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작성일 : 2021.05.03 09:37
대가야제국의 부활(16)
제3부 하지왕의 가야제국(4)
김하기
달기는 땅콩껍질처럼 몸은 자그마하지만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것은 들어가 오목조목한 몸의 비율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그녀의 작은 몸을 직선으로 풀어내면 수평선처럼 길게 보이리라. 달기는 입담도 세서 지아비로 섬긴다는 녹림두령 구투야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은 다했다.
“주막의 주모란 이빨 빠진 막걸리 사발처럼 이런 길손 저런 과객에게 내둘리는 게 당연하지요만 그날따라 그 손님은 정말 기분 나쁘게 지분거리는 거예요.”
과객은 우시산국의 소금장수로 성산가야로 가기 위해 검바람재를 넘어가려다 날은 어둑신하게 저물었는데 개소리가 캉캉 들려 간신히 주막을 찾은 것이었다.
소금장수는 해 저문 때 주막을 찾았으면 그저 숙식 해결에 고마워해야 하거늘 개뿔 난 사내의 허영심으로 버릇대로 달기에게 수작을 걸었다.
“난 말이야. 우시산국의 큰 염전에서 일하다 몇 해 전부터는 전국을 돌며 소금을 파는 매염부가 됐지. 돈도 많고 보시다시피 근육도 장난이 아니야.”
소금장수는 쌈지를 열어 오수전을 보여준 뒤 소매를 걷어 햇볕에 그을린 검고 울퉁불퉁한 근육을 내보이며 자랑했다. 소금장수는 초저녁 막걸리에 취해 다짜고짜로 달기의 저고리 섶에 손을 밀어 넣으려고 했다.
달기는 손으로 과객의 손등을 쳐내며 말을 걸었다.
“난 돈 많고 힘 좋은 사람을 좋아하죠. 하지만 아무리 급하기로소니 저고리 섶에 손부터 넣으려는 이리 예의 없는 사람은 아주 싫어하죠.”
“주모에게도 예의정절이 있는가?”
“산골주막에서 양반집 예의정절을 찾으시겠다? 그럼, 저기 밖에 있는 개에게 예의 정절을 찾으시던가? 돈도 많으신 분이 이런 초라한 주막에서 왜 이러실까? 고개 넘어 국읍에 흥성히 있는 홍루 기루에 가시면 될 텐데.”
“좋아. 홍루 기루만큼 돈을 주지. 옛다 금 한 냥 소금 한 자루다.”
소금장수는 돈을 던지고 문에 빗장을 지르며 말했다.
“싫어요. 소리를 지르겠어요.”
“깊은 밤 산전막 주막에서 맘껏 소리 질러봐. 호랑이나 찾아올까.”
소금장수는 그녀를 우악스레 바람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녀를 뒤로 돌린 뒤 치마를 걷어 올리고 급하게 고쟁이를 내렸다. 거친 힘에 고쟁이가 찢어졌다.
“아, 악.”
그녀가 반항하며 소리를 질렀다.
소금장수는 뒤에서 그녀를 제압하며 소금처럼 하얀 둥근 박 속으로 근을 밀어 넣으려 용을 썼다.
그때였다. 호랑이처럼 사납게 생긴 창대수염이 발로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창대수염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지를 내리고 엉거주춤 앉아 있는 소금장수의 사타구니를 강하게 걷어찼다.
“윽.”
소금장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구투야는 발바닥으로 놈의 목울대를 짓밟고는 말했다.
“난 이 산의 녹림 두령 구투야다. 감히 내 마누라한테 손을 대?”
소금장수는 목을 캑캑거리며 버둥거리다 축 늘어졌다.
주모는 저고리를 추스르고 치마말기를 여미며 말했다.
“고맙습니다만 헌데 당신이 누군데 나를 당신의 마누라라고 허요?”
“주모, 지금부터 내 마누라 하면 될 것 아냐.”
주모가 고리눈에 창대수염이 난 구투야를 보며 말했다.
