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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시 감상

마음 읽기 /낙양(洛陽)과 모란

작성일 : 2021.06.29 06:23

 

낙양(洛陽)과 모란

 

/박 홍 배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꽉 짜여진 생활 속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이 아니라도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다는 객창감은 사람의 마음을 항상 설레게 한다. 그래서인지 필자도 더러 여행을 다니곤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가 조금만 생겨도 외국 여행을 시도해 본다. 특히 몽골은 필자와 여러모로 궁합이 맞아서인지 근 열 번이나 다녀오기도 했다. 그중 몇 번은 우리 문인들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는데 지금도 여름이 가까이 오면 몽골 여행 계획이 없느냐고 묻는 문인들이 간혹 있다.

그 외국 여행 중 필자의 인상에 강하게 남아 있는 여행을 꼽으라면 몇 군데 중에서 중국 낙양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10여 년 전인가, 부산의 한 예고 교장으로 근무할 때다. 당시 우리 학교 무용부는 전국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중국 낙양에서 개최되는 세계문화축전의 공연 부분에 우리 학교 무용부팀이 초청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공연팀 인솔자로 일주일간 낙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팀 실무 책임자인 무용부장의 제안으로 비싼 항공료 들여서 낙양 가까이 바로 가는 것보다 여행의 맛도 느낄 겸 상해까지 비행기를 이용하고 상해에서는 완행열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상해의 푸동지구를 구경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상해에서 낙양까지 17시간의 완행열차는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침대칸에다 마음껏 떠들어대는 중국 여행객들의 밤잠 모르는 소란, 그리고 무슨 냄새인지도 모르는 악취에 학생들 앞에서 점잔 빼던 교장의 남모르는 고충은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겨우 낙양에 도착했다. 아주 흐린 날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흐린 게 아니라 짙은 스모그 때문에 매일 그렇단다. 설마 했는데 일주일 뒤 오는 날까지 태양과 맑은 하늘을 보지 못했으니 그 스모그는 그들 생활 중 일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 자동차는 왜 그렇게 막히던지. 시내에서 차가 가는 곳은 항상 다른 차와 앞뒤 붙어서 갈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앞뒤 간격이 조금만 벌어져도 그 새 다른 차가 끼어드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 끼어드는 광경을 본 가이드는 우리에게 이런 재미있는 농담을 건내기도 했다.

낙양에서는 드리대학교를 졸업하지 않고는 시내에서 운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끼어들어서 난 접촉 사고는 낙양에서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재미있다고 웃기도 했지만 왠지 씁쓸하게 느낀 낙양의 풍속도였다.

공연이 없는 날 학생들의 연습 시간에 필자는 주로 혼자서 가까운 곳을 관광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가이드의 안내로 일행들과 함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낙양은 B.C. 771년 동주(東周)의 수도가 된 이래로 9개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고도(古都)이다. 장안(지금의 시안)을 수도로 삼았던 당나라 때도 동도(東都) 혹은 동경(東京)이라 불리며 수도 못지않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낙양이 중국 역사에서 꾸준히 중심지 역할을 한 것은 그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북쪽은 타이항산과 황허, 서남쪽은 푸뉴 산맥, 서쪽은 싼먼 협곡에 둘러싸인 분지 형태로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리적 강점이 나라에 큰 전쟁이 발생했을 땐 오히려 백성들에게 큰 화로 돌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군대에 징발되거나 강제 이주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 세기 동안 번영을 누리던 낙양은 원나라가 베이징을 수도로 삼으면서부터 지방 도시로 전락하여 역사의 중심에서 완전히 멀어진다. 현재는 정저우에 이어 허난성 제2의 공업 도시로 성장,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중화학 공업이 발달했다.

