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15) 제3부 하지왕과 가야제국(3)

작성일 : 2021.04.26 11:13

대가야제국의 부활(15)

3부 하지왕과 가야제국(3)

 

김하기

하지왕이 구투야에게 물었다.

죽일 사람 있다고요?”

구투야가 창대수염을 쓰다듬으며 화제를 돌렸다.

날이 어둡고 저물었으니 우선 저희 산채에서 쉬고 가시지요. 특히 저 분은 나이는 어리지만 제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니 잘 모시겠습니다.

구투야는 특별히 하지왕을 가리키며 일행에게 산채에서 쉬도록 권했다. 어긋난 눈썹 아래 고리눈이 번쩍이며 살짝 얽은 곰보자국과 창대수염이 험상궂음을 더했지만 구투야가 사특한 자 같지는 않았다. 그의 시원시원한 말투나 너름새에는 산도둑 대장이 가지고 있는 묘한 배짱과 장부다움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하지왕은 갈 길이 급하기도 하거니와 도적의 소굴에서 잔다는 것이 께름칙했다.

하지왕이 사양하며 말했다.

아니오. 우리는 급히 갈 데가 있소.”

하지만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일단 날이 저물었습니다. 이 밤중에 움직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모추를 먼저 대가야로 보내 정황을 알아보게 하고 우리는 여기서 일박을 하고 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지왕은 단걸음에 대가야로 가서 어머니의 병세를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사는 전에부터 박지의 전갈이 함정일 수가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알겠소. 일단 여기서 머무르고 내일 새벽 일찍 떠나도록 하지요.”

모추는 말을 타고 검바람재를 넘어가고 하지왕과 우사는 구투야의 산채로 갔다. 산적들의 산채는 산중에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숲과 바위 사이에는 통나무와 띠로 만든 크고 작은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두목의 산채는 맨 위 바위 절벽 밑에 제법 격식을 갖춘 기와집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가운데 호피가 얹힌 상좌가 있고, 좌우로 날선 칼과 창이 걸려 있고, 번들거리는 탁자와 가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산적들은 동굴이나 움막에 사는 걸로 알았는데 마을 입구에 망루가 높이 서 있는 게 특이할 뿐 숲속 깊이 감추어 있달 뿐, 여느 작은 산촌과 다름이 없었다.

구투야가 말했다.
누추한 곳을 방문해주셔서 고맙소이다.”

구투야는 술과 안주를 대령했다. 술은 동동주에 안주로는 말린 노루고기가 올라왔다.

, 우사 선생이라고 했소. 오늘밤은 맘껏 드시고 편히 쉬시다 가시오.”

술잔은 산양의 뿔 모양을 토기 각배였다. 입구가 넓고 목인 긴 각배는 보기보다 술이 많이 들어갔다. 둘은 끊임없이 뿔잔을 부딪치며 건배하고 권커니잣커니 하며 술을 고래로 마셨다. 하지왕은 술이 약하고 아직 어린 입에 술맛이 써 막걸리 한두 잔으로 목을 축이는데 만족했다.

하지왕이 술이 거나하게 된 구투야에게 물었다.

아까 죽일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함은. 지금은 지나가는 과객들의 봇짐을 털어 먹고 살고 있소. 하루 세끼 밥을 챙겨 먹으려는 습관의 무서운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우리 녹림당의 번들거리는 눈을 보면 알 것이오. 스스로의 선택에서 세상에 나온 것도 아니건만 일단 태어난 다음에는 살아남겠다는 맹목적인 의지를 불태우기 마련이오. 하지만 이 괴상한 과정들이 반복되기만 하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에 있소?”

구투야는 말린 노루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하하하, 인생이란 목구멍에서 시작하여 똥구멍에서 끝나는 거 아니오. 그래도 두 구멍 사이에 밥과 똥이 좀 차면 그제서야 머리가 좀 움직여 좀더 고차원적인 목적이니 꿈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을 찾지 않소 나야 당신이 타고 있는 그런 좋은 말과 여비가 마련되면 원대한 꿈이 있소이다.”

그게 뭐요?”

고구려 국내성으로 가 죽일 사람이 있지.”

그 사람이 누구요?”

누구긴 누구겠어. 우리 가문의 원수이자 나라의 원수인 광개토왕이지.”

구투야는 고리눈에 번쩍이는 살기를 비치며 말했다.

하지왕이 구투야에게 말했다.

말은 쉽지만 광개토왕을 암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긴 그는 암살이 두려워 잘 때도 차례대로 한 눈은 뜨고 한 눈은 감고 잔다고 하더군.”

