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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24) 제4부 하지왕과 명림원지(5)

작성일 : 2021.07.20 11:31 수정일 : 2021.07.20 11:36

대가야제국의 부활(24)

4부 하지왕과 명림원지(5)

/김하기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손발에 차꼬가 채워진 채로 옥방을 나왔다. 명림원지와 수수보리가 큰절을 하자 죄수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셋을 향해 큰 절을 했다. 하지왕이 죄수들의 눈에 어둠에 물기가 젖은 간절한 빛을 볼 수 있었다.

하지왕은 죄수들에게 재회를 다짐한 하직인사를 했다.

모두들, 고맙소.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죽는 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라고. 잠시 헤어지지만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어두운 뇌옥 밖을 나오니 하늘은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말갛게 개였다. 형리와 망나니와 도수들은 하지왕과 우사, 모추를 겹겹이 에워싸 사형장으로 끌고 갔다. 큰 구경거리가 나자 성안 사람들은 일시에 큰 무리가 되어 밀치락달치락하며 사형수들을 따라붙었다.

절두터 사형장에 도착하자 사물국 한기 소아주가 높은 대에 배를 내밀며 앉아 있었다.

형리장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대역죄인들은 사물국 소아주 대한기님 앞에 무릎을 꿇으시오!”

도수들이 셋의 무릎을 꿇리자 소아주는 망나니에게 집행명령을 내렸다.

소아주가 하지왕과 우사, 모추의 죄상을 말했다.

하지왕은 어린 나이에 대가야국에 반역하고 가야연맹체의 질서를 어지럽혀 현상금이 걸린 대역죄인이다. 더욱이 수졸 우사와 모추와 함께 가야제국을 떠돌며 살인과 강도를 일삼고 급기야는 우리 사물성에 침입해 우리의 군사마저 수없이 해쳤다. 나 사물국의 한기 소아주는 지금 대역죄인 하지와 우사, 모추를 참수해 가야의 국률이 엄정하게 살아 있음을 보이고 수급을 베어 장대에 걸어 말린 뒤 대가야국 어라성으로 보낼 것이다!”

그리고 소아주는 옆에 앉은 신하 이품 축지에게 말했다.

왜 군신지 무가 장군은 보이지 않는가?”

축지가 말했다.

곧 당도하실 겁니다. 요즘 수상한 자들이 들락거린다며 성문검색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기 보십시오. 정예 직할부대 군사로 겹겹이 둘러싸 이 절두터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하긴 무가는 일당천의 나의 가장 믿음직한 장수요. 그럼, 무가가 올 때까지 망나니 춤이나 구경할까.”

술꾼인 소아주는 각배로 해장술을 한 잔 들이켜며 느긋하게 말했다.

무가는 하지왕이 뇌옥에 수감되자 옥중의 노역수 고두쇠를 살짝 빼내어 정보를 들었다. 고두쇠는 명림원지를 감시하기 위해 뇌옥에 박아둔 무가의 세작이었다.

하지왕이 뇌옥에 수감 되는 날 둘은 성안 관가 밀실에서 만났다.

고두쇠, 뇌옥에서 고생이 많구나. 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관직을 주고 상을 내려주마.”

고맙습니다, 나으리.”

새로운 옥중 소식은 없나?”

드디어 명림원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장군님에게는 미인계를 쓰기로 했답니다.”

 

비 내리는 밤에 사물성 영장인 무가장군은 고두쇠를 불러 미인계 첩보를 얻은 후 명림원지와 하지왕을 계속 염탐하여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옥중으로 되돌려보냈다.

다음날 아침 소아주의 장조카인 소아성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장군님, 오늘 제 생일입니다. 저녁에 상춘재에 들러 식사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상춘재는 술과 요리가 나오는 사물성 밖의 주점이었다.

무가는 생각했다.

소아성, 많이 컸구나. 내가 이놈을 지금까지 살려준 것은 내 막내 누이 때문인데 감히 반역을 일으키고 미인계를 써 날 제거하려고 해?’

무씨 집안은 사물 가야의 명문가로 대대로 한기 소아씨와 외척 관계를 맺어 막대한 권력을 휘둘러왔다. 무가의 큰 누나는 소아주와 혼인했고, 막내 누이는 전 한기 소아장의 아들 소아성과 혼인시켜 사물성을 장악하고 있었다. 5년 전 말단관리인 명림원지가 지모를 부려 소아주와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켜 폭군인 소아장을 제거함으로써 소아성은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무가는 새 한기 소아주를 움직여 막내누이와 혼인한 장조카 소아성은 살려두되 정변의 일등공신인 명림원지를 숙청해 뇌옥에 가둬버린 것이다.

무가는 소아성의 생일 초대에 응했다.

소아성을 중심으로 반역이 무르익고 있지만 하지왕을 처형하는 날 소아성과 명림원지를 한꺼번에 찍어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다. 권력을 쥔 소아주가 형 소아장보다 더 여색을 밝히고 난폭한 패도정치를 해 사물국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무가는 도롱이를 입고 빗속을 뚫고 상춘재로 갔다.

