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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58> 여자는 타율이다

작성일 : 2021.08.31 10:20 수정일 : 2021.08.31 10:47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58.여자는 타율이다 /박명호

 

모름지기 인생이란 그 어떤 기대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고, 그 기대치는 매 순간의 확률에 얽매이게 되는 법이다.

야구광이면서 여자도 좀 밝히는 편인 그는 모든 것을 야구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사업상 시외 나들이를 자주 하는 그는 옆 자리의 손님에 대해서도 야구 경기를 하듯 했다. 그날도 대구에 들렀다가 오후에 있을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서 서둘러 부산행 고속버스에 오르면서 타율을 생각했다.

옆자리 손님은 투수가 던지는 공에 해당된다. 그 손님이 남자인 경우는 두말할 필요 없이 삼진 아웃이며, 여자는 일단 스윙이다. 여자 가운데도 할머니는 파울 플라이 아웃, 쪼끔 나이 든 아줌마는 플라이 또는 까다로운 타구 아웃이며, 아가씨는 안타가 되는 것이다. 아가씨도 미모의 정도에 따라 루타수가 정해진다. 요행히 재미있는 대화를 나눈다든지 애프터가 실행되면 타점이 올라간다. 아가씨와 아줌마를 구별할 수 없는 어중간한 경우는 야수선택이다. 요즈음은 특히 야수선택이 많다.

그는 27번인 자신의 좌석을 찾으면서 화투의 갑오란 끝발이 말해 주듯 일단 타석에 들어서는 조짐이 좋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는 최근 연속 7안타를 날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연속 안타의 신기록 행진이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터였다. 바로 앞 타석에서도 미모의 아가씨와 애프터 일보직전까지 갔었던 것을 고려하면 굳이 그의 끼(?)를 나무랄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무엇인가.

옆자리의 손님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육감적으로 방망이가 빗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운의 신기록 행진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줌마였다. 야수선택이라도 기대해 볼 수 없는 아줌마도 한참 아줌마였다. 얼핏 버스를 내려 다음 차를 타고 싶었지만 야구 경기 시간을 맞추자면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진 그는 창 쪽에 앉은 아줌마와 가급적 사이가 벌어지게 앉았다. 읽을거리로 사들고 간 신문마저도 접고는 잠이라도 잘 요량으로 눈을 감았다.

얼마나 갔을까, 아줌마의 어깨가 버스의 흔들림에 따라 조금씩 부딪쳐오면서 그 어떤 촉감이 감지되어 왔다. 어인 일인지 그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더구나 여성 특유의 향기까지 솔솔 풍겼다. 그래서 굳이 몸을 움직여 피하지 않았다.

뜨는 해가 아름다운 만큼 지는 해도 아름답다. 무릇 미추(美醜)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며 생각하기 나름인 것을...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는 그 위대한 철학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나이를 생각했다. 여태 타율만 생각해 온 그의 나이도 어느덧 중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미의 개념은 한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자리를 고쳐 앉아 옆자리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 그새 사람이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매력이 있었다. 조금 전 마치 징그러운 벌레 대하듯이 멀리 떨어져 앉으려고 했던 자신을 나무라면서 가급적 가까이 밀착하려 했다.

그래, 우수한 타자일수록 타구의 방향을 한쪽으로 고집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것을 확대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좋은 인간관계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연애 감정이 바탕이 될 때 힘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연애감정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인간이 이기(利己)를 버리고 이타(利他)로 나아가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연애감정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란 무엇인가. 그 생을 만들고 유지하려는 욕구는 무엇 때문이며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곧 연애감정이다. 이렇듯 소중한 연애감정을 바람끼로 매도한다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그는 여태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수많은 여행을 삭막하게 보낸 것이 안타까웠다.

아무튼 그는 아웃 직전 안타를 날렸고 신기록의 행진은 계속할 수 있었지만 그제는 진루 뒤에 오는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는 척하며 몸을 밀착시켜 적당히 재미를 맛보는 도루(훔치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는 치고달리기를 감행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의례적인 말걸기의 번트를 댈 것인가...

그것은 정말 즐거운 고민거리였다. 도루나 치고달리기를 잘못했을 때 자칫 치한으로 매도당하는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야구의 작전이란 늘 골치가 아픈 것이다.

그가 이렇다 할 작전을 세우지 못한 채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있을 때 마침 핸들이 급하게 꺾이면서 버스가 옆으로 심하게 쏠렸다. 그 바람에 옆자리 여인이 그의 옆구리 쪽을 들이박았다.

,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란 언제고 오는 법. 그는 찬스를 놓치지 않고 괜찮다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그녀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소곳이 홍조 띤 미소를 짓는 그녀는 더욱 아름다웠다. 그것은 행운의 번트 안타였다. 곧이어 그녀는 귤 두 개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또 무엇인가. 행운의 진루는 계속되었다. 그는 곧 호의의 표시로 귤 하나의 껍질을 까 반쪽을 그녀 쪽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에게 홈베이스가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