하지왕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암살을 두려워하는 왕이 일부러 흘린 소문이겠죠. 제가 어렵다는 건 우선 광개토왕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또한 왕은 최고의 호위무사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어떻게 기회를 잡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시품왕과 이 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 때가 되면 날 부를 거야.”

금관가야의 이시품왕이?”

이시품왕이나 나나 처지가 비슷해. 광개토왕 때문에 멸문지화를 당하고 모든 것을 잃었으니.”

하지왕은 생각했다.

이시품왕이 허물어진 궁궐에서 암살 계략을 꾸미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늙은 너구리같은 그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감히 사국일통의 주인인 광개토대왕을 암살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구투야의 산채에서 셋은 부엉이 소리를 들어가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떠오르기 직전의 아침 해가 동녘하늘에 붉은 노을을 뱉어내고 있었다. 하지왕과 우사는 여장을 차리고 말을 타고 나섰고 구투야가 앞에서 길라잡이를 했다. 키와 덩치가 크고, 고리눈에 창대수염이 난 구투야는 그야말로 사천왕과 같은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산채 마을은 자급자족적인 마을이었다. 좁지만 화전이 있었고, 방앗간, 대장간, 푸줏간이 보였고, 그릇을 굽는 가마요도 있었다. 가마요 주변에는 나뒹굴고 있는 깨진 그릇 조각과 비짐 받침돌도 보였다. 밤톨같이 생긴 비짐 받침돌은 그릇이 서로 붙지 않게 그릇 사이에 끼어두는 돌들이었다.

망루를 지나 산채 입구 절벽 바위를 지날 때였다. 구투야와 부하들이 모두 그 바위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을 했다. 바위벽에는 오래 전에 명공이 새긴 듯, 자브름하게 눈을 감은 관세음보살상이 새겨져 있었다. 시들지 않은 석련을 밟고 손에는 영락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은 이승의 시간을 초월한 듯 자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합장을 끝낸 구투야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허허, 여기 딱 서 계시니까 오가며 인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우사가 구투야에게 말했다.

구투야, 살생과 강도, 도둑질을 했으니 부처님 앞에서 발이 저릴 수밖에.”

교수형을 받은 자에게는 밧줄 이야기를 하지 않는 법이건만, 쯧쯧.”

구투야가 우사에게 퉁을 놓았다.

하지왕은 관세음보살상을 보며 생각했다. 김일제전에 따르면 본디 불교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갸야 사국 중에서 우리 가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지 않았는가. 가야란 말은 인도 갠지스 강 유역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또한 가야라는 지명의 원 뜻은 화원(花園)이다. 가야의 중심가에 힌두교의 비슈누 대사원이 있으며 남쪽 교외에는 불교 성지인 부다가야가 있다. 이처럼 가야라는 나라이름 자체가 불교성지를 뜻하고 있다.

흉노족은 오랜 전부터 금인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금인의 풍속이 있었다. 금인은 금으로 된 사람의 형상으로 금불상을 뜻한다. 흉노족은 인도로부터 일찍 불교를 받아들였다. 흉노족이 살고 있던 하서(현재의 감숙성) 일대는 인도의 불교가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오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돈황과 고란(현재의 난주)은 천불동이 있는 곳이며, 무위군은 인도승 구마라습이 18년 동안 억류되어 있었던 오아시스 도시였다. 구마라습은 중국 불교의 3대 번역가이며 중국 장안에서 약 35부 삼백여 권의 중경을 번역했고, 제자가 삼천 명이나 되었다. 그는 인도 불교를 체계적으로 중국에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대승 종파의 경전을 가장 먼저 소개한 인물이었다. 구마라습과 제천금인, 불교의 깊은 영향권 아래 김씨 시조가 살았던 것이다.

제천금인의 풍속으로 인해 한무제로부터 김씨를 사성 받은 김일제와 그 후손들은 모두 조상 전통의 종교인 불교를 숭상했다. 김일제전을 보면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중 가야에 가장 빨리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백제는 침류왕 때 마라난타, 신라는 내물 마립간 때이지만 가야는 흉노족인 김수로왕이 금관가야를 건국할 때부터 불교를 건국 이념으로 삼았다. 김수로왕은 불교국인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후를 맞아 열 왕자를 낳았고, 그중 7왕자는 외삼촌 장유화상을 따라 지리산에 들어가 성불해 칠불사의 부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유화상이 세운 장유사, 허황후의 원찰인 금강사도 국초의 사찰로 한반도 최초의 사찰이며, 가야라는 국명조차도 부처가 성불한 곳인 부다가야의 가야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왕은 강도와 도적의 무리인 산적마을에서조차 웃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보면서 부처님의 땅인 가야는 어느 곳이나 희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가야 땅의 인연을 받아 태어나는 생명과 가야 땅 자체가 하나이고, 산 것과 죽은 것, 동물과 식물, 귀천, 선악을 구분하는 경계가 없이 가야국 전체가 부처님의 몸이며, 불국토이다. 여기 산적의 산채에도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지 않은가.

