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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9.02 12:44
숲속 /최원규
숲속에 들어서면
그리운 이의 가슴에 안기는
냄새가 아니라
고향 여름 안산에서 불어오는
풀냄새가 아니라
옛집 부엌에서 풍기는 냉갈내
꼭 그와 같은 내음이 아니라
푸른 잎이 떨며 잉잉대는
다디단 벌집 속살 같은
아기새 애벌레들의 어미 찾는 소리
그 소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퍼지는 신열처럼
욱신거리며 다가오는
나무와 잎새와 꽃가루가 한 몸이 되어
어리디 어린 아이의 손가락 사이에서
잠든 고요 그 내음이랄까.
-시집 『아예 하나였던 것을』(2020,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약력;1933년 충남 공주 출신, 충남대학교 국문과 졸, 충남대학교 대학원(문학박사), 충남대학 교 인문대 학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1962년 ⟪자유문학⟫ 신인상 당선, 60 년대사화집 동인, 시집 『오랜 우물곁에서』, 시선집 『하늘을 섬기며』 등 20권, 저서 『한국 근대시론』,『한국현대시의 형상과 비평』 등, 제22회 현대문학상, 제19회 현대시인상, 제5 회 한국펜문학상 제11회 충청남도문화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 국현대시인협회 고문
최원규 시인과 교류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문덕수 시인이 주도한 71년에 발족한 한국현대시인협회와 80년대에 발족한 학술단체 한국시문학회 초창기 멤버로서 같이 했으니 50년이 되었다. 그래서 각종 모임에 자주 만났으며 시집과 저서를 낼 때마다 서로 주고받았다. 어느 해 겨울에는 아내가 눈이 보고 싶다고 하여 기차를 타고 대전에 내려 계룡산으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친구와 눈 구경 나온 최 시인을 만나 반가운 해후를 하기도 했다. 최 시인은 1950-60년대 ⟪현대문학⟫과 쌍벽이던⟪자유문학⟫ 출신이니 시단에 데뷔한 지도 60년이 되었다. 미수米壽인 지난해에 낸 시집 『아예 하나였던 것을』을 최 교수 특유의 단아한 글씨로 서명하여 보내왔다. 시집 속에서 필자와 같은 개신교 신앙을 최근에 가진 노시인의 시편들을 발견하여 더욱 기뻤다.
시 「숲속」은 6부로 엮은 61편 가운데 처음으로 만나는 시이다. 그런데 이 시는 90을 앞 둔 시인의 상상력이라고 볼 수 없는 젊음과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긴장감이란 것은 반어적 수사 ‘아니라’에서 오는 긴장감이다.
최 시인은 초기부터 나무와 숲을 사랑하는 시인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아마 지금도 보문산 기슭을 산책하며 숲으로 들어가기를 즐겨하는 최 시인 자신일 수도 있다. 그는 숲 속을 들어서면서 그리운 이 어쩌면 어린 시절의 어머니 냄새를 느끼기도 하고, 고향 공주의 안산에서 바람 속에 섞여오던 풀냄새도 느끼는데, 그 냄새는. 그 고향집 부엌에서 타는 냉갈대의 내음으로까지 구체화 된다. 다시 이번에는 냄새가 아니라 아기새 애벌레의 어미 찾는 소리를 느끼는데 그 소리는 푸른 잎이 떨며 잉잉대는 달디 단 벌집 속살로 비유되어 공감각적 이미지가 된다. 이렇게 복합적인 감각을 숲속에서 느끼다가 결국 온몸이 열이 나고 욱신거리는 유년 시설의 체험과 결합된 나무와 잎세 꽃가루가 함께 어울려져 어리디 어린 손가락 사이의고요 즉 소리가 아닌 고요, 즉 적막감의 냄새를 숲 속에서 발견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결코 노 시인의 상상력이 아니다. 최 시인에게 숲은 아직도 젊다 못해 유년의 추억들로 충만한 숲이 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서 적막감까지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양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