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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5.17 10:11
대가야제국의 부활(18)
제3부 하지왕과 가야제국(6)
김하기
석공스님과 하지왕, 우사와 모추는 아자방을 나와 대웅전에 모신 칠불부처에게 참배를 했다. 이들 가야인들은 말하지 않아도 칠불부처가 김수로왕의 일곱왕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허왕후와 그 아들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즉슨 이렇다. 가야국을 세운 김수로왕은 어찌된 영문인지 왕비 맞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금관가야의 씨족장인 구간은 회합을 마친 후 왕에게 나아갔다.
중신 아도간이 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하루빨리 좋은 배필을 골라 왕비로 모시옵소서.”
이 말은 아도간이 자신의 딸을 빨리 왕비로 맞으라는 속내이자 압박이었다.
김수로왕은 뭔가 확신에 찬 듯 말했다.
“경들의 뜻은 고맙소만 왕후를 맞이하는 일은 때가 있는 것이니 염려치 마시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신하들에게 배와 말을 준비하게 하고 ‘망산도’라는 바닷가에 나갔다.
일행들이 바다에 다다르니 갑자기 바다 서쪽에서 붉은 빛 돛단배가 망산도로 오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처녀가 김수로왕에게 곱게 반절을 하며 말했다.
“저는 이유타국의 공주인데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입니다. 상제로부터 가락국왕에게 가라는 명을 받고 이곳으로 와 용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반갑소. 나는 공주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왕은 공주를 예법으로 맞아 결혼했고, 왕후는 곰을 얻는 꿈을 꾸고는 태자 거등을 낳았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9명의 왕자를 더 낳아 모두 10명의 왕자를 두었다. 그 중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해 김해 김씨 왕조의 시조가 됐으며,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왕궁을 떠나 지리산 반야봉 아래 칠불사에 들어가 수행에 맹진해 모두 성불해 일곱 부처가 되었다. 김수로왕은 아들들이 성불한 곳에 대가람을 조성했는데 그곳이 바로 칠불사인 것이다.
일행은 석가모니불과 함께 목탱화로 모신 일곱 왕자불인 김왕광불, 김왕당불, 김왕상불, 김왕행불, 김왕향불, 김왕성불, 김왕공불에게 숙연하게 참배한 뒤 대웅전을 나왔다.
석공스님이 말했다.
“칠불상 말고도 이 일대는 김수로왕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있습니다. 수로왕이 머물렀다는 ‘범왕마을’, 수로왕이 도착했을 때 저자가 섰다 해서 ‘저자골’, 허왕후의 임시 궁궐이 있던 곳은 ‘천비마을’, 어두워질 때 왕후가 당도하여 어름어름했다는 ‘어름골’ 등이 있지요.”
우사가 한탄조로 말했다.
“저는 금관가야의 역사를 기술한 태사령이었습니다. 헌데 김수로왕이 큰 뜻으로 세운 가야가 고구려, 신라, 백제에 침공당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석공스님이 말했다.
“저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하지대왕을 뵈오니 바람 앞에 촛불같이 꺼져가던 가야에 새 희망이 보입니다. 부디 명림원지를 책사로 모시고 두 분은 마마를 잘 보필해 대가야를 수복하고 가야일통의 대업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하지왕이 스님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스님, 다음에 뵐 때는 꼭 천축에 간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석공스님은 소이부답으로 합장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칠불사 석공스님과 헤어진 하지왕이 옷깃을 휘날리며 급히 말을 몰며 우사와 모추에게 말했다.
“빨리 사물국 와룡산으로 가서 명림원지를 뵙도록 합시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말을 달려 대사국(하동)에서 낙노국(악양)을 거쳐 이명산과 봉명산 사잇길을 지나 사물국(사천)으로 들어왔다. 사물국의 고을들은 크지 않으나 가는 곳마다 저녁인데도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논밭에는 벌써 여물지 않은 곡식을 거둬들여 인가에 사람이 없는 듯 보였다. 말을 조금 더 달려가니 강가 마을이 나오고 강 너머 멀리 와룡산이 보였다.
