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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7.31 08:59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시가 있는 가요 산책 (12)
조성모, 가시나무
그대와 나 사이를 강이라고 한다
나와 나 사이를 비루함이라고 한다
그대에게 이르는 길을 노래라고 한다
나에게 이르는 길을 눈물이라고 한다
―이승주
노래는 오감으로 들어야 한다. 귀로는 가사와 가락을 따르며, 눈으로는 노래의 덩굴이 가슴 안으로 들어와 감기는 것 보며, 입과 코로는 노래의 맛과 향을 음미한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선율에 실려 이 세상 밖 어디론가 흘러간다. 노래에는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마력이 있다.
창밖으로 비가 바람에 날리며 비스듬히 몸을 누인다. 이런 날은 조성모의 「가시나무」가 어울린다. 방에 불을 끈다. 불을 끄고 어둠 속에 있으면 오감이 눈을 뜨고 깨어난다. 재생을 누른다. 어둔 방안은 이윽고 허밍과 피아노 단음들에 이어 피아노 반주에 실은 첼로의 선율로 가득 찬다. 가사의 의미를 음미하기 이전에 촉촉이 젖은 가성기(假聲氣)의 목소리와 멜로디가 가사의 내용처럼 먼저 삶의 쓸쓸함과 괴로움, 외로움과 슬픔 같은 것을 불러내어 일깨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안 그런 적이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 나도 언제나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과 그늘,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이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아 “가시에 찔려” 아파하며 외롭고 쓸쓸하고 괴로운 날들이었다.
아들아, 빈 몸뚱이 하나로
단칸집 지키며
나는 일생 못을 박으며 살아왔다.
바람 불어 흔들릴 때
기둥과 문짝에 쿵 쿵
불타는 말로
내가 박은 못.
꿈꾸는 집의 마디마다.
아들아, 해가 지면
꿈들이 아프다.
기둥과 문짝은 낡아
녹슨 못은 푸른 가시 되고
뼛속까지 아파
내 집은 잠들지 못한다.
붉은 녹물 어혈들.
내가 살고 있는 집이여.
―이승주, 「집 ․ 1」
내가 언제 이 “푸른 가시”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인가. “푸른 가시”를 뽑아낸다면 내 삶은 행복할까. 정말로 마냥 행복하여 내가 나와 타인의 인생을 사랑하고 껴안을 수 있을까. 이럴 때, 내가 노래 가사 속의 “나”와 같을 때 노래는 상처에 바르는 약이었다. 내 안의 고독과 번민을 불러내어 관절이 굳은 슬픔을 감싸며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의 약손이고 묘약이었다.
늦여름의 백일홍이 비를 맞으며 흔들린다. 노래가 빗소리 속으로 스미고, 바람소리 빗소리가 노래 속으로 녹아들어 아득하고 깊고 고요한 자리를 이룩한다. 볼륨을 약간만 더 높인다. 두세 번 반복해서 더 듣고, 다음은 들으면서 따라 부른다. 이때 난 조성모보다 더 노래의 정서에 감정을 몰입해서 조성모보다 열 배 더 잘 부른다. <이승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