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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27) 제5부 하지왕과 광개토왕(1)

작성일 : 2021.08.31 10:17

대가야제국의 부활(27)

5부 하지왕과 광개토왕(1)

/김하기

 

 

광개토대왕의 침전 안에는 대왕의 심복 중에 심복들만 불려 들어왔다.

국상이면서 연나부(연나부: 고구려 5부의 하나. 연나부,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관나부는 몽골어로 동서남부 중앙을 가리킨다. 율령이 갖추어진 소수림왕 때부터는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로 한자어로 명칭이 바뀐다.) 부장인 을력소와 울절 밀운 장군, 태대사자 고척동과 조의두대형 연개남이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사관인 태사령 고사통이 죽간과 두루마리를 들고 들어왔다.

광개토대왕이 이들을 보니 감개가 무량해 힘없는 눈이 가늘게 떨렸다. 평생 이들 장군과 함께 말 위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천하 사방팔방으로 광개토경을 넓혔다.

태왕은 국상 을력소에게 말했다.

태대형 고막리는 보이지 않구나. 왜 여기에 부르지 않은 건가.”

고막리 왕자는 태왕의 애첩 소향의 아들로 지인용을 두루 갖춰 젊은 나이에도 2관등인 태대형을 맡고 있었다. 고막리는 거련 태자와 보위를 경쟁할 정도로 출중한 인물로 태왕은 한때 고막리를 거련 대신에 태자로 삼을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국상이 태왕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자 장화왕후가 국상을 제지하고 나서며 말했다.

폐하, 막리는 지금 멀리 남쪽 하국(고구려는 가야, 신라, 백제를 하국으로 불렀다. 차별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한 민족, 한 경제공동체 안에서 지리적 아래 지방으로 인정해 한 일원으로서 하국이라 부른 것이다.)으로 내려가서 변방을 살피고 있어 부를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구나.”

태왕은 지금 막리를 데려오라고 명령을 한들 이 자리에 있는 장화왕후와 거련, 거련의 심복들이 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을 것이다.

장화왕후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폐하께서 심복하는 중신들은 다 모였습니다. 먼저 태사령이 폐하께서 재위 기간 동안 이룬 위업과 사적을 말씀드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거련 태자가 장화왕후의 말을 이어 명했다.

태사령, 앞으로 나와 읽으시오!”

뒤에서 시립해 있던 태사령이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나와 죽간과 두루마리를 펴서 태왕의 업적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소신이 감히 사초에 기록된 위대한 폐하의 생애와 위대한 업적을 받들어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국강상광개토호태왕께서는 고국양왕의 장자로 탄생하시어 어려서부터 총명해 문일지십을 하셔서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으며 아명을 담덕이라고 했습니다. 담덕의 예덕은 공맹에 비길 정도로 크고 높아 백성들의 존망을 한 몸에 받았으며, 무용은 호랑이처럼 담대해 적들은 이름만 들어도 떨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열세 살에 태자로 책봉되어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백제, 후연과의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터에서 적들을 물리치며 용병술을 익혔습니다. 태왕의 용맹과 지략은 후연 거란 숙신 말갈 동부여 신라 백제 가야 왜를 비롯한 이웃나라에게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태자의 나이 17세에 고국양왕이 승하하시니 담덕 태자는 고구려 제19대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께서 왕위에 오른 그해부터 지금까지, 22년 동안 끝없이 이웃한 모든 세력들을 정복해 조그만 산골짜기 국가를 동북방의 패권국으로 변모시킨 위대한 정복군주이셨습니다.”

태사령 고사통은 아직도 살아있는 신화와 전설인 태왕 앞에서의 두려움 때문인지 태왕의 위업에 대한 감격 때문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사초를 읽어 내려갔다.

태사령이 읽은 사초 내용은 그릇되거나 과장됨이 없었다.

