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작성일 : 2021.07.10 10:48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시가 있는 가요 산책 (9)
송골매,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승주 (시인)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음!
말을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내 가슴만 두근두근
답답한 이 내 마음 바람 속에 날려 보내리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내 마음을 빼앗아 버렸네
이슬처럼 영롱한 그대 고운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음!
말을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내 가슴만 두근두근
바보 바보 나는 바보인가 봐
사랑은 오래 공들여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어쩌다’ 오게 된다는 것. 우연히, 어쩌다 마주쳐 오게 된다는 것. ‘우연’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숭배해야 할 신(神)? “어쩌다 마주친”, “이슬처럼 영롱하”고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두 눈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청년의 노래다. ‘마음’은 ‘주는 것’이기도 하고 ‘빼앗기는’ 것이기도 한데, 가슴이 두근두근 훨씬 치명적인 것은 ‘주는’ 것이기보다 어쩌다 마주친 눈길에 ‘빼앗기는’ 것이다. 단 한 번의 눈길이야말로 한 순간에 마음을 포획하는 완벽한 포충망이 아니던가.
겨자씨보다 작은 사랑의 홀씨 하나가 두 눈을 통해 우리 가슴으로 들어오고 그것이 싹트고 꽃피려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은 이내 내 가슴에서 큰 산처럼 자라지만 대개는 누구나 그렇듯 그것을 고백하는 일은 “용기”가 있지 않고서야 쉬운 일이 아니다. “바보” 같이 용기가 없다면, 그래서 끝내 고백하지 못한다면 사랑은 꽃피지 못하고 시들고 만다.
가슴속에 묻어 둔 말을 화롯불에 구워
그대 만나게 되면
얼굴이 붉어질까, 더듬거리게 될까.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
그대 만나게 되면
가슴이 천둥칠까, 바닷물에 씻겨질까.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대 만나게 되면
멍청이가 되네, 한 줌의 먼지가 되네.
―홍승우, 「그대 만나게 되면」
여백이 많은 시다. 나직이 소리 내어 읽을수록 가락의 맛도 우러난다. 여백이 많은 시가 대개는 울림의 여운이 길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시가 대개는 울림의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
홍승우의 「그대 만나게 되면」도 ‘마음을 빼앗겨 버린’ 청년의 내적인 사랑의 고백이다. 내 가슴에 은근한 화롯불이 피워지고 내 안에 간직한, 점점 뜨거워지는 마음을 그대에게 건네려고 잠 아니 오는 밤마다 가슴 속에 묻어 둔 말을 화롯불에 익힌다. 그리하였다가 그대 만나게 되면 내 얼굴이 붉어질까, 더듬거리게 될까…. 내 안에서, 그대를 향한 연모의 마음이 뭍을 향해 달려가는 파도처럼 일어설 때, 그대 만나게 되면 가슴이 천둥칠까, 화롯불 같은 마음이 바닷물에 씻겨질까…. 아아,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러나 그대 만나게 되면 얼굴은 붉어지고 자꾸만 더듬거리게 되어 ‘바보’ 같이 “멍청이”가 되겠네, 그대 눈부심 앞에 서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보잘 것 없는 “먼지”가 되겠네.
첫눈에 좋은 시보다 읽을수록 좋은 시가 좋은 시다. 홍승우의 「그대 만나게 되면」은 그냥 읽으면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몇 번 읽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크게 가슴에 닿아 온다.
모니터 앞에 앉아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재생해 놓고 홍승우 시인의 「그대 만나게 되면」을 다시 읽으며 이 글을 쓰는 이 아침, 한 평생 나를 따라온 사랑이여, 그늘 속에 들거나 사람들 속에 숨어도 피할 수 없는 사랑이여, 그대여, 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 눈이 첫눈에 눈이 부셔 긴 날들을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대여, 옛 그날이 다시 온다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면 오래 괴로울 줄 이제 난 알기 때문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