다행이라면 도시 곳곳에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관우의 목이 묻혀 있는 관림을 비롯해, 중국 최초의 불교 사원인 백마사, 중국 석각 예술의 결정판으로 꼽히는 용문 석굴이 흥미롭다. 용문 석굴은 우리의 경주 석굴암이 수백 개 모여 있는 형태로 그 규모에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람하던 우리 일행들 모두가 한마디씩 소감을 말하는데 대개가 석굴암과 비교된 우리나라 사람으로선 기분 좋을 리 없는 평들이었다. 소림사 또한 주요 관광 명소였다. 절의 규모도 규모이지만 중국 최고의 무예 학교로서 수련을 받는 학생이 근 5세 아동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5만여 명이나 된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입이 쩍 벌어지기도 했다. 밤낮없이 수련만 하는 그들은 체육계에까지 진출해 중국의 세계올림픽 메달 획득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낙양성 십 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김세레나 가수가 즐겨 부르던 성주풀이에 낙양이 왜 나오는지를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러자 가이드는 직접 보여주겠다고 차를 몰아 북쪽 10리쯤 떨어진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정말 그곳은 무덤이 많기도 했다. 과거 모두 왕이나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설명에 의하면 그곳은 옛날부터 풍수가 좋기로 유명해서 중국 각 지방의 고관대작들은 그곳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풍수가 좋은 결정적 이유는 그곳이 모두 황토로 되어 있어 물빠짐이 완벽한 지대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과거에는 그곳에 토굴을 지어 놓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조그마한 토굴이 더러 보이기도 했다.

 

6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런데 낙양의 진수가 바로 모란이다. 마침 필자가 낙양을 방문했을 때도 6월이었는데 어디서나 많은 모란을 볼 수 있었다. 낙양에 모란이 많다는 것은 대부분 중국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계절에 낙양을 여행하려고 하면 중국에서는 봄에 가라고 말린다는 것이다. 특히 낙양과 모란의 관계는 재미있는 전설로 전해진다.

당 태종의 후궁 무미(武媚), 태종이 죽고 아들이 고종에 등극하자 황후가 되고 결국엔 두 아들까지 살해, 황제 자리를 꿰찬 무측천이다. 무소불위 무측천이 눈 내린 한겨울 정원 산책을 하다 설경이 단조로웠던지 꽃이 만발한 정원을 보고 싶다고 뇌까린다. 따르던 신하가 내일 아침 모든 꽃이 만발하도록 폐하께서 성지를 내리시지요.”라고 아첨을 떨었던 것이다. 그러자 무측천은 얼토당토 않는 오언시(五言詩)로 된 조서를 내린다.

 

明朝遊上苑 (내일 아침 정원으로 산책 갈 테니)

火急報春知 (서둘러 봄에게 알리도록 하라)

花須連夜發 (꽃들은 밤새워서라도 다 피어 있으라)

莫待曉風吹 (새벽바람 불어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무측천의 조서를 본 꽃의 요정들은 화들짝 놀라 밤새워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침에 정원에 나온 황제는 기분이 좋아 입이 째질 듯 미소를 지으며 기고만장한다. 그런데 오만에 취한 황제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한 꽃나무가 싸가지 없게 꽃을 피우지 않고 있어서였다. 모란이었다. 화가 난 황제가 모란을 모두 불태우라고 명하고도 분이 안 풀려 장안의 모란은 모조리 뽑아 낙양에 내다 버리라고 한다. 그렇게 쫓겨난 모란은 낙양에서 번성하여 낙양홍(洛陽紅)이라 일컬어지고 부귀의 상징이며 약용으로 애지중지 사랑받는 꽃이 된다. 신라의 설총이 꽃들의 왕이라고 화왕계에 기록한 꽃 중의 꽃이 바로 모란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사랑받던 모란은 신라 진평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식물이 언제 수입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모란은 삼국사기삼국유사에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선덕여왕 1(632)에 모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져 온다.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덕만(선덕여왕의 공주 시절 아명)에게 보인 적이 있다. 덕만은 이 꽃은 곱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은 웃으면서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기에 이를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로서 국색(國色)을 갖추고 있으면 남자가 따르는 법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 꽃이 무척 고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씨앗을 심었는데, 과연 그녀가 말한 것과 같았다. 그녀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은 이와 같았다고 사기는 전한다.

모란은 목단(牧丹목작약(木芍藥부귀화(富貴花)라고도 하는데, 모란이라는 이름은 꽃의 빛깔이 붉기 때문에 란[]이라 하였고, 씨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오는 모습이 수컷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모[]자를 붙였다고 한다.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강진 김영랑의 생가가 생각난다. 그 넓은 뜰 곳곳에 큼지막하게 피어있던 모란들은 시기로 보면 지금쯤 막 지고 있을 것이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외국 여행은 힘들 것 같다. 대신에 남도 여행이나 하면서 저 강진에 들러 다산초당도 둘러보고 육중하고 촌스런 자태로 이 집의 운치를 다 망쳐놓았다고 유홍준이 말한 김영랑 생가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시비도 보고 싶다.<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