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양왕용의 시 읽기
작성일 : 2021.07.08 10:27
민달팽이 /손수여
장마가 그친 상추 심은 텃밭 풀섶엔
꼬물대는 달팽이 하나가
굽은 등엔 남 다 가진 움막집도 한 채 없이
세상의 넓이를 읽는다
그 곧추선 레이더로 묵언 수행중.
(월간 <시> 2020년 9월호)
*손수여(대구,달서구),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국어학 전공) 시집 『설렁콩깍지 끼었어도 좋다』 등 6권, 학술서『국어어휘론연구방법』 등 8종, PEN 문학상, 대구의 작가상 수상
이 시는 외연만 파악하면 일종의 사물시(physical poetry)이다. 그러나 그냥 묘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 제재 ‘민달팽이’의 모습에 적합한 시인의 세계관이 이입되고 있다. 그런데 그 세계관이 어떤 관념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 시는 관념시(platonic poetry)는 아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이 시는 그 내포를 파악해 가면서 읽어야 한다.
우선 민달팽이의 달팽이 껍질을 안 가진 것에서는 이 지상에 집 한 채도 가지지 않은 무소유 내지 무욕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달팽이 뿔의 유연함에서는 셋상의 넓이를 읽는다고 보고 있다. 즉 세상일에 관심이 많다고 보아 무욕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 인간들의 삶의 모순 즉 현실을 초월한다면서 한편으로는 관심을 가지는 상호모순의 모습이 상징되고 있다. 마지막 행에서 뿔에 대한 ‘곧추선 레이더’와 ‘묵언 수행중’이라는 비유는 레이더라는 문명의 이기를 등장 시킨 기발한 비유와 ‘묵언 수행’이라는 불교적 비유를 등장 시킨 점 역시 상호 충돌되는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이 서로 모순되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서로 충돌되는 비유를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J.C.Ransam이 말하는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가 되는 요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양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