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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33. 강약약 중강약약

작성일 : 2021.08.02 10:47 수정일 : 2021.08.06 10:43

강약약 중간약약

/윤일현

 

1999년 미국의 유명 시사잡지 '라이프'지가 과거 천 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영향을 준 100대 사건을 조사했다. 예상을 뒤엎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 1위를 차지했다.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크게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다. 금속활자와 인쇄술은 지식의 축적과 순환을 가능하게 하여 인류 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견인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이용자 폭증은 온라인 콘텐츠 산업의 출현과 함께 온라인을 통한 사회적 이슈의 생산과 유통, 여론 형성으로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신문, 잡지, TV, 음반, 영화 등을 융·통합하면서 일반 대중이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나 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피아노도 인류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악기다. 피아노의 약자는 'pf'. 'pianoforte', 셈여림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건반악기란 뜻이다. 피아노의 전신 쳄발로(cembalo 또는 하프시코드 harpsicord, 클라브생 clavecin)는 셈여림을 표현할 수 없어서 극적인 표현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연주회용 아리아는 반드시 수십 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뒷받침이 필요했다. 서민에겐 언감생심이었다. 셈여림이 가능한 피아노가 88개의 건반으로 오케스트라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웠겠는가. 금속활자와 인터넷이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와 일반화에 기여했듯이, 피아노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827년 어느 날 슈베르트는 악성(樂聖) 베토벤 병문안을 하러 갔다. 그는 수줍은 듯 망설이다가 얼마 전에 완성한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내놓았다. 베토벤은 악보를 넘기면서 손이 떨렸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정말이지, 이 사람 슈베르트는 내면에 하늘의 불꽃을 간직하고 있구나." 그는 이렇게 외치며 신성(新星) 슈베르트를 천재라고 극찬했다. 베토벤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1828년 슈베르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콘서트를 열어 큰 성공을 거뒀다. 남의 피아노를 빌려 쓰던 그는 꿈에도 소원하던 피아노를 샀다. 피아노는 '가곡의 왕'을 탄생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 그는 장티푸스에 걸려 31세로 요절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화음의 왕' 베토벤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두 사람은 지금 음악의 도시 빈에 나란히 누워있다.

 

자나 연필로 책상을 두드리며 8분의 6박자 악보 읽기 연습을 하던 초등학교 음악 시간이 생각난다. 피아노처럼 셈여림을 조절할 수 있는 삶을 생각하며 컴퓨터 자판을 강약약 중강 약약으로 두들겨본다. 공부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긴장과 이완, 강약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