고구려 사관들이 실수와 과오 혹은 태타에 의해 태왕의 위대한 업적을 결락시키거나 깎았으면 깎았지 과장되게 부풀리지 않았다. 고구려 사초는 고주몽 동명성왕 이래로 객관적이고 엄정한 춘추필법을 사용한 사관들의 역사의식에 바탕 한 사실적인 기록이었다.

사초에 기록된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주로 정복활동에 국한된 것이었다.

394년 광개토대왕은 즉위하자마자 맨 먼저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백제를 공격했다. 백제에 대한 원한이 깊었고 또한 백제가 고구려의 왕위교체기를 틈타 잃어버린 대방군계를 회복하기 위해 북침한 까닭도 있었다. 태왕은 백제의 북변을 쳐서 석현성과 10성을 정복했고, 고구려를 7도로 재편한 뒤 이듬해 백제의 군사적 요충지 관미성(각미성(閣彌城)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임진강변 오두산성, 강화 교동도 등으로 비정된다.)을 함락시켰다. 백제는 태왕의 위세와 용병술에 눌려 감히 대적조차 하지 못하고 패퇴했다. 즉위년부터 광개토대왕이 맹활약을 펼친 것은 그의 전과가 하루아침에 이룬 것이 아니라 태자시절부터 수많은 전투경험과 전공을 쌓아온 결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395년 태왕은 흥안령 시라무렌강 일대에 거주하는 북방 거란족인 패려를 공격하여 3개 부락 700영을 격파하고 무수한 소 말 양 등 가축을 노획해 돌아왔다.

396년 고구려군은 수륙양군으로 나눠 공격하는 백제 아신왕을 쳐서 대산한성 아단성 등 58700성을 함락시키고, 아신왕 일족 10명을 인질로 잡았으며, 남녀 1000명의 포로와 세포 1000필을 획득해 국내성으로 개선했다.

398년 태왕은 북쪽 국경지대인 백신토곡을 순시하고 숙신을 정벌하여 조공을 바치게 하고 북변에 고구려의 통제를 강화하였다.

400년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해이다.

이 해 한반도와 왜, 중국을 뒤흔든 여가전쟁(구구려와 가야의 전쟁)이 일어났다. 가야제국의 맹주, 금관가야의 이시품왕은 김수로왕 이래 가야의 최고 번영기를 구가한 해상왕국의 군주였다. 가야는 최첨단인 철과 철제품, 낙동강 평야에서 나오는 풍부한 농산물, 바닷가에서 나오는 어류, 신제품인 가야도기를 비롯한 다양한 가사제품, 고급한 가야 술과 가야차, 불교와 관련한 세련된 가야불구품 등을 활발한 해상교역을 통해 수출해 막대한 부를 쌓고 강력한 군대를 길렀다.

세력이 커진 이시품왕은 자신의 힘을 믿고 자신과 경쟁해온 이웃 신라를 병합하기로 작정했다. 백제 아신왕의 후견을 얻고 왜의 용병을 사서 가야군은 신라를 침공해 내물 마립간을 포로로 잡고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점령했다. 모든 일이 이시품왕이 뜻한 바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신라 뒤에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있었다.

 

가야와 왜가 신라에 침입하자 광개토대왕은 신라 내물마립간에게 보기병 5만 명의 구원병을 보내 신라 서라벌을 침입한 가야와 왜의 군대를 몰아냈다. 종발성을 함락하여 임나왜소를 멸하고 점령한 금관가야에 아라가야의 술병을 주둔시켰다. 광개토대왕이 군대가 국내성을 비운 틈을 타 후연의 모용성이 고구려를 침입해 국내성 밖까지 진출하자 태왕은 바람같이 북으로 달려가 후연의 모용성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고 숙군성을 공략했다.

한편 고구려의 위세를 등에 업은 신라는 낙동강 이동에 있는 가야 땅인 독로국과 미리미동국을 멸하고 처음으로 가야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승냥이와 같은 백제는 고구려의 위세에 눌려 고구려를 치겠다는 이시품왕과의 약속을 배반하고 오히려 소백산맥 이서에 있는 옛 마한의 땅 가야 육국을 삼키고 동남부로 세력을 뻗쳤다.

