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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주역읽기 > 1.암말의 곧음이 이롭다

작성일 : 2021.04.25 12:41 수정일 : 2021.04.25 12:57

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양선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코드(code), 오늘의 맥락(context)은 내일이 되면 어느새 오해와 편견을 낳는 흉물(凶物)이 됩니다. 세대 간의 불화, 계층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그런 속도감 있게 변화하는 의미작용에 성심을 다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변화의 방향이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나 느낌이 들 때는 더 그렇습니다. 급변하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좀더 명료하게 확인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데 안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허황된 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점복술(占卜術)에 대한 기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점복에 대한 선호(選好)는 예나제나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최근에는 타로점이라는 게 나와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나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심심풀이로 한다고 하지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한때 가게마다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미래의 길흉화복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엉터리 신념입니다. 그건 제가 어려서 속칭 점쟁이 골목에서 살아보았기 때문에 잘 아는 일입니다(직업인으로서의 점복술사들에 대한 자세한 기술은 생략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저였기 때문에 평생 동안 점복을 믿지도 않았고 점집을 찾아다닌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언제부턴가 제가 점복술의 실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제가 쓴 글 중에서 대운(大運)이 있다면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얼떨결에 이미 운명론자가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팔자가 정해진 것이어서 달리 그것을 벗어날 방도가 없다라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스스로 예감한 것이나 예측했던 일들이 하나 없이 다 현실로 닥쳐왔다고 믿고 있었고, 내 인생은 마치 멜로드라마가 그런 것처럼, 주인공에게 닥친 가까운 앞날의 실패와 고통들이 결국 먼 미래의 성공과 보상으로 변환되어 오는 플롯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턱없는 낙관(樂觀)이 왜 생겼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본래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전전긍긍, 전전반측, 오매불망, 노심초사하는 햄릿형 캐릭터가 제 성격이었습니다. 결코 낙관론자가 아니었습니다. 시간 약속이 있으면 꼭 10분이라도 먼저 나가 앉아 있어야 불안하지 않고, 마감 날짜를 적어도 일주일은 앞당겨서 원고를 넘겨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적 처리나 (출장, 연수)결과 보고서 작성, 논문 투고도 항상 기일을 당겨서 치루곤 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도 마찬가집니다. 약속도 대가(보상)도 없는 자발적인 글쓰기인데 꼭 무엇에 매인 자처럼 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그 턱없는 낙관의 정체를 의심케 하는 것입니다(아마 여러 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저를 찾아온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듭니다) 어쨌든, 제 스스로 생각해도 제가 조금 변한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들어 별의 별 낙관적 예감이 많이 듭니다. 전에 같으면 망상증을 의심해 보기도 할 텐데 요즘은 그런 스캐닝도 별 재미가 없습니다. 어쩌면 백약이 무효, 이미 그럴 단계는 훌쩍 넘어선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주역(周易)을 펼치고 스스로 점괘를 한 번 뽑아보셨다는 글을 얼마 전에 올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몇 년 전 모종의 출사표를 쓰면서 그런 식의 주역점을 한 번(딱 한 번!) 본 경험이 있었습니다(저의 경우가 그렇다는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약하겠습니다). 결과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너는 지금 나가면 죽는다. 건너지 마라였습니다. 그걸 저는 지금 건너지 않으면 죽는다로 읽었습니다. 다른 의미는 한 구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갔다가 죽어서돌아왔습니다. ‘죽고나서 보니 그 문의(文意)가 너무 뚜렷해서 글자가 페이지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그걸 거꾸로 읽은 제가 제 스스로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게 인간인 모양입니다. 그때 그일 이후로는 절대로 주역 근처에 가지 않습니다. 이미 주역으로 한 번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번 죽으니 점볼 일이 없어져서 편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냥 덮어놓고 낙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제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점을 보든 안 보든, 그리고 나가든 안 나가든, 모든 것이 팔자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현재 저의 코드와 맥락인 것 같습니다.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중에도 200년 전 당대의 코드와 맥락에 대해 논하고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주역(周易)이라는 책이 인격 수양의 한 지침으로 고려되지 않고 오로지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도구로만 사용되는 풍조를 나무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도적처럼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구구하고 구차한 해석이 남발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미 그것은 해석이나 설명의 대상은 아닌 듯싶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운세와 연관시킨 섣부른 예측은 절대 금물일 듯합니다. 다산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바탕에는 하늘을 섬기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마구 자신의 부귀영달에만 목적을 두고 점을 (감히!) 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다산의 목소리를 직접 한 번 접하는 것도, 자성의 차원에서, 그리 무용한 일은 아닐 듯싶습니다.