살생의 한 가운데서 중생을 굽어보는 이 관세음보살은 광개토대왕이 정략적으로 세운 평양 구사보다도 더 값지고 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왕은 산채를 떠난 뒤에도 바위벽면에 새겨진 관세음보살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왕과 우사는 말을 타고 검바람재의 영마루에 올라 멀리 펼쳐진 대가야 땅을 내려다보았다.

하지왕이 우사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니 한시 빨리 내려갑시다.”

곧 소식을 갖고 오는 모추와 마주칠 것입니다.”

헌데 우리 대가야 땅은 참으로 아름답군요.”

영명한 군주인 마마가 계시는 한 대가야는 아름답고도 위대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우사는 말 위에서 하지왕에게 읍하며 말했다.

아첨이 아니라 우사의 진심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예리하게 판단해서 바라보는 시선, 총명한 기억과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 무엇보다도 백성을 사랑하는 크고 선량한 눈은 우사를 매료시켰다. 그가 있는 한 대가야와 가야제국은 희망이 있다.

 

하지왕과 우사가 검바람재를 넘어 안평평원을 지나 대가야로 내려가고 있었다. 멀리서 말 한 마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앞서 대가야 어라성으로 보낸 호위무사 모추였다.

모추는 헐떡이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말에서 내려 하지왕에게 보고했다.

마마, 큰일 났습니다. 어라성에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뭐라고, 정변이? 아뿔사!”

우사는 신음소리와 함께 완전히 얼이 빠진 얼굴이 되었다. 왕과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을 한 우사이니 만큼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고 느꼈을 것이다.

, 박지가 신라의 실성왕과 손잡고 정변을 일으켜 대가야 전권을 장악했습니다.”

신라의 실성왕과 손잡고? 그럼, 어마마마는 어떻게 되신 건가? 정말 위독하신 건가?”

대비마마는 비록 신라군에 의해 유폐되었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소문입니다.”

결국 박지집사가 나를 잡기 위해 가짜 전갈을 보냈군.”

그렇습니다.”

도대체 박지가 정변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인가?”

신라 실성왕의 부추김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박지 집사와 후누 장군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합니다.”

후누 장군은 가야 땅을 침범한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호족들의 사병을 정규군에 편입시키는 사병혁파안을 추진했다. 그러자 사병을 가진 호족들이 반발했고, 특히 사병이 가장 많은 박지는 공공연하게 반대했다.

여가 전쟁 전 가야제국의 맹주인 금관가야의 영토는 낙동강 이동에 독로국과 미리미동국 2, 낙동강 이서에 접도국, 고자미동국, 고순시국, 반로국, 낙노국, 미오야마국, 감로국, 주조마국, 안야국 등 12, 그리고 소백산맥 너머 옛마한 땅에 설치한 가야 6국인 상기문, 하기문,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까지 합쳐 22국에 이르렀다. 이들 가야국의 지명이 오늘날 어디인지는 모두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추정된 지역을 소개하면 금관가야(김해), 독로국(동래), 미리미동국(밀양), 접도국(칠산), 고자미동국(고성), 고순시국(진주), 반로국(고령, 대가야), 낙노국(하동 악양), 미오야마국(합천 묘산), 감로국(김천 감문), 주조마국(김천 조마), 안야국(함안), 상기문(임실, 번암), 하기문(남원), 상다리(순천, 광양), 하다리(여수, 돌산), 사타(고흥), 모루(무안)으로 비정된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의 가야 침공으로 종발성과 금관성이 진멸된 뒤, 소백산맥 이서의 6국은 백제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낙동강 이동의 가야 땅인 미리미동국과 독로국은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가야제국은 12가야로 축소되었다.

최근 힘을 키운 신라 실성왕은 낙동강을 넘어 낙동강 이서의 땅인 성산가야를 침공해 신라에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에 후누 장군은 박지 집사에게 말했다.

