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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6.10 02:31
안개 속에서 /강 위 석
오십천五十川 강변에서 만난 안개
길 더듬는 내 눈썹에
이슬 꽃으로 피었다
안개도 풍경인 줄 알았는데
안개는 단단한 고요다
두 손으로 밀쳐도 꿈쩍 않는다
짐작 하나로 수만리
목숨 걸고 닿는 모천母川
부화를 돌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연어 부부
부활을 꿈꾸는 맨살도 은근히 덮어주는 안개
천년의 침묵이다
말똥구리 보다 못한 사지로 더듬거린 세월
거푸집 같은 내 얼룩까지 덮어주는 안개
용서할 줄 아는 흰 두루마기다
사방이 뿌옇다고 탓할 일도 아니다
슬그머니 벗기여 흔적도 없이
적막 속으로 몸을 감춘 안개
이슬 꽃이 지면서
내 눈썹에서 범람하는 강물 소리가 들린다
-≪부산 크리스천문학≫26호 (2016년 하반기) 발표
*강위석(부산, 사상구); 시인, 월간 모던포엠 신인상 등단, 부산시인협회 이사, 부산문인협회, 부산크리스천문인협회 회원, 그림나무 회원,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동해안 쪽으로 흐르고 있는 오십천五十川 이라는 이름의 강들은 연어들이 회귀하는 곳으로 이름 나 있다. 이 작품은 시인이 이곳을 여행하면서 쓴 일종의 여행시이다. 여행시는 본격적인 시가 아니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강 시인의 이 작품은 그렇지가 않다. 말하자면, 경우의 시(occasional poem)가 아니라 본격적인 시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연에서는 오십천에서 만난 안개를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데 안개에 대한 은유의 보조관녑이 추상적인 ‘고요’인 점이 상식적이 아니다. 즉, 안개를 ‘단단한 고요’라는 것 자체가 참신하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안개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안개는 잡을 수 없는 존재이고 지극히 부드럽다. 그러나 시인은 단단한 것으로 사물화 시키고 있다. 둘째 연의 경우는 모천으로 돌아 와 부화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연어의 죽음이 형상화 되고 있다. 안개의 비정하면서도 죽음을 부활로 감싸는 이중적 모습을 천년의 침묵이라고 비유하고 있는 점 역시 긴장감이 느껴진다.
마지막 셋째 연에서 안개는 노시인 자신의 녹녹하지 않은 그 동안의 삶의 모습까지 덮는다고 표현하여 인생의 깊이까지 느껴진다. 특히 ‘용서할 줄 아는 흰 두루마기’라는 보조관념에서는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까지 느끼게 한다. 안개의 사라지는 모습을 ‘강물소리’로 청각화하는 솜씨까지 등장하여 강 시인의 나이에 비해 젊은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아마 이렇게 허무하면서도 비정한 안개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그의 신앙인 개신교의 ‘긍극적 관심’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측면에서 오십천의 안개를 통하여 사물에 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성찰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시인 것이다.<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