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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8.20 12:48
싸움의 기술⑧ - 돈의 효용
/양선규
책이 팔리려면 첫째는 저자가 좋아야 하고 둘째는 제목이 좋아야 합니다. 물론 내용은 그 다음입니다. “독자들의 안목이 저급해서 내 책을 읽지 않는다”라는 말은 보통 인지도 없는 작가들이나 좋은 책 제목을 구하지 못한 눈치 없는 작가들이 하는 말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본디 책 속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근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길을 걷고 싶어 합니다. 그런 길로 안내하는 게 바로 저자와 책이름입니다. 직접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릴 길이 없으면 독자들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파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 독자들의 무료하고 의미 없는 일상을 따듯하게 감싸주는 책이름의 선택도 ‘의미 있는’ 일이겠고요. ‘따듯하게 감싸주는 일’이 때로는 자기기만이나 허위 전환을 부추기는 것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차피 인생이 ‘빈 술잔 들고 취하는 일’인지라 딱히 나무라거나 배척할 일도 어닌 것 같습니다. 길게 보면 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니까요.
‘돈의 효용’이라는 제목을 걸고 엉뚱한 이야기로 서론을 삼고 말았습니다. 언젠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제목 덕을 많이 본 책입니다. 여우나 사람이나(이솝 우화를 떠올리고 하는 말입니다) 자기가 몹시 바라는 것이 제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아예 그것을 무시해버려야 속이 편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들도 다 그것을 가지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배고픈 건 견뎌도 배 아픈 건 못 견딘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달리 생각해 보면 그만큼 인간은 ‘정신적인’ 동물이라는 뜻일 겁니다.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나 서양 속담 ‘우산 양심(umbrella conscience, 양심의 가책을 면하고자 자기를 속이는 마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배제되어야 할 우리의 나쁜 심성을 비유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만 그것도 길게 보면 ‘이해 받아야 할’ 인간의 한 속성에 대한 친절한 설명일 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은 그렇게 욕하면서 이해되어 왔습니다.
한때 저도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라고 여기저기서 떠들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진심에서였습니다. 정말이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좀 더 넓은 집, 좀 더 크고 안락한 차, 좀 더 때깔 나는 비싼 옷, 좀 더 달고 기름진 음식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건강을 살 수도 없고, 자식의 장래도 살 수가 없고, 가정의 화평도 살 수가 없고, 동료들과의 진심어린 소통도 살 수가 없고, 혼자 있을 때의 마음의 평온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돈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들로 세상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요즘은 좀 달라졌습니다. 나이 들어 바랄 게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돈이 없으면 노인의 인생은 아예 없습니다. 건강도 못 지키고 남들의 무시도 못 피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끼워주질 않습니다. 자식들에게도 떳떳한 부모 역할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쌀독에서 인심 나고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이라는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노년의 모든 것들은 ‘돈이라는 관문(關門)’을 통과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곳에 놓여 있습니다. 불과 10여년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반대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바깥의 세상은 여태 그대로 있는데 저 혼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또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헛되도다’라며 뒤로 자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지금은 돈이 소중한 것이라는 걸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돈’에 사로잡힌 인생이라 ‘돈’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잘 들어오는군요. 200년 전에 화폐 무용론을 주장한 다산의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전폐(錢幣)에 대하여 물음 : 대저 돈의 용도는 능히 물건에 따라 오르내리고 유무(有無)를 서로 교역하는 데 있으므로, 진정 국가의 큰 보배요 백성을 살리는 긴요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옷감과 곡식은 무거움에 구애되고, 금은과 주옥은 희귀해서 걱정이므로, 귀천의 중간을 절충하고 빈부의 사이에 유통하기에는 돈처럼 편리한 것이 없다. 다만 그 수송이 편리해질수록 사기가 더욱 불어나고, 교역이 번창해질수록 사치가 더욱 넓어졌다. [중략]
오직 우리나라는 바다 한쪽에 위치하여 예부터 나라에는 돈에 대한 법이 없었으며, 백성들은 돈에 대한 이로움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국가와 병력은 부강하고 풍속은 순후하였으니, 이는 풍속이 소박하여 변통할 줄을 몰라서 그랬던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지형도 삼면이 바다로서 뱃길이 교차되어 있으므로 교역할 때 수송이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여러 대를 내려오면서 돈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돈이 사용된 지는 이제 1백 40여년이 된다. 맨 처음 오영청에서 쓰기 시작하여 수원과 강화에까지 파급되었으며, 드디어 태농(太農)에서 주조한 돈으로 탁지(육조 가운데 호조를 말함)의 비용을 충당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수천 년 동안 막혔던 풍속이 이제 확 트이게 되었으니, 의당 백성들이 생업에 풍부해지고 국가의 재용이 넉넉해져야 할 것인데도, 어찌하여 1백여 년이래 공사(公私)의 창고가 모두 고갈되고 남북의 재화가 유통되지 않음으로써, 조그마한 이익을 다투어 풍속이 나날이 각박해지고,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져서 벼슬아치의 탐내는 습관을 징계할 수 없는 실정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진실로 그 까닭을 따져 보면 돈에 허물이 있는 것이다.