“예? 저더러 당신 마누라가 되라구요? 이건 갈수록 첩첩산중이고 늑대를 쫓아내니 호랑이를 만난 격이네.”
“왜 내 얼굴이 험상궂게 생겨서 싫어?”
그녀는 구투야에게 사추리를 걷어차이고 널브러져 있는 소금장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얼굴만 보면 차라리 저기 소금장수 마누라가 되는 게 훨씬 낫겠네요. 그냥 잠자코 있으면 고마운 줄 누가 몰라요? 얌전히 한 코라도 달라면 줄 수 있는데 뜬금없이 마누라는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냐고요?”
“주모의 입이 걸군. 저놈은 널 강간하려 한 놈이야. 어찌 감히 널 구해준 나와 비교하느냐.”
주모는 팔짱을 끼고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얼굴만 보면이라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야차처럼 험하게 생긴 화상이 들어오길래 난 같은 작자들인 줄 알았네요.”
“자꾸 저 놈 이야긴가. 여봐랏!”
구투야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범강장달 같은 부하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조아렸다.
“저기 소금장수를 치워라. 주모를 겁간하려 한 놈이다. 저놈의 말과 소금과 짐바리는 모두 산채로 가지고 가라.”
“네, 두령님.”
부하들이 소금장수를 붙잡아 데려간 뒤 주모가 놀라며 구투야에게 말했다.
“당신이 그 악명 높은 이 검바람재의 산적 두목이에요?”
“주모, 녹림당 두령을 이렇게 홀대해서 되나. 탁배기라도 얼른 내 와야 예의지.”
“사람의 껍질을 벗긴다는 산적 두목이 무슨 똥 같은 예의 타령이야.”
“내가 사람의 껍질을 벗긴다고? 그래, 오늘 밤 당신의 껍질을 홀랑 벗겨줄까?”
살기 위해 험한 산속으로 들어온 주모 달기도 입심에서는 추호도 질 생각이 없었다.
“당신이 내 껍질을 벗기기 전에 난 당신의 살로 인육만두를 해 먹을 거예요.”
검바람재 산적 두목과 검바람재 주모는 이렇게 첫 조우를 하고 서로 인연을 쌓아나가다 결국 주모는 위험한 검바람재 주막에서 구투야의 산채로 짐을 옮겼다. 고구려의 침입으로 가족은 절단 나고 혈혈단신이 되어 금관가야를 떠난 둘은 산적과 주모일망정 서로 의지가지가 되었다.
달기는 구투야의 산채에 온 하지왕과 우사, 모추에게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접대했다.
그녀는 구투야와 좌중을 보며 말했다.
“포로로 잡아온 비화가야의 한기인 건길지도 여기로 오게 하면 안 될까요?”
구투야가 달기에게 말했다.
“건길지는 안 돼. 장차 석달곤에게 건길지의 몸값을 톡톡히 받아낼 거야. 놈은 산채 감옥에서 실컷 고생해야 돼.”
그때 하지왕이 구투야에게 말했다.
“구투야 두령, 건길지를 데려오는 게 어떻겠소. 내가 오면서 보니, 건길지는 비록 포로로 잡히긴 했지만 얼굴에 비굴함이 없고 말에 조리가 있고 걸음도 흐트러짐이 없었소. 비화가야를 다스릴 만한 인물로 보였소.”
“마마, 하오나 석달곤과 손잡고 우리를 협공해서 죽이려고 한 놈이옵니다. 더욱이 가야를 배반하고 고구려의 하수인인 신라와 붙어 묵은 매국노인데 어떻게 그런 놈을 불러 이 자리를 더럽히겠습니까?”
“두령, 지금 가야제국이 사분오열 된 마당에 가야나라 수장 중 오롯이 가야연맹체에 뜻을 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겠소?”
“......”
“가야연맹국의 맹주였던 금관가야와 대가야가 고구려와 신라에게 짓밟힌 뒤 가야의 여러 나라들은 제 각각 뿔뿔이 흩어져버렸소.”