...주역(周易)으로 말하더라도 요즘 사람은 하늘을 섬기지 않는데 어찌 감히 점을 칠 수 있겠습니까. 한선자(韓宣子)가 노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역상(易象)을 보고서, “주나라의 예()가 노나라에 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역전(易箋)을 자세히 보면, 서주(西周)의 예법 가운데 환히 알 수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인데, 지금 점치는 것이라 하여 그 예법마저 고찰하지 않는대서야 되겠습니까. 공자는 점치는 것 외에 별도로 단전(彖傳)과 대상전(大象傳)을 지었으니, 주역이 어찌 점치는 책일 뿐이겠습니까?

옛날에는 봉건제도를 썼으나 지금은 봉건제도를 쓰지 않고, 옛날에는 정전(井田)제도를 썼으나 지금은 정전제도를 쓰지 않고, 옛날에는 육형(肉刑)제도를 썼으나 지금은 육형제도를 쓰지 않으며, 옛날에는 순수(巡狩)를 하였으나 지금은 순수를 하지 않고, 옛날에는 제사 때 시동(尸童)을 세웠으나 지금은 시동을 세우지 않습니다. 점치는 일을 지금 세상에 다시 행하게 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몇 가지 일보다 더 어려운 게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갑자년(1804)부터 주역공부에 전심하여 지금까지 10년이 되었지만 하루도 시초(蓍草)를 세어 괘()를 만들어 어떤 일을 점쳐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만약 뜻을 얻는다면 조정에 아뢰어 점치는 일을 금하게 하기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복서는 옛날의 복서가 아니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비록 문왕(文王)이나 주공(周公)이 지금 세상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결코 점으로써 의심나는 일을 해결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이러한 뜻을 천명하여 따로 책 하나를 짓지는 아니하고 주역의 원리가 지나치게 밝혀졌다고 근심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무릇 하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감히 점을 치지 않는데 저는 지금 하늘을 섬긴다 하더라도 점을 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이런 뜻에 매우 엄격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주역이란 주나라 사람들의 예법이 들어있는 것이어서 유자(儒者)라면 그 깊이 있는 말과 오묘한 뜻을 발휘하여 밝히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날 성인은 모든 깊이 있는 말과 오묘한 뜻에 대해 그 단서만 살짝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도 숨겨진 것이 없이 훤히 드러나 볼 수 있다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역전(易箋)(다산의 주역사전(周易四箋))은 너무 자세하게 밝혀놓았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깊이 후회하는 바입니다. [정약용(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둘째형님께 답합니다 2, 중에서]

* 한선자(韓宣子) :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의 대부(大夫)인 한기(韓起)선자는 그의 시호.

* 시동(尸童) : 옛날에 제사지낼 때 신위(神位) 대신으로 그 자리에 앉히던 어린아이.

* 시초(蓍草) : 톱풀. 엉거시(국화과의 두해살이풀)과에 속하는 다년생풀. 고대에는 이 풀을 점칠 때에 썼다.

 

1.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

마산에 소재한 용마산(龍馬山)이 문득 생각납니다. 말 때문입니다. 주역 2장 중지곤(重地坤)의 첫 구절이 곤은 크게 형통하고, 암말의 곧음이 이로우니’(坤元亨 利牝馬之貞)였습니다. 앞장 건()편에서는 주로 용(잠룡, 현룡, 비룡, 항룡)을 이야기하더니(저는 그것들 가운데 끼어있는 군자에 대한 소감만 말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암말(牝馬)이 나옵니다. 건이 하늘이고 곤이 땅인지라 그 각각에 속하는 대표 동물을 용과 말로 들어 대비적으로 우주나 삶의 이치를 설명하려는 모양입니다. 용도 나오고 말도 나오면서 제 어휘적 상상력이 용마산을 불러낸 것 같습니다. 그 둘이 합체한 용마(龍馬)가 연상된 모양입니다. 용마산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일단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라는 이 글의 제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곤의 곧음이 이로운 바는 암말에 이롭다. 말은 땅에서 다니는 것이고 또 암컷으로 순함이 지극하니, 지극히 유순한 후에 형통하므로 오직 암말이 곧아야 이롭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 39]

