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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5.10 11:44
대가야제국의 부활(17)
제3부 하지왕과 가야제국(5)
김하기
그날 밤 하지왕은 우사와 모추를 불러 은밀하게 여장을 꾸려 급히 비사벌성을 떠났다. 하지왕은 비화가야 땅을 벗어나 대사국 경계를 넘어가자 비로소 말 고삐를 당겼다.
모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하지왕에게 말했다.
“마마, 우리를 환대해준 건길지에게 말도 없이 마치 도둑처럼 도망치듯 떠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태사령 우사도 거들었다.
“비사벌성은 가히 가야의 중심이 될 만한 곳입니다. 그곳에 천천히 머물면서 대업을 구상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건질지는 대왕마마께 충성되어 보였습니다.”
하지왕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오래 묵으면 짐이 되지요. 더욱이 비사벌성의 호족들과 군장령 강고내의 눈빛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루만 더 머물렀어도 나를 잡아 박지와 석달곤에게 넘겼을 것이오.”
태사령 우사가 하지왕에게 물었다.
“건길지가 마마를 해치려는 무슨 기미라도 느끼신 것입니까?”
“건길지는 모르겠지만 그 밑의 신하들, 특히 군장령 강고내가 내 목을 벨 음모를 꾸몄소.”
하지왕은 건길지가 강녕관에서 베푼 잔치에 초대되었다. 진설한 음식이 비워지고 음주가무가 시작되었다. 악공들의 연주에 맞춰 무희들이 나와 가야 춤을 추었다.
하지왕은 북방 고구려에서 본 춤과 남방의 가야 춤(가야춤: 임금(문무왕)이 귀국하던 길에 욕돌역에 머물렀는데, 국원의 관리인 대아찬 용장이 -중략-음악이 시작되자 나마 긴주의 아들인 15살 소년 능안이 가야의 춤을 추었다. 임금이 그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앞으로 불러 등을 두드려주며 금술잔으로 술을 권하고 폐백을 자못 후하게 주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 18년)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북방 춤은 무희들이 동작이 거칠면서 휘젓는 춤사위가 활기차고 힘찬 반면, 가야의 남방 춤은 정적인 동작에서 섬세하고 깜찍하며 부드러운 춤사위가 나왔다. 특히 머리에 도라지꽃을 꽂고 나온 앳된 무희의 생김새가 예뻤다. 가는 어깨와 늘씬한 허리, 엉덩이의 아름다운 선이 매력적으로 움직였다. 하늘거리는 가녀린 손끝과 사뿐히 올라와 간들거리는 버선코가 하지왕의 마음을 건드렸다.
‘가야 춤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하지왕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건길지가 진설한 잔치가 끝나고 난 뒤, 하지왕은 침실로 돌아와 잠시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문이 반쯤 열렸다.
“누구냐?”
앳된 소녀가 들어오길 머뭇거리고 있었다. 바로 머리에 도라지꽃을 꽂고 춤을 추었던 무희였다.
“넌 방금 전 가야 춤을 추었던 무희가 아니냐. 무슨 일이냐?”
“한기님께서 마마의 시중을 들라고 하셔서......”
하지왕은 싫진 않았지만 늘 과분한 건길지의 접대에 점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흠, 일단 들어오너라.”
“예.”
“네 이름이 무엇이냐?”
“채희라고 하옵니다.”
채희는 공손히 절을 하고 붉은 치마폭을 추스르며 얌전하게 앉았다.
“그래 무슨 일로 여길 들렀느냐?”
“한기님이 침실 시중을 들라 명하셨습니다.”
“나도 어리고 너도 어리거늘 무슨 침실 시중이 필요하겠느냐? 차라도 함께 하며 이야기라도 나누자꾸나.”
“황송하옵니다.”
채희는 배시시 웃으며 다구를 챙겼다.
