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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가라사대 > 철학을 뭐하러 하나?

작성일 : 2021.08.19 02:57

철학을 뭐하러 하나?

/배학수

 

 

철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철학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금까지 늘 듣는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철학의 기능이나 용도가 궁금한 것입니다. 철학은 그냥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철학을 공부하면 뭔가 좋은 점이 있기를 사람들은 바랍니다. 이 기대는 당연합니다. 노력과 시간을 들였지만 아무 쓸모도 없다면 무의미할 것입니다. 오늘은 철학의 효용성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철학 공부는 심안을 좋게 한다.

 

철학을 공부하면 마음의 눈이 발달합니다. 심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안구 운동을 하고 루테인을 먹으면 눈이 좋아집니다. 그런 것처럼 철학 공부를 하면 심안 시력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형이하자(形而下者)와 형이상자(形而上者)의 구별이 나옵니다.

 

형이상자 위지도; 형이하자 위지기.

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

 

 

문장은 단순합니다. "형이상자(形而上者)는 도()이고, 형이하자(形而下者)는 기()이다." ()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입니다. 좀 더 의미가 확대되면 도()는 삶의 방법이나 행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상도(商道)는 상업(商業)의 길, 장사를 잘하는 방법입니다. 공부에도 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나 기술입니다. 연애의 도()는 남녀가 서로의 호감을 끄는 기술입니다. 돈 후앙은 연애의 도를 터득하고 있습니다. ()는 입산수도를 해야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는 신비스런 뜻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설명하는 사람은 도()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는 그릇입니다. 그릇은 밥 먹거나 제사 지내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므로, ()의 의미가 확대되면 도구로 활용하는 모든 물건과 제도입니다. 그럼 위의 문장은 이런 뜻입니다. "인생의 행로는 형상을 넘어서서 눈에 보이지 않으며, 도구로 활용하는 사물은 눈에 보인다." 자동차, 아파트, 보석, 미인, 증권은 눈에 보이는 것, 형이하자(形而下者)입니다. 반면 그런 것들을 얻도록 삶을 밀고 나가는 가치나 이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형이상자(形而上者)입니다.

 

형이하자(形而下者)는 형상을 갖추어서 눈에 보입니다. 형이하자(形而下者)는 누구나 봅니다. 반면, 형이상자(形而上者)는 형상이 없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형이상자는 심안으로 봅니다. 그런데 심안 시력이 좋은 사람은 드뭅니다.

 

철학은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바라봅니다.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보려면 심안이 발달해야 합니다. 철학은 아주 어렵습니다.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철학은 형이상자를 지향하는데, 일반인은 심안 시력이 약해 형이상자를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철학을 열정만 가지고는 공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철학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은퇴자들이 시간 여유가 있어서 철학을 교양으로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철학은 그렇게 교양을 늘리기 위해 공부할 수는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심안을 향상시키지 않고서는 철학을 할 수 없는데, 심안은 노년이 될수록 약해지기 때문에 철학 공부가 더욱 힘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경험이 풍부하여 철학을 공부하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험은 고등학교만 나오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심안 시력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면 심안이 좋아집니다. 속성으로 토익 성적 올리듯이 단기간에는 안 됩니다.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심안으로 꿈을 본다.

 

꿈이란 장기적 목표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고통스런 노력을 들여서 획득하는 목표가 꿈인 것입니다. 주말 해운대 장산에 오르는 것은 꿈이 아닙니다. 반면 히말라야의 봉우리에 오르는 것은 꿈입니다.

 

동물에게는 꿈이 없습니다. 동물은 목표를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먹이감을 단숨에 잡아먹을 수 있는 날쌘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자에게는 꿈이 없습니다. 반면 인간은 노루를 쫓다가 발이 느려 놓칩니다. 노루는 산등성이 넘어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도 인간은 신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노루를 마음의 눈으로 보면서 그것을 잡을 계획을 세웁니다.

 

꿈은 마음의 눈으로 봅니다. 어떤 사람에게 심안은 발달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심안의 기능이 나쁩니다. 심안에도 시력이 있는 것입니다. 안경점에 가면 시력을 측정합니다. 사람마다 신체의 눈에 시력의 차이가 나듯이, 심안도 그렇습니다.

 

심안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멀리 있는 목표를 봅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목표를 보려고 노력하면 심안이 향상됩니다. 보통 오랜 시간이 지나야 달성하는 목표는 큽니다. 1년 동안 버는 돈보다 10년 동안 버는 돈의 액수가 큽니다. 심안 시력이 높은 사람은 더 멀리 있는 더 큰 목표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심안 시력이 낮은 사람은 단기간에 실현가능한 작은 목표만 볼 수 있습니다.

 

심안은 시력이 나이가 젊을수록 높고, 욕망이 클수록 높고, 좌절할수록 높습니다. 10대 중학생의 심안은 70대 노인의 심안 보다 훨씬 높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기적 목표를 세우지 못하여 그것을 보는 심안의 능력이 퇴화합니다. 그리고 욕망이 큰 사람은 거대한 목표를 세우는데 그것은 장기간에 달성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목표를 세운 사람은 7급 공무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사람보다 심안 시력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심안 시력은 좌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목표를 세울 때 마다 성공하는 사람은 멀리 볼 필요가 없습니다. 자주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은 먼 미래에 달성할 수 있는 장기적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 단념해서는 안 됩니다. 해탈이나 뭐니 하면서 체념해 버리면 현재에 만족하여 심안 시력이 나빠집니다.

 

신체 시력도 변화합니다. 마찬가지로 심안 시력도 바뀝니다. 심안 시력을 0에서 5까지 측정한다고 합시다. 심안 시력이 0인 사람은 내일의 목표도 없이 현재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전혀 꿈이 없습니다. 심안 시력 5는 이 세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바라보는 몽상가입니다. 일반인의 심안 시력은 3입니다. 동양 철학자들은 심안 시력이 4 정도입니다. 서양 철학자들은 심안 시력이 5정도입니다. 동양철학은 현실성을 염두에 두지만, 서양철학은 실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심안 시력이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당신의 심안 시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경성대 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