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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읽기 43> 황길엽의 빈집

작성일 : 2021.08.19 02:59 수정일 : 2021.08.19 03:02

 

빈집

 

황길엽

 

적막 속에서 삐걱거리는 현관문

 

허물어지는 세월에 기댄 채

온기 없는 쓸쓸함

접어두었던 기억 속 아픔들이

칭칭 감겼던 시간 풀어 놓는다

 

집안 가득 남아 있는 삶의 흔적들

아직도 노모의 지문들이 빼곡하다

허탈의 무게가 꿈틀거리는

주인 없는 방 그리움만 가득차

 

마당으로 내려온 시린 바람

마른 잎 밀고 다닌다

바스락거림마저 멈추고

나지막이 엎드린

빈집

 

그곳에는 언제나

쓸쓸한 엄마의 미소가 걸려 있다

 

시집무심한 바람이 붉다(2019.리토피아)에서

 

약력;경남 남해 출신 1991한국시신인상으로 데뷔, 시집;도회에서 띄우는 편지,가고 없는 사람아, 무심한 바람이 붉다5, 부산시인협회, 시울림시남송회 회원, 현재 양산신문사 근무

 

황길엽 시인의 고향은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남해군 창선도이다. 창선도는 우리나라에서 11번째로 큰 섬으로 1906년 조선조 말 남해군으로 편입되었다. 그 전에는 경상우도의 도청소재지가 있던 진주의 속현이었다. 그래서 섬 중의 섬이라는 창선도 사람들은 남다른 긍지와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 황 시인의 고향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인데, 면소재지인 필자의 고향 마을 후배에게 시집을 와 우리 마을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고향 후배가 가족력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황 시인은 창선 사람 특유의 생활력으로 남겨진 아들들을 제대로 키웠으며, 지금도 성인된 그들과 함께 열심히 살고 있다. 그에게 시는 이러한 어려운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다. 그는 슬픔이나 고통을 그대로 시에 노출시키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면서 감각화하여 담담하게 형상화한다.

 

빈 집의 경우는 빈 집이 되어 버린 황 시인의 친정집이 시적 제재이자 공간이 되고 있다.

첫째 연의 경우 한 행으로 빈 집의 적막감을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등장시켜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장점이기도 하면서 지속되어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는 보편적 체험으로 전환시키는 장치가 되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적막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정서를 더욱 구체화 시킨다. 여기까지는 이 빈집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셋째 연에서 노모의 지문이라는 구체적 표현에서 이 집이 그의 유년의 기억과 가족 특히 어머니의 손길이 남겨져 있는 친정집임이 밝혀진다. 그러면서 그리움을 역시 허탈의 무게에 꿈틀거리는이라는 행을 등장시켜 감각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움은 곧 삼켜지고 넷째 연에서는 더욱 감정이 절제되고 바람마른 잎의 바스락거림을 등장시켜 빈집의 적막감을 심화시킨다. 마지막 다섯째 연 두 행에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감각화하면서 시는 끝난다.

농촌의 인구 감소로 빈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앞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많은 농촌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빈집이 개인의 가족사와 직접 얽힐 때에는 이러한 심각성이 배가될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사실과 보편적 현실을 결합시켜 황 시인은 심각한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각적 표현을 통하여 더욱 실감나게 하고 있다. (양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