하지왕의 방에는 차를 끓이는 다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탕관, 다관, 주전자, 사발잔, 차시, 차건, 물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도는 한반도의 남단에서 꽃이 피었다. 본래 다도는 부처님께 차를 공양드리는 의식에서 생겨났다. 부처님께 올리는 차는 물을 끓이는 방식에서부터 마지막 찻잔에 올릴 때까지 하나하나 정성과 다례가 들어가야 했다. 아직 불교를 받아들이지 못한 북방은 그냥 막사발에 보리숭늉 들이마시듯 마시는 음차 풍습을 가지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불교가 전래된 가야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차공양의 영향으로 다례가 체계적으로 짜여져 높은 수준에 올라 있었다.
채희가 세 발이 달린 작은 솥인 탕관에 물을 끓였다. 차를 끓이는 채희의 옆모습을 보면서 언뜻 우시산국 달천 철장에서 함께 놀았던 소라와 고구려에서 질자 생활을 한 다혜, 광개토대왕의 딸 상희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모두 같은 또래들이었는데 채희만큼 이쁘게 자랐을 테지.’
하지왕이 채희에게 말했다.
채희가 끓인 차를 사발잔(사국 중 차문화가 가장 먼저 성립된 가야국의 전통찻잔은 사발잔이다.)에 따르며 말했다.
“마마, 저희 집은 원래는 우시산국 달천에 살았습니다.”
“달천이면 나도 어릴 때 있었던 곳이다.”
“가야가 신라 달천을 쳤을 때 우리 가족은 외가가 있는 이곳 비화국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전화를 당했구나. 이곳에 와서 고생이 많다.”
“아니옵니다. 이곳 비사벌 국읍은 건길지 한기님이 어질고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땅입니다. 저는 한기님의 은총을 입어 무희로 뽑혀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행복하다니 다행이구나.”
그러나 채희의 얼굴은 행복한 표정이 아니었다. 탕수의 김이 서린 그녀의 희고 아리따운 얼굴에는 한 줄기 수심의 그늘이 져 있었다. 탕수에 산차 잎을 넣자 차향이 방안을 은은히 감돌았다. 이 차는 가야 황차로 허황후가 수로왕에게 시집 올 때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차로 그 향이 깊고 풍미가 좋았다.
채희가 하지왕에게 차사발에 황차를 따랐다. 차를 따르는 자태가 마치 아까 춘 가야 춤사위가 이어지는 듯 자태가 곱고 아름다웠다. 하지왕이 두 손으로 큰 사발을 들고 황금 차를 마시니 마치 바다를 마시는 듯 속이 시원하고 그 향이 감미롭고 깊었다.
하지왕이 차를 음미하는 동안 채희가 가무를 추었다.
다전리에 봄이 오면 삼월이라 삼짇날에
다전리에 햇차 따서 만장샘에 물을 길어
어방산에 솔갈비로 밥물솥에 끓인 물에
천군님의 다한 정성 가야그릇 큰 사발로
천겁만겁 우려내어 가야차로 올립니다
-김해 차밭골(茶田 현재 동상동 일원)에서 채집한 차 민요(채집자, 김기원)
다희의 아름다운 가무는 계속되었다.
나라세운 수로왕님 십왕자의 허황후님
가락국가 세운 은혜 이 차 한 잔 올립니다
합장하고 비옵니다 가야사람 복받으소
잘못한 일 점지하소
채희는 마지막에 하지왕에게 합장하며 사뿐히 춤사위를 거두었다.
하지왕이 감탄하며 말했다.
“차중에 으뜸인 가야차 맛에 잘 어울리는 가무구나.”
“고맙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가야에 전해 내려오는 차 민요입니다.”
“자, 너도 한 사발 마시거라.”
“황송하옵니다.”
채희는 사발을 들고 하지왕에게 바짝 다가가 차를 받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마마께서 위험하십니다.”
방금 전 춤사위를 보일 때와는 전혀 상반된 긴장된 얼굴이었다.
“내가 위험하다는 것인가?”
“군 대장이 내일 연회 때 마마를 해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부러 마마의 침실 시중을 자청한 것입니다.”
하지왕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필시 군장령 강고내가 나의 목을 베어 신라장군 석달곤에게 바치려는 것일 게다. 건길지 한기는 이를 알고 있는가?”
“한기님은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강고내를 비롯한 신하들이 강청하여 마지못해 허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건길지마저. 헌데 너는 어찌 이 일을 나에게 알리느냐?”
