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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35.옛사람의 찌꺼기

작성일 : 2021.08.23 12:20

옛사람의 찌꺼기

/윤일현

 

 

"엄마 아빠 시절 이야기로 자꾸 윽박지르며 저더러 반성하고 분발하라고 합니다. 부모님 시절에 들어맞던 이야기가 지금은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입시제도나 공부 방법이 과거와는 다른데 자꾸 옛날이야기만 하시니 답답합니다. 우리에겐 우리끼리 통하는 학습법이 있습니다. 이제 어른들 말은 아예 듣고 싶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느 고교생이 한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목수 윤편이 하던 일을 멈추고 대청으로 올라와 질문했다. "읽고 계시는 책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나요?"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살아 계신지요?" "아니,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과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바퀴 깎는 목수가 감히 그런 소리를 하느냐? 내가 납득하도록 설명하면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를 죽이겠다."

 

윤편이 해명했다. "소인은 그저 오랜 경험에서 그런 생각을 했을 따름입니다. 수레바퀴를 깎는데 헐거우면 수월하나 단단하지가 못하고 빡빡하면 힘이 들어 들어가지 않습니다. 헐겁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하려면 손에서 얻고 마음에 응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는 능히 말할 수 없는 수치가 그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소인은 이를 자식 놈에게 깨우쳐 주지 못했고, 자식 또한 이를 소인에게서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나이가 일흔이 된 늘그막에도 여전히 수레바퀴를 깎습니다. 옛사람도 중요한 것은 전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럴진대 전하께서 읽으시는 책도 옛사람의 찌꺼기일 것입니다." '장자''천도'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이야기나 책 속에서 말하는 내용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남긴 '경험의 흔적' '찌꺼기'일 따름이다. 무엇을 맹목적으로 믿거나 받아들이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며,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부모님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 시절엔 이런 방법이 좋았으니 참고해 보라고만 해야 한다. 책을 권할 때도 그 내용을 무조건 따르고 실천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읽고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저자의 주장이나 생각이 나와 비슷할 수 있지만, 그는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그 책을 썼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에게 굴복하여 끌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전개되는 이야기에 감정 이입하여 울고 웃으며 공감할 수는 있지만, 궁극에는 그 책을 참고하여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활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행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남의 것을 별생각 없이 모방하고 암기하던 시대는 지났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다. 많이 듣고 읽으며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진정한 경쟁력은 섬세한 감성,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