아무리 가야 12국에 맹주가 없다지만 신라의 성산가야 침공 건은 참을 수 없습니다. 성산가야는 우리 대가야의 고깔과 같은 지역입니다. 고깔이 벗겨지면 우리 국토는 곧바로 적의 위협에 노출되고 바로 공격을 당합니다. 반드시 신라를 쳐서 성산가야를 되찾아 와야 합니다.”

사병혁파안과 전쟁을 내세운 후누 장군에게 박지 집사가 말했다.

우리 대가야가 백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었다고 또 다시 전쟁을 한단 말이오? 전쟁이 능사만은 아니오!”

박지 집사는 호족의 사병을 대가야 중앙군에 편입시키고, 군을 강화한 뒤 신라에게 넘어간 성산가야를 치자는 후누 장군에게 반대했다. 박지는 전쟁불가론의 근거를 대었다. 첫째 가야는 분열되어 있고, 신라는 통일되어 있다는 점. 둘째 지금은 여름이라 농번기이어서 군인을 징발할 수 없고 셋째 설사 신라를 쳐서 이기더라도 뒤에는 막강한 고구려가 버티고 있어 결국은 되뱉어내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우직한 후누 장군은 신라토벌을 외치며 사병혁파안을 거세게 밀어부쳤다. 지방 호족들의 사병을 중앙군에서 징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지 집사가 후누 장군에게 말했다.

후누 장군, 전에는 대비마마 수경부인이 나를 부패분자로 몰더니 이젠 장군이 나의 병사들을 빼앗으려는 거요?”

강군을 만들어 신라를 치기 위해선 사병혁파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한 번 뜻을 정하면 벽을 문이라고 박차고 나가는 우직한 후누 장군은 호족의 사병들을 정규군에 편입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박지는 턱과 염소수염을 바르르 떨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어리석고 무식한 후누 이놈.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는 건가.’

손자병법을 주머니의 동전 주무르듯 하는 노회한 박지는 3계 차도살인계를 꺼냈다. 그는 신라의 실성왕과 내통해 성산가야의 주둔군 군주인 석달곤과 몰래 회동했다. 석달곤은 썩은 야망이 눈동자에 잔뜩 고여 있는 자로 설사 박지가 내통하러 오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부월을 들고 대가야의 정수리를 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후누 장군이 박지의 사병을 해체하러 가기 전 날 밤, 박지는 군호를 넣어 석달곤을 대가야 땅으로 불러 들였다. 석달곤은 순식간에 일천 기병대를 이끌고 성산가야와 대가야의 국경선인 아시고개를 넘어와 어라궁과 후누 장군의 집을 습격했다. 신라군의 힘을 빌려 정변에 성공한 박지는 대비마마인 수경을 유폐하고 자신의 아들 구야를 대가야의 왕으로 세우는 한편 후누 장군을 뇌옥에 집어넣은 뒤, 대가야 군신지에 신라장군 석달곤을 임명했다. 후누 장군 휘하의 무신계열인 내외관직인 축지 번지 검말 한기 주수 거수 등을 대거 숙청하고 그들의 관도 마르기 전에 그 자리에 친신라계 인물들로 몽땅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모추의 정변 보고를 들은 하지왕과 우사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하지왕이 근심어린 얼굴로 우사에게 말했다.

후누 장군은 갇혀 있고, 박지는 왕위를 찬탈하고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소. 오갈 데가 없는 우리는 앞으로 어찌하면 좋소?”

지금 당장은 박지가 전권을 쥐고 있고 신라군이 들끓고 있는 대가야로 가는 게 매우 위험할 듯합니다.”

모추가 대가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우선 간밤에 묵은 구투야의 산채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사가 달리 머무를 곳이 없다는 듯 말했다.

“......”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말머리를 돌려 다시 검바람재로 향했다.

우사가 하지왕을 보며 말했다.

마마, 지금은 400년 전 가야가 건국한 이래 가장 극심한 혼란의 때인 전국시대입니다. 금관가야가 무너진 뒤 가야제국들은 주변 강국들의 농간과 협잡, 분열획책과 이해관계에 휘말려 서로 싸우며 자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소?”

날은 저물고 검바람재의 고개는 높았다. 갑자기 뒤에서 추격해오는 한 떼의 병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 쇠창, 쇠뇌, 쇠도끼로 무장한 한 떼의 철기병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모추는 하지왕과 우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신라 석달곤의 병사들이 따라붙은 것 같습니다.”

