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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25) 제4부 하지왕과 명림원지(6)

작성일 : 2021.08.03 10:32

대가야제국의 부활(25)

4부 하지왕과 명림원지(6)

/김하기

 

소아주는 하지왕과 우사, 모추를 포박한 채 무릎 꿇리고 망나니 춤을 감상하고 있었다. 망나니는 구름 같이 모인 군중들에게 볼거리를 주고 사형수들의 혼을 빼기 위해 과장된 몸짓으로 칼춤을 추고 있었다. 망나니가 칼을 휘두르며 뜀뛰기를 할 때마다 둘러싼 남녀노소들은 찬탄과 탄식의 소리를 내었다.

망나니가 입에 품은 물을 칼날에 내뿜고 하지왕의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다 갑자기 !’하며 하지왕의 목을 쳤다. 모두들 !’ 하며 비명 같은 소리를 내는데 망나니의 칼끝이 정확하게 하지왕의 목등에 멈췄다. 하지왕의 목덜미와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하지왕은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 소아성과 구투야의 구원군은 오고 있는가. 소아주는 태산처럼 앉아 있고 도수들과 군사들은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데 나를 구원하러 오는 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있구나. 명림원지의 말은 정녕 허풍이었단 말인가.’

망나니는 우사와 모추의 곁에 가서도 벨 듯 말 듯 위험한 칼춤을 계속 추었다.

이윽고 사물성 병권을 쥔 축지 무가 장군이 병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소아주가 말을 달리며 오는 무가에게 말했다.

무가, 왜 이리 늦었느냐?”

무가는 소아주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읍을 했다.

무가, 이리 가까이 오너라.”

관료 축지가 왕에게 달려와 말했다.

이번 역모에 가담한 소아성을 잡고 사병들을 제압하느라 좀 늦었답니다. 무가는 성문 쪽에서 올지도 모르는 역도들을 잡기 위해 남쪽에 진을 치겠답니다.”

조카의 역모는 사실이라더냐?”

그러하다 하옵니다.”

에잇, 배은망덕한 놈! 다음에 목을 벨 놈은 소아성 그놈이다.”

소아주는 대좌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

무가를 기다리느라 망나니 춤이 너무 길었다. 이제 대역죄인들의 목을 베어라!”

예잇!”

망나니가 볼거리로 보여주던 과장된 몸짓의 칼춤을 멈추고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사방에서 !’ 함성이 들리며 화살이 날아오르고 창검이 난무했다. 사물국의 병사들이 바람에 짚단 쓰러지듯이 퍽퍽 쓰러졌다.

군중들 속에 숨은 구투야의 녹림당들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둥그렇게 진을 치고 있던 사물국의 병사와 도수들이 일시에 무너졌다.

소아주는 화살이 자기에게도 날아오자 놀라 피하며 무가를 소리쳐 불렀다.

무가 장군! 빨리 와서 나를 호위하라!”

무가가 말을 달리며 소아주 곁으로 갔다.

소아주가 무가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너는 소아성이 아니냐.”

 

무가로 변복했던 소아성이 투구를 벗고 소아주에게 칼을 겨누며 말했다.

숙부, 이제는 폭군 노릇을 그만하고 한기 직에서 내려오시죠.”

네 이놈, 내가 목숨이 가여워서 살려주었건만 네 놈이 감히 나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키다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이 자리는 원래 저의 아버지 것인데 아버지를 죽이고 찬탈한 자리이지 않습니까?”

네 아버지야말로 나보다 더한 폭군이었다.”

소아주는 병사들에게 포박당하며 소리쳤다.

절두터 전투는 한 시진도 안 돼 끝이 났다. 사물성 병사들은 소아주가 잡히고 그들의 대장인 무가 장군마저 보이지 않자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했다.

사물국을 접수한 소아성의 병사들이 소아성 만세!’를 외치자 군중들도 소아성 만세!’를 외쳤다. 그동안 소아주의 황음무도한 폭정에 시달린 백성들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새로운 군주 소아성에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윽고 군중들은 폭군 소아주를 죽여라!’고 소리쳤다.

소아성 만세!”

소아주를 죽여라!”

소아성은 명림원지의 계책대로 이 절두터에서 하지왕 대신 소아주의 목을 베어 장대에 걸기로 했다.

소아성은 망나니에게 말했다.

대가야의 하지왕은 풀어주고 폭군 소아주의 목을 베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망나니는 회자수 칼을 받들고 새롭게 바뀐 군주의 명을 받들었다. 창대수염이 난 망나니는 키가 구척장신으로 사형수의 목을 열 경 이상 베어본 노련한 기술자였다. 망나니는 기술직에다 영혼이 없는 자로 오직 군주의 명만 받들 뿐이었다.

