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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7.05 10:49
제4부 하지왕과 명림원지(4)
김하기
명림원지가 하지왕의 물음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분은 중국을 제패한 진황한무도 아니고, 위오촉의 삼국통일을 이룬 사마의도 아니고, 하지왕에게 제왕학을 가르쳐주었고, 일시나마 한반도의 사국통일을 이룬 광개토대왕도 아닙니다. 천하를 통일한 분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명림원지가 합장을 하며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왕은 뭔가 허를 찔린 듯했다. 우사와 모추는 다시 경멸의 태도로 돌아갔다.
모추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이런 젠장, 석가모니라니! 우린 지금까지 빼앗긴 대가야를 다시 찾는 절박한 대업을 말하고 있는데 염불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으라는 것인지.”
우사도 말했다.
“석가모니는 정치와 역사를 논하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지 않소. 그렇다면 공자, 노자, 단군, 종교와 신화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얘기밖에 되지 않소이다.”
명림원지가 좌정한 채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 성도하신 후 법륜의 수레를 타고 천축을 정복하고 서역 끝에서 파미르를 넘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와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그의 영토와 통치력은 이 천하에 미치지 않은 데가 없으므로 석가모니야말로 천하를 통일한 전륜성왕입니다.”
모추가 비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칼과 활로 싸우는 우리더러 성인을 본받으라는 것입니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소리만 하십니다그려.”
실증적 사가인 우사는 조리 있게 반박했다.
“석가모니는 한 치의 땅도 정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물려받을 왕국마저 잃어버린 걸승에 불과합니다. 석가는 가비라왕국을 물려받을 태자신분을 버리고 설산으로 들어가 고행 끝에 그곳에서 도를 깨쳤습니다. 석가는 당시 천축의 사성 계급제도를 비판하고 모든 중생은 평등하다고 해 천민으로부터 제법 세를 얻어 교단을 만들었으나 정작 그의 가비라왕국은 이웃 고사라 왕국에게 점령당하고 그 백성들이 무참히 살육을 당할 때에도 공허한 설법만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늙고 기력이 빠진데다 식중독에 걸려 구시에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석가의 몸에 맞는 관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어 작은 관에 시신을 넣어 맨발을 내민 채 죽었습니다. 불교는 그가 죽고 난 뒤에 천하에 퍼진 것이고 석가는 왕자로 태어나 걸승으로 객사한 실패한 인간일 뿐입니다.”
“......”
명림원지는 우사의 변설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석가의 가르침은 모든 행위는 무상하니 욕망하지 말 것이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므로 살생하지 말고 공덕을 쌓아 극락에 가라는 것입니다. 허무와 내세에 치우친 이런 교리는 전쟁을 통해 대가야를 찾고 가야연맹체의 맹주자리를 찾아야 할 우리 현실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하지왕은 명림원지가 그토록 천하대업을 설한 것이 결국 성인인 석가모니로 귀결되니 허무하기는 했다. 하지만 허허실실한 그의 말에는 항상 실한 뼈가 들어 있었다.
하지왕이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우사와 모추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성인은 우리가 생각한 천하대업의 영역에 벗어나 있는 인물입니다. 비록 불교를 하나의 법술로 보더라도 살생을 금하고, 공을 논하는 불가로 지금 대가야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타개하기에는 너무 약한 등불입니다.”
명림원지는 하지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약한 등불이 맞습니다. 하지만 약한 등불이 어둠 속에 발걸음을 인도합니다. 가장 강한 불은 전쟁 때 집과 마을과 가축과 사람을 모조리 태우는 충화이지요. 제가 왜 석가모니가 진정한 천하대업을 이룬 분인지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명림원지는 보리수 열매로 만든 염주를 꺼내 굴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아시타 선인이 와서 정반왕에게 예언을 했습니다. ‘이 아이는 세속에 있으면 전 세계를 정복해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고 출가하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가 될 것이오.’ 당연히 전륜성왕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이 출가하지 못하도록 궁궐 담장을 높이 쌓고 온갖 세상의 향락을 제공했지만 석가는 결국 출가를 선택했습니다. 출가를 선택해 보리수나무 아래서 성도해 석가가 부처가 된 순간, 마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전륜성왕에 등극한 것입니다.”
명림원지가 말을 하고 있을 때 옥졸이 와서 명림원지를 불러내었다. 명림원지는 옥졸과 얘기한 뒤 방으로 돌아와 공지하듯 크게 말했다.