석달곤은 성산가야 신라주둔군의 군주로 박지의 연통으로 일천의 기마병을 대가야로 이끌고 와 정변을 일으킨 장수였다. 박지는 앙앙불락하던 후누를 제거하고 대신 석달곤을 군신지로 삼은 뒤 하지왕의 체포를 명했다.

모추가 말했다.

놈들의 추격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제가 막아 시간을 벌겠습니다. 그동안 우사선생은 하지왕을 모시고 빨리 관문을 넘어 구투야의 산채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왕은 자기만 갈 수 없으니 함께 가자고 했지만, 모추는 하지왕과 우사의 등을 떠밀었다.

석달곤은 하지왕의 모습을 발견하고 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목에 막대한 현상금이 붙은 놈들이다. 잡아랏!”

모추가 단기필마로 검바람재에서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추격병과 마주친 모추는 백련강을 휘둘러 단칼에 셋을 추풍낙엽처럼 베어버렸다. 추격병들은 한꺼번에 활을 쏘고 쇠창으로 찌르며 모추에게 덤벼들었다. 홀로 고갯길을 막아선 모추는 날아오는 무수한 화살과 창날을 칼로 쳐내며 적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개미떼처럼 새카맣게 밀고 올라오는 석달곤의 병사들을 혼자의 힘으로 당할 수 없었다. 중산간 고갯길에서 백련강으로 베고 또 베어 피바람이 일어도 석달곤은 아귀처럼 달라붙었다.

일단 추격의 고삐를 늦췄다고 생각한 모추는 잽싸게 말머리를 돌려 다시 영마루로 올라갔다. 셋은 헐떡이며 검바람재 영마루까지 올라왔다.

도깨비바늘처럼 따라붙어 떨어지지 않은 석달곤이 환두대도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멈춰랏! 도망쳐봤자 독안에 든 쥐다.”

셋이 영마루를 넘어가려는데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검바람재를 올라오고 있었다. 비화가야의 한기인 건길지가 병사를 이끌고 재의 남쪽에서 영마루를 향해 올라오는 중이었다. 석달곤은 이미 비화가야에 세작을 보내 협도인 영마루에서 하지왕을 잡자는 군호를 맞추어 놓았다. 검바람재 영마루는 시원한 숲이 끊어지고 좌우로 바위절벽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우사가 양쪽에서 올라오고 있는 적군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진퇴유곡이로군.”

석달곤이 어린 하지왕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 이젠 대가야의 뇌질왕가의 씨앗도 오늘로써 끝장이야. 하긴 이제 박씨 왕조가 새로이 섰긴 하지만.”

석달곤은 박지의 아들 구야가 새로운 대가야의 왕이 되었음을 하지왕에게 알렸다.

하지왕과 우사와 모추는 하늘을 날아가거나 굴을 파서 도망가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발자국도 갈 곳이 없었다. 양쪽에서 쫓아오는 병사들의 눈은 불에 비친 밤 짐승의 눈처럼 번들거렸다.

우사가 좁은 하늘을 보며 장탄식을 했다.

, 대가야의 운이 여기까지인가!”

셋은 석달곤의 계략에 말려들어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었다. 검바람재 영마루에서 대가야와 비화가야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마, 제가 혈로를 뚫겠습니다.”

모추가 추격병을 달고 온 책임을 통감한 듯 비장한 목소리로 하지왕에게 말했다. 그는 뜻을 굽혀서 기쁨을 얻기보다 죽음을 베개로 삼고 전쟁터를 누벼왔다.

모추, 좌우 벽은 막혀 있고 적은 앞뒤로 이중 삼중으로 포위망을 치고 있다. 도대체 어디를 뚫는다는 거냐?”

훈련이 잘 된 석달곤 철기군은 등에 철갑을 두른 악어와 같습니다. 아무리 칼질을 해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껍질이 무른 배를 찔러야 합니다.”

어디가 무른 배란 말이냐?”

남쪽의 건질지 군입니다. 비화가야는 상비군이 없고 건길지가 급히 부병대를 조직해 올라온 것으로 보입니다.”

부병대는 농사를 짓던 순박한 농민들을 끌어 모은 군대를 말한다. 보아하니 그들이 든 무기는 낫, 괭이, 죽창, 습사궁(習射弓, 실전용이 아니 연습용, 훈련용 활)이고, 복장은 앞 선 몇몇을 제외하고는 밭일 할 때 입는 농투성이 옷 그대로였다. 한 삼년 쯤 앓아누웠다가 베잠방이만 걸친 채 끌려 나온 자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겹겹이 떼로 올라오고 있어 숫자는 북쪽보다 훨씬 더 많아 보여.”