사형 직전에 풀려난 하지왕이 소아성에게 말했다.

소아성 한기, 목숨을 살려주어 고맙습니다. 또한 사물국의 새 주군이 된 걸 감축드리오. 하지만 넓은 아량으로 소아주의 목숨은 살려주시오.”

소아성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안 되오. 숙부는 나의 아버지를 죽이고 정권을 찬탈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자요. 반드시 목을 베어 정의가 살아 있음을 만 백성에게 보여야 합니다.”

하지왕이 간곡하게 말했다.

복수는 복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소아주를 죽이면 또 그 아들이 복수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이오? 부처님의 자비를 보여주시오.”

하지왕은 자기도 모르게 부처님의 자비를 이야기했다. 옥중의 명림원지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전륜성왕 부처님이야말로 모든 군주가 따라야 할 전범이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물국의 하늘은 맑게 개이고, 시원한 산바람이 상쾌했다. 하지만 사물국의 뇌옥은 여전히 퀴퀴한 냄새가 감돌고 쥐와 벌레들이 돌아다녔다. 여전히 명림원지와 수수보리는 뇌옥에 갇혀 세월을 잊은 듯 좌불처럼 앉아 있었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 녹림당 구투야와 소마준, 소아성과 신료들이 뇌옥으로 들어가 일제히 명림원지에게 절을 했다.

소아성이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와륵선생의 계책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완벽하게 실행되어 하지왕의 목숨을 구하고 제가 사물국의 한기 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와륵선생의 덕분입니다.”

명림원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완벽하게 실행된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왕이 소아주의 목숨을 살려주자고 하지 않았나요?”

소아성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그게, 하지왕께서 하도 간곡하게 청해서 잠시 망설이는 사이, 측신의 도움을 받아 도망쳤습니다. 지금 소아주의 수배를 내려놓고 왔습니다.”

명림원지가 구부정한 어깨를 펴고 쥐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소아주는 아주 노회한 자요. 왜군들이 있는 비토섬으로 달아나 수일 내 왜군들을 이끌고 이 성으로 쳐들어 올 것입니다. 그때는 지금 사정부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무가를 대장군으로 삼아 물리치면 왜군을 훌륭하게 막아낼 것입니다.”

무가는 소아주의 심복으로 성문을 열어 내응할 자지 자신의 주군을 치진 않을 것입니다.”

무가는 여가전쟁 때 왜군과 종군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장수입니다. 가야철을 얻으려는 왜군의 모략에 걸려 그의 부하 절반을 잃었는데 그 중에 자기 아들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무가는 왜를 싫어했고, 소아주의 친왜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전쟁에 공을 세워 그간의 반역죄를 무르고 가문을 보존하라고 설득하십시오.”

알겠습니다. , 이제 옥방에서 나오십시오. 와륵선생을 사물국의 둘째 자리인 차한기로 맞아 이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겠습니다.”

명림원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소아성 한기님, 저는 이미 이 옥중에서 하지대왕의 군사가 되기로 약조했습니다. 저는 하지대왕을 모시고 대가야로 떠날 테니 군주께선 새로운 신료들과 이 나라를 잘 이끌어 가시길 바랍니다.”

명림원지는 소아성에게 절을 올리고 옥중에서 나왔다. 5년 만에 보는 바깥 햇빛이 눈부시어 그는 비틀하며 허청거렸다. 우사와 모추가 급히 그를 좌우에서 부축했다.

태사령 우사는 새털처럼 가벼운 명림원지의 몸을 부축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구나. 석공 스님의 말대로 명림원지는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보는 명견만리의 인물이다. 옥중에 앉아서 판세를 읽고 군사를 부리고 마침내 사물국에 정변을 일으켰다. 강태공과 제갈량도 이에 미치지는 못했으리라. 이런 인물을 과대망상에 걸린 자로 비난했으니.’

 

하지왕의 일행은 명림원지와 함께 말을 타고 사물성을 나와 대가야를 향해 떠났다. 사물국의 한기 소아성은 십 리까지 하지왕의 일행을 배웅했다. 소아성은 자신의 정예군사 백 명을 하지왕에게 붙여주며 말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병력을 요청하십시오. 전군을 이끌고 달려가겠습니다.”

장마가 그친 가야의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랗고 녹음이 짙은 산천에 부는 사람은 시원했다. 말방울 소리도 상쾌하고 긴 대오에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선두에 선 하지왕과 명림원지와 구투야는 말고삐를 늦추어 천천히 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왕이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이제는 대가야를 찾을 일만 남았군요.”

그렇습니다.”

창대수염의 구투야가 말했다.

이 병력으로 대가야를 치고 역적 박지를 잡아 사지를 찢어 죽여 버립시다.”

