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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읽기 42> 조영희의 유배의 방

작성일 : 2021.08.12 10:54

유배의 방

/조 영 희

 

창문이 없는 원고지에

거미줄로 갇혔을 때

아직, 발밑에는 환승하지 못한 안개가 쌓였소,

 

자유는 불투명하게 돌아 앉아

너울너울

해무에 이빨 벌린 포승줄을 풀어

인연을 만들고 있었소.

 

정쟁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랴

누대의 비문에 벼랑 기대어

붉은 동백이 희디희게 피다 지는

 

조용히 빠르게 스며드는 어둠으로

아우성치지 마라는 바다의 말씀

생살을 에일만한 갯바람의 숨비 소리가

소나무 숲에 머물다 간다.

-시집 바다, 그 너머 하늘 끝(2020, 작가마을)

 

*조영희(부산,서구) 1993년 월간』⟪시문학으로 등단. 인제대 대학원, 호스피스 해외 연수를 거쳐 부산대, 인제대 외래교수, 오지, 낙도 보건소 36년간 근무 . 낙 동강문학상, 현대시인상 등 수상,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부산강서문인협회 부회장. 시집 낙동강은 얼지 않는다, 가덕도 대구 잡으러 간다11

 

조영희 시인은 남명 조식 선생의 14대 손으로 지리산 자락 산청군 삼장면 산골이 고향이다. 일찍 진주여중 시절부터 개천예술제와 학원지 공모 등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재원이었다. 그는 경남간호전문대학과 인제대 등에서 간호학과 호스피스 과정을 전공하여 서울에서 전문 간호인의 길을 걷다가 뜻한 바 있어 그의 고향 산골과는 정반대인 바닷가와 낙도 보건소에서 주민들의 건강과 노인들의 임종간호를 하면서 36년간을 보냈다.

그의 시는 이러한 체험의 시가 많다. 그리고 그는 그의 어머니가 실사 하여 시집올 때 가져온 김만중의 사씨남정기,구운몽을 필사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낭독소리를 들으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쩌면 이러한 유년기의 체험이 그를 충남 논산 사람인 아버지가 병자호란 때에 순국하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강화도를 떠나 남하하는 중 선상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절해고도 남해군 노도에서 생을 마감한 김만중처럼 낙도와 바다를 떠도는 백의의 천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낙도 주민들을 진료하기 위해 섬에서 섬으로 다니다가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다. 이때의 심정은 절해고도에 가시로 울타리 쳐진 집에 갇힌 김만중의 절박함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유배의 방은 화자가 김만중으로 되어 있으나 조 시인 자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중화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 연의 경우 김만중처럼 낙도에서 시를 쓰기 위해 원고지 앞에서 절박한 심정이 되어 있는 조시인의 어조이다, 보이는 것은 해무뿐인 압박감이 형상화된 부분은 둘째 연이다, 그러나 셋째 연과 넷째 연은 김만중이 휩싸이게 된 정쟁을 형상화하고 노도에 핀 동백꽃과 어둠속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형상화 되어 있다. 말하자면 조 시인의 풍랑체험과 김만중의 유배지에서의 절망감이 겹쳐지는 효과를 이 시는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배지의 방은 시간을 초월한 절망의 공간이다.(양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