무예도 익히지 못한 오합지졸입니다. 제가 백련강으로 길을 헤치고 나갈 테니 마마와 우사 선생은 제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십시오.”

그러나 부병대도 만만치 않았다. 적이 셋밖에 없는 것을 알고 먼저 활을 쏘아대고 창을 꼬나들고 진격했다. 모추는 돌진해오는 부병대의 한가운데로 말을 달리며 백련강으로 좌우를 가르며 헤치고 나갔다. 모추가 휘두르는 백련강에 병사들이 어육처럼 베어져 나가 떨어졌다. 모추는 창을 빼앗아 적의 목을 산적처럼 꿰어 찼다. 그 뒤를 하지왕과 우사가 말을 타고 짓쳐달려 나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논밭에서 삽질과 호미질을 하던 순후한 농군들은 모추의 굉장한 위력에 놀라 무기를 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고 꽁무니를 빼며 달아났다. 뒤에서 건길지는 도망가는 자들의 목을 치며 독전을 해보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의 집단 탈주를 막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건길지 부병대의 뒤에서 쏜 화살과 불화살이 청천하늘에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산적두목 구투야의 녹림부대였다. 구투야는 망루에서 하지왕의 일행이 궁지에 몰린 것을 보고 부하들을 이끌고 원군으로 온 것이다. 앞뒤로 공격을 당한 농민 부병대들은 갈팡질팡하다 거미 알처럼 흩어졌다.

말을 탄 구투야가 고군분투하는 건질지를 향해 쇠그물을 던졌다.

구투야가 던진 쇠그물에 건길지가 걸려들었다. 건길지가 쇠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그물이 더욱 조여져 옴쭉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녹림들이 건길지를 생포해 산채로 내려가는데 석달곤의 철기군이 영마루를 넘어 질풍노도처럼 밀려왔다. 구투야와 녹림부대, 하지왕 일행은 급히 도망쳐 악난도 길로 빠져나갔다. 악난도는 이름 그대로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외길 험로였다. 험로 끝에는 천 길 낭떠러지를 연결하는 철환교라는 구름다리가 있었다. 구투야와 하지왕 일행은 악난도를 지나 협곡을 잇는 철환교로 달렸다. 철환교 밑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이 다리는 고래로부터 내려온 두 줄의 굵은 쇠사슬로 이은 다리인데 그 아득한 밑으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었다. 손을 잡고 가는 위의 두 줄은 삼을 꼬아 만들었으나 삭아 끊어졌고 밑의 쇠줄 두 줄 위에는 널빤지를 깔아놓아 겨우 한 사람씩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구투야는 철환교를 건넌 뒤 널빤지를 걷어 다리를 끊어놓으려고 생각한 것이다.

석달곤은 후미에서 활을 쏘며 계속 추격해오고 있었다.

구투야가 말했다.

저 다리를 건너야만 산채로 갈 수 있습니다.”

조심해서 한사람씩 건너야겠군. 그런데 구투야, 보게나. 저 쪽 다리 끝에는 널빤지가 빠져 있는 것 같지 않아?”

하지왕이 철환교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투야도 다리 끝을 보고 놀랐다. 하지왕의 말대로 철환교 끝에는 널빤지 열 장 정도를 걷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신라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철환교 끝에서 활을 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이들은 삽라국(양산) 병사들이었다. 금관가야가 무너진 이후 낙동강 주변의 독로국(동래), 미리미동국(밀양), 감로국(김천 감문), 주조마국(김천 조마)은 신라에게 먹히거나 신라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버렸다.

, 가야 산적 놈들아. 너희들은 악난도에 꼼짝없이 갇혔다. 이제 죽을 준비를 하라.”

구투야와 하지왕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후미의 병사 하나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와 말했다.

석달곤의 철기군이 뒤에 바짝 붙었습니다.”

후미와 적의 선봉과의 거리는 지척지간이었다. 뒤에는 석달곤의 강력한 철기군이 쫓아오고 앞에는 끊어진 철환교가 있다. 진퇴양난의 검바람재 영마루에서 겨우 탈출구를 찾았는가 했더니 더욱 심각한 악난도에 갇혀버렸다.

악난도에 갇힌 녹림들이 모두 구투야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때 녹림 두목의 판단력과 말 한 마디는 생사를 결정한다.

마침내 구투야가 입을 열었다.

끊어진 다리를 건너가자!”

천 길 낭떠러지에 두 줄의 쇠고리 밧줄로 걸려 있는 철환교.