강 나루터에는 주막이 있었다.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여기가 바로 사수입니다. 날이 저물었으니 오늘은 여기 어촌 주막에 하루를 머물고 내일 강을 건넙시다.”
하지왕이 강 건너 와룡산을 보며 말했다.
“내 마음은 오늘 밤이라도 당장 배를 타고 와룡산으로 달려가 명림원지를 만나고 싶소.”
“석공스님도 삼훈삼목과 삼고농을, 삼고초려를 말하지 않았습니까.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에 와륵(명림원지의 호)선생을 만나도 늦지 않습니다.”
셋은 사수강 어촌 나루터에는 주막으로 들어갔다. 좁은 주막에는 낯선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모가 나오는데 시골 주막에서 보는 늙은 노류장화가 아닌 젊은 미색이었다.
우사가 주모에게 말했다.
“오늘 여기서 숙식을 하고자 하오?”
주모가 말을 탄 세 사람의 행색을 살피더니 말했다.
“들어오세요. 오늘 왜에서 건너온 왜인들이 많아 구석방을 줄 수밖에 없네요.”
“왜인들이 여길 옵니까?”
“여기 초행길이세요?”
주모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남해안 일대에 왜구들이 쳐들어와 분탕질을 하고 온통 자기들 세상으로 만들어놓은 걸 모르세요. 저 같은 미천한 년이야 돈만 벌면 그만이지만 나라꼴이 말이 아니에요.”
“음, 일단 배가 출출하니 국밥하고 농주나 주시오.”
과연 주막 안에는 칼을 찬 왜인 여럿이 술을 놓고 여자들과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왜인들이 하지왕 일행을 보고 왜인들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무엇하는 놈들인가? 강 건너에서 온 사물성 가야인들인가?”
모추가 칼을 빼려고 하자 우사가 말리며 왜말로 말했다.
“우리는 그냥 지나가는 과객인데 날이 저물어 여기에 하룻밤 묵으려고 왔소.”
“당신은 어떻게 왜말을 알고 있나? 네놈들은 사물성 한기가 보낸 세작이 아닌가!”
왜인이 칼을 빼며 다가왔다.
“옛날 금관가야에서 목라근자 장군 휘하의 왜병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왜말을 조금 배웠소.”
무리 중에 우두머리인 듯한 왜인이 나와 칼을 뺀 왜병을 제지하며 말했다.
“목라근자 장군 휘하에서 일했소? 나도 그때 용병으로 건너와 목장군과 함께 신라와 고구려 병사들과 싸웠지. 반갑소.”
목라근자 장군 밑에서 싸었다는 왜인 우두머리의 이름은 이쿠노라고 했다. 키는 작지만 눈빛이 날카롭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무골 상이었다.
우사는 이쿠노에게 말했다.
“가야와 왜는 교린국으로 서로 신의로 지냈는데 이렇게 해안가로 침입해 분탕질을 하면 되겠소?”
“분탕질을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고구려군에게 패한 뒤 용병인 우리는 장사꾼으로 바뀌었소. 장사하러 가야에 온 것이오.”
우사는 칼과 단검을 든 왜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왜검을 찬 이 자들을 어찌 장사꾼이라 하겠소. 게다가 우리를 사물성 한기가 보낸 세작이라고 의심했소.”
“칼을 든 것은 낯선 땅에서 자기 한 몸이라도 지키기 위함이오. 오갈 데 없는 왜의 용병들이 분별없이 분탕질을 한다는 말을 들었소.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이익을 나누는 장사꾼들에 불과하오. 그러니 모두 같이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이쿠노가 술잔을 들고 호탕하게 말했다.
“좋소이다.”
우사도 술잔을 들며 말했다.
이쿠노와 왜인들과 하지왕 일행은 서로 국밥과 술을 먹으며 긴장 속의 대화를 이어갔다.
우사가 이쿠노에게 말했다.
“대사국에서 오는 길에 사물국의 마을에는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들에는 덜 익은 곡식들도 베어져 없었습니다. 모두 왜구들의 소행이라고 들었소. 오랫동안 우리 가야에게 제도를 배우고 문물을 수입했던 왜가 이럴 수 있소?”