“지금 바깥엔 장마가 그쳐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쨍쨍 하답니다. 이대로 가면 내일 사형집행이 있을 거라는 옥졸의 전언이오. 우리의 옥중 동료가 하루라도 먼저 목숨을 잃으면 되겠소? 모두 함께 전륜성왕 석가모니 부처님과 비를 내리고 파도를 잠재우는 관세음보살님께 빌어야겠소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명림원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염불을 외자 좌평 수수보리와 죄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염불했다. 하지왕도 무릎을 꿇고 염불을 하자 유학자인 우사와 전통 무신교도인 모추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놀랐다. 아무리 명림원지가 옥중 방장이라지만 거칠고 난폭한 옥중 죄수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동굴 뇌옥을 가득 메운 염불이 끝나자 명림원지가 하지왕에게 편안한 어조로 말했다.
“마마, 염려 놓으십시오. 우리 모두 정성을 다해 일심으로 부처님께 기원했으니 오늘 저녁 유시부터 다시 비가 내리고 자시가 지나면 폭우가 쏟아질 것입니다. 그럼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하지왕은 죄수들이 고마웠다. 비가 계속 내려 노역을 나가지 못하면 힘들 텐데 죄수들마저 셋의 집행을 걱정하며 일심으로 비가 오기를 기원해주었기 때문이다.
명림원지의 말을 계속 이어졌다.
“절에 모신 석가모니 불상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것은 석가가 바로 전륜성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천하에 흩어져 있는 불자들은 그들을 통치하는 국가의 왕보다 석가모니를 최고의 전륜성왕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마마, 왕으로 계실 때 얼마나 많은 백성을 만나 말씀하셨습니까?”명림원지의 물음에 하지왕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어리고 미거해 대부분 섭정인 어머니께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겠지요. 다른 왕들도 직접 백성을 만나 말하는 것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전륜성왕은 매일매시 그의 백성들에게 나타나셔서 법어를 내립니다. 방금 죄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염불을 올렸듯이 석가만큼 광범위한 땅에서 자기의 백성을 하나로 지배하는 통치자는 없습니다. 하여 제가 천하일통의 대업을 이룬 분은 석가모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우사와 모추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들은 명림원지의 말잔치에 초대받아 진수성찬을 받아먹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면 장차 하지대왕께서 어떻게 대업, 중업, 소업을 이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명림원지는 큰 것부터 이야기하고 중간 것 그리고 세부적인 작은 것을 말했다. 그의 화법은 마치 칼로 하나의 큰 떡을 반으로 자르고 그것을 다시 반으로 잘라 잘게 썰어나가는 과정과 같았다.
“하지왕께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것은 불교로 사국과 왜를 통합하고 중국과 천축, 그 너머의 나라까지 영향력을 미쳐 천하일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행히 가야는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불교로 건국이념을 삼았으며 나라의 이름도 불국토인 ‘가야’로 정했습니다. 가야불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북방 대승불교와 달리 천축에서 바로 들어온 정통 남방불교이고 사국중 가장 빨리 전래되었기 때문에 가야는 불교로 세계를 통일하는 동방의 부다가야가 되고 대왕께서는 천축의 아육왕처럼 또 한 분의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가야불교 대업론입니다.”
하지왕은 명림원지 특유의 과장법을 이해하더라도 자신이 전륜성왕이 된다는 것은 너무 나갔다 싶었다. 하지만 명림원지의 가야불교 대업론은 침체된 가야불교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데 의의가 있었다.
“다음은 사국일통의 중업입니다. 먼저 가야는 칠포를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를 끼고 있는 해상강국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동북아 최고의 생산력과 기술을 자랑하는 철 강국입니다. 마지막으로 낙동강을 낀 넓은 가야 평야의 농업 생산력을 가진 농업강국입니다. 이 셋을 기반으로 외교와 전쟁을 통해 사국일통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야는 먼저 약한 왜를 쳐야 합니다. 왜는 아직 불법의 광명을 받지 못한 미개한 나라로 쉽게 신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국세가 기울어가는 백제를 쳐서 먹은 다음, 고구려로부터 신라를 떼어내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 사국일통의 중업입니다.”
명림원지는 마지막 소업에 대해 말했다.
“소업은 우선 22가야를 일통하여 가야연맹체를 국가체제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대가야의 하지대왕께서는 원교근공 정책으로 열두 가야를 되찾아야 합니다. 중앙정부는 가야불교를 국교로 삼아 왕권을 강화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관료제를 시행하며, 중앙상비군을 두고 분산되어 있는 국가방위를 일원화해야 합니다. 가야 소국들을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5부에 수렴시키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왕권이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소업입니다.”
우사가 정중하게 말했다.
“지금 하지대왕께선 보위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린 뇌옥에 갇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소업, 중업, 대업을 논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뇌옥을 탈출해 박지를 물리치고 대가야를 찾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쉬운 당면과제입니다. 그건 우사 선생과 모추뿐만 아니라 죄수들도 알 수 있는 잔업에 불과합니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업들을 성취할 수 있는 결정적 사건은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고 금관가야와 임나왜소를 몰락시킨 여가전쟁(400년)입니다. 이 전쟁이 있었기에 대가야는 가야연맹체의 맹주국으로 우뚝 서 사국을 이끌 중심이 된 것입니다. 영명하신 하지대왕께선 소업, 중업, 대업을 이루시고 마침내 태왕의 자리에 오르실 것입니다.”
