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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7.30 10:40
싸움의 기술⑥ - 신데렐라 콤플렉스
/양선규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다 아시죠? 세계적으로 300개 이상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답니다. 그런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몇 가지의 필수 모티프가 공존합니다. ①계모 모티프 ②자매 갈등 모티프 ③배고픔 모티프 ④벼락성공(벼락거지) 모티프 ⑤조력자 모티프 등이 그것입니다. 지역과 민족에 따라서 전경화(前景化) 되는 것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합니다. 나쁜 계모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도 있고, 배고픈 상황이 아주 절실하게 묘사되는 것도 있습니다. 동화로 전화(轉化)되면서는 조력자의 활약이 재미있고 생생하게 덧붙여지기도 합니다. 신데렐라가 연회장에 참가할 때 타고 가는 화려한 황금마차도 자정을 넘기면 쥐가 끄는 초라한 호박마차로 변합니다. 그런 이야기 속에는 아이들은 너무 늦게 깨어있지 말라는 깜찍한, 혹은 노회한 지혜가 숨어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또 신데렐라가 시간에 쫒긴 채 뛰어가다 벗겨진 한 짝의 유리구두도 여러 가지 해석을 낳습니다. 정확한 발치수를 알기 위해서는 신축성이 없는 유리구두가 필요했다고도 하고, 신데렐라 같은 아이들의(밤나들이를 즐기는) ‘깨어지기 쉬운’ 성관념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도 하고, 그냥 이야기를 재미있게 동화로 윤색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자정이 지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유독 유리구두는 그대로 남아서 신데렐라의 ‘신분증명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허용된 ‘동화적 허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여집니다. 일언이폐지해서 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과장된 스토리첼링입니다. 원래 모든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 속에는 생활의 지혜와 도덕적 권고, 그리고 ‘이야기의 재미’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 ‘뒤죽박죽 스타일’이 옛이야기의 매력인 것입니다. 그 ‘뒤죽박죽’ 덕분에 참신하고 돌발적인 상징도 출현할 수 있고 수많은 후속 이야기들도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이야기를 흔한 이론이나 상식이나 관념으로 ‘정리정돈’ 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게 현명한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옛이야기를 애호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화제를 약간 돌리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제 책상 앞에는 이런저런 좌우명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남새스러워 다 밝힐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절대 포만감을 느끼지 말 것’과 같은 동물적인 내용까지도 있었습니다. 근자에 들어 그것들을 모두 철수시켰습니다. 최근에 있던 것이 ‘소창다명(小窓多明)’이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小確幸)의 옛이야기 버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옆에 제자 한 사람이 보낸 카드도 한 장 걸려 있었습니다. 그 카드에는 예쁜 자전거 그림 밑에 ‘힘내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들도 다 서랍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인류의 오래된 ‘성숙을 향한 투쟁담’으로 읽습니다. 성숙은 살면서 얻는 훈장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을 위해 ‘투쟁’한다는 말이 좀 생경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성숙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말까지 나온 것 같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저는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나의 성숙이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것이라야 한다는 자각이 들어왔습니다. 젊어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게 아마 미숙아들의 특징이겠죠? 제겐 성숙이 '투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흔한 ‘옛이야기 해석 스토리텔링’ 중에서 그 성숙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게 있어서 조금 인용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이야기들은(백설공주, 신데렐라의 고난과 승리), 사람이 자아를 획득하고 내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 나가야만 함을 널리 전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경을 견디고, 위험을 극복하며, 승리해야만 한다. 이런 방법으로만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자신의 왕국을 차지할 수 있다. 옛이야기 속의 남녀 주인공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입사식에 비유될 수 있다. 처음 입사식에 임할 때는 순진하고 불완전한 초심자가, 마치고 나올 때에는 처음 시작할 때는 꿈도 못 꾸었던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신성한 항해를 통해서 그 사람은 보상을 얻거나 구원을 받는다. 진정한 자신이 됨으로써, 남녀 주인공들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그런 자아 개발이 유익하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행복을 얻으려면, 고립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과의 유대를 형성해야 한다. 자기의 삶이 아무리 높은 경지까지 나아갔다 하더라도, ‘그대’ 없는 ‘나’ 혼자서는 고독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옛이야기의 행복한 결말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평생 반려자와 결합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옛이야기들은 참된 자아를 성취한 후, 고립을 초월하기 위해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백설공주』에서도 『신데렐라』에서도(그림 형제의 판본) 그들이 결혼한 후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결혼한 후 배우자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밖에 없다. 이 이야기들은 여주인공을 참된 사랑의 문턱에까지만 올려놓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참된 결합을 위해 어떤 인격적 성숙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브루노 베텔하임(김옥순, 주옥), 『옛이야기의 매력2』, 444~446쪽]
인용문의 저자는 그런 ‘성숙에의 투쟁’을 옛이야기들은 아이들의 잠재의식에 호소한다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의식적인 층위에서 그런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에게 심각한 혼란이 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수준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과업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에 그런 개념들이 깊이 새겨지고 나면 시간이 흘러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책상 앞에 써서 붙이는 습성’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것이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직설적인 것 위주로 작성된 것이어서 수준이 좀 저급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것이 또 미숙아의 특징이지 싶습니다. 성숙이 굳이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만약 ‘투쟁’이 요구된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일 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이제 책상 앞에 써서 붙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족 한 마디.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하면 보통 <동화 속의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듯, 여성이 일시에 자신의 인생을 화려하게 변모시켜 줄 남자를 기다리는 심리적 의존 상태>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옛이야기의 심리적 효용을 고려할 때 거기에다 한나 더 덧붙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 없을 만큼 덧난 자기 성숙에 대한 과도한 기대>라는 것을 2번 항목에 새로 넣고 싶습니다. 제 경험으로 든 생각입니다. “『신데렐라』는 어린이를 절망감, 즉 오이디푸스적인 환멸, 거세불안, 남에게 무시당한다는 상상으로 인한 자기비하 등으로부터 끌어올려 자율성과 근면성 그리고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게 한다.”(브루노 베텔하임, 앞의 책)라는 심리적 효용의 주제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성숙’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강박을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부르는 게 오히려 더 적합하지 않겠는가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른 말로는 ‘미숙아 콤플렉스’쯤 되겠고요.
<소설가 /대구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