“그건 일부 몰지각한 왜인들이 그렇게 한 것이오. 용서하시오. 자, 한 잔 받으시구려.”
긴장된 분위기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많이 풀어졌다.
배가 고팠던 하지왕은 국밥을 먹으면서 몸이 풀렸다. 하지왕이 보기에 이쿠노는 왜장으로서 부하를 누르고 사람을 제압하는 기풍이 있었다. 그와 부하 왜인들은 겉으로는 장사꾼으로 위장했으나 틀림없이 가야에 틈입하기 위해 들어온 왜병인 게 분명해보였다.
이쿠노는 술을 마시면서 칼을 빼든 부하에게 사나운 눈빛으로 질책했다. 자칫하면 강을 건너기도 전에 정탐활동이 노출될 뻔한 것이다. 이쿠노는 성은 기씨로 실은 왜왕의 특명을 받고 사물국을 치기 위해 정탐하러 온 것이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침입한 가야군과 왜의 용병을 물리치고 금관가야에 있던 임나왜소를 삼한인들이 사는 대마도로 옮기자 이들은 츠쿠시(筑紫, 지금의 규슈 지방)에 웅거하는 왜구가 되었다. 왜왕은 이들 왜구들에게 해인, 선사(船師) 따위의 직함을 주고 관병에 속하게 했다. 이쿠노는 선사들을 이끄는 왜의 장수였다. 그는 지금의 왜왕의 특명으로 혼란기의 가야를 치기 위해 정탐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쿠노가 하지왕을 보더니 우사에게 물었다.
“함께 온 이 젊은 소년은 누구요?”
우사가 이쿠노에게 말했다.
“내 아들 놈이오. 나도 고구려의 침입 후 고국을 잃고 유랑 장사꾼이 되어 아들과 함께 가야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소.”
“하, 우사라. 금관가야의 그 우사선생을 말하는 것인가?”
“나를 아시오?”
“우리 집안도 일본의 역사를 편찬하는 기씨 가문이오. 그 유명한 가야의 우사선생을 왜 모르겠소. 우사 선생은 금관가야의 역사를 담당한 지체 높은 문관이셨는데 한낱 장사꾼이 되다니 의외인 걸. 그쪽은 우리보다 더 수상쩍군요. 그래서 우리 부하가 그대를 사물성 한기의 세작으로 오인한 것 같소.”
이들은 어울려 술을 마신 뒤 각자 숙방으로 들어갔다.
이쿠노는 우사와 마주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것이 찝찝했다. 이쿠노가 가야제국 중 먹이로 생각한 것은 가야제국 중 약한 고리인 사물국이었다. 사물국의 한기는 뇌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밝혀 민생과 국방에는 소홀히 했다. 남해안의 금관, 아라, 고자미, 대사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점이 많은 사물국을 치기 위한 정탐활동을 위해 이쿠노는 심복들을 거느리고 사물국 남해안으로 잠입한 것이다.
그는 일부러 부하들에게 지저분한 장사꾼으로 보이게끔 술을 먹게 하고 기녀들에게 수작을 걸고 난하게 놀게 했다.
왜인들은 기녀들과 어울려 진탕하게 마시고 웃통을 벗고 급기야 고쟁이를 풀고 더러운 짓거리들을 해댔다.
해안가에서 뱃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관록을 키운 기녀들은 왜인들의 돈을 알겨내며 함께 뒤섞였다.
“점잖은 분들이 고향을 떠나 가야에 오니 괜히 마음들이 달뜨신가봐. 자, 구강주부터 한 잔 말아드릴까요.”
“이분은 작은 물건으로 뭘 그리 들이데요.”
기녀들은 찰거머리처럼 왜인들에게 달라붙었다.
사천나루 주막 숙방에서 여인들의 앓는 소리가 들려올 때 모추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칼을 뽑아 옆의 숙방으로 쳐들어가려고 했다. 하지왕과 우사가 제지했다.
하지왕이 모추에 말했다.
“모추, 참게.”
“왜놈들이 우리 가야여인을 능욕하는 것을 정말 참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칼을 집어넣어라. 네 칼날이 기방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번뜩이며 천하를 호령할 날이 있을 것이다.”