400년 고구려의 원정은 한반도와 중국의 세력 구도에 일대 전환을 일으킨 것이다. 이 전쟁으로 광개토대왕은 신라 가야 백제 중국 왜를 속국과 신국으로 삼는 천하의 패자가 되었고 가야의 영토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404년 태왕은 후연의 연군을 정벌했다. 연군을 정벌하러 간 틈을 타 고구려의 대방계로 쳐들어온 백제와 왜의 연합군을 궤멸시켜 다시 한 번 천하의 패자임을 증명했다.

407년 태왕은 후연을 붕괴시키고 이를 계승한 북연왕 고운에게 같은 고씨 종족의 예를 베풀어 도탑게 대했다. 이후 북연은 고구려의 종속국이 되었다.

410년 태왕은 동부여와 연해주를 정복했다.

412년 태왕은 북부여의 옛 땅에 수사를 파견하고 숙신의 땅을 순수하다 병에 걸려 국내성으로 귀환했다.

태사령은 태왕의 정복업적을 기록한 사초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이처럼 국강상광개토호태왕은 수백차례의 전투에서 백전백승하여 광개토경을 사방 천리까지 넓히고, 폐하의 위무는 북으로는 숙신부터 남으로 삼한과 왜까지, 서로는 북연과 동으로는 예맥까지 사해에 떨치셨습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왜를 쳐 신국으로......”

광개토대왕이 침상에 기대어 끝없이 읽어대는 사관의 사초를 듣다가 낭독을 잘랐다.

그만 멈춰라. 전쟁이란 살육이고 도살이다. 성과 땅의 정복은 헛되고 헛된 것이다.”

거련을 비롯한 왕족과 중신들은 태왕의 말에 깜짝 놀랐다. 죽기 전 노망이 드신 게 아닌가. 평생 태왕이 목숨을 걸고 이룩한 빛나는 업적을 스스로 짓뭉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련이 태왕에게 말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즉위 초부터 정복 전쟁을 시작해 이 나라를 동북아 최강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전쟁 없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만들었으며, 전쟁 없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삼키려는 적국들로부터 나라를 보전하겠습니까?”

태왕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거련에게 또렷하게 말했다.

태자, 난 전쟁으로 너무나 많은 무고한 백성의 피를 흘렸다. 짐은 여기서 선포한다.”

태왕의 말에 거련태자와 장화왕후와 상희공주, 중신들이 모두 부복했다.

 

태왕은 침상에 기대어 태자 거련(장수왕)을 보며 엄히 선포했다.

태자는 지금부터 나의 왕위를 잇되, 이웃나라와 전쟁을 하지 말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라. 백성들을 어버이처럼 섬기고 중신들을 존중하라.”

, 알겠나이다.”

거련은 명을 받들고 고개를 숙였다.

태왕은 장화왕후와 상희공주를 보며 엄하게 말했다.

왕실은 태자를 짐을 대하듯 받들고, 일절 외척의 권력을 행사하여 섭정하지 말라. 또한 나의 비빈과 소생들을 선대하고 죽이지 말라.”

알겠사옵니다.”

장화왕후와 상희공주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장화왕후는 속으로 웃었다. 이미 태왕이 죽으면 고막리를 비롯한 6왕자들을 제거할 음모를 꾸며놓았다.

태왕은 중신들을 마치 아들을 대하듯 자애로운 눈으로 보았다.

국상 을력소와 울절 밀운 장군, 태대사자 고척동과 조의두대형 연개남에게 말했다.

을력소, 밀운, 고척동, 연개남 장군.”

