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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5.31 09:40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의 <사는게 뭐라고>, <죽는게 뭐라고>-
/박홍배
사노 요코, 참 멋진 분이다. 요쿄 씨의 책을 읽으면서 그냥 드는 생각, 진짜 멋진 분, 이 말이 우선 떠오른다. 요코는 1938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많은 그림책을 출판하고 동화책과 산문집을 내기도 했다. 2003년에는 학문, 예술, 스포츠 분야에서 공을 세운 이에게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상인 시주호쇼를 받았다. 그리고 2010년 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요쿄가 세상을 떠나기 오래전부터 자신이 암 환자임을 알았고, 그 암과 함께해온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 멋진 글로 남긴 것이다. <사는게 뭐라고>, <죽는게 뭐라고>.
사는게 뭐라고
한마디로 한다면 사는 거 별거 아니라는 거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삶에다 지나친 의미부여와 가치부여를 함으로써 우리 삶을 스스로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사노 요코는 일상의 우리와는 좀 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섣달그믐에 쓸쓸해 보이기 싫어서 비디오도 못 빌리는 사람, 편집자에게 독설을 퍼붓고 금방 자책하 는 사람, 일하는 건 딱 질색이라면서 영원히 읽힐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들어낸 사람, 암 수술 직후 에도 매일 담배를 피웠던 사람, 시한부 선고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재규어를 산 사람, 그래서인지 자신의 죽음에도 초연했던 사람, 그럼에도 어려서 죽은 남동생을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 (옮긴이의 말 〈불쾌하면서 유쾌하고, 짠하면서 박력있는 날들의 기록〉중)
이 책의 번역자는 사노 요코를 일러 이처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층적인 매력을 가진 작가라 평한다. 사노 요코의 삶이나 글에서 필자에게 가장 강력하게 다가온 메시지는 심플한 진실, 익살이 살아 있는 진실이다. 그녀의 삶은 구질구질하지 않다. 모든 것을 간단하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처리한다. 그렇지만 그 간단함 속에는 삶의 심오한 깊이뿐만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도 함께 견지하고 있다. 거기다 익살은 그녀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워낙 평범하고 간단한 일상의 일들이라 글로써 표현되기에는 뭔가 미흡하다는 느낌의 상황도 사노 요코의 문장과 만나면 은근한 미소가 지어진다.
‘눈을 뜨자 8시 반이었다. 침대에서 커튼을 발로 열어봤더니 날씨가 엄청나게 화창했다. 날씨가 맑아서 기분이 살짝 좋아졌는데, 그렇다고 벌떡 일어날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귀찮았다. 화장실까지 갈 바에야 참는 게 나아서 늘어져 있었다.’
커튼을 발로 열어봤다거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거나, 졸졸졸 나오는 오줌이 한 번에 어느 정도 나오는지 재보고 싶다는 등 혼자서도 유치하다 느끼는 일상의 감정들을 사노 요코는 거리낌 없이 토해낸다. 얌전한 동생이 아침 식사시간에 집에 왔다. “아침은 빵인데 괜찮아?” 하고 묻자 “아, 헤헤, 헤”하고 멋쩍게 웃으면서 단호하게, “나는 밥 아니면 안 되는데. 빵은 배가 안 차서”라고 대꾸한다. “된장국도 필요해?” “밥엔 된장국이지. 다른 건 필요 없어. 아무거나 괜찮아.” “반찬은?” “샐러드 같은 거 말고. 채소는 나물이면 돼.” “평소에는 뭘 먹는데?” “딱히 뭘 먹는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저기, 헤헤, 전갱이구이 정도야. 정말로 특별한 건 안 먹어.” “말린 전갱이 먹을 땐 무도 갈아서 곁들여?” “누나 그건 당연하잖아. 안 그래?” “그리고 또?” 누나와 동생의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낫토에다 양하로 얹은 고명, 쪽파가 아닌 대파가 필요했고, 다시마조림에다 김이 아닌 맛김까지, 그래서 누나는 결국 마트에 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사노 요코는 동생이 가고 난 뒤 동생에게 이런 판정을 내린다. ‘이 녀석은 심약한 인격자의 가면을 쓴 요지부동의 옹고집쟁이’, “원, 남의 집에 와서 저 선량함의 탈을 쓴 완고함은 뭐람.” 이런 혼자의 넋두리에 독자는 웃으면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서른여섯 살 먹은 남자가 배낭을 짊어지고 병문안을 왔다. 배낭에서 〈겨울연가〉 비디오 전편을 꺼내며 “아줌마를 위해 가져왔어”라고 말한다. 별 내키지는 않았지만 심심했던 차라 조금 보았다. 그러다 계속 본다. 다음 편, 그다음 편을 자기도 모르게 보고 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보았다. 몇 번이나 엉엉 울었다. TV 드라마 〈남자는 괴로워〉를 보면서도 울었지만 그때는 이런 심정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아닌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요코 씨의 혼은 정처 없이 헤매인다. 누군가가 심장을 옥죄는 듯이 울었다. 이때부터 사노 요코는 한국 드라마 극성 팬이 된다.
난생처음 DVD를 소유했다. 비디오와 DVD는 빌려 보는 거라고 여겨왔지만, 집에 항상 욘사마가 있 다는 안도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나는 침실 텔레비전에 연결할 DVD 플레이어를 사들여 눈을 뜨자마자 스위치를 켰고 자기 전에도 스위치를 켰다. 이런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도가 지나 치다고 해야 할지. 욘사마는 수십 종류의 머플러를 선보였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중)
이후 사노 요코는 한국 드라마 보는데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 욘사마 팬 주부들이 단체로 한국 나들이를 할 때 거기에 사노 요코도 끼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정말 대단하다. 필자도 그 뉴스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보다는 일본에도 다른 나라들처럼 조금은 유치한 아줌마들이 존재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노 요코가 거기에 있었다니. 유치한 아줌마는 가당찮은 말임을 인정한다. 사노 요코는 〈가을동화〉에 빠져들고 〈신귀공자〉, 〈호텔리아〉 DVD 전편을 구입해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2층으로 기어 올라가 침대에 쓰러진 다음 그 수상쩍은 DVD에 빠져든다.
왜 사노 요코가 한국 드라마의 매력에 빠져든 것일까? 다소 염세적이고 의외로 시니컬 했던, 그래서 그의 판단이나 결정에 남들이 쉽게 시비를 걸 수 없었던 고상한 할머니께서 한국 드라마라니! 그런데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예순여섯의 나를 이렇게나 행복하게 만드는 한국 드라마는 대체 무엇인가. 한국 드라마를 모른 채, 이 행복을 모른 채 죽었다면 나의 일생은, 아아, 그건 아마도 손해 본 일생이었으리라. 진심으로 고맙 다.
……
한국 드라마가 꾸며낸 이야기라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영화도 전부 만들어낸 이야기 다. 재미있고 훌륭한 웰메이드 영화도 산더미처럼 보았다. 보고 울었던 영화도 셀 수 없이 많다. 보 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치유되는 영화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어딘가 다르다. 이 행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스토리도 대부분 억지로 짜 맞춰서 개연성이 없다.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도 행복하 다. 엄청나게 행복하다. 잘난 사람들은 모두 이 현상을 분석하려 들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좋아하 는 데 이유 따위 없다. 그저 좋은 것이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중) <계속>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