모추는 하지왕의 말에 굴복해 칼을 도로 칼집에 집어넣었다.
왜놈들이 개처럼 헐떡이는 숙방의 옆 봉놋방에서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나란히 누워 잠을 못 이루며 전전반측하고 있었다.
하지왕은 봉놋방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라가 힘이 없으니 미천한 왜마저 가야를 먹어치우는구나. 400년 역사의 가야가 마치 잔칫집 접시 위에 썰어놓은 시루떡처럼 하나둘 없어지고 있구나. 내가 고구려의 광개토왕이나 진황한무(秦皇漢武, 진시황과 한무제)처럼 강한 왕이 되지 않으면 가야는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자정이 지나 피곤한 마련으로 셋이 잠들었을 때 조용히 봉놋방 문이 열리며 칼날이 번뜩였다.
봉놋방으로 잠입한 일당은 검은 복면을 한 이쿠노의 부하들이었다. 우사 일행에게 왜의 용병이었던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이쿠노는 아무래도 우사 일당을 제거하는 것이 정탐활동을 안전하고 원활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부하 중 하나가 사물성 성벽에 붙은 수배 방을 보았다. 현상금이 붙은 하지의 용모파기와 지금 옆방에서 자고 있는 젊은 소년과 얼굴이 비슷했다.
‘대가야의 반역죄인이며 살인을 하고 도주한 하지의 목을 가져오거나 생포한 자에게는 두당 금 오백 냥을 주며, 그와 같이 다니는 우사, 모추를 잡은 자에게는 금 백 냥의 포상을 내릴 것이다.’
그 옆에는 수배하는 세 사람의 얼굴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구체적인 인상착의까지 적혀 있었다.
‘셋은 장사꾼 행세를 하고 다님. 하지는 키가 5척으로 어린 나이에 비해 큰 편이며 얼굴은 귀골인 대가야인임. 하지의 아버지로 자처하는 우사는 금관가야인으로 얼굴이 갸름하고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개 나라말을 하며 장사를 한다. 대가야인 모추는 키가 6척 장신이며 골격이 장대하고 백련강검을 가지고 다니는 극히 위험한 인물임.’
용모파기는 그림 솜씨가 엉망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왜인이 이쿠노에게 말했다.
“대장, 저 셋은 막대한 현상금이 붙은 죄인들이 분명합니다. 세 놈의 수급을 베어 노잣돈이나 두둑하게 챙깁시다.”
다른 부하왜인들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이쿠노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반역 죄인라는 것이 저들에게는 현상금을 주고서라도 잡아야할 죄인이지만 우리에게는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 저들이 성인으로 섬기는 석가모니 부처도 이웃나라 왕국(코살라 마가다왕국)으로부터 반역의 수괴로 수배당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도 생각한 바가 있다. 일단 호랑이굴 안으로 들어온 셋의 목을 베어 사물성으로 들어가서 포상도 받고, 간 김에 우리의 목적인 성 내부의 정탐을 하기로 하자.”
이쿠노는 사실은 정탐보다도 젊은 하지왕을 비롯해 우사의 일행이 예사로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될성부른 나무는 싹부터 제거해 후환을 없애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이쿠노는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 이르러 부하들에게 살해 명령을 내렸다.
왜구들이 은밀하게 봉놋방에 잠입해 누워 자는 우사를 칼로 찔렀다.
모추가 기척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베고 있던 목침을 자객에게 던졌다. 목침을 맞은 자객은 뒤로 벌렁 나자빠지면서 우사를 찌르는 칼이 허공을 날았다. 모추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날래게 백련강검을 뽑아 뒤따라 들어온 왜구들의 칼을 받아쳤다. 젊은 시절 야로 철장에서 주물 바가지로 쇳물을 퍼서 주형에 붓곤 했던 모추는 팔 근육이 허벅지만 했다. 모추가 백련강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백 근의 쇠몽둥이로 개를 때려잡은 듯한 위력이 있었다. 힘에 밀린 왜놈들이 한꺼번에 칼을 뽑아 모추를 향해 떼거지로 덤벼들었다.
