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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 작고 외롭고 단단한 것들을 위하여 > 2-10. 세 권의 책

작성일 : 2023.12.17 02:18

 

2-10. 세 권의 책

 

책과 헤어질 결심을 단단히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감동도 위로도 격려도 되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나이 들수록 점점 배신감과 소외감이 커져 갔습니다. “이런 글로 책을 내면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의 수명은 과연 언제까지 유지가 될까?”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책들과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좀 내려가면 되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기적 애인을 만났을 때처럼, 받은 만큼만 되돌려주면 될 것이라는 영악한 계산도 했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최근 지친 마음에 위로를 줄 만한 책 3권을 골랐습니다. 여성의 아들 예수,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새롭게 만나는 공자가 그것입니다. 공자는 논어》 「양화편에서 가이흥(可以興), 가이관(可以觀), 가이군(可以群), 가이원(可以怨)(시는 순수한 감정을 흥기시키며,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며, 원망하되 성내지 않게 한다)”이라고 시()공부의 효용을 말했습니다. 각기 분야는 다른 책들이지만 이 책들은 충분히 그런 마음의 선물을 주는 좋은 책들이었습니다.

여성의 아들 예수(김근수)는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예수의 여성관과 주변 여성들의 삶을 조망한 책입니다. 원래 역사적 인물이긴 하지만 예수의 삶은 자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특히 그의 여성 관련 일화들은 아주 적은 양의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그 소량의 전거(典據)만을 가지고 두꺼운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 저자의 역량이 놀랍습니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여성의 아들 예수보다는 여자의 아들 예수라고 제목을 고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는 "나는 여자(여인)의 아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아들이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때 여자사람은 높은 것의 반대말로 사용된 것입니다. 지체 높은 출신이 아니며 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여성이니 남성이니 해서 객관적 성별의 차이를 강조하는 뉘앙스가 강한 그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달리 '여자'라는 말은 '세상 낮은 인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고대 히브리에서는 사람을 셀 때 여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 낮은 존재에게서 난 사람이 자기라고 예수는 말했습니다. ‘여성은 그런 내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아마 출판사에서 책 제목의 품격을 고려해서 '여성의 아들'로 정한 모양이지만 제겐 불만입니다. '제 한 몸으로 모든 것을 감싸서 세상을 구원하는 여성성'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여자의 아들이 제격입니다.

새롭게 만나는 공자(김기창)의 저자는 공자를 실천주의 혁명가로 간주합니다. 저와는 공자관(유교관)이 많이 다릅니다(저도 공자와 관련된 책을 조만간 한 권 낼 생각입니다). 저의 공자관(논어 읽기)과는 거의 대극점에 놓이는 책이지만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읽는 재미가 더 있었습니다. 공자는 사람을 가르쳐(일깨워) 세상을 바꾸리라고 결심하고 실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점에서는 '여자의 아들 예수'와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곧게 뻗은 직선 도로보다 꾸불꾸불한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혁명을 선동하기보다는 수신과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예수와 공자의 비혁명적 노선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큰 동력을 제공했다고 믿습니다. 자신들은 혁명가가 아니었지만 이 세상 모든 혁명가의 아버지가 된 이가 공자와 예수입니다.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의 저자 조앤 디디온은 이번에 그의 전기를 넷플릭스에서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녀의 삶이 그녀의 책을 읽도록 강하게 충동했습니다. 반갑게 책으로 만났습니다. 생생한 감각적 글쓰기가 엄청났습니다. 평소 감각적 글쓰기에 취약한 제가 가장 흠모하는 작가 스타일입니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 항상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있는데 그게 또 좋았습니다. 그러고도 85세까지 살았다니, 그녀는 분명 복 받은 이였습니다. 20년 연상인 그녀에게서 진한 모성애마저 느꼈습니다(저의 어머니는 딱 그 반만큼 살다 가셨습니다). 저도 젊어서 원 없이 골초로 살아봤습니다. 담뱃불로 이불도 많이 태워 먹었습니다. 30대 중반 쯤, 청주에서 살 땐데 서울서 문학기행차 내려온 옛 사관학교 교관 선배들을 길안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동행했던 한 선배(2년 연상의 그는 그때 이미 담배를 끊었다고 했습니다)"평생 너같이 담배 많이 피우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차에 타면서 한 대 물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리면서 한 대 물고, 길이 좀 멀다 싶으면 차 안에서도 한 대 더 붙이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왕골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건강을 염려하던 선배는 십 년 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도 10년이 또 지나서야 저는 담배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공자가 말한 원(, 원망하되 성내지 않게 한다) 하나는 분명하게 제게 선물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평생을, 원치 않는 종살이로 일관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소년고생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겠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종이나 개같이(<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의 그 개같이입니다)' 살아온 것도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모든 게 과거형이니까요. 억울할 때도 있지만 그나마 책이 있어 큰 우울증은 피해 갈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깁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