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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수프/ 작고 외롭고 단단한 것들을 위하여 > 2-11. 마당 깊은 집

작성일 : 2023.12.25 01:48

2-11. 마당 깊은 집

/양선규

 

마당 깊은 집(김원일)6.25 당시의 애환이 진하게 담긴 성장소설입니다. 아버지는 사회운동을 하다 실종되고 어린 장남이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원망을 한 몸에 받으며 꿋꿋하게 커나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또 감동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설가는 공동의 기억을 발굴하는 탁월한 기록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마당 깊은 집이 드라마로도 상영이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 실제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을 때 뜻밖에도 작가는 그 정확한 장소를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고, 무엇보다도 그곳이, 어린 시잘 힘겹게 살던 곳이라 장소의 경험이 정서적인 층위로 전이될 만큼의 '움직이는 영혼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던 탓이었습니다. 거주 기간도 짧았을 것이고 기억의 주체인 어린 주인공의 삶이 너무 팍팍해서(주인공 길남이는 어린 시절을 건너뛰어야 했던 아이입니다) 그렇게 안팎을 드나든 기억의 총체성을 가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장소(에 대한 사랑)는 사라지고 고통의 기억만 남아 있는 것이지요. 궁여지책으로 제3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장소 한 곳을 지정하여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제가 자주 가는 식당의 옆집입니다) 마음이 개운치가 않습니다. 그 집은 그렇게 마당이 깊은 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의 성취와 감동을 깎아먹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집 입구에 매표소 비슷한 안내소까지 있어서 더 그렇습니다. '마당 깊은 집'은 전후에 가난하게 자란 저희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일종의 공동의 기억에 속합니다. 한 집에 서너 가구가 사는 것은 보통이고 일곱 여덟 가구가 사는 곳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마당 깊은 집은 우선 마당이 넓었습니다. 보통은 주인이 사는 본채와 세입자가 사는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입자들만 옹기종기 살았던 곳도 많았습니다. 그런 곳들은 주로 도시 주변에 많았습니다. 길고 깊은 마당에는 개가 한 마리 뛰어다니고 토끼만한 쥐들이 수시로 마당을 가로지르며 달리기 경주를 하고 비가 오면 하수구가 차고 넘치고 그렇지만 담 주변으로는 소박한 화단이 정겹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마지막 소원은 그런 마당이 있는 자그마한 땅집을 짓고 개와 고양이 한 마리씩 데리고 작은 화단이나 가꾸면서 느긋하게 사는 것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그 땅집을 2층으로 지어서 1층에는 작은 가게를 만들어서 직접 운영하거나 아니면 마음 맞는 젊은이()에게 창업 장소로 대여하고 저는 후견인 노릇이나 하면서 이층에서 이런 글이나 쓰며 느긋하게 살고 싶습니다. 후원에는 평상이나 하나 놓아두고 집에서 기르는 어린 생명들과 함께 때때로 양광(陽光)이나 즐기면서 빈둥빈둥, 시간을 모르고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물아일체,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며 천천히 살고 싶습니다. 비가 와도 좋습니다. 비가 오면 원초적인 본향(本鄕)의 흙내음을 튕겨 올리는 그 힘찬 빗방울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마당 깊은 집에 살던 어린 시절 그런 장면을 자주 봤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리 멀리 있는 꿈도 아닙니다. ‘가족에게 미움 받을 용기만 있으면 내일부터라도 당장 일을 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족과 '헤어질 결심'이 서질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살던 마당 깊은 집은 주인집은 따로 있고 세입자들만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골목길 아래로 한 뼘 정도 내려 앉아 있던, 가로로 길게 누운 초가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넓은 직사각형의 마당 끝자락에 한웅큼의 채송화 씨를 뿌리곤 했습니다. 가장자리에는 맨드라미를 심었고요. 가난에 온몸을 담그고 살던 그 시절에 종묘상에서 우정 꽃씨를 사서 뿌리던 서른 살 중반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그 나이를 훌쩍 넘긴 딸아이를 볼 때나 이제 그 나이 또래로 접어드는 며늘아기를 볼 때 한 번씩 그때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얼마 전 딸아이가 겨울을 맞이해 거실로 들인 화초들을 보면서 "역시 화초가 있어야 집 분위기가 사네요"라고 한 마디 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화초에 대해서 딸아이가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자기 나이와 같은 문주란이 얼마 전 비명횡사한 것(좁은 베란다에서 이불 빨래를 널다가 줄기를 상하게 했습니다. 지금 있는 문주란은 그 아이의 자손입니다)을 딸은 모르고 있습니다. 괜히 그 말을 꺼냈다가 부부싸움 할 것이 두려워서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마당이라는 말은 언제 소리내어 보아도 밝은 기운을 뿜어낸다. 길을 가다가 혼자서 조용히 입속말로 발음해보아도, 마당이 그리워서 크게 밖을 향해 외쳐보아도, 마당이라는 말 자체의 양성(陽性)은 늘 변함이 없다. 양성이라는 한자말은 매력적이다. 그 말 속엔 태양의 기운이라는 뜻이 내장돼 있다. 그러니까 일심(日心)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마당은 본디 밝은 기운이 넘치는 곳인데, 그 이름의 소리값에도 그런 기운, 양성(陽性)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머덩이나 무둥, 아니면 므등이나 미딩으로 소리내는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군요. 그런데, 저에게는 그런 밝은 설명과 따로 노는 마당 경험이 있습니다. 저의 유년기 기억 속에서의 마당은 이중적입니다. 채송화가 핀 밝은 공간과 쓸쓸하고 눅눅했던 공간으로 양분됩니다. 대문간에서 성큼 내려딛고 들어서야 했던, 예쁘지 않게 거무튀튀한 바탕색 흙을 지녔던 마당, 어른 팔뚝만한 쥐가 쏜살같이 가로지르던 마당, 수업 준비물을 살 돈을 얻지 못해 눈물자국을 지우지도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마당, 다섯인지 여섯인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세입자들의 온갖 시름과 걱정 소리를 서로 못 들은 척하던 마당,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철따라 피고지던 채송화와 맨드라미와 해바라기들의 향연, 그런 밝은 것과 쓸쓸한 것들이 모두 점철된 마당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마당을 그리워한다고 말했을 때 그 마당은 그런 쓸쓸하고 눅눅했던 유년기의 기억에 대한 어떤 반동형성까지 내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당은 밝기만 하다고 해서 마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의 근원이 튼실함에 있듯이, 마당의 환한 기운이 영속적으로 은은하게 살아나기 위해서는 뿌리인 아랫도리의 음적(陰的) 깊이와 중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이제 마당이라고 다시 발음해보자. 그러면 여러분도 나도, 마당의 자 맨 아래쪽에서 힘 있게 실체를 존재의 뿌리 쪽으로 끌어당기는 종성인 의 중력, 아니 위력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제 경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당이란 것이 원래 그런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쁨도 담아내고 슬픔도 묻어두는 장소였습니다. 발 디딜 땅 한 평도 없이 한 평생을 무사히 살아왔습니다. 피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디 낙향할 곳도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근교에 마당 깊은 집 하나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손자들 안아 키우고, 층간 소음에 대한 부담도 덜고(다행히 지금 아래층분들은 "아기가 있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에 -관리실에서 그렇게 전했답니다- 깊은 이해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마당에 채송화와 맨드라미도 잔뜩 키우면서 그렇게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