸함, 나타샤를 향한 나의 그리움과 바람을 다분히 낭만적으로 노래한다. 내 가난하지만 흰 당나귀를 타고 푹푹 눈 쌓이는 산골로 가고자 하는 것은 출출이(‘뱁새의 방언)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의 방언)에 살지언정 그건 더러운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나타샤와 함께 살기 위함이니, 푹푹 흰 눈이 내리는 산골의 마가리 그곳에서 아름다운 나타샤와 내가 서로 사랑하는 밤이면 흰 당나귀 저도 응당 좋아서 응앙응앙 환희의 울음을 울을 것이리라.

 

나타샤를 생각하다 푹푹 흰 눈이 내리는 밤 혼자 쓸쓸히 소주를 마시는 백석을 생각한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 아름다운 나타샤는 평생 그를 사랑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한 자야(子夜)이리라. 평생 모은 천 억 재산을 기부하면서도 사랑하는 백석 님의 시 한 줄만 못하다 하였던 자야 김영한. 그런 사랑하는 자야와 함께라면 출출이 우는 산골의 마가리 삶이라도 어찌 좋지 않으리. 왜 아니겠는가. 천금(千金)이나 왕관조차도 아깝지 않을 순정한 사랑이란, 연정이란 그런 것인 것을.

 

톨스토이의 부활이 아니더라도 사람 사는 이 땅에 카츄샤는 많다. 카츄샤, 그리운 나의 카츄샤,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오늘 밤, 남은 밤을 다시 한 번 카츄샤를 사랑하고 싶다. 가엾은 나의 카츄샤, 남은 이 한 생이 다할 때까지 이제 내 사랑에 마침표는 없다.

 

눈이 그치고 천지가 온통 눈빛(雪光)으로 환하다. 한바탕 울고 난 듯 시린 하늘 찬별들의 눈망울이 초롱하다. 오늘 하루도 한세상 잘 건너왔다. 서서히 어둠이 물러나고, 새벽의 한기(寒氣) 속에 새날의 먼동이 밝아오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