“저희 아버지는 우시산국 달천 철장의 풀무대장이었습니다. 마마의 외할아버지인 박판수님의 밑에서 쇠둑부리 일을 했습니다.”
“하, 그런 인연이.”
채희의 아버지는 우시산국 달천에서 대대로 철장 일을 한 쇠부리공가였다. 그런데 골편수인 박판수가 다다라국 야로 철장에서 선진적인 철장 일을 배워와 달천 철장에 혁신을 가져왔다. 골구멍을 획기적으로 늘여 쇳물을 하루 열 관을 빼던 쇠둑부리를 백 관을 빼게 했고, 무쇠부질로 철정의 순도와 강도를 높였다. 골편수의 일을 가장 잘 알고 도운 이가 바로 풀무대장인 채희의 아버지였다. 여가전쟁 때 금관가야를 비롯한 가야연맹체의 침입으로 우시산국의 달천 철장은 가야의 수중에 떨어졌다. 가야군에 저항하던 채희의 아버지 풀무대장은 가야 병사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가 죽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채희는 여가전쟁에 참전한 비화가야의 한기 건길지의 포로가 되어 이곳 비사벌성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하지왕이 두 번째 우려낸 가야 황차를 마신 뒤 채희에게 말했다.
“그럼, 철장에서 함께 놀던 소라도 알겠구나.”
하지왕은 어릴 때 달천 철장의 쇠둑부리에서 함께 놀던 소라를 떠올렸다. 쇠둑부리 가마에 소라와 함께 떨어져 불이 들어오기 전에 숯더미를 헤치고 초롱구멍으로 간신히 탈출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소라는 달천에서 함께 자란 제 동무지요. 소라를 통해 마마의 소식을 듣곤 했어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라와 골편수 가족들은 가야군에게 잡혀 왜나라로 끌려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철을 만드는 쇠둑부리의 최고 야장인 골편수 박판수는 왜의 용병을 이끌었던 목라근자에게 잡혀 종발성을 통해 왜로 끌려갔던 것이다.
“왜나라로?”
“그러하옵니다.”
“전쟁으로 사람들을 고향 땅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이국 땅으로 떠돌아다니는구나. 허긴 나도 그런 신세야.”
하지왕은 어린 시절 고구려와 백제, 신가야의 남북대전으로 인해 아버지 회령왕이 전사하면서 신라와 가야와 고구려를 전전했으며 여가전쟁으로 인해 다다라국으로 내려왔다가 백제에게 빼앗긴 대가야를 외교와 전쟁을 통해 다시 회복하고 간신히 어라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박지가 신라장군 석달곤의 병력을 끌어들여 정변을 일으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상갓집을 돌아다니는 개 마냥 가야 땅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었다.
채희가 하지왕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어쨌든 마마는 내일이 오기 전에 이곳에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알겠다. 이 은혜는 내가 잊지 않으마.”
하지왕은 채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채희가 나간 뒤 하지왕은 건길지에게 삶은 곰발바닥 요리를 시킨 뒤 곧바로 우사와 모추를 불러 행장을 꾸린 뒤 말을 타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하지왕은 왜 급히 밤도와 비사벌성을 벗어났는지를 우사와 모추에게 설명했던 것이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비화국의 국경을 넘어 대사국(하동)의 낙노(악양) 땅에서 지리산 칠불사로 향하고 있었다. 칠불사에 머물고 있다는 석공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결국 호랑이 소굴에서 도망친 셈이군요.”
“그렇소.”
우사가 자책을 하며 하지왕에게 말했다.
“비사벌성이 호랑이 소굴인 줄도 모르고 저는 건길지와 손잡고 박지와 석달곤을 물리칠 생각을 했으니 제가 아둔했습니다. 헌데 건길지 그놈은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건길지는 무슨 죄가 있겠소. 강고내와 귀족들이 하도 성화를 부리니 마지못해 그런 것 아니겠소.”