왜와 가까운 금관가야(김해)와 아라가야(함안), 구례모라(함안 칠원)와 독로국(동래) 4국은 고구려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고, 낙동강 강안과 낙동강 위에 있는 미리미동국(밀양), 마차해국(삼랑진), 삽라국(양산), 감문국(김천), 주조마국(김천 조마), 이서국(청도)은 신라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지리산 서쪽 옛 마한 땅에 설치한 가야 6국인 상기문(임실, 번암), 하기문(남원), 상다리(순천, 광양), 하다리(여수, 돌산), 사타(고흥), 모루(무안)는 여가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백제가 먹어버렸다. 더욱이 현재 북가야의 맹주였던 대가야는 정변이 일어나 신라로 넘어갔고, 가야의 중심에 있는 비화가야(창녕)와 마수비국(창녕 영산)마저 신라의 영향권 아래 들어갔다.
이제 가야 땅으로 남은 데라곤 남해안과 지리산 동쪽 자락에 있는 고자국(고성), 자타국(진주), 걸손국(산청), 임례국(의령), 사이기국(의령 부림), 다라국(합천), 미오야마국(합천 묘산), 사팔혜국(합천 초계), 산반해국(합천 삼가), 거열국(거창), 대사국(하동), 사물국(사천)이 간신히 버티고 있다.
하지왕이 이어 말했다.
“가야제국들은 고구려, 신라, 백제의 속국이나 신국이 되었고, 심지어 왜의 신하가 되려는 한기들도 있소. 하지만 건길지는 신라의 사주에 넘어갔지만 그 집안은 변한시대부터 비화와 마수비를 가야의 중심으로 일으켜 세운 명문가였소. 석달곤에게 몸값을 받아내는 것보다 건길지를 설득해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이익이 클 것이오.”
하지왕은 어렸으나 그의 말은 사개가 딱딱 맞고, 미래를 보는 눈이 있었다. 우사, 모추, 소마준, 달기가 하지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녹림두령도 하지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과연 명성대로 영명하신 군주이십니다. 소마준, 건질지를 이 자리에 모셔오너라.”
구투야가 소마준에게 명했다.
구투야는 젊고 영명한 하지왕이 가야에 있는 한, 가야제국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마준은 석달곤에게 몸값을 받으려고 산채 감옥에 가두어놓았던 건길지의 포박을 풀어 산채 본가로 데려왔다.
비화가야의 한기, 건길지는 변한시대부터 비화(창녕)와 마수비(창녕 영산)를 가야의 중심으로 일으켜 세운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진국왕의 통치 아래 있던 변한시대, 건길지의 선조 건달부는 영남의 곡창지대인 낙동강 중류인 비화에 들어와 선주민을 정복하고 새로운 성곽을 세우고 불사국(창녕의 옛 이름)을 건국했다. 서남쪽을 흐르는 낙동강의 영향으로 비화지역은 고대로부터 사람이 거주했고, 고대인들의 거주 흔적인 각종 지석묘가 남아 있고, 기후가 온난하고 민심이 따뜻한 곳이다. 건달부의 불사국은 변한에서 가야로 넘어오면서 국명이 비화가야로 바뀌었다. 비화가야는 김수로왕의 금관가야, 이비가지의 대가야 못지않게 강력한 왕권과 정비된 제도, 풍부한 물산을 가진 왕국이었다. 때문에 예로부터 비화지방에는 신지와 한기, 귀족들이 묻힌 큰 무덤들이 많고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다른 국읍보다 외려 높았다. 낙동강 수로를 이용한 곡물시장과 어시장이 발달하여 의식주와 관련한 물품이 다양하게 거래되고, 선주민의 고유문화가 전해 내려와 나라는 작지만 문화대국으로도 불리었다.
하지만 가야연맹체가 와해되고 비화벌판의 젖줄인 낙동강 수로마저 신라가 장악하자 건길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건길지는 비화가야의 생존을 위해 신라장군인 석달곤과 손을 잡고 하지왕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길지가 녹림의 산채로 들어오자 하지왕이 예를 갖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왕이 일어서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건길지에게 예를 갖추었다.
