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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시 감상

마음읽기 /우리 애환의 자화상, 트로트

작성일 : 2021.05.10 11:50

우리 애환의 자화상, 트로트

 

박 홍 배

 

코로나 19는 우리 삶의 모습들을 많이 변화시켰다. 모임 금지 등 주로 부정적인 것들이 일반적으로 나타난 현상인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간혹 자리를 잡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각 가정의 가장들을 일찍 귀가시키면서 이전에 부족했던 가족의 유대감을 고양 시킨 것이다. 뿔뿔이 따로 하던 저녁 식사도 같이하게 되고 이어 자연히 가족들은 함께 TV 앞에 둘러앉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 각 방송사는 시류에 맞는 프로그램 제작에 사활을 걸었을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대표적 프로그램이 트로트 경연대회였다. 한 방송사가 이전에 성공한 트로트 경연대회를 새롭게 개편해 다시 2탄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을 올리자 질세라 타 방송사도 다른 방식의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건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보이스트롯, 트로트민족, 트롯신이 떴다, 트롯전국체전 등, 그렇게 해서 나온 작금의 트로트 열풍은 코로나 19의 신음 속에서도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각 방송사는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가. 그렇게 뽑힌 이들은 기성 가수들보다 더 인기를 누리면서 그들이 주인공이 된 새로운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들의 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그것은 이 새로운 주인공들에게 시청자들도 기꺼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코로나 19가 남긴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라 할까. 어쩌다 TV를 켜서 채널을 돌리면 몇 군데 방송에서 똑같은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방송사의 이런 지나친 행태가 그렇게 적절하지는 않아 보여도 시청자의 관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 시대의 열풍으로 지켜보는 것이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원래 트로트란 우리 전통의 정서였기에 그것을 되살리는 운동은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충분히 작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전통의 정서에서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순수한 감정이나 한이 바탕이 된 눈물샘의 자극이다. 이번 트로트 경연대회에서는 기뻐서 울건, 슬퍼서 울건, 안타까워서 울건 우는 모습들이 TV 화면에 자주 비추어졌다. 덩달아 시청자들도 눈물로써 한 몫 거덜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노래하는 출연자가 그의 노래나 처한 상황에 사연이 있어 눈물을 보이기라도 하면 질세라 우리의 정서는 시청자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아마 요즈음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시청자들은 TV를 보다 흘리는 눈물 때문에 가족들끼리 민망한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는 모습이 TV 화면에 비추어지기도 했는데 그 또한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느낀 바로는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눈물이 많은 것인지, 트로트 자체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요소가 들어 있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자 언뜻 진도의 박동매 명창이 생각났다.

 

지인 몇 명과 남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남도는 한창 봄이었고 연두빛이었다.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한 연초록의 산, 청보리밭이 정겨웠다. 우리는 그저 그 연초록에 흠뻑 취해 훨훨 날고 싶은 기분으로 보성, 장흥, 강진, 완도를 거쳐 예향 진도로 향했다.

밤늦게 진도에 사는 친구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니 뜻밖의 귀인들이 함께 와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제 제51남도 들노래박동매 명창과 강강수월래박종숙 명창, 고수 장필식씨였다. 두 명창은 진도 토박이지만, 고수 장필식씨는 소리가 좋아 근년에 진도에 내려와 사는 사람이다. 명창 두 분은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인지라 다시 만나 무척 반가웠다. 봄의 진미 진도 꽃게와 함께 진도 술 홍주가 몇 순배 돌았고 드디어 명창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사철가흥타령이 이어졌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 아이고 데고

 

우리는 술과 노래, 사람에 취해 어깨춤을 추었다. 향기로운 술과 맛있는 안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흥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흥에 겨워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면서도 왠지 슬프다는 거였다. 가사 때문인가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곡이 끝나자 박동매 명창이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흥노래에서 흥은 사실 한()입니다. 그래서 흥노래는 슬프게 들리기도 한답니다.”

인터넷으로 박명창을 검색해 보았다.