주모가 도롱이를 벗겨주며 무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방에는 고급 요리가 차려져 있고 여자가 사뿐히 일어나 절을 올리며 말했다.

논새라고 하옵니다. 장군님을 모시게 되어 광영입니다.”

무가는 설핏 보았는데도 저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미인이었다.

고두쇠가 말한 미인계가 이 여자 논새를 두고 말한 것이렷다.’

소아성이 말했다.

처형, 그동안 격조해서 술이나 한 잔하고 싶어 생일을 빙자해 초대했습니다.”

그동안 나도 술이 고팠네. 이런 미인이 따라주는 술인데 마다 하겠는가.”

술을 좋아하는 무가는 아리따운 논새가 굽다리술잔에 따라주는 두강주를 단숨에 비웠다.

소아성이 자작하며 말했다.

자고로 두강주 한 잔에 백호가 취하고, 두 잔에는 이무기도 취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처형이 두주불사라지만 천천히 드시죠.”

두강주는 서해를 건너 들어온 중국술로 영웅호걸들이 즐겨마셨고, 삼국지의 조조가 애음해 두강주를 칭송한 시가 남아 있을 정도다. 천하의 술고래인 유영도 세 잔을 마시고 삼 년을 취해 있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도수 또한 매우 높은 술이었다.

 

소아성, 무가, 논새는 두강주를 권커니잣커니 하면서 거나하게 취해갔다. 술이 된 소아성은 해우소에 간다며 나간 뒤에 종무소식이었다.

무가는 논새에게 잔을 따르며 물었다.

이름이 왜 논새지? 논에 사는 새란 뜻인가?”

주각의 주모가 제가 논에서 사는 두루미처럼 생겼다고 논새라고 지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잘 노는 새라는 뜻으로 논새라고 하옵니다.”

허어, 주각에서는 잘 노는 새가 으뜸이지. 그럼, 오늘밤 우리 잘 놀아보세.”

무가는 잔을 단숨에 들이켜며 말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논새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미인계는 그 계책이 알려지면 미인계가 아니라 유흥이 된다. 유흥을 즐긴 뒤 여자를 칼로 베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논새가 벽에 세워 논 다섯 줄 쟁을 내리며 말했다.

장군님, 여름밤이 깁니다. 천천히 드세요. 제가 오늘 장군님을 위해서 노래 한 곡을 준비했습니다.”

그래, 좋은 술에 노래가 빠질 수 없지.”

논새가 타는 쟁은 고구려에서 온 악기로 활로 연주하는 탄쟁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뜯는 추쟁이었다. 논새는 하늘하늘한 연남색 치마를 걷어 올리고 길고 허연 허벅지 위에 쟁을 올렸다. 왼손으로 줄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줄을 낚아채며 고개를 까딱이며 쟁을 뜯는데 그 모습이 풍윤하고 요염했다. 누를 때마다 탄력 있는 허벅지에서 소리가 튕겨 나오고 연둣빛 저고리가 들썩일 때 가녀린 반허리가 살짝살짝 드러났다.

정녕, 어여쁜지고. 고두쇠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넘어갈 뻔 했다.’

논새가 탄주하며 부르는 곡은 무가에게 익숙한 공무도하가를 변용한 노래였다.

 

사랑하는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말래도

그예 그 강을 건너시렵니까

강 너머 화려한 술집이 있다지요

강 너머 어여쁜 여자가 있다지요

사랑하는 임이여,

삼간초가 조강지처를 버리시고

그예 그 강을 건너시는가요

나 홀로 어찌 살라하고 그 큰 강을 건너시렵니까

사랑하는 임이여

 

멀고 먼 고조선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공무도하가는 구슬프면서도 애절한 노래였다. 그러나 논새가 가슴츠레한 속눈썹을 올려 장군을 바라보며 애잔하게 부르니 장군의 큰 가슴으로 덤썩 안아주고 싶을 정도 애틋하고 귀여웠다.

 

밖에 부슬부슬 내리는 장맛비처럼 논새의 쟁은 끊어질 듯 다시 울었다. 추녀 끝에는 들리는 낙수소리와 쟁의 소리는 묘하게 어울려 사내의 풍정을 울렸다.

주각의 안채는 수묵화 한 폭과 홍등이 걸려 있어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 얼룽거리고 논새의 좁고 가녀린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논새의 체취에서 풍겨나는 훈향이 코끝을 아련하게 했다.

무가는 두강주의 두루미를 뒤집어 마지막 잔을 채웠다.

이 잔을 마시고 논새를 베리라. 베기엔 아까운 여자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무가는 이 여자를 베는 것을 시작으로 소아성과 그 사병을 진멸하고 명림원지와 하지왕의 목을 베어 역모를 완전히 진압하리라 생각했다.