“한기님, 반갑습니다.”
“마마, 제가 어리석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건길지는 하지왕에게 사죄의 큰 절을 올렸다.
“무슨 말씀을. 다 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지왕이 겸손하게 말했다. 건길지가 가까이서 하지왕을 보니 청소년이지만 인물이 비범했다. 이마는 희고 반듯해 총명해 보였고, 눈썹은 짙고 골격이 단단해 무골의 기상이 서렸으며, 눈은 가늘고 긴 봉안으로 제왕의 눈이었다. 옥골선풍의 기상이 서려 비록 녹림의 산채에 있을망정 한눈에 지체 높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탕한 구투야가 나서며 말했다.
“자, 앞에 있는 각배에 술을 채우세요. 하지왕께서는 황금각배에 채워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지왕의 대가야와 건길지의 비화가야, 그리고 이시품의 금관가야가 하나 되어 옛날 가야의 영광을 되찾읍시다. 자, 마마께서 건배사를 해 주시죠.”
“하나 된 가야를 위하여!”
“하나 된 가야를 위하여!”
이들은 각배를 들고 나발을 불 듯 마셨다.
술을 마신 뒤 태사령 우사가 뚜벅 말했다.
“비화가야 건길지 주변에는 현자들이 많이 몰려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우사의 말에 건길지가 답했다.
“처음엔 저도 비화가야를 가야의 중심으로 만들려고 이웃나라로부터 많은 인재를 영입했지요.”
빛벌가야라고 불리는 비화가야는 낙동강 중류에 위치한 곡창지대로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싹튼 곳이다. 이른 시기에 국가가 형성되었는데, 변한시대에는 불사국으로 불리었다. 비화가야의 한기 건길지는 가야의 맹주인 대가야와 금관가야가 차례대로 고구려에게 짓밟히자, 자신이 낙동강 권역에 맹주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다. 건길지는 멸망한 나라의 인재들을 비화가야로 영입해 예로 대접하고, 나라에 상등의 벼슬을 주고, 땅을 주어 식읍으로 삼게 했던 것이다.
우사가 물었다.
“빛벌에는 어떤 인재들이 있습니까?”
“금관가야에서 온 목라근자와 목만치, 대가야에서 온 염사치, 다사국(하동)에서 온 소공스님이 있습니다.”
“목라근자 목만치 부자와 염사치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대사국의 소공스님은 금시초문입니다.”
“소공스님은 특별한 인재지요. 지리산 반야봉 칠불사에 주석하는 스님인데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혜안을 갖추고 있어, 제가 왕사로 모셨지요.”
소공은 어려서부터 칠불사에 사미승으로 출가했다. 칠불사는 소승불교의 전통을 갖고 있는 남방불교의 본사였다. 그는 허황후와 함께 가야로 온 장유화상의 소승불교의 전통 대로 경,율,론을 힘써 닦아 아라한이 되기 직전까지 용맹정진을 했다.
헌데 낙노국과 지리산이 왜구와의 전란에 휩싸이면서 그는 승병으로 출사해 왜구를 죽이는 살인계를 범하게 되었다. 사람을 죽여 스스로 파계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소공은 바람과 구름을 따라 떠도는 운수행각을 하다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중국 종남산에 들어간 그는 스승 금강법사를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소공의 스승 금강법사는 중국 인도 중부에서 출생했다. 열 살 때 인도 나란타사에 출가하고 대중부에서 불교를 연구한 뒤 중국으로 포교를 와 불교를 크게 펼쳤다. 종남산에 도량을 연 금강법사는 눈 푸른 납자 소공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는 의식인 관정을 베풀었다.
금강법사가 관정을 행하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소공의 이마로부터 흰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흰빛의 발산으로 소공의 묵은 악업이 정화되고 분별망상을 일으키는 무명의 장애가 사라졌다.
건길지가 우사에게 말했다.