먹고 살기 위해 소리를 하신 어머니, 어머니 없는 빈자리에 소리는 늘 아픔이었습니다.’

박명창은 남도 최고의 명창이었던 조공례 선생의 딸이다. 명창의 딸로 태어나 선소리를 이어 가는 박동매의 삶 또한 평탄하지 않았다. 소리뿐 아니라 삶도 유전되고 있었다. 박명창은 누구도 모르는 자신의 아픔을 소리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흥겨움 뒤에 한이 숨어 있다면, 아름다움 뒤에는 슬픔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슬픔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때 그것이 소리로 승화되기도 한다. 내 슬픔을 들키지 않기 위해, 견디기 위해 사람들은 곱게 단장하거나 포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늘 슬픔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트로트도 결국 이런 민요처럼 한과 흥이 함께 어우러진 우리 민족을 표현해낸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거기에는 자연히 우리의 깊은 정서인 눈물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눈물은 감동의 결과물이다. 감동이 감정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라면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은 모두 눈물의 근원인 셈이다. 그래서 슬픔뿐만 아니라 크게 우스워도 눈물이 나고 많이 화가 나도 눈물을 흘리게 된다. 대학 재학 때 읽은 어느 글에서 한국인의 특징을 논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거기에 한국인은 세계에서 눈물이 가장 많은 민족이라는 지적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눈물이 많은 이유는 남다른 우리의 지정학적 환경으로 인한 백의민족 고유의 내향적인 심성 탓이라는 것이다. 그런 전통 속에 자리 잡은 우리의 소리가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눈물이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요즈음은 나이를 떠나 젊은 사람들도 트로트를 즐기고 있다고 트로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이 입을 모은다. 그러나 경연대회에 출연한 이들은 주로 젊은이들이지만 아직도 트로트는 어른들 더 나아가 중년 이후 세상을 좀 살아본 듯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도 트로트 프로그램을 계속 보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한 마디 건넨다.

엄마 아빠, 축 늘어지는 이런 노래가 그렇게 좋아요? 울면서 본 것 또 보고 ……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꾸한다.

네가 인생을 많이 살아보지 못해 눈물 흘리며 듣는 트로트 맛을 모르지. 트로트는 우리 삶의 애환이야.”

그래도 반응은 시큰둥하다. 사실 젊은이가 트로트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어른들보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있지 않나 싶다.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오랜 질곡의 세월을 거치면서 부대껴온 삶의 모습을 눈물로 잘 승화시켜 왔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거기다 나이 들면 주책없이 눈물이 많아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생리적 현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필자와 친하게 지내는 소설가 김원일 선생님과 주석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마 선생님의 고향인 진영의 어느 포장마차였을 것이다.

선생님 요즈음은 왜 그렇게 자주 우십니까?”

이전에 친하게 지내던 작가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꺼이꺼이 통곡하며 우시고 난 뒤였다.

의사 말로는 혈압약, 당뇨약 등 나이들어 먹는 약이 눈물을 자주 흘리게 한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고 그냥 나이 드니까 울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 자네도 나이 더 들면 자주 울게 될 거야.”

아닌 게 아니라 요즈음 필자도 눈물이 많아진 이런저런 상황들을 김원일 선생님의 해석에 맞추어 보곤 한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지고 그래서 우리 인생의 애환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트로트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트로트는 우리 삶의 애환이다. 가사도 가사려니와 그 곡조 또한 우리 인생 여정을 보여주는 한과 흥의 춤바람이다. 아울러 들어서 신나고 느껴서 슬픈 트로트의 맛은 코로나 19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적지 않는 위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도 TV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아 트로트 효 잔치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어찌 젊은이가 부르는 신나고 구슬픈 옛노래에 어느 부모가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노래는 우리 삶의 활력소다. 특히 우리 삶의 애환인 트로트는 아랫세대에게 중심 자리를 내어주고 이제 황혼에 선 윗세대에게는 그들의 자화상이자 크나큰 자부심이라 아니할 수 없다.<평론가/문예타임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