말을 마친 명림원지는 하지왕에게 큰 절을 올렸다.
“이 절은 미래의 전륜성왕 하지태왕께 올리는 절입니다.”
하지왕은 한 사람의 몽상가로부터 절을 받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명림원지의 옥중유세를 통해서 앞으로 대가야가 나아갈 대강이 보였기 때문이다. 왕으로 태어났다면 원대한 대업을 품고 행동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지왕도 명림원지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연작이 어찌 대붕의 마음을 알겠소. 지금부터 와륵선생을 나의 군사로 삼겠소. 암우한 나를 잘 이끌어 주시오. 우사와 모추, 군사에게 절을 올리시오.”
태사령 우사와 호위무사 모추도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절을 올렸다.
명림원지가 말했다.
“저를 대가야의 군사로 삼으셨으니 명림 가문의 광영입니다. 그럼, 군사로서 첫 일을 파옥으로 시작하지요.”
모추는 이제야 명림원지가 몽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것을 반기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파옥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옥문을 깨고 여기서 나가는 것입니까?”
“그렇소. 내일 하루만 더 비가 내리고 모레 날이 갤 때면 석공 스님과 함께 검바람재 녹림부대가 이곳에 도착해 사물성을 칠 것입니다. 성의 병사가 내응하여 성문과 옥문을 열고 정변을 일으킬 것입니다. 소아주 대신 소아장의 아들 소아성을 새로운 한기로 옹립할 것입니다. 절두터 사형 집행장에서 세 분 대신 소아주의 목이 베어져 장대에 걸릴 것입니다.”
명림원지의 날씨 예측은 귀신처럼 맞았다. 오후부터 갠 날씨가 자정부터 비가 내리더니 하루를 더 폭우가 내리고 다음날 진시부터 하늘은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개었다.
하지왕이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와륵선생은 귀신의 조화를 부리는 것 같소. 선생의 말대로 비가 오고 그치고 하니 말입니다.”
“저는 제갈공명처럼 동남풍을 일으키진 못해도 일기의 변화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명림원지가 검은 대나무 지팡이를 보이며 말했다.
“이것이 저의 오죽장입니다. 여기 마디사이에 낸 칼자국이 지난 수감 오 년의 기록입니다. 달력의 기록과 공기와 벽의 눅눅함, 온도의 변화, 채광의 명암, 벌레들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저만의 기호로 칼자국을 내었지요. 이제 밖으로 나가 하늘과 별, 자연을 보면 더욱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빈틈이 없으시군요.”
“오늘 세 분은 마음을 다잡으셔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망나니와 옥졸이 올 것입니다. 이들을 따라 절두터로 가면 사람들이 구경하려 몰려 있고 소아주가 나와 세 분의 목을 베려고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염불을 듣고 싶다고 하십시오. 왜냐하면 검바람재 녹림들이 비 때문에 오는 걸음이 늦어져 지체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석공스님이 나서 염불이 끝나는 것을 신호로 군중 속에 있던 검바람재의 녹림부대가 사물병사의 벽을 뚫고 소아주를 잡으면 소아주의 장조카인 소아성이 거느리는 사병집단이 호응해 사물병사들을 장악해 새로운 한기로 옹립될 것입니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명림원지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하였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비가 닷새가 와야 이 일이 완벽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틀이 모자라 중간에 변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변수는 녹림부대의 당도 시간과 미인계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의 사물군대의 영장 무가입니다. 무가는 소아주의 심복으로 한기부인의 친오빠인데 무력이 출중하고 강직해 매수나 뇌물로는 불가능하고 오로지 하나 호걸의 약점인 미인계로만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제 좌평 수수보리가 여자를 무가에게 보냈는데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망나니와 옥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군요.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제가 마마께 ‘저승길은 굽이굽이 멀고 황천은 큰 강이라는데 쉽게 건너겠습니까. 어느 모롱이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정변이 성공하고 난 뒤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명림원지의 말이 끝나자 저벅저벽 발소리가 들리고 옥문이 덜컹 열리더니 망나니를 대동한 형리들이 들어왔다.
“그동안 소아주 한기님의 자비로 사형집행이 연기되었다. 오늘 사물국 한기님의 명에 의해 대역죄인 하지, 우사, 모추는 수급이 베어져 고향 대가야로 돌아갈 것이다. 머리로나마 고향으로 돌려보내는지는 것은 한기님의 은전이다. 대역죄인들은 나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