“사실 이번 검바람재 원정을 유일하게 반대한 사람이 소공스님이었는데 제가 마음이 조급해 성급하게 군사를 움직이다 이런 낭패를 보았지요.”
소공은 이번 비화가야군의 출정을 반대하며 건길지에게 말했다.
“만약 이번에 출정하면 주군께선 조롱 속의 새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강약이 부동이네. 강한 신라 편에 붙어서 공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와 왕실이 멸망할 것이네.”
건길지는 소공의 반대를 물리치고 출정했지만 소공의 예언대로 구투야 녹림당에게 포로가 되어 조롱 속에 갇히는 새가 되고 말았다.
“스님이 이런 말도 했습니다. 비록 싸움에 져서 조롱 속의 새가 되더라도 귀인을 만나 주군의 앞날은 더 활짝 필 것이니 인연을 소중히 하라는 것입니다.”
우사가 건길지에게 말했다.
“과연 용한 스님이오.”
“소공스님을 비롯해 많은 현자, 지자, 용자를 두루 구했으나 저가 용렬해 용인술을 잘 쓰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건길지는 구현령(求賢令, 현명한 인재를 구함. 이는 용인술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음)에는 성공했을지언정 용인술에 실패했음을 고백했다.
하지왕이 건질지에게 말했다.
“제가 소공스님을 한번 찾아뵈어야겠군요. 앞으로 저와 대가야, 더 나아가 가야연맹국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워낙 운수행각을 좋아하는 스님이라서 만나려면 미리 기별을 해놓아야 합니다만 지금은 아마 화왕산 관룡사에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며칠 내로 찾아가서 뵙도록 합시다.”
“언제든 분부만 내리십시오.”
하지왕은 깊은 구투야의 산채에서 비화가야의 한기 건길지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소공이라는 인재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어 기뻤다.
건질지는 소공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가야 대사국 출신의 소공은 중국을 건너가 금강법사의 제자가 되었다. 소공은 유달리 다리가 튼튼하고 눈빛이 형형해 금강법사는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19세의 이 푸른 납자를 눈 여겨 보고 있었다. 금강법사는 자신을 대신해 고향으로 보낼 제자를 찾고 있었다.
금강법사는 고향 인도의 중천국을 떠난 지 10년, 자신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처지에서 자신의 제자를 보내 고향에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헌데 소공은 형안에 건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금강법사가 관정을 베풀 때 소공의 미간에서 백호광명이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기적을 보았다. 금강법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만트라를 외며 관정을 베풀었지만 이처럼 신비한 도력을 보긴 처음이었다.
관정이 끝난 어느 날 금강법사는 소공을 불러 말했다.
“소공, 나의 길을 되밟아 인도에 가고 싶은가?”
소공이 금강법사에게 말했다.
“어린 소승이 어찌 감히 큰스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중국 땅에 와서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고, 새사람은 옛사람을 바꿔친다는 도리를 알았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의발을 물려주려고 하네.”
“하지만 허물이 많아 아라한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소공은 가야 칠불사에서 머리를 깎고 부처님께 귀의했으나 대사국에서 왜놈을 죽이는 살인귀라고 악명을 떨쳤다. 그것 때문에 소공의 가족이 왜군에게 보복당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가야 땅에서 홀연히 사라져 중국으로 건너가 금강법사의 제자가 되었지만 머나먼 중국 땅에서도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업화는 끌 수 없었다.
“부처님은 업장이 많은 자를 크게 쓰시지. 불법의 범종을 치는 자, 크게 치면 크게 울리고 작게 치면 작게 울리지. 화병의 감로수로 관정을 베풀 때 네 이마에서 흰빛이 솟아나는 걸 보았다. 넌 부처님의 가피를 특별히 입은 몸이다. 이제 나의 의발을 물려줄 제자를 찾게 되어 기쁘구나. 옴마니바메온.”
“감당할 수 없나이다.”