하지왕은 건길지를 탓하지는 않았다. 다만 가야의 중심지이고 낙동강 중류의 좋은 영지와 수많은 인재를 가지고 있는 건길지가 가야의 맹주가 되지 못하는 까닭은 지도자로서의 첫 번째 자질인 결단력을 가지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고 변덕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사는 이제야 생각난 듯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마마, 헌데 비사벌성을 떠나기 전 뜬금없이 곰발바닥 요리를 시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곰발바닥 요리를 시킨 것은 곰발바닥을 삶는 것이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오. 나를 잡아 석달곤에게 넘기려는 건길지와 강고내를 잠시 방심하도록 한 것입니다.”
“시간을 끌고 적을 방심하게 한 것이라고요?”
“그렇소.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중국 한비자를 읽고 원용한 것뿐이오.”
“한비자에 곰발바닥 이야기가 있었나요?”
고금진문의 글월을 읽고 수많은 역사서를 섭렵했다는 태사령 우사도 곰발바닥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왕이 한비자의 고사를 설명했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초성왕 때 일이요.”
초성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한 아들은 태자 상신이고 그 동생은 배다른 아들 서자 직이었다. 초성왕은 점점 권력이 강해지는 태자 상신을 내쫓고 서자 직을 자신의 후계자인 태자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태자 상신의 모반이 두려운 왕은 기회를 엿보아 태자를 제거하려고 했다. 부왕이 태자를 제거하려 한다는 첩보를 들은 태자 상신은 앉아서 당하느니 차라리 선제공격을 하기로 계획했다. 태자는 야음을 틈타 자신에게 충직한 시위 군사들을 이끌고 궁으로 쳐들어가 아버지 초성왕을 포로로 잡았다.
아들에게 잡힌 초성왕은 태자에게 말했다.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
“부왕은 왕위에 앉은 지 45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욕을 버리지 못하고 태자인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이제 보위를 저에게 물려주시고 자진하십시오.”
초성왕은 태자에게 말했다.
“네 말 대로 자진하겠다. 하지만 내가 조금 전에 주방에 명해 곰 발바닥을 삶아오도록 명했으니 그것이나 먹은 뒤 죽으면 원이 없겠다.”
문제는 곰발바닥은 삶아서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초성왕은 반격의 기회를 엿보려고 곰발바닥을 먹고 죽겠다고 한 것이다.
부왕의 간지를 간파한 태자 상신이 말했다.
“아버지, 삶은 곰발바닥 요리는 안됩니다.”
태자는 삶은 곰발바닥 요리를 먹고 죽겠다는 부왕의 마지막 청을 매정하게 거절했다.
부왕은 끝내 곰발바닥 요리를 먹지 못하고 자식이 보는 앞에 목을 매어 죽었다.
하지왕이 우사와 모추에게 말했다.
“초성왕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한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이겠죠. 비록 초성왕은 실패했지만 장시간이 걸리는 곰발바닥 요리를 시켜놓고 그 틈을 타 도망치려고 한 초성왕의 지혜는 대단하지요.”
실제로 초성왕은 춘추시대 패자 중 한 사람이다. 즉위 후에 주나라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다른 제후국의 제후들과 결맹해 왕위를 공고히 했다. 북쪽 오랑캐들을 진압하고, 현국, 황국, 영국, 기국 등을 멸망시켜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다. 중원의 제나라와 패권을 다퉜고, 소릉의 결맹을 주도하여 잠시나마 중원을 장악하기도 했다. 말년에 성복의 전투에서 진나라에 패배한 뒤 그의 정복활동은 중단되었다. 죽기 전 태자의 자리를 서자 직에게 물려주려하다 오히려 태자 상신에게 반격을 당해 자살함으로써 45년의 통치를 마감했다.
하지왕이 말했다.
“곰발바닥 요리로 초성왕은 실패했지만 나는 성공했지요.”
“음식 하나에 그런 깊은 속뜻이 있었군요. 과연 영명하십니다.”
우사와 모추는 하지왕의 지혜와 박식에 감탄했다.
셋은 칠불사 계곡을 따라 반야봉 칠불사로 올라가고 있었다. 옥구슬 같은 맑은 계곡물이 돌 위를 구르는 정겨운 소리에 말 발걸음도 시원해졌다. 계곡물이 끊어진 곳에 작은 못인 영지가 나타나고 멀리 칠불사가 보였다.