모추가 기합을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애지녘에 죽었어야 할 놈들, 운 좋게도 밤 동안 목숨을 벌었다!”
모추는 백번 벼린 백련강검을 단검 휘두르듯이 휘두르며 베어나가자 왜구들은 초식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가공할 만한 모추의 검력에 왜인들은 하나 둘 쓰러지고 남은 놈들은 게걸음치며 어둠 속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도망간 왜인들이 곧 원군과 함께 나타나 집단으로 몰려올 가능성이 있었다. 어차피 방이 붙어 낮에는 움직이기 힘들었다. 하지왕은 우사와 모추와 함께 아침해가 떠오르기 전에 주막을 빠져나왔다. 셋은 나루터에 매어놓은 배를 타고 사물강을 건넜다.
남해 바다의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일출의 장엄한 햇살이 천의무봉의 부드러운 붉은 햇살 자락을 배와 바다에 드리웠다.
우사가 나루터에 발을 디디면서 모추에게 말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네.”
“저는 후누 장군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두 분을 호위하라는 엄명을 받았습니다.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왜놈을 막지 못해 위해를 받게 한 것은 저의 불찰입니다.”
하지왕이 모추에게 말했다.
“모추, 네가 있으니 어딜 가도 든든하네. 도망간 이쿠노는 반드시 이리로 되돌아올 거야. 놈들이 사물성을 노리고 정탐 온 게 분명해. 헌데 이걸 사물성 한기에게 알려야 할 텐데.”
우사가 하지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사물성 앞 객잔 앞을 지나게 되었다.
하지왕은 와룡산 와륵선생을 만나는 게 바쁘긴 하지만 사물성을 지나쳐 가는 길에 한기를 한 번 만나 왜놈의 동향을 일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물성 한기가 현상금에 눈이 어두워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염려가 되었다. 믿었던 건길지마저 현상금에 현혹돼 신하들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던가. 틀림없이 사물국의 한기도 비화국의 한기 건길지의 뒤를 따르겠지만 왜구에게 위태로운 사물성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우사가 하지왕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마마, 여기까지 왔으니 제가 잠시 사물왕 한기를 만나 왜놈들의 침입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대왕께선 모추와 함께 객잔에 머물고 계십시오.”
“그건 위험하오. 죽더라도 함께 죽고 살더라도 함께 삽시다.”
“저는 염려 마십시오. 한기 소가주는 저와 면식이 있고 술도 함께 한 적이 있어 저를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제 혼자로도 충분합니다.”
하지왕이 우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정 그렇다면 모추를 데리고 가시오. 나 혼자 객잔에 머물겠소.”
“그건 제 목이 베어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안 됩니다. 차라리 지금 우리 모두 와룡산 와륵선생에게 가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왕이 우사에게 말했다.
“사물성에 왜구의 침입을 알리지 말란 말이오. 비록 내가 나라도 없이 떠도는 무관의 왕이지만 가야를 생각하면 그건 안 되오. 이건 어명이오. 가려면 모추를 데리고 가시오.”
우사는 하릴 없이 어명을 받들어야 했다. 우사는 하지왕을 사물성 앞 객잔에 머물게 하고 모추와 함께 삿갓을 쓰고 변복을 한 뒤 성문으로 들어갔다.
우사가 보니 사물성 안에서 풍악소리가 울리며 소달구지에 물품과 술동이가 연방 들어가고 있었다. 잔치가 열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우사가 사물성으로 쟁과 북을 들고 가는 가척(笳尺, 관에 소속된 악공)을 잡고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오?”
“당신은 사물국 사람이 아니오? 오늘이 우리 주군 소아주의 생일날인 것을 모른단 말이오?”
“전 방금 지리산에서 온 터라 몰랐소이다.”
“금관가야는 망해서 왜국과 대가야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우리 사물국은 현명한 한기님 덕에 왜와 교역을 해 번성하고 있소이다.”
우사는 속으로 한탄을 했다.