저 건너 다리 끝에는 널빤지를 걷어놓고 삽라국 병사들이 강궁을 겨누고 있다. 뒤에는 석달곤의 철기병이 쫓아오는 진퇴유곡에 빠진 구투야와 녹림은 악난도에 갇혀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형국이었다.

이 상황에서 녹림두목 구투야는 부하들에게 끊어진 철환교 위로 건너가자는 명을 내린 것이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분연히 결사의 의지를 말한 자는 소마준이었다. 소마준은 이시품왕의 중랑장인 소마식의 아들로 나라가 망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구투야의 밑으로 들어와 녹림이 되었다. 그는 얼굴이 뽀얗고 피부가 희었으나 눈썹이 숯덩이처럼 검고 눈동자에 영채가 서려 있어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 소마준은 검바람재에서 적의 화살에 왼팔을 맞아 혈맥이 마비되어 왼손을 잘 쓸 수도 없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여자처럼 단아하던 소마준의 얼굴은 지금 고뇌와 피로가 역력히 그려져 있지만 한 가닥 단호한 의지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죽음도 막지 못하는 맹목적인 만용? 어쩌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무모한 용기, 혹은 생의 포기라고 할 수 있는 의지가 그런 불편한 몸으로 결사대를 지원케 했다. 소마준이 결사대를 지원하자 녹림들이 웅성거렸다.

모추도 말했다.

소마준, 장하오. 나도 결사대에 지원하겠소.”

그러자 몇몇 녹림들이 주먹을 쥐고 따라나섰다.

어차피 죽어야 할 몸이라면 이 계곡에서 장렬하게 죽겠소.”

결사대에 지원한 사나이는 다섯 명이었다.

모추가 소마준에게 말했다.

우리가 선두로 갈 테니까 결사대 대장은 후미에 서서 지휘하시오.”

아니오. 선봉은 제가 맡습니다. 뒤따라오시오.”

구투야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역시 소마준이구나.”

소마준의 희생적 각오는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소마준은 선봉을 맡아 다섯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철환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대안에 있는 삽라국 병사들은 구투야의 결사대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죽고 싶어 환장한 어리석은 놈들!”

쇠줄을 타고 여길 건너오겠다고?”

오는 놈들은 모두 활로 쏘아 떨어트려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주마.”

소마준은 한 가닥 쇠줄에 매달려 적군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설마 건너오랴?’고 생각했던 삽라국 군사는 미친 듯이 건너오는 결사대의 모습에 적이 당황했다.

쏴라. 놈들을 쏴서 천길 벼랑으로 떨어뜨려라!”

삽라군 장수가 명령을 내리자 군사들이 화살을 소나기처럼 쏘아대었다. 녹림들도 철환교 위에서 적을 향해 지원 사격을 했다.

철환교 쇠줄에 나무늘보처럼 거꾸로 매달린 결사대 병사들은 비오듯이 퍼붓는 화살 속에서도 미친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화살이 철 투구와 미늘 갑옷에 맞아 튕겨나갔다. 한 명 또 한 명이 적의 화살을 맞고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하지만 결사대원들은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맨 앞에 선 소마준은 다행히 쏟아지는 화살들이 투구와 갑옷에 맞고 튕겨나갔다. 결사대원들이 화살을 맞고 떨어져 죽으면서도 쇠밧줄을 타고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자 놀란 쪽은 삽라군이었다.

도둑질이나 하는 산적 놈들이 무슨 결사대인가?”

삽라군은 화살을 쏘아대다가 안 되자 이번에는 널빤지에 불을 붙여 철환교 위에 올려놓았다. 뜨거운 불길이 철환교를 달구어 쇠고리가 달구어졌다. 소마준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전전했다. 쇠줄에 완전히 달구어지기 전에 빠르게 전진했다. 그의 손이 데었지만 손과 쇠밧줄을 감은 다리는 쇠밧줄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소마준이 불길 속을 헤치고 대안으로 건너갔다. 뒤이어 모추도 건너갔다. 적이 장창으로 찔러 왔으나 피하며 창을 당기자 적은 천길 협곡으로 떨어졌다.

소마준의 뒤를 따르던 결사대는 빗발치는 화살을 맞고도 줄을 탄 채 죽기 살기로 앞으로 밀고 나갔다. 결국 다섯 명의 결사대 중 2명이 죽고 소마준과 모추 등 3명이 대안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일당백의 결사대원들은 대안에 오르자마자 칼을 빼들어 초소에 있던 삽라군 스무 명을 순식간에 베어 협곡으로 던졌다. 다행히 이곳 대안은 삽라군의 초소병 스무 병 이외에는 더 이상 적군이 없었다. 이들 스무 명의 초소병들에게 다리의 널빤지를 걷어내고 초소를 지키라는 임무만 주어졌던 것이다.