우사가 한시를 지었다.
行到水窮處 坐看七佛寺
(행도수궁처 좌간칠불사, 물길 끊긴 곳에 다다라, 앉아서 칠불사를 보네.)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여기 우리가 앉은 바위는 김수로왕과 허왕비가 앉아 영지를 보던 곳입니다. 왕과 왕비는 이곳까지 와서 수도하는 칠왕자를 보지 못하고 이 영지 못에 비친 일곱 아들의 그림자를 보고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갔던 자리지요.”
아들을 출가시킨 김수로왕 부부는 아들들이 보고 싶어 금관항에서 배를 타고 남해바다를 거쳐 섬진강으로 올라와 지리산 골짜기에 찾아왔다. 하지만 왕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수도 중인 왕자들의 마음이 흐트러질까봐 상봉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안타까운 사연이 담긴 못이군요.”
이들은 말에서 내려 칠불사 경내로 들어갔다.
마당을 쓸던 상좌 하나가 나와 하지왕 일행을 맞이하며 말했다.
“석공스님께서 하지대왕 마마를 아자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지왕 일행은 칠불사 아자방을 찾아갔다. 아자방은 반야봉 하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있는데 넓은 마당 건너편에는 계곡물을 모은 연당과 무산 12봉이 있어 들어가는데 몸을 감싸는 영기를 느꼈다.
아자방에 들어가니 석공스님은 탕관의 물을 숙우에 따르고 있었다.
“하지대왕마마, 어서 오십시오. 마마가 오실 줄 알고 소승이 미리 찻물을 끓여놨습니다.”
“스님, 이 깊은 산속에서 저희들이 온다는 걸 어떻게 아시고 동자를 보내셨는지요?”
석공이 합장하며 큰절을 한 뒤 말했다.
“옛말에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본다는 말이 있습지요. 저도 조금 눈이 틔여 볼 뿐입니다. 헌데 만물이 향기로운 태탕한 봄날에 세 분의 몸에서 깊게 배인 땀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어디선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피신하듯 급히 달려오신 듯합니다.”
하지왕은 석공의 통찰력과 신통함에 놀라 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운수행각으로 햇볕에 탄 검붉은 얼굴과 유난하게 길고 짙은 눈썹 살이 튀어나왔으며, 눈빛은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을 듯 날카롭게 빛났다. 민머리인 스님의 두상은 둥글긴 한데 원만하다기보다 울퉁불퉁했으며 체형은 승복 위로 근육과 뼈가 드러날 정도로 강골이었다. 능히 운수행각과 풍찬노숙으로 가히 세계를 일주할 만한 모습이었다.
“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사실 비사벌성에서 우리의 목을 베려는 건길지를 피해 닭이 꽁지 빠지듯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지왕은 석공스님과의 첫 만남에서 한방을 맞은 듯 얼떨떨했다.
“자, 여기는 안전한 곳입니다. 편안하게 차들을 드시지요. 이 차는 부처님과 칠불에게 공양하는 지리산 야생차입니다. 이 차 한 잔 마시면 세상의 번뇌는 사라지고 마음이 아늑하게 다스려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하지왕이 차를 마시니 그 향이 그윽하고 맛이 쌉쌀하면서 감미로웠다.
“명산 지리산은 다른 산들에 비해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낮밤의 기온차가 커 차향을 진하게 하고, 지리산 운무는 차향을 더욱 응축시키지요.”
“가야 황차와는 또 다른 맛이군요.”
“허왕비가 천축에서 가져온 가야 황차도 그 맛이 탁월하지만 물맛이 여기와 다를 겁니다. 물은 다도의 체로서 가장 중요하지요. 가볍고, 맑고, 차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없고, 비위에 맞고, 탈이 없는 팔덕을 지닌 물을 사용해야 차 본래의 맛이 살아납니다.”
“아, 그렇군요.”
