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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8.13 11:13
싸움의 기술⑦ - 무협지의 효용
/양선규
옛날 무협지를 읽던 때가 생각납니다. 거기서 처음 알게 된 단어가 ‘강호’와 ‘의리’였습니다. 열서너 살에 만난 그 두 단어가 평생 동반자가 되어 지금도 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과 만나지 않았다면 제 인생은 참 허전할 뻔했습니다. 강호(江湖)라는 말은 이 세상을 늘 신기(新奇)와 호기(好氣) 속에서 바라보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강호인이나 강호객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재미가 꽤나 소소하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저 같이 한 발만 그쪽에다 두고 사는 이들에게 ‘강호’는 나름 비상구(탈출구) 역할도 톡톡히 합니다. 제가 아침마다 이런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도 제 강호활동의 일환이라는 것을 저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명해 지더군요. 저의 강호로 나들이 나오시는 분들이 한두 분 늘어나면서 그런 자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의리(義理)라는 말은 루저(loser, 말이나 행동, 외모가 볼품없고 능력과 재력도 부족하여 어디를 가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계의 죽은 은유(dead metaphor)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만 강호와 한 짝이 되면 때로 가공할 만한 저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촛불’이나 ‘시간’과 같은 단어와 결합할 때도 천지를 개벽하는 힘을 냅니다. 모두 강호와 짝을 이루며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강호’와 ‘의리’는 무협지가 제게 안긴 생애 최고의 선물입니다.
무협지가 ‘사람 키우는 이야기’였다는 것을 안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에 취미를 붙여서 습작도 하고 이런저런 소설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한 무렵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일종의 '어른(어른이 되기 시작한 청소년)들을 위한 동화’라고만 여기고 있다가 그것 이상의 효능을 지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소설이라는 글을 써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절로 깨치게 된 사실입니다. 이야기는 ‘사람을 키우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적 장치였습니다. 그런 효능을 벗어난 이야기들은 결국 쓰레기에 불과했습니다. 요즘 종이 신문들의 처지가 딱 그렇지 않습니까? 나오자마자 폐지로 실려 간다고 합니다. 거금을 주고 구독자를 모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게 결국 이야기의 효능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나가다가 빚어진 참극이었습니다. 그러면 면에서 볼 때 무협지는 가장 정통파 이야기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입사식도 있고 사랑도 있고 청출어람도 있고 수많은 ‘의리의 사나이’들도 있고 복수도 있고 희생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강호라는 가상공간 안에서 종횡무진으로 펼쳐집니다. 인류 공동체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서술적 정체성에 필수적인 자양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절세의 무공을 얻고, 악을 퇴치하고, 정의와 명분을 내세워 강호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내고 행복한 해피엔드를 만들어내는 남녀 주인공들의 활약상이야말로 누구나 바라는 자아상입니다. 설혹 자기가 되지 못하더라도 가까이서 함께 하고픈 영웅상입니다. 무협지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행하는(융의 이야기입니다) 자기실현을 향한 ‘치유와 성장’의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사악한 분열(융은 분열을 가장 나쁜 것으로 여깁니다)에 대항하는 선한 의지의 집합체가 바로 무협지였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시절이 어수선합니다. 강호의 두 앙숙 흑도와 백도가 일전 혈투를 벌이는 양상입니다. 예전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무림 육대문파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세월의 무심함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문파의 위세와 명성에만 집착하다가 무공 수련에 게을리 한 탓입니다. 어디서 익힌 무공인지도 모르는 신출 기예(技藝)로 세력을 얻는 자도 나오고, 심지어 마공(魔功)을 익힌 자까지 나서서 강호에 공정과 정의의 씨를 뿌리겠다고 호언하는 세상입니다. 서로가 자신이 백도고 정파라고 우깁니다. 무림 육대문파가 존재한다 해도 문제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본디 전통적인 무협서사는 늘 정통 무림 육대문파를 무시해 왔습니다(개중에 하나 살아남은 주인공이 무당파의 영호충 정도입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스승에게까지 배신을 당한 그도 비전(秘傳) 독고구검을 전수받아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무협지의 주인공은 늘 그들 육대문파 밖에서 나왔습니다. 소림사가 모든 무예의 발상지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무당이든 곤륜이든 공동이든 아미든 화산이든 무림정파에 속하는 자들은 항상 자신의 한계 안에 갇혀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의 서술적 정체성은 화이부동이나 경계를 해체하는 확장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끼리끼리 문화’와 ‘나누어먹는 즐거움’을 고수하기 급급합니다. 강호의 쇄신은 늘 바깥에서 만들어진 영웅의 새로운 ‘플롯’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무협지에 그런 ‘적자(嫡子) 필패의 도식’이라는 낯익은 패턴이 고착된 것은 당연히 그것이 ‘사람을 키우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책무에 충실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치유와 성장’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자기 부정을 독려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크든 작든 모든 조직은 그 안에 ‘강호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강호의 삶도 없고 의리에 대한 동경도 없는 조직은 오래 생명을 부지하지 못합니다. 얼마 못가서 지리멸렬하고 맙니다. 저도 30여년 조직생활을 해본 결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점입니다. 견강부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옆 나라 일본의 ‘주신구라(忠臣藏)’를 볼 때마다 그들이 그 ‘강호 이야기’를 애지중지하는 태도가 참 인상적입니다. 연전에도 한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오늘 다시 한 번 더 소개할까 합니다.