무가가 마지막 잔을 들고 들이켜려는데 갑자기 선율이 끊기더니 논새가 잔을 뿌리치고 장군의 품에 안기며 흐느꼈다.

잔이 반상에 뒤집어지며 술이 흘러내렸다.

장군님, 마시면 안돼요. 이 잔에는 독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이 술에 독이 들었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지금까지 이 두강주를 셋이 나눠 마셔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논새 너는 계속 쟁을 탄주하고 있지 않았는가. 독을 섞을 틈이 어디 있었단 말인가.”

아까 제가 짐독에 절여 말린 대추 한 알을 두루미병에 몰래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지만 지금쯤 독대추가 불어터져 마시면 죽거나 사지가 마비됩니다.”

무가가 두루미병을 뒤집어 흔들어보니 과연 불어터진 대추 한 알이 굴러나왔다. 무가는 논새의 말을 믿지 못하여 주각의 마당에 엎드려 있는 개에게 독대추를 먹였다. 개는 독대추를 삼키고는 잠시 후 몸을 뒤집고 허공을 향해 네 발을 부르르 떨더니 옆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무가가 미리 조심하고 경계했지만 말린 독대추를 넣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는 못했다.

고얀지고, 어째서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무가는 칼을 빼어 논새를 베려고 했다.

소녀를 죽여주옵소서.”

논새는 눈물을 흘리며 자초지종을 말했다.

저는 원래 고구려 여인으로 명림가의 먼 일족입니다. 집안의 어른인 명림원지가 뇌옥에 갇힌 뒤로 저희 집안은 몰락하여 생업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이곳 주각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사물성 뇌옥의 노역수 텁석부리로부터 명림원지의 전갈을 받고 소아성 나으리에게 연락하여 이런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소아성, 네 이 놈을 당장!”

논새가 무가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소아성 나으리는 제가 독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다만 장군님을 유혹하여 내일만 조당에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논새는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헌데 논새 너는 왜 나를 죽이려 했느냐?”

무가는 칼을 들고 서서 말했다.

소녀는 우리 가문의 별인 명림원지를 뇌옥에 가둔 장군님을 원망했습니다. 당숙인 명림원지의 소개로 혼사를 앞두고 있었던 저는 당숙이 역적이 되는 바람에 파혼이 되고 주각에 기녀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장군님에 대한 원망이 제 가슴에 한으로 맺혀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재주로는 엄정하신 장군님을 미인계로 유혹할 길이 없다고 생각해 감히 독살할 삿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마음을 바꾼 것인가?”

비록 저희 가문은 몰락했으나 장군님은 사물국 모든 백성들의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당숙과 소아성에게 독살할 뜻도 비쳤으나 장군님은 사물성의 유일한 희망이니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역모를 일으키려는 자들마저도 장군님만은 존경하고 있었고, 소녀도 장군님을 뵈면, 원한 살의가 일어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동안 서리서리 쌓였던 한이 봄눈 녹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마시려던 독잔을 뿌리친 것입니다.”

논새의 호수 같은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 있다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가는 칼을 도로 칼집에 집어넣고 앉았으나 논새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는 않았다.

이번 역모는 옥중의 명림원지가 수괴이고 소아성과 사병들, 그리고 하지 일당이 그 종범들이다. 그밖에 연루된 자가 누구인지 아는 대로 말하렸다.”

소녀는 잘 알지 못하옵고 검바람재에서 산적 일당들이 급히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검바람재에서 산적 일당이? 누구로부터 들었느냐?”

저에게 미인계 지령을 전달한 텁석부리입니다.”

, 검바람재 산적이라면 고구려군에게 쫓겨서 그곳에 소굴을 틀고 있는 구투야 일당이 틀림없다. 명림원지 이 놈이 멀리 비화가야 검바람재의 산적까지 손을 뻗쳤구나.”

하지만 논새의 말이 사실이라면 명림원지는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바깥과 완전히 차단된 동굴 옥중에 앉아서 소아주의 장조카 소아성을 움직이고 멀리 비화가야 검바람재의 구투야까지 동원하고 미녀 논새를 자신에게 보내어 미인계까지 구사할 정도라면 대단한 놈을 넘어 무서운 놈이다. 아예 이놈을 5년 전에 제거해버려 후환을 없애야 했다. 소아주가 정변의 일등공신이라며 목숨만은 살려주자고 해 뇌옥에 가두었던 게 나의 실책이다. 그 간악한 머리를 옥중에서도 굴려 대역모를 꾸미고 있으니 이번에는 확실하게 놈을 제거해 소아주 정권을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

명림원지가 엎드려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논새에게 말했다.

지금은 너를 베지 않겠다. 너와 명림원지가 사는 길을 가르쳐주겠다. 일단 텁석부리에게 미인계가 성공해 잠시 사물성을 떠나 비토섬에 놀러갔다고 알려라. 그리고 너와 나는 오늘밤 소아성을 잡으러 간다.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