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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1.01 01:50 수정일 : 2024.01.01 01:53
2-12. 나를 바꾸려면
/양선규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혼창통(魂創通)』(이지훈)이라는 자기계발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본전산’의 행동지침입니다. 저도 제 인생에서 이런저런 ‘혁신(革新)’의 요구가 있을 때 늘 먼저 실행한 것이 “즉시 한다”였습니다. 그것 하나로 생존 능력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몸 쪽에서 저항이 많이 왔습니다. “나중에 하자”, “좀 편하게 살자”라는 요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고비가 있는 법, 몸의 관행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습니다. 제일 먼저 공부 시간을 늘렸습니다. 혼자서 한 시간 채우기 어렵던 것을 그날 당장 세 시간으로 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변함없이 유지해서 일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두어 달 만에 성적이 크게 올랐습니다. 중학생 때 일입니다.
그때 그런 각성과 실천이 없었다면 지금쯤 저는 좀 한심할 것 같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큰 인정을 못 받고 있을 것 같습니다. 여타의 사회적 인정은 아예 언감생심이고요. 어릴 때 제 별명이 ‘천하태평’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쟤는 왜 저렇게 천하태평인지 모르겠네...”,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저를 보고 모두 그렇게 혀를 찼습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6년 동안 단 한 번도 숙제를 해 간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다가 중학생 때 그렇게 한 번 크게 바뀌고 그 뒤로도 틈틈이 혁신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언젠가 혁신 교과서, 즉 ‘나를 바꾸는 책’ 출간에 한 번 관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로 좋은 외국책이 있어서 공역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같은 직장에 있는 한 분이 책을 구해서(원저자의 양해를 구하고) 초벌 번역은 했는데 출판사 쪽에서 그 번역으로는 곤란하니 전문가를 붙여서 새로 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할 만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여의치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섰습니다. 저는 영어 전공자는 아니지만 그 책에 제가 해본 것들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기꺼이 공역자로 나설 용기를 냈습니다. 그런 책들은 ‘해 본 사람과 안 해 본 사람’의 차이가 명확히 나는 내용을 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책 역시 ‘해 본 사람’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 표현도 반어적인 부분이 많아서(읽는 재미와 반전의 묘를 살리려고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자칫하면 정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도 다분했습니다. 어려웠지만 재미있게 번역에 참여했습니다.
자기계발서가 성공하려면(많이 팔리려면), “이 책만 읽으면 나는 바뀐다”라는 헛된 환상을 확실히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감언이설은 결국 책을 악마의 전령으로 만드는 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자 서문에서 그 부분을 꼬집었습니다. “생각만으로 되는 건 없다. 아는 것과 되는 것은 전혀 별개다. 글자를 믿지 마라”, 그렇게 썼습니다. 그랬더니 그 내용을 역자 후기로 돌리고 책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대신 서문을 삼겠다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의 인세 약속도 거절했습니다. 번역자에게 총 4% 인세를 준다는데 그 책을 처음 가져온 분에게 “나는 별로 한 일이 없으니 인세는 받지 않겠다”라고 했습니다. 너무 적은 번역료라 한 사람이 다 받아도 수고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없는 시간을 쪼개서 힘든 공역에 참여한 것은, 제가 저를 바꾼 과정이 거기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였습니다. 그 책도 “즉시 한다”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거든요. 돌이켜 보면 자기계발서 출간에 참여했던 일은 보상은 없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세 부분은 조금 후회도 됩니다. 몇 푼 되지 않는 돈이지만, 1%라도 받아 챙길 걸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다행히 많이 안 팔리긴 했지만(지금은 절판이 되었다고 인터넷 서점에서 알려줍니다) 만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큰 손해가 될 뻔했거든요. 별것 없는 인생인데 너무 까칠했었습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