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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 읽기

<양왕용의 시읽기 39> 김지원의 성자나무

작성일 : 2021.07.22 11:08

성자나무

/김 지 원

 

보아라

한 번 정해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평생 제자리를 지킬 줄 아는 나무를

먹을 것을 위해 허둥대지 않고

하늘 양식만으로도 늘 넘치는 은총을

보아라

자신은 풍찬 노숙을 하면서도

품안에 찾아오는 모든 날짐승들의 안식처가 되어

따뜻이 품어주는 넉넉함

더위에 지치고 고단한 모든 이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평등한 세상을

보아라

때를 따라 열매를 내어

빈자들의 양식이 되는 희생

가을이면 몸에 지닌 마지막 남루까지

아낌없이 벗어주고

새봄을 준비하는 거룩한 모습을

-김지원 제9시집 너무 긴 하루에서

 

 

 

 

*김지원(서울 서대문구),서울중앙교회 목사,현대시학등단, 시집 너무 긴 하루(2020) 9. 기독교문화예술 대상, 창조문예문학상, 한국크리스천문학상, 목양문학상 등 수상, 목양문학회,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장 역임.

 

김지원 목사님의 시는 목회자로서의 자세나 신앙의 깊이를 주제로 할 때에도 상투성을 충분히 벗어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크리스천 시인들의 시에서 자주 발견하는 신앙을 직접적 노출하기보다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시는 이렇게 해야 신앙인이 아닌 독자들에게도 거부감이 없이 다가가 감동을 주게 된다. 말하자면 무의식적 기독교시가 되어 작품성과 신앙고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게 되는 것이다. 그의 제9시집 나무 긴 하루(2020.4)에 수록된 70여 편의 시 역시 그러한 작품들로 되어 있다.

성자나무는 우리나라 농촌 가운데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에 가면 동네 입구나 시냇가의 좋은 자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자나무라고 불리어 지는 거목을 시적 제재로 하였다. 그 거목들의 수종은 대체로 느티나무나 팽나무로 낙엽수가 많다. 그리고 그 나무 그늘은 노인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고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김 시인은 그 나무를 정자나무라 하지 않고 성자나무라 명명하여 나무에다 성스러움을 부여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후에 시의 본문 속에서는 성스럽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우선 서두에서 한 자리에 정주하면서 제 자리를 지킬 줄 아는 굳건한 믿음을 강조한다. 그리고는 먹을 것을 위해 허둥대는 세속적 욕망도 견제한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근본인 긍휼모든 날짐승의 안식처로 형상화 하고 나무 그늘에 더위를 피하는 인간들에게서는 평등을 강조한다. 열매에서는 헌신과 희생을 그리고 가을이면 낙엽으로 잎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에서는 또 다른 희생과 겨울이라는 죽음과 절망을 건너 뛰어 봄을 준비하는 부활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동네 입구의 정자나무에서 김 시인은 성스러움을 발견한 것이다.(양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