태왕은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수십 년 동안 전쟁터에서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 한 그대들은 나의 형제요, 아들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대들에게 빚을 졌다. 이제 마지막 빚을 지려고 한다. 그대들은 어버이와 같은 마음으로 어린 새 왕을 올바르게 보필하여 왕업을 튼튼하게 하고 국태민안을 이루도록 하라.”

폐하, 알겠나이다.”

목숨을 다해 명을 받들겠나이다.”

중신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태왕은 전쟁터에서는 호랑이 같았지만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어버이처럼 자상했다. 이제 병들어 세상을 하직하는 마당에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풍습이 사라졌지만 그들은 광개토대왕을 따라 순장될 각오마저 있었다.

중신들이 눈물을 흘리자 거련과 상희도 눈물을 흘렸다. 덩달아 장화왕후도 눈물을 짜내어 그예 소리 내어 흐느끼기까지 하였다.

태왕이 말했다.

울음을 멈춰라. 나는 평생 살인마로 살았다. 갑자기 역병이 들어 부처님 전에 나아가 참회할 시간도 얻지 못했다. 나는 죽어서 살인마들이 가는 팔열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그대들 영혼을 위해서 울어라.”

태왕은 호흡이 턱밑까지 차올라 잠시 말을 쉬었다.

그때 시관이 급히 문을 밀고 들어왔다.

폐하, 폐하를 아버지라 부르며 꼭 임종을 하겠다는 분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고합니다.”

 

어디서 왔다더냐?”

하국에서 올라왔다고 합니다.”

광개토대왕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국에 온 자라면 막리 왕자라고 생각했다. 거련과 장화왕후, 중신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장화왕후는 막리 왕자를 멀리 하국으로 쫓아내었는데 어찌 임종 소식을 알고 단숨에 달려왔을까 의아해하면서 이걸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태왕의 얼굴빛이 환하게 밝아지며 말했다.

어서 들라고 해라.”

소리 내어 울던 장화왕후가 시관을 보고 꾸짖으며 말했다.

시관, 폐하께서는 이렇게 살아계신데 폐하의 승하를 염두에 두고 임종이라고 하니 무슨 망발이냐.”

장화왕후는 폐하에게 다시 읍소했다.

폐하, 임종이란 말은 폐하의 죽음을 바라는 참으로 참람한 말입니다. 들라고 하신 폐하의 말씀을 거두시고 시관을 물리치는 게 옳을 듯합니다.”

태왕이 단호하게 말하며 꼿꼿하게 앉았다.

아니다. 이곳은 나의 임종 자리다. 그렇지 않다면 너희들을 왜 불렀겠느냐. 내가 눈을 감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구나. 당장 들여보내라.”

마치 촛불이 꺼지기 전에 환하게 피어나듯 태왕은 아들 소식에 기력이 회복된 듯했다.

침전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막리 왕자가 아니라 하지왕과 구투야 두 사람이었다. 침전에 부복해 있던 사람들은 낯선 얼굴에 모두 놀랐다.

태왕도 하지왕을 보고 놀라 눈을 의심했다.

장화왕후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네 놈은 누군데 폐하를 아버지라 칭하며 이 침전에 들어왔느냐? 폐하, 일곱 왕자 외에 달리 숨겨놓은 자식이라도 있었던 겝니까?”

장화왕후는 임종 직전까지 불같은 질투를 멈추지 않았다.

태왕은 아무 말 없이 하지왕을 묵묵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질자로 데리고 있었던 대가야의 꺽감이라는 걸 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린 시절 동무였던 거련도 꺽감을 알아보고 말했다.

너는 대가야의 질자, 꺽감이 아니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하지왕이 태왕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황송하옵니다. 며칠 전부터 국내성에 들어와 폐하를 알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해 왕궁 근처를 전전하고 있던 중 오늘 태자와 왕후와 공주, 고구려 4중신과 태사령이 급히 침전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임종하시리라 생각해 들어왔습니다. 폐하를 아버지를 칭한 것은 용서하여 주소서.”

장화왕후가 기가 막혀 악을 쓰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