“물의 팔덕을 살펴, 물맛의 우열을 가리는 것을 품천이라고 하는데 소승이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샘을 찾아 품천한 결과, 오대산의 우통수가 물맛의 으뜸이고, 낭자곡성(충주. 낭자, 낭성으로 불리다 신라 때 국원, 고구려 때 중원으로 바뀌었다.)의 달천수가 버금이며, 세 번째가 속리산 삼타수였소. 헌데 그 셋을 합쳐도 지리산 칠불계수를 못 따라오지요.”
하지왕은 차도 따뜻하고 방바닥도 방금 불을 지핀 것처럼 따뜻해 몸이 훈훈해졌다.
“방이 참 따뜻합니다.”
“여기가 한번 군불을 때면 백일 동안 따뜻하다는 칠불사 아자방이지요.”
석공스님이 아자방의 구들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곳 아자방에서 며칠을 머물고 가면 겨울 한 철은 견딜만한 힘이 생기지요.”
아자방은 지리산 반야봉 남쪽 아래 위치한 칠불사 경내 서쪽에 있다.
맞배지붕을 한 익공이 없는 건물로 우측이 정주간이고, 왼쪽이 온돌방인데 바닥의 구들모양이 아(亞)자형이어서 아자방이라 불린다. 온돌의 구조가 특이하여 바닥 높이가 다르게 2단 구조로 되어 있고, 경계면이 ㄷ자형으로 가운데가 팬 모양이어서 바닥의 전체 모양이 아자형이다. 아자의 곳곳마다 놋쇠판을 대고 굴뚝에는 열을 조절하는 놋쇠판을 장치해 온돌의 열효율을 높이게 만들었다.
아궁이의 깊이는 7자나 되어 사람이 지게를 지고 들어갈 만큼 깊고 넓으며 불을 한번 때면 온돌이 식지 않고 백일간이나 따뜻하다는 것이다.
하지왕이 석공스님에게 말했다.
“입구의 영지도 그렇고 아자방 하며 이곳 칠불사에는 신비로운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명산이 되려면 좋은 절이 있어야 하고 좋은 절이 되려면 좋은 스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정말 이곳 칠불사에 석공 큰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셔서 지리산이 명산인 듯합니다.”
“무슨 과찬의 말씀을 하십니까? 소승은 이곳에 주석하지도 않은데다 좋은 스님도 못되고 인연이 닿는 데마다 운수행각하는 일개 걸승에 불과합니다.”
“사실 저희들은 혜안이 뛰어나신 석공스님의 명성을 듣고 불원천리하고 이곳 칠불사를 찾았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석공스님이 염주를 굴리며 말했다.
“부족한 소승이 감히 말씀드리면 가야일통의 대업을 이루기에는 비화가야의 위치가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건길지는 원숭이처럼 귀가 얇고 변덕이 심할 뿐 결단력이 부족해 능히 대업을 이룰 군주가 되지 못합니다. 필시 마마를 호의로 초청해서 악의로 쫓아낸 것이겠지요.”
“과연 그러합니다.”
“지금 가야제국의 왕과 한기 중에는 대업을 이룰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금관가야의 이시품왕은 가야 왕가의 적통에다 장자로서 그 꿈도 크고 원대하지만 속이 협량하고 욕심이 많아 실패했습니다. 백제의 아신왕과 왜왕과 손잡고 신라로 쳐들어갔으나 가야국의 절반을 잃고 아라가야의 속국이 되어 연명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아라국왕은 어떠합니까?”
“아라국왕은 현재 가야제국에서 가장 힘이 있어 대업을 이루기에는 가장 좋은 분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고구려 광개토왕과 신라 실성 임금의 노객에 불과합니다. 오랫동안 아라국은 금관국에 짓눌려왔고 왕은 주변의 한계 속에서 스스로 제한해 조금도 대업의 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강한 군주 아래서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개로서 만족하고 있지요.”
“과연 그러합니다.”
지리산 심산유곡에 앉아 날카롭게 인물평을 하는 석공스님의 말에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태사령 우사가 석공스님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가야일통의 대업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분입니까?”
석공이 긴 눈썹 밑에 묻힌 형형한 눈으로 한동안 하지왕을 보더니 무겁게 말을 꺼냈다.
“대업을 이룰 분은 바로 여기에 앉아 계신 하지대왕님입니다.”