명림원지가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박지는 노련한 외교의 대가요. 그가 없이는 대가야를 찾을 수도 없고 앞으로 가야일통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구투야가 창대수염을 부르르 떨며 반박했다.

하지만 박지 그놈은 신라장군 석달곤을 끌어들여 왕위를 찬탈하고 자기의 아들을 왕위에 올린 대역적입니다. 하지왕이 쫓겨 다니며 뇌옥에 갇혀 죽음 직전에 처한 것도 그 놈 때문입니다.”

박지는 외교술로 백제로부터 대가야를 찾았고, 신라를 이용해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고구려의 장화왕후와 태자와 인맥이 있고, 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가야, 고구려, 신라, 백제, 왜 오국을 박지와 같이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외교술의 천재를 얻기란 화씨벽옥을 얻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화씨벽옥은 밤에도 빛나는 야광주로써 구슬이 있는 백 보 안에는 파리와 벌레가 들어오지 못하고 여름에 부채가 필요 없을 정도이다. 완벽이라는 말은 화씨벽옥처럼 흠 하나 없이 완전무결한 벽옥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구투야가 콧등을 튕기며 퉁을 놓았다.

, 아무리 완벽하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면 뭐 합니까? 불룩한 뱃속에는 충성심 대신 반역이 가득한 박지는 놈은 해가 될 뿐이 득이 되지 않소이다.”

똑같은 물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젖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박지를 독으로 만들지 말고 젖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건 대가야를 어떻게 찾느냐는 방법에 달려 있습니다.”

아니, 군사로 정복하는 방법 외에 달리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명림원지가 말했다.

대가야를 더 이상 싸움터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박지보다 능란한 외교술로 대가야를 접수해야 합니다.”

 

명림원지는 하지왕과 구투야에게 말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순행하고 난 뒤에 열병이 걸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지왕께선 국내성으로 가서 광개토왕을 문병하고 대가야의 왕과 가야연맹의 맹주로 책봉 받아야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신라에 들려 실성왕에게 이를 통보해 대가야에 주둔하고 있는 석달곤의 병력을 빼야 합니다.”

구투야가 명림원지에게 화를 버럭 내었다.

광개토는 우리 가야의 철천지원수요. 광개토 때문에 우리 금관가야는 망했고, 가족들은 유랑걸객이 되었고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산적이 되었소이다. 그에게 문병해 책봉을 바라느니 차라리 형가처럼 비수를 품고 암살하겠소.”

구투야는 여가전쟁으로 고구려군에게 가족은 몰살되고 집은 불타 검바람재로 들어가 산적이 되었다. 구투야는 불행의 원천인 광개토대왕을 나라와 가문의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고 언젠가는 칼을 품고 고구려로 가 암살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명림원지는 하늘을 보고 구투야를 보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은 생각이오. 하지대왕을 모시고 함께 국내성으로 가시오. 문병을 하면서 틈을 보아 광개토를 척살해 원수를 갚아도 좋습니다. 두 분께서 함께 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만약 암살에 성공하면 우리 병력은 검바람재에서 대가야로 쳐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광개토로부터 책봉을 받으면 대가야에 무혈입성을 할 것입니다.”

하지왕 일행은 검바람재에 도착했다. 멀리 대가야의 어라성이 보였다. 성의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짐바리를 실은 말과 나귀들이 떼를 지어 검바람재를 넘고 있었다.

, 꿈에 그리던 고향이구나. 어머니는 유폐당하고 후누장군은 뇌옥에 갇혀 있는데 나는 언제나 저곳에 돌아갈 수 있을까.’

명림원지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대가야는 조그만 사물국과는 다릅니다. 여가전쟁으로 망한 금관가야의 사람과 물산들이 대거 대가야로 유입되었습니다. 박지는 부패관료이나 경제를 잘 아는 자입니다. 박지가 정변을 일으킨 뒤에 오히려 대가야는 더욱 부유해지고 백성들은 대가야가 살만한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어라성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박지가 낙동강을 이용해 고구려 신라 백제 왜와 무역해 치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력으로 대가야를 쳐서 이긴다 하더라도 그동안 이룬 대가야의 번영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할까 염려됩니다.”

하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와륵선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소. 나 또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가야를 찾는 모색을 할 것이오.”

박지 집사는 어떡할 생각입니까?”

물론 와륵선생이 말한 대로 박지는 대가야의 집사로 임명되어야 합니다. 다만 전쟁을 할 경우는 제거해야 합니다. 박지를 제거하는 것이 전쟁의 대의명분이 될 테니까요.”

영명하신 판단입니다. 마마, 이제 구투야와 함께 고구려 땅으로 출발하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텁석부리와 고두쇠를 먼발치에서 따르는 전령으로 붙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