‘강 건너 마을만 나가도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고 마을 약탈하는 왜구들이 득실거리는데 성안은 주지육림에 빠져 있고 아첨하는 관리들마저 있으니 사물국이 망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우사는 사물국의 한기 소아주를 금관가야의 왕 이시품이 소집한 제국회의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우사는 제국회의의 내용을 기록하는 사관의 신분으로 참가했다. 신라 침공을 결의한 제국회의는 금관성 고당에서 열렸는데 참가한 22개 가야연맹국 한기와 집사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바로 사물국 한기 소아주였다. 소아주는 대가야 집사 박지와 더불어 몇 안 되는 반전파였다. 하지만 주전파인 이시품왕이 소아주에게 뇌물과 미녀를 보내자 주전파로 돌아섰다. 신라와의 전쟁이 벌어져 소집령이 내려 전쟁이 벌어졌을 때 소아주는 군사보다 처첩을 먼저 챙겨 전장터에서 줄행랑을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사는 가야의 역사서에 엄격한 춘추필법으로 ‘가야연맹이 고구려와 신라에 패한 것은 사물국의 한기와 같은 썩은 군주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참전하였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우사와 모추가 잔치가 열린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고루거각 안에는 소아주 한기와 귀족, 중신들이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고 중앙 무대 위에는 무희들이 음악에 맞춰 치부만 구술고쟁이로 가린 채 거의 알몸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무희들은 금관가야나 비화가야에서 본 가야 무희가 아니라 왜에서 건너온 기녀들이었다. 춤도 가야춤이 아니라 왜춤이었다.
매미날개 같은 반투명 옷을 입은 왜의 무희들은 기모노를 입은 월희는 일본의 전통 악기인 샤미센 가락에 맞춰 봉오도리를 추었다. 물비단 너울을 흔드는 솜씨가 나비처럼 날렵했다.
몸을 뒤틀고 꿈틀거리는 춤사위는 적나라했다.
왜술에 취한 소아주가 춤추는 기녀들을 보며 말했다.
“물을 건너와서 그런지 관능적인 몸이로다. 하늘 선녀의 몸이 이렇게 생겼으렷다.”
가야여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남방의 자유분방한 옷차림과 관능적인 춤사위는 소아주의 넋을 거지반 빼놓았다. 소아주가 더 이상 참지를 못 하고 기녀의 허벅지를 부여잡고 한 입 깨물어 버리려는데 낯선 사람이 알현의 청을 하며 읍을 했다.
“한기님, 지나가는 과객입니다. 긴히 말씀드릴 게 있어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불청객의 등장으로 흥이 깨진 소아주는 들고 있던 술잔을 놓으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우사를 보곤 말했다.
“즐거운 잔칫날에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귀인가? 무엄하게도 감히 삿갓도 벗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우사가 엎드려 소아주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한기님, 생신을 감축 드립니다. 몇 년 전 한기님을 뵈온 적이 있습니다만.”
소아주가 게슴츠레한 눈을 크게 떠서 보며 말했다.
“나도 네 놈의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듯하다만, 긴한 일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헛말이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제번하옵고, 지금 왜병들이 남해 바다 비토섬에 진을 치고 있고, 왜의 세작들은 사물 땅에서 활발한 정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곧 이곳 사물성으로 쳐들어올 것 같습니다. 성의 방비를 튼튼히 하시고 위험에 처한 백성들을 살피소서. 지나가는 길에 왜병를 목격한 같은 가야인으로서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위급한 사태를 한기님께 알려드리고 물러납니다.”
우사가 강 건너 보고 온 정황을 이야기했다.
“왜병이 쳐들어온다고? 지금 눈앞에 왜왕이 나의 생신강(生辰綱, 생신 예물)으로 기녀들과 공물을 보낸 것을 보지 못하는가. 왜병이 쳐들어올 리가 없네. 서촌 소가 웃을 소리야.”
“서촌 소가 웃을 일이 아니라 섭천소(서천 소의 어원은 섭천 소라는 설이 있다. 섭천은 옛날 진주 섭천에 소를 잡는 백정마을이 있었고, 백정에게 죽으러 가는 소를 섭천 소라고 했다는 것이다. 소도 웃지 않거니와 죽으러 가는 소는 더욱 웃을 일이 없기에 어이없는 말을 듣거나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서천 소가 웃을 일이다’고 한다. 섭천의 ‘ㅂ’탈락은 십월이 시월이 되듯 국어에 나타나는 음운현상임)가 웃을 일입니다. 이 성에 번듯한 문무백관들이 많지만 중국의 충신 개자추와 이소와 같은 자가 없는 게 한스럽습니다. 소인은 할 말을 했으니 이만 물러납니다.”