“너는 떠나야 한다. 나의 고향 천축으로 가서 성적을 밟고 오너라. 그곳에서 부처님을 만나야 한다. 가는 길에 내 고향에 들러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이제 늙은 몸으로 그 먼 땅으로 갈 수가 없구나.”
소공은 열아홉 젊은 나이에 스승 금강법사의 명령으로 감당할 수 없는 먼 길을 향해 떠나라는 명을 받았다. 소공은 스승의 권유와 명령만으로 무작정 그 머나먼 천축의 길을 떠날 수는 없었다. 소공은 인도에서 한 단계 거쳐 온 중국불교의 대승적 수행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인도에서 곧바로 가야로 건너온 가야불교의 뿌리를 찾아야겠다는 내면의 구법정신이 그 먼 길을 떠나려는 마음을 움직였다.
가야의 남방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된 북방불교보다 삼백여년이나 빨리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가 전래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야불교는 백제 침류왕 때 인도승 마라난타가 전래한 불교보다도 삼백년 이상 빨랐다.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 올 것을 예견하고 그녀를 기다려 아내로 맞이한 후 불교를 받아들여 광명개천, 쌍어생민을 가야의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금관가야의 동쪽 서상에는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대릉이 자리하고 있다. 대릉의 신도비에는 광명개천(光明開天)을 상징하는 태양문이 새겨져 있고, 대릉의 납릉문에는 쌍어생민(雙魚生民)을 뜻하는 쌍어문이 그려져 있다.
소공은 금강법사에게 말했다.
“큰스님, 명을 받들겠습니다.”
금강법사는 마침내 자신의 후계자를 찾게 된 것이다. 밀교에서는 스승이 관정의식과 환생관법을 통해 후계자를 선정한다. 토번(티벳) 불교에서는 제자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전생이 스승이라면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하지왕이 소공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건길지에게 말했다.
“그럼, 소공스님은 천축에 갔다 오신 겁니까?”
“그게 좀 모호합니다만 소공스님을 직접 만나 물어보시고 이야기를 들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쨌든 참으로 귀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나가면 꼭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집 밖에서는 산바람이 윙윙 불고 있어도 온돌을 지핀 구투야 산채의 실내는 아늑했다. 하지왕, 우사, 모추, 구투야, 달기, 소마준, 건길지는 방 가운데 긴 나무탁자에 둘러 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랑이 가죽으로 장식된 중앙 의자에는 하지왕이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우사, 왼쪽에는 모추, 그리고 호피의자 반대편에는 구투야와 달기, 소마준과 건길지가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갖가지 기명들이 올라와 있었다. 가장 높이가 높은 가야토기 장경호에는 청주가 가득 들어 있고 중간 높이의 굽달린 긴목항아리에는 탁주가 들어 있었다. 기대 위의 그릇에는 소금에 절인 청어와 꼬막조림 가야인들이 즐겨먹는 꿩 백숙이 올라와 있고, 낮은 접시에는 육포와 멧돼지수육, 산채나물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왕이 소금에 절인 청어살을 한 점 뜯으며 말했다.
“진수성찬입니다. 이 정도의 음식이면 우리 대가야의 궁중음식 못지 않습니다.”
달기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산채음식을 감히 궁중음식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대왕께서 이 누추한 곳에 오신 날이라 긴장하며 요리를 했지요. 모두들 잔이 비었네요. 제가 다시 잔을 채워드리겠습니다.”
달기는 탁주가 든 오리 주자를 들고 각배에 술을 따랐다.
각배가 채워지자 구투야가 꺽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비화가야의 건길지 한기께서 건배사를 하시죠.”
“대왕마마께 대적하다 포로가 된 제가 어찌 감히 건배사를......”
하지왕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왕좌에서 쫓겨난 몸입니다. 그리고 여기선 실제로 가장 높은 어른이시니 건배사를 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부족한 저희들을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무슨 말씀을요. 하지왕께선 대가야의 위대한 왕, 회령대왕을 잇는 가야연맹의 맹주이십니다. 하지왕께선 소신의 주군이시고 저는 영원한 신하일 따름입니다.”