....1702년경, 도쿠가와 막부의 전성기 때 일이다. 쇼군(將軍)은 휘하의 두 영주를 선발해 교토의 황궁에서 온 대신을 접대하기로 했다. 이들은 궁정 예절에 대해 아는 바가 적었으므로 한 대신(기라)에게 예법에 대한 조언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수업료로 작은 선물을 마련하였는데, 정작 기라는 그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우연히 그의 불만을 안 한 영주는 곧 황금 상자를 보내 호감을 사는 데 성공했으나 한 영주(아사노 다쿠미노가미)는 그것을 모른 채 그에게 멸시를 받게 되었다.
아사노는 격해지려는 자신을 계속해 자제했다. 하지만 기라의 따돌림은 계속되었다. 기라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사노가 궁정 의례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느리다고 험담을 한 후, 그를 제외시키고 수업을 진행하기 일쑤였다. 아사노는 이런 모욕에 대해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명예를 지켜야 하는 엄격한 일본 무사의 규율에 따르면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기라의 죽음뿐이었다.
결국 아사노는 쇼군의 앞에서 기라에게 검을 뽑아 들었으나 살인은 미수에 그쳤다. 이러한 무례에 대한 처벌로 할복자살이 명해졌다. 그는 변명 없이 법과 전통에 따라 할복자살을 하였다.
아사노 영주는 휘하에 46명의 무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주군이 사망함으로써 그들은 졸지에 로닌(浪人)이 되었다. 그들은 이에 분개해서, 주군을 모욕한 탐욕스런 기라 영주에게 복수를 하기로 맹세하고 치밀한 계획을 짠다.
쇼군과 다른 영주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알아채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염려한 그들은 1년 동안 완전히 각자 서로를 찾지 않으며 지냈다. 세상을 완전히 등진 것처럼 행동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비웃었으며, 의를 존중하는 한 무사는 그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세상의 평가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수는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1년이 지난 날 밤에 이루어졌다. 1703년 12월 14일, 46명의 로닌들은 밤을 틈타 은밀하게, 방심하고 무방비 상태였던 기라 영주의 집을 급습한다. 땅에 쌓인 눈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이 둔해져 결국 발각되고 집안은 온통 난장판이 되고 만다. 격렬한 전투가 끝났을 때 기라 영주 측은 영주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모두 살해당해 있었다. 벽장 뒤에 숨어 있다 발각된 기라는 할복을 강요당하였지만 이를 거부하고, 구라노스케라는 무사가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벤다.
잘려진 기라의 목은 센가쿠지 사원의 마당에 있는 아사노 영주의 무덤으로 옮겨져 그 앞에 놓인다. 복수는 종료되었고, 무사들은 모두 할복 자살한다. 뒤늦게 이를 안 앞의 그 ‘의를 존중하는 무사’ 역시 자신의 불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할복 자살한다.
주군 옆에 안장된 그들 47인의 무사는 그렇게 해서 ‘불멸(不滅)’이 되었다. 지금도 도쿄에서는 이들의 ‘의리’를 기리기 위해 매년 12월 14일을 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무도의 전설과 신화』, 98-101 쪽 참조]
제가 본 무협지 중에서 주인공이 죽음으로 ‘플롯’을 완결하는 것은 『군협지』가 유일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플롯’이었습니다. 아직 어렸던 저는 ‘주인공의 죽음’만이 끝까지 타락한 현세를 구원할 마지막 카드라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십자가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죽음까지 불사해야하는 주인공의 명분과 결기(決氣)가 부담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다음 본 것이 ‘주신구라(忠臣藏)’였습니다. 그 떼죽음을 만났을 때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플롯’이 주는 부담감은 꽤나 오래갔습니다. 나이가 들어 문득 문득 죽음을 대면하다 보니 알겠습니다. 한 인간의 죽음은 그저 한 생명체의 쇠락한 종말일 수도 있지만, 『군협지』나 ‘쥬신구라’처럼 어떤 ‘플롯’의 필연적인, 승리하는, 종결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열’을 막는 ‘최후의 처방’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강호와 의리는 그래서 오늘도 제 곁에서 저를 지킵니다.<소설가 /대구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