전론(田論)을 논함 : 전지(田地)를 10경(1頃은 1백 이랑, 즉 백묘의 지적을 말함)이나 가진 어떤 사람이 있었고, 그의 아들은 10인이었다. 그의 아들 1인은 전지 3경을 얻고, 2인은 2경을 얻고, 3인은 1경을 얻고 나머지 4인은 전지를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울부짖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길바닥에서 굶어 죽는다면, 그들의 부모된 사람이 부모 노릇을 한 것일까?
하늘이 백성을 내어 그들을 위해 먼저 전지를 두어서 그들로 하여금 먹고 살게 하고, 또 그들을 위해 군주를 세우고 목민관을 세워서 군주와 목민관으로 하여금 백성의 부모가 되게 하여, 산업을 골고루 마련해서 다 함께 살도록 하였다. 그런데도 군주와 목민관이 된 사람은 그 여러 자식들이 서로 남의 것을 강탈해서 제 것으로 만들고는 하는 것을, 팔짱만을 낀 채 눈여겨보고서도 이를 금지시키지 못하여 강한 자는 더 차지하고 약한 자는 떠밀려서 땅에 넘어져 죽도록 한다면, 그 군주와 목민관이 된 사람은 과연 군주와 목민관 노릇을 잘 한 것일까?
그러므로 산업을 골고루 마련하여 다 함께 잘 살도록 한 사람은 참다운 군주와 목민관이고, 산업을 골고루 마련하지 못하여 다 함께 잘 살도록 하지 못한 사람은 군주와 목민관의 책임을 저버린 사람이다. 지금 나라 안이 전지는 대략 80만 결이고, 백성이 대략 8백만인데, 시험 삼아 10구를 1호로 쳐본다면 매양 1호마다 전지 1결씩을 얻은 다음에라야 나라의 재산이 고르게 분배되는 것이다.
지금 문관, 무관 등의 귀신(貴臣)들과 여염집의 부인 가운데는 1호당 곡식 수 천 석을 거두는 자가 매우 많은데, 그 전지를 계산해 보면 1백결 이하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바로 9백 90명의 생명을 해쳐 1호를 살찌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국 중의 부인(富人)으로서 영남의 최씨와 호남의 왕씨 같은 경우는 곡식 1만 석을 거두는 자도 있는데, 그 전지를 계산해 보면 4백결 이하는 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바로 3천 9백 90인의 생명을 해쳐서 1호만을 살찌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정에서 벼슬하는 관리들이 부지런하고 시급하게 오직 부자의 것을 덜어내어 가난한 사람에게 보태주거나 그 재산을 골고루 제정(齊整)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은 군주와 목민관의 도리로써 나라의 임금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다. [정약용, 『목민심서』 중에서]
요즘 ‘99%와 1%’라는 말이 자주 매체에 등장합니다. 부의 편중은 여전한 우리 현실의 아킬레스건입니다. 또 ‘과거와 미래’라는 말도 자주 등장합니다. 선택에 따라서 과거로 회귀할 수도 있고 미래로 한 발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200년 전의 다산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전환기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굴곡 많은 다산의 생애가 보여주듯이, 200년 전의 현실은 ‘미래’를 선택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밖에 되지 않았을까? 왜 200년 전의 역사는 그렇게 뒤로 갔을까? 식민지가 되고 분단국가가 되고 동족상잔과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때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는 뜬금없는 원망마저 듭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참 가관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그저 권세 부리는 자리를 두고 피터지게 싸울 뿐입니다. 무엇이 중한 지, 과연 ‘배 아픈 것’만 면하는 게 인생의 최종 목표인지 모두들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우산 양심‘보다는 ‘여우와 신포도’가 훨씬 오래된 ‘길’이라는 것, 그리고 불과 10년만 지나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소설가 /대구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