대안을 확보한 결사대는 널빤지를 깔아 철환교를 복구시켰고 복구된 철환교 위를 하지왕과 우사, 녹림들은 모두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이들은 다리를 건널 때 자신들의 투구와 모자, 머리띠를 벗어 협곡에 떨어져 죽은 자에게 애도와 경의를 표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이들은 악난도에 갇혀 고스란히 전멸했을 것이다.

철환교를 기적처럼 건넌 병사들은 다리의 널빤지를 모두 걷어내었다. 하지왕을 뒤쫓아오던 석달곤의 철기군은 아예 협곡을 건널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왕과 구투야 일행은 검바람재 남쪽 산채로 향해 달렸다.

이들은 무사히 검바람재 산채에 도착했다.

구투야는 자신의 산채로 하지왕, 우사, 모추, 소마준을 초청해 주연을 베풀었다. 태사령 우사는 구투야와 소마준 등 검바람재 녹림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비로소 하지왕의 실체를 밝혔다.

구투야와 소마준이 놀라며 하지왕에게 엎드려 절했다.

마마, 그동안 소인들이 큰 결례를 했습니다.”

천만에요. 제가 녹림두령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구투야가 말했다.

광개토에게 금관가야가 무너진 이후, 모두들 이제는 대가야가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가벼운 인기척이 들리더니 주안상을 들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구투야가 주안상을 가져온 여자를 소개하며 말했다.

저와 같이 사는 집사람입니다.”

저는 달기라고 하옵니다.”

참빗으로 빗질한 가르마 머리에 봉잠을 꽂은 달기는 얼굴에 끼와 속세의 냄새가 묻어 있어 첫눈에 예쁘지만 만만치 않은 눈빛과 입매가 그녀의 이력이 녹녹히 않게 보였다.

달기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해요.”

우사가 말했다.

갑작스레 찾아와 저희들이 실례가 많습니다.”

달기가 술이 가득 담긴 가야식 굽다리 긴목 항아리를 들고 우사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천만에요. 언제 저잣거리에 목이 매달릴지 모르는 우리 녹림부대원을 찾아주시니 저희들이 고마울 따름이죠.”

그녀의 색기 어린 자태와 무람없이 활달한 말은 주석의 분위기를 돋웠다.

어린 소년이 하지왕이라는 걸 알게 된 그녀는 놀라서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대가야의 왕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시니 큰 광영입니다.”

무슨 말씀을. 여기 계신 구투야 두령과 녹림부대가 아니었다면 저희들 생명이 위태로웠습니다.”

대가야를 다스리는 약관의 왕이 영명하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습니다. 헌데 저희 산채엔 어인 일로 오신 것이신지요?”

본래 태사령 우사선생과 함께 여행하던 중, 대가야 어라궁에서 정변이 일어나, 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쫓기고 있는데 잠시 구투야 두령에게 몸을 의탁하러 왔습니다.”

저도 소식은 들었습니다. 이번에 신라장군과 손잡고 정변을 일으킨 자가 박지 집사라지요.”

그렇습니다. 이곳이 소식이 참 빠르군요. 저는 지금 왕위를 찬탈당해 왕도 아닙니다. 현재 대가야의 왕은 박구야입니다.”

하지왕이 솔직하게 말했다.

달기가 대답했다.

무슨 말씀인지요? 저희들에겐 하지왕이 영원한 왕입니다. 반드시 왕위를 찾으리라 믿습니다. 이곳 검바람재는 금관가야, 아라가야, 비화가야, 성산가야, 삽라국이 걸쳐 있는 길목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각종 소문이 이 고개를 통해 넘나드는 곳이기도 하지요. 저는 원래 검바람재 초입에 주막을 하던 주모였습니다.”

달기는 옛날 장유화상이 은거하던 옥천사에서 주방일을 하던 행자보살이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침입으로 승병과 함께 대고구려 항쟁을 벌이던 절은 불타고 가족들은 전화에 목숨을 잃었다. 이후 달기는 검바람재 고개 밑에 주막을 열었다.

깊은 산골에 주모로 홀로 일하다보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험한 일을 당할 때가 많죠. 그날도 험상궂게 생긴 사내 하나가 술주정을 하며 제게 지분거리더군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