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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 읽기

<양왕용의 시읽기 47> 하청호의 눕는 풀

작성일 : 2021.09.16 11:26 수정일 : 2021.09.16 11:29

눕는 풀   /하청호

 

 

풀을 깎는다

 

낫이 지나가기 전에

풀은 마지막 제 몸을

곧추세운다

 

-악 사-

 

서늘한 낫질에

서둘러 떨어지는 풀씨

 

풀씨 위로

미련 없이 눕는 풀

 

-시집 나는 아직도 그리움을 떠나보내지 못했다(2020)

 

<약력> 1943년 경북 영천 출신, 계명대학교 대학원 석서(유아교육 전공), 경북대 사범대 부설 초등학교 교장 역임, 매일신문,동아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1972),현대시 학시 추천(1976), 대구시문화상, 세종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방정환 문학상, 윤석중 아동문학상 등 수상, 시집 다비 노을, 새 소리 그림자는 연잎으로 뜨고, 동시집 빛과 잠, 잡초 뽑기, 말을 행구다30권에 가까운 저서가 있음.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 사장,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자문위원

 

 

하청호 시인과는 만난지 오래 되지는 않았다. 문효치 시인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재임한 1915-18년 임기에 필자와 같이 부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깊은 교류를 하게 되었다. 대구에 오래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하 시인과 필자의 대학 시절부터 대학원 다니던 시절의 대구문단 막내 시절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수도권이나 강원도에서 하는 문단 행사를 마치고는 승용차로 대구까지 함께 내려오기도 하였다. 하 시인은 평소 과묵한 편이다. 그렇다고 인품에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전혀 냉정한 사람은 아니다. 하 시인은 이광복 이사장 임기인 현재까지 부이사장을 연임하고 있다. 하 시인은 동시 분야에서는 이미 대가를 이루어 여러 상을 받았다. 그런데 약력에 있듯이 1976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시도 쓰고 있다. 그 동안 시집도 네 권이나 엮었다.

 

하 시인은 동시를 열심히 쓰면서도 시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지고 있다. 이번의 시집 제목은 그러한 시에 대한 그리움을 번영한 것이다. 이 시집에서는 주로 말 즉 언어에 대한 외경(이것은 시집 해설자인 박남일 평론가가 제목의 일부로 사용한 것임)이 담겨 있다. 그래서 시가 전반적으로 요설적이 아니고 극히 절제된 어조로 응축미기 보인다. 심지어 말의 궁극적 도달점은 침묵이라는 입장에서 침묵에 주목하다라는 작품도 있다.

눕는 풀의 경우는 이러한 언어 탐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시를 읽으면서 김수영의 시 과 겨눌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다시피 김수영의 시에 등장하는 은 바람과 힘겨루기를 하는 풀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풀의 끈질김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불굴의 저항정신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하 시인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은 김수영의 풀보다 훨씬 처절하다. 시적화자를 풀을 낫으로 깎는 사람으로 설정하여 풀의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풀은 낫에 의하여 배어지기 직전 제 몸을 곧추 세운다. 이 부분 역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목숨을 거두는 순간 최후의 몸부림을 하면서 긴장한다. 풀 역시 그러하다고 하 시인은 인식한 것이다. 더구나 풀은 낫에 의하여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낫질을 저항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풀씨를 서둘러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 풀씨 위로 미련 없이 누워 풀씨의 이불도 되고 풀씨가 싹을 티어 새로운 풀로 탄생하는 거름도 되어준다. 그래서 풀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해마다 낫질해도 해마다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하 시인은 풀의 부활을 노래하고 있다. 몸을 던져 부활하는 풀이 비바람을 이겨내는 풀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해 본다. ( 양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