구투야가 퉁을 놓듯이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요. 하지만 하지왕도 원하시니 건배사를 하시죠.”
너도나도 건길지에게 건배사를 채근하자 건길지는 마지못해 잔을 들었다.
“그럼 소신이 결례를 무릅쓰고 건배사를 하겠습니다.”
“하지왕의 대업을 위하여!”
“하지왕의 대업을 위하여!”
모두들 잔을 높이 들고 우렁차게 제창했다. 박지의 찬탈로 대가야의 왕위를 잃은 하지왕은 검바람재 녹림당의 산채에서 부하들과 재기를 꿈꾸고 있었다.
구투야의 산채에서 하지왕, 우사, 모추, 구투야, 달기, 소마준, 건길지가 서로 의기투합해 밤새 술을 마시며 군신관계의 의를 다졌다.
다음날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건길지와 함께 검바람재 산채를 내려왔다. 건길지는 하지왕 일행을 비화가야의 국읍 비사벌성(비사벌은 창녕군의 옛이름이다. 비사벌은 불사국으로 바뀌고 다시 비화가야로 확대되었다. 참고로 비사벌은 백제시대 전주의 옛이름이기도 하다.)으로 초청했다. 건길지는 하지왕에게 아예 비사벌성에 머무르면서 대업을 도모하라고 청했다. 건길지의 대접은 극진했다. 연일 진수성찬이 올라오고, 악공들의 장단에 아리따운 무희들이 가무를 추었다. 하지만 하지왕은 하루바삐 소공스님을 뵙고 대업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었다. 하지왕은 비사벌성에 머물라는 건길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싶었으나 비화가야의 군장령인 강고내가 강청을 하고 우사와 모추도 안주하려는 기색이 보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닷새가 지나자 하지왕이 건길지에게 말했다.
“공은 매일 진수성찬에 음주가무를 즐기게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인데 무엇인들 아깝겠습니까? 대가야를 회복하고 24가야국을 일통하는 대업에 소신도 함께 동참하고 싶습니다.”
“고마운 일이지만 저는 소공스님이 주석하고 있다는 화왕산 관룡사로 가고 싶습니다.”
“소공스님은 운수행각을 하는 분인데 지금은 화왕산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합니다. 천천히 머물다 가시지요.”
건길지는 이런저런 핑계로 하지왕 일행을 붙잡아놓고 있었다.
하지왕도 마지못해 느긋하게 말했다.
“그럼, 음식 청을 하나 해도 될까요?”
“듣던 중 반가운 말씀입니다. 무슨 음식이든 분부만 내리십시오.”
“저는 고구려 평양에 있을 때 먹은 곰발바닥이 생각나는군요. 주방에 명해 그것을 요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하, 곰발바닥 요리라. 곧 대령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밤 하지왕은 우사와 모추를 불러 은밀하게 여장을 꾸려 급히 비사벌성을 떠났다. 하지왕은 비화가야 땅을 벗어나 대사국 경계를 넘어가자 비로소 말 고삐를 당겼다.
모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하지왕에게 말했다.
“마마, 우리를 환대해준 건길지에게 말도 없이 마치 도둑처럼 도망치듯 떠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태사령 우사도 거들었다.
“비사벌성은 가히 가야의 중심이 될 만한 곳입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대업을 구상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건질지는 대왕마마께 충성되어 보였습니다.”
하지왕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오래 묵으면 짐이 되지요. 더욱이 비사벌성의 호족들과 군장령 강고내의 눈빛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루만 더 머물렀어도 나를 잡아 박지와 석달곤에게 넘겼을 것이오.”
“마마, 헌데 비사벌성을 떠나기 전 뜬금없이 곰발바닥 요리를 시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곰발바닥 요리를 시킨 것은 곰발바닥을 삶는 것이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오. 느긋하게 머물겠다고 의사를 보내 건길지와 강고내를 방심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 그런 깊은 뜻이!”
우사와 모추는 영명한 하지왕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