우사는 읍을 하고는 서둘러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설마 적들을 스스로 궁중으로 불러들일 줄은 몰랐다. 이런 암둔한 주군을 모시고 있는 관리와 민초들이 가련했고, 목숨을 걸고 충언을 하러 성안으로 들어온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 때 소아주가 갑자기 신하들에게 소리를 쳤다.
“저 놈을 잡아라! 현상금이 붙은 금관가야의 우사다!”
한기의 말에 사물의 병사들이 우사를 잡으려고 칼을 뽑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모추가 백련강검을 뽑아 우사를 호위하며 덤벼드는 사물병들을 물리쳤다.
사물성의 한기 소아주가 모추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놈도 잡아라! 현상금이 붙은 한패거리다!”
순식간에 삼십여 명이 병사들이 칼과 창을 들고 두 사람을 에워쌌다. 창병이 우사를 삼지창으로 찌르자 우사의 삿갓이 훌렁 벗겨졌다.
소아주가 말했다.
“과연 네 놈이 역적 우사가 맞구나!”
고루거각의 난간으로 올라간 소아주가 병사들을 독려하며 큰소리로 말했다.
“목에 현상금이 걸린 놈들이다. 생포하기 어려우면 수급도 좋다. 먼저 죽이는 자에게 큰 포상을 내릴 것이다!”
현상금에 사기가 진작된 병졸들은 겹겹이 에워싸 칼과 창과 활로 세찬 공격을 퍼부었다. 모추는 괴력을 발휘해 화살과 칼과 창을 쳐내며 우사를 지키며 남문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사물병 장수가 외쳤다.
“멈춰랏! 도망쳐봤자 독안에 든 쥐다.”
모추와 우사가 거의 남문으로 다가왔을 때 남문이 열리며 수십 명의 창기병들이 말을 타고 밀물처럼 들어왔다. 창기병들은 장팔사모와 방극창으로 무장해 모추를 찌르며 달려왔다. 모추가 백련강검을 휘둘러 창의 목을 뎅겅뎅겅 날렸다.
모추의 분전에 사물의 병사들은 포위를 한 채 한 시진이 지나도 두 사람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인해전술 앞에 일당백의 모추도 힘이 부쳤다. 모추는 남문 옆 돌로 높이 쌓아올린 망루를 보았다. 모추는 겹겹이 에워싼 병사들을 헤치고 망루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달렸다.
궁수들이 화살을 날렸다. 모추는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며 우사와 함께 계단으로 올라가 망군을 베고 망루에 진을 쳤다. 계단만이 유일한 통로인 망루는 한 사람이 여럿을 상대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병사들이 성벽을 타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족족 모추의 칼에 맞아 감꼭지가 떨어진 홍시처럼 밑으로 퍽퍽 떨어졌다.
수백 명의 병사들이 망루에 선 모추 한 사람을 당하지 못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서로 대치하는 소강상태로 또 한 시진이 흘렀다.
소아주가 망루를 보며 말했다.
“대역 죄인들은 듣거라. 지금 항복하고 내려오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 놈들이 굶어죽을 때까지 포위망을 풀지 않을 것이다.”
성 안팎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망루에서 우사가 말했다.
“사물성 한기와 병사들은 들으시오. 저기 왜구들이 비토섬에 진을 치고 곧 이 성으로 쳐들어오려고 하고 있는데 어찌 같은 가야 동족을 죽이려 하시오. 우리들끼리 싸우지 말고 함께 힘을 합쳐 왜구들과 싸웁시다.”
우사의 말에 병사들이 술렁거리고 있는데 한 병사가 소년을 밧줄로 묶어 나타났다.
“성 밖 객잔에서 현상금이 붙은 대역죄인 하지를 잡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