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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6.23 12:46
젊은 그들과 스트리밍라이프
/윤일현
부동산과 주식, 비트코인 관련 기사가 없는 날이 없다. 신문을 읽다가 문득 조선 중기의 문신 면앙정 송순(1493~1583)의 시를 떠올려 본다. “십 년을 경영(經營)해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淸風) 한 칸 맡겨두고/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강산은 들일 데가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결구에 오래 눈이 머문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펼치고 예전에 줄 친 부분을 다시 읽어 본다. “갈라진 벽 틈에 핀 꽃이여/나는 너를 그 틈에서 뽑아내어, 지금 뿌리째로 손안에 들고 있다”(테니슨) “눈여겨 살펴보니/울타리 곁에 냉이꽃이 피어 있는 것이 보이누나!”(바쇼)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꽃을 꺾어 손에 쥐어야 만족감을 얻게 되는 ‘삶의 소유 양식’을 노래했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 바쇼는 꽃을 바라보면서 그 꽃과 자신을 동등한 생명체로 간주하며 꽃과 일체화를 소망하는 ‘삶의 존재 양식’을 보여준다. 송순이나 바쇼가 중시한 ‘존재 양식’은 오늘의 ‘스트리밍 라이프’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스트리밍’이란 인터넷에서 영상이나 음향·애니메이션 등의 파일을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다운로드 받아 재생하던 것을 다운로드 없이 실시간으로 재생해 주는 기법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전송되는 데이터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처리된다고 해서 ‘스트리밍(streaming)’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재생 시간을 단축하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용량 문제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데이터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재생되기 때문에 콘텐츠를 소유할 필요가 없고 내가 원할 때 접속해 소비하면 된다. ‘스트리밍 라이프’에서는 ‘소유’보다는 ‘접속’, ‘이용권’, ‘경험’ 등을 중시한다. 가전제품, 가구, 고급 가방, 자동차뿐만 아니라 의식주, 여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완전한 소유권을 가지는 과거의 ‘오너십 라이프’에서 이제는 일정 기간 ‘사용권’만을 가지는 ‘스트리밍 라이프’로 바뀌고 있다. 클래식 애호가도 LP판, 카세트테이프, CD 등으로 벽장을 가득 채울 필요가 없다.
자신의 욕망을 원하는 대로 충족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소유를 선호할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스트리밍 라이프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콘텐츠란 경험하고 흘려보내면 되지 저장할 필요가 없다. 저장 공간도 없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2020’에서는 “욕망은 부풀었는데 충족할 자원이 부족하니 젊은 세대가 정주하지 않고 부유하는 노마드 라이프를 살 수밖에 없다”라고 스트리밍 라이프의 확산 배경을 설명한다. 기술 발전이 상품·서비스·공간·경험 등을 소유하는 삶에서 잠시 머물며 이용하고는 떠나야 하는 ‘스트리밍하는 삶’으로의 이행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에서 시작된 스트리밍은 이제 삶의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스트리밍 라이프는 삶의 상당 부분에서 대세가 될 것이다. 소유하지 않고 스트리밍으로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물학적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소유에 대한 욕망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어린 시절 풍요를 경험하며 성장한 젊은 세대가 삶의 질은 떨어뜨리지는 못하고 소유는 할 수 없으니, 비싼 이용료를 내고 스트리밍 라이프를 선택한다. 문제는 모든 것을 스트리밍 방식으로 살고 나면 나중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력이 있는 젊은 날은 비싼 이용료를 주고 유목민처럼 살 수 있겠지만, 노년이나 은퇴 후에는 계속 그렇게 살기가 어렵다. 2030 세대도 생의 후반기엔 최소한 볏짚이나 밀짚 지붕의 ‘초려(草廬)’는 있어야 한다. 2030 세대가 왜 기성세대와 정치권에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겠는가. 그들 자신은 집과 필요한 것들을 다 소유하고 있으면서 젊은이에게는 임대주택도 좋다고 말하며, 노후에도 유목민으로 떠돌 가능성이 높은 젊은 세대의 불안감은 헤아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2030 세대는 아끼며 모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소유할 수 없고, 집을 살 수도 없으니 잠시 빌려서 향유하고 경험하는 데 돈을 쓸 수밖에 없다. 형편이 이러하니 결혼은 생각할 수 없고, 출산은 꿈도 꿀 수 없다. 기성세대와 정치권은 젊은이들의 팍팍한 삶을 직시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대구시협회장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