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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시 감상

마음읽기 /사는게 뭐라고2

작성일 : 2021.06.07 10:29

사는 게 뭐라고2  /박홍배

 

좋아하는 데 이유 따위 없다. 그저 좋은 것이다. 사노 요코 다운 말이다. 이 책의 해설을 쓴 사카이 준코 (기자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 책이 너무 많아등의 저서로 다수의 문예상을 받음)씨는 그간 한국 드라마 열풍의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확실히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사노 요코가 좋아하는 말인 화사함허구의 화사함에서 한류 열풍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노씨는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서 노인 문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녀는 커피숍에서 혼자 아침밥을 먹는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치과에 몇백만 엔이나 쏟아부었다는 어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장수도 부질없다. 삶의 질이 높아져봤자 쓸데없을 뿐이라며 이 시대 노인들의 현주소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생각을 말하기도 한다. 이 언급에 대해 사카이 준코는 이런 사고가 사노 요코 진실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사실 장수도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이다지도 설득력 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사노씨 말고 누가 있을까요.

장수도 부질없다이외에도,

성격을 병이다”,

나는 나와 먼저 절교하고 싶다”,

남자의 생식기쯤은 마음대로 쓰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이런 말들은 긍정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진실의 한가운데를 꿰뚫고 있기에 읽는 사람에게 쾌 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감정을 선사합니다. (사카이 준코, 앞의 글 중)

 

준코는 남자의 생식기쯤은 마음대로 쓰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다라고 써서 화장실에 붙이고 싶을 정도라고 말한다.

사노 요코는 이 책 곳곳에서 화사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도 젊은 시절의 이야기일 뿐 나이 들어서는 오히려 화사함이 구차스럽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마음만은 화사했지만 나도 모르게, 정말로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순이 넘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화사함 같은 건 거들떠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말한다. “이 나이가 되니 마음이 화사해지지 않아서 오히려 편하다. , 이젠 남자 따윈 딱 질색이다.” 화사함이 애인이라면 일상의 편안함은 오랜 친구와 비교될 수 있을까.

 

무엇을 깨닫건 간에 이제 일흔이라니 이미 늦었다.

나는 남자를 애인보다 친구로 삼기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남자 친구들이 무척 많아졌고, 점차 그들의 가족 모두와 교류하게 되었다.

너랑 안 자서 다행이야. 잤더라면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지 못했을 테니까.” “내 말이.” “잤으면 헤 어져야만 했을걸.” “우린 참 똑똑해.”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순 넘어서 이렇게 말하는 남자도 있 다. 정말이다. 약간은 거짓말일지도. (늙은이의 보고서)

 

그런데 사노씨는 재미있는 진실을 털어놓는다. 할멈보다 할아범은 그 화사함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철을 타고 둘러보면 젊고 예쁜 여자 앞에는 반드시 할아버지가 서 있다. 저도 모르게 이끌려가는 것이다. 젊은 여자가 자리를 양보하면 할아버지는 허둥지둥 애매하게 감사 인사를 한다. 그런 광경을 보면 사노씨는 마음 속으로 히죽대며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할머니는 젊은 미남한테 이끌려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신 가방을 고쳐 잡거나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앞에 선다. 앉기 위해서다. 화사한 마음보다는 실용을 택한다. 변태 할아범은 공인되어 있다. 하지만 변태 할멈은 실성한 사람이라 치부해버리는 사노 요코의 그 예리함에 고소를 금할 수 없다.

 

이 글 곳곳에는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돈과 목숨은 절대 아껴서 안 된다는 아버지는 여느 가정처럼 엄하고 때로는 마음 깊은 우리들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와 얽힌 에피소드 중 사노씨의 내면을 필자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긴 한 일화를 소개한다. 필자의 주관도 사족이라 사노씨의 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 본다.

어린 시절에 보낸 섣달 그믐 중 확실히 기억나는 날은 하루밖에 없다는 전제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녁때였다. 싯포쿠 요리 (중국 요리가 일본에 들어와 변형된 연회 요리의 일종)가 차려진 원탁 위에는 조림을 비롯한 각종 요리가 즐비했고, 한가운데는 커다란 소쿠리에 메밀국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쨌거나 자식이 넷이나 있는 집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부엌에 있었고 아버지는 붉으락푸르락하던 차였다. 섣달그믐에 어른들은 붉으락푸르락하고 아이들은 주뼛주뼛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원탁을 뒤집어엎었다. 상 위의 음식이 사방으로 떨어졌다. 상이 엎어지던 순간의 기억은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다다미 위에 흩뿌려진 당근이랑 잔멸치를 줍고 있었다. 음식을 어떻게 수습해서 다시 상을 차렸는지, 어떤 섣달그믐 저녁을 보냈는지 생각이 안 난다.

다만 소동이 일어난 다음 희미하게 웃음 짓던 아버지 모습만 기억난다.

아버지는 평소에 언짢아할 때는 많았지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내 머릿속 아버지의 웃는 얼굴 가운데 그날의 엷은 웃음처럼 선명한 모습은 없다. 여하튼 텔레비전이 없었던 우리 집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눈 돌릴 데가 없었다. 평상시 아버지는 자식들의 잡담을 금했고, 식사시간에는 본인이 혼자서 설교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때는 설교할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묵묵히 흩어진 메밀국수를 먹었다. 내 인생 가운데 가장 비참한 식사였다.

옹색한 연립주택이어서, 나와 남동생은 식사용 원탁을 치우고 나서 생간 다다미 네 장 반 남짓한 공간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설날 아침 눈을 뜨자 천장이 보였다.

천장에 메밀국수가 두세 가닥 달라붙어 늘어져 있었다. 어린애는 솔직하다. 나는 차마 소리 내어 웃지는 못했지만 마음껏 웃고 싶었다.

그날 이후 섣달그믐이 돌아올 때마다 천장의 메밀국수가 생각나서 웃음이 터졌다. 이따금씩 바닥을 구르며 웃고 싶어진다.

어린애였던 나는 그때, 가장 비참한 것 속에 익살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메밀국수 두세 가닥은 어떻게 천장까지 날아간 걸까?’

비교적 길게 이 글을 인용한 것은 이 에피소드가 보여준 스타일과 작가의 사고가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자에게 아버지와 가족 간에 존재했던 여러 상황들 중 이런 분위기가 많이 있었다는 느낌도 이 에피소드에 특히 감동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