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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7.01 11:02
무화과
/박 상 호
꽃이 피어 열매를 맺지만
피지 않고 열매를 맺는 신비함이여
열매 속에 화사한 꽃을 감추고 있으매
그대는 꽃을 보이는 게
그대의 속살을 보이는 것처럼 부끄러웠나보다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을 느껴 그 잎으로 치부를 가렸다는
에덴의 전설을 간직한 신묘한 그대여
가슴에 피멍이 들어
응어리진 한과 비애로
밖으로 화사해 꽃 피울 수 없었나보다
열매 속에 그 비애를 숨겼구나
열매 속에 그 한을 피웠구나.
-《해운대문학》2018.12-
*박상호(부산,해운대); 2006년 계간《열린시학》으로 등단, 한국바다문학상 등 수상, 부산시인협회 부이사장, 시집 『동백섬 인어공주』, 『내 영혼을 흔드는 그대여』 ,『피안의 도정』 등 3권, 현재 ㈜ 신태양건설 회장
박시인은 사물에서 느낀 감정을 절제하기보다 드러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심지어 시집 제목에서도 『내 영혼을 흔드는 그대여』에서처럼 호격조사 ‘그대여’를 노출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어조는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칫하면 시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의 시적 상상력에 의한 시의 이해보다 시인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극복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점의 극복 방법은 제재 즉 무화과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우리는 보통 무화과는 이름 그대로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가 달리는 과일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박 시인은 첫째 연에서 무화과 열매 속에 씨앗이 꽃무늬를 하고 있는 점을 착안하여 몸 속에 꽃을 감추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무화과에다 인격을 부여하여 감추는 행위의 의미를 부끄러움이라 규정한다. 둘째 연의 경우는 구약성경 창세기 3장 7절을 근거로 한 시적 표현이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는 인류의 원죄를 짓게 된다. 그래서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로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처럼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 이렇게 무화과는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과일나무이다. 달리 말하면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조상에게 처음으로 발견된 과일나무이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비로운 나무이다. 둘째 연 역시 등장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마지막 셋째 연에서는 부끄러움의 정서를 한과 비애로 상승시켜 꽃을 피우지 못함을 비애와 한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상과 같이 박 시인은 무화과 자체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무화나무 잎까지 차용하여 무화과를 인격화 시켜 한과 비애를 간직한 과일로 보고 있다. 이상의 장점에다 감정의 노출을 약간 자제한다면 박 시인의 작품들은 더욱 빛날 게 될 것이다.(양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