우사와 모추는 그러면 그렇지라고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하지왕은 고개를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저는 나이도 어린데다 나라도 빼앗겨 동가식서가숙 하고 있는데다 적의 수중에 두고 온 어머니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대업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저는 빼앗긴 제 나라를 다시 찾는 방법이 없겠는가 하고 스님을 찾아뵈러 온 것입니다.”
석공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오래전부터 영명한 하지대왕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제가 상을 좀 봅니다만 용안을 보니 제왕의 관상인 봉황상입니다. 총기가 서려 있는 봉황의 눈과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명예롭게 펼쳐진 매 눈썹, 지혜롭게 솟아있는 매끈하고 윤택한 이마, 소신과 결단력이 있는 일매진 입술과 인내심이 있는 강인한 턱선이 대업을 이룰 상입니다. 다만, 아직은 봉황이 되어 날기 전 금계에 머물고 있는 초년운이라 구사일생의 간난신고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왕이 말했다.
“좋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만 저는 유복자로 태어나 고아와 질자로 자라난 고립무원에 빠진 고자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스님을 찾아왔으니 스님께서 저의 스승이 되어 갈 길을 밝혀 주십시오. 제가 찾아온 목적도 그것 때문입니다.”
우사도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스님의 말씀대로 하지대왕께선 영명하고 훌륭한 적통을 가졌습니다. 회령대왕 이후 대가야의 하지대왕은 능히 가야의 맹주가 되어 대업을 이룰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명한 왕사를 얻지 못해 제가 보필했지만 저의 아둔함으로 인해 심흑의 대가인 박지가 집권함으로써 대가야의 보위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현재 우리 대왕께선 강태공과 제갈공명을 만나기 전의 주무왕과 유비처럼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천하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부디 스님께서 하지대왕의 왕사가 되어 나라를 되찾고 대업으로 가는 길을 밝혀 주십시오.”
석공스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유랑걸승이오. 오직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저를 잡아둘 수가 있습니다. 며칠 후면 저는 또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나야 합니다.”
셋은 일제히 엎드려 간청했다.
“스님, 부디 왕사가 되어 주십시오.”
석공스님은 눈을 감고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더니 이윽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어차피 운수행각을 하는 걸승이라 왕사로서 적당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석공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제가 하지대왕의 왕사로서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사물국(사천) 와룡산 백천에 살고 있는 명림원지라는 분으로 명성이 높아 와륵선생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우사가 물었다.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명림원지는 유불선을 아우르고 천문지리와 병법에 통달한 자로서 능히 마마를 대업으로 이끌 분입니다.”
“하지만 석공스님보다 뛰어나진 않겠지요.”
“저는 그에 비하면 태양빛에 반딧불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보다는 열배나 현명한 분입니다. 주무왕의 강태공, 한 유방의 장량, 고국천왕의 을파소, 촉한의 제갈량의 맥을 이을 인재입니다. 제가 서서 겨우 백리를 본다면 그는 앉아서 천리를 보는 분이지요.”
“헌데 와륵선생은 출사를 하지 않고 왜 와불산 백천에 사시는 것입니까?”
“명림원지는 원래 이름난 고구려의 국상 명립답부의 후손으로 고조부 때 역모에 연루돼 집안이 모조리 숙정을 당한 뒤 남하해서는 일절 정가에는 나가지 않는 것을 명림가의 가훈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를 왕사로 모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소승도 모릅니다. 제의 환공이 삼훈삼욕(三薰三沐, 세 번 향으로 몸을 정하게 하고 세 번 목욕한다는 뜻. 제의 환공이 삼훈삼욕을 한 뒤 관중을 맞이한 데서 나온 고사)하고 관중을 맞는 것이나 고국천왕이 농사짓는 을파소를 세 번 찾은 삼고농을, 유비가 제갈공명을 맞기 위해 삼고초려한 정성으로 그를 찾는다면 응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왕이 말했다.
“저는 환공과 고국천왕, 유비와 같은 제왕호걸도 아닌데 저의 무엇을 보고 명림원지가 출사하겠습니까.”
“그것은 대왕께서 그를 맞이할 홍복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