육효가 모두 음인 중지곤에서도 각 효마다 좋은 말씀이 가득합니다. 육사(六四)주머니를 매면 허물도 없으며 명예도 없으리라’(括囊无咎无譽)도 좋고, 상육(上六)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도다’(龍戰于野 其玄黃)도 좋습니다. 모두 제 분수를 지켜 순탄하게 살기를 권면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용마산을 연상한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역의 서두가 용과 말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용마산과 연관된 저의 기억은 결코 주역적이지 않습니다. 전혀 장엄하거나 특별히 계시적이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남 앞에 드러내기 부끄러운 가족사의 한 편린이 거기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항룡유회(亢龍有悔), 한참 올라가다가 급전직하, 모든 것을 다 말아먹고 마산에 내려가서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전전하던 선친이 용마산 아래 초등학교 신축공사장의 야간경비원으로 발탁된 것은 당시 그 지역법원의 지원장으로 근무하던 작은 외조부 덕분이었습니다(항렬은 여차여차 많이 높았지만 연세는 오십대 초반이었습니다). 선친은 거기서 약간의 모험을 합니다. 간조(주당 지급되는 보수)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생활비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공사장의 비품들을 슬쩍슬쩍 빼돌리는 생선집 고양이 짓을 한 겁니다. 심야에 저를 불러 그날 작업한 것을 집으로 배달시켰습니다. 주로 못 같은 쇠붙이들이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는 길에 필요한 만큼 건재물상에 그것들을 내다 팔았고요. 그렇게 몇 푼씩 있는 사람 것을 나누어 가지다가 결국은 비참한 끝을 봅니다. 들판에 검고 누런 피를 흘리고 말지요. 파출소 앞에서 덜컥 불심검문에 걸리고 맙니다. 쓸 만한 빽도 있어던 터라 유야무야, 별 일 아닌 것으로 처리되긴 했지만(아마 집수리에 필요해서 1회에 한해 도용한 것이라고 훈방 처리되었을 겁니다) 어린 마음에는 적지 않은 흠집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선을 쌓은 집은 반드시 경사가 넘치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은 반드시 재앙이 넘칠 것이니,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시해하게 되는 일은 하루아침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 연유한 바가 점차로 이뤄진 것이다. 분별할 것을 분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에서 말하기를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하니 대개 순()함을 말한 것이다’(47~48)

용마산 사건이후로 선친은 적선(積善)의 길로 들어섭니다. 제게 일말의 부끄러움만 감수해 내면 훨씬 더 순()한 삶이 보장이 될 거라고 자신의 선택에 동의를 구했습니다. 교회 신축공사장에서 일한 인연으로 그 교회의 사찰집사의 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평양 신학교를 나와서 그쪽 지역의 교단 지도자로 활약하고 계시던 목사님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송사에 필요한 여러 서면들을 작성케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부지런한 성품으로 청소도 잘 했고, 종도 잘 쳤고, 교회 주보도 잘 만들었고 각종 송사(K대와 P병원의 이사장이었던 목사님이 노회 쪽의 반대세력과 건곤일척의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의 서면 작성도 잘 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목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즐겨 드시던 개소주의 잔존물(찌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기맛이 좋았습니다)들을 먹고 한 여름을 거뜬하게 나곤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그때부터 순()한 인생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틀어주는 새벽 종소리(차임벨)를 꿈결에 들으며 무겁고 힘든 짐들을 다소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걸을 때마다 어깨를 콕콕 찌르던 그 보따리 속의 못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도 다소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별다른 곡절 없이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살아왔습니다. 초년에 겪은 고생과 아픔들이 그 이후로는 다시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큰 절망도, 큰 이별도, 큰 병도, 큰 손실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순탄해서 불안감이 조장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미루어놓은 그 모든 불행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때가 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아주 많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집사람은 이미 신혼 초에 그런 느낌을 가졌다고 말합니다만(제가 따박따박 봉급을 갖다주자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는 나이 60에 들어서야 겨우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만큼 사납게 살아왔다는 거겠지요. 어쨌든, 지금 제 인생의 진행상태가 이나마 순탄한 것도, 암말이 곧아야 이롭다고, 용마산 사건 이후 선친이 내린 결단, 그 분별력 있는 선택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족 한 마디. 첫 장은 마침이요, 둘째 장은 순함이니 그렇게 사납게 살아온 인생을 주역 책을 펼치며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전혀 우연만은 아닌 듯합니다. ‘주역 안에 다 있다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소설가/대구교육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