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양왕용 칼럼

양왕용 칼럼

<양왕용 문학칼럼>5.시 읽기의 허실

작성일 : 2023.12.17 02:12

<양왕용의 문학칼럼 5>

시 읽기의 허실

/양 왕 용

 

요즈음 각종 매체 특히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시인이나 비평가들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고 그 소감을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필자 역시 부산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문학신문에 80편에 가까운 시 읽기를 발표하여 그것을 멀리 워싱턴에까지 보낸 적이 있다. 정말 순식간에 미국의 독자들에게까지 전달되는 데에 경이감까지 들었다.

사실 이러한 시 읽기의 전형은 시집 뒤에 붙는 시집의 해설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 역시 그 동안 여러 권의 시집들을 해설하였다. 이러한 경우 <시 읽기>를 문자화하는 가장 큰 기능은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경향과 특정 작품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명료하게 안내하여 시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본연의 자세를 유지한 글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 첫 번째 경향이 권위 있는 외국 이론을 길게 인용하고 나서 시를 해석하는 형식이다. 그럴 경우 인용한 이론이 작품의 특성에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시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결과적으로 독자들이나 그 글들을 읽은 다른 시인들은 왜 외국이론을 인용하였는지 의아해 하면서 굳이 현학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집필자 나름의 시론을 전개한 후에 시집의 특성을 살피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때에도 그 시론이 작품 해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독자들의 반응은 시도 어려운데 해설은 더 어렵다고들 한다. 말하자면 시집의 해설이라기보다 집필자의 시론, 그것도 보편성이나 개연성을 가지지 않은 이론으로 인하여 시집의 특성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터넷신문 형식으로 발표되는 짧은 글 가운데는 대상이 된 시를 해석하거나 해설하기보다 시를 놓고 한 편의 읽은 이의 단상을 늘어놓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 경우 시의 경향이나 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성을 파악하여 독자들의 시 이해를 돕기보다 시의 제재를 대상으로 하여 그 자신의 소감이나 제재에 관련된 인생론을 늘어놓다가 글의 말미에 대상 시와 잠깐 연결시킨다.

사실 필자의 경우 시집 해설을 할 경우 그 시에 대한 가치평가보다 시집에 수록된 시의 경향 즉 특성과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난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안내하기에 힘을 기울인다. 그래서 세칭 주례사 비평도 피하고 필자 자신의 이론전개도 피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전문적인 이론의 언급도 가급적 피한다. 물론 시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은 이미 여러 이론가에 의하여 보편화 된 방법을 택한다. 인터넷에서는 길게 언급하지 못하니까 그 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해석의 가장 중요한 요점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독자들이 채우기를 기대한다. 달리 말하면 <시 읽기>를 일단 글로 발표하는 경우는 그것은 글 쓰는 이의 욕구 충족이 아니고 독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970년대 말미에 부산의 모 방송국 라디오 심야방송 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부산에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아나운서와 대담 형식으로 우리나라 현대시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에 대한 방송이 나간 뒷날 아침 등산길에서 아는 이웃 분을 만났는데 갑자기 필자에게 김소월이 여자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고 하니 어제 밤에 방송에서 필자가 김소월을 여자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프로는 생방송이 아니고 사전에 녹음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질문의 경위를 즉시 알 수 없었다. 그제 사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어 진달래 꽃나 보기가 역겨워에서 는 김소월 자신이 아니고 시 속에 등장하는 화자이며 그것이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으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어서 안타깝기만 했다.

그 당시 필자에게서 <시론>을 배우고 교생실습을 나간 국어교육과 4학년 학생들 역시 시 속에 등장하는 가 반드시 시인 자신으로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다가 지도교사들에게 잘못이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를 담화의 한 방법으로 보아 시인과 시 속의 말하는 이 즉 시적 화자와 시인을 분리하는 태도는 1981년에 실시되는 제 4차 교육과정에 적용되어 중학교 국어교육과정 즉 학년별 학습영역 1학년 내용 8항에 <시에서 시인과 시 속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구별하여 이해한다.>로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 교육과정에 의하여 중학교 1,2,3학년 국어 교과서가 오늘날과는 다르게 국정으로 19843월에 개발되어 가르쳐졌다. 이러한 기조는 2023년 지금까지 변함없이 국어교과서에 가르쳐지고 있다. 말하자면 벌써 40년이 넘었으니 그 시절의 중학생들이 60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중장년의 모든 국민들이 이러한 이론으로 시를 배웠고 그들 가운데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시인이 되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시 읽기를 빙자한 여러 글들이 이러하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화자 이론 다음으로 <시 읽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을 어떠한 순서로 분석하거나 파악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필자는 지난 시절 30여년 동안 대학에서 시론과 시교육론을 가르치면서 시는 중층적重層的으로 구성되었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그 층위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는 순서를 다음과 같이 배열한 바 있다. 사실 구성된 층위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시 이론가들이 언급하고 있으나 그것을 어떤 순서로 배열할 것인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그 배열 순서에 대하여 크게 고심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중층적 구조의 순서를 (1)리듬, (2)의미단위 즉 시어 (3)비유와 이미지 (4)어조와 태도로 배열하여 중등학교 국어교사가 될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필자의 대표적 저서인 현대시교육론1997년에 발간하였으며 이 책들이 전국대학의 교재로 채택되어 2000년에는 개정 증보판을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필자의 오래된 연구실적을 2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소환한 까닭은 작금의 시 읽기라고 하여 인터넷 매체를 타고 확산되는 글들이 너무 문학교육과 문학이론과는 동떨어진 글들이 많기 때문이다.

문학교육과 문학이론의 관련성에서 여러 가지 비평 이론을 유형화하여 정리하면 작가의 측면을 강조하는 생산이론, 작품 자체를 강조하는 구조이론, 독자 측면을 강조하는 수용이론, 작품과 현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반영이론 등 넷으로 나누어진다. 이 넷의 관점 아래 다양한 비평이론이 전개된다. 그리고 각급학교 교육현장에서도 이 이론을 바탕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따라서 시를 해석하거나 읽는 방법도 이 네 가지 범주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작품, 혹은 시인의 경향에 따라 네 가지 가운데 적합한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윤동주 시인의 경우 시인의 의도가 어떠하냐를 살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시인 가운데 그 만큼 태어난 곳이 미묘한 시인도 드물다. 그리고 그는 마치 일기 쓰듯이 시를 썼다. 따라서 시 속의 화자는 윤동주 자신으로 파악하고 시 속의 시인의 의도 파악에 힘써야 한다. 이상의 시는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방법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하면 모든 시인의 작품 속의 화자를 시인 자신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시 읽기는 어떠한 형태든지 그 작품에 맞는 이론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이 비평가나 학자가 아닌 크게 시에 대한 이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일단 읽고 그 결과를 독자들에게 어떠한 형태로 전달하고자 하면 시의 이러한 속성을 알고 그에 알맞은 방법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