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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4.19 10:49
대가야제국의 부활(14)
김하기
제3부 하지왕과 가야제국(2)
하지왕과 우사는 금관가야의 객잔에 숙소를 정하고 금관가야 일대를 돌아다녔다. 둘은 상인으로 변복을 하고 소금과 그릇과 철을 마바리로 싣고 다녔다. 소금은 질 좋은 우시산국 산이고, 그릇은 가야요에서 구운 긴목항아리, 굽다리접시, 찬합, 고배이고, 철은 마구와 관련된 말종방울, 발걸이, 철고리, 띠고리와 철제농기구인 낫, 도끼, 괭이, 쇠가래날을 싣고 다녔다. 둘은 이것을 팔거나 물물교환해 자급자족하며 여행을 다녔다. 허름한 핫옷에 주머니를 차고 벙거지를 쓴 둘을 장돌뱅이 부자라고 해도 의심할 사람이 없었다.
여가전쟁의 패전으로 김수로왕 이래 22 가야제국의 맹주였던 금관성(김해)은 폐허가 되었다. 이시품왕은 광개토대왕의 포로가 된 뒤 대왕에게 철정 만 전을 바치고 귀국하였으나 아라가야의 지배 하에 들어가 옛 권위를 잃고 빈껍데기뿐인 왕좌만 유지하고 있었다. 금관성도 아라가야(함안)의 왕과 장수의 지휘 하에 금관성의 일부가 복구되는 수모를 겪고 있었다.
한편 하지왕은 낮에는 장사를 하면서 가야제국의 문물과 문화를 경험하고 밤이면 등잔을 켜 스승 우사가 준 흉노왕자에 대한 기록인 ‘김일제전’을 읽었다.
‘흉노족의 후예인 김일제가 남의 조소가 되어 부끄럽기는커녕 대가야 제국을 묶어주는 큰 힘이 된다’는 우사 스승의 말이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 지상 모든 김씨의 시조이며, 김일제 이전에는 김씨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한반도 남부 가야왕조와 신라왕조를 열었던 김수로와 김알지, 그리고 모든 김씨 왕족과 일가의 선조라기에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흉노족 김일제가 바로 하지왕 자신의 조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승님.”
“예, 마마.”
“마마라고 하지 말래도 계속 그리 하시오? 그러면 우리가 애써 변복을 하고 장사꾼으로 변신한 게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 아니오? 그냥 스승과 제자관계로 해요. 나는 아명인 꺽감으로 갈 테니 스승님은 장사일을 가르치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선생이 되세요.”
“역시 영명하십니다.”
“영명하다는 말도, 존댓말도 하지 마십시오.”
“알겠다, 꺽감아. 그래, 그 책은 지금 어디쯤 읽고 있는가?”
“흉노왕자와 사마천이 옥중에서 만난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두 분이 운명의 큰 낙차를 어떻게 견디며 이겨내는지 잘 읽어 보거라.”
“예.”
사마천과 김일제는 동시에 뇌옥에서 나왔다. 사마천은 사형 대신 궁형을 택해 남근과 음낭이 잘린 채 뇌옥에서 나왔고, 김일제는 흉노 왕자의 신분에서 말을 돌보는 말구종으로 족강되어 뇌옥에서 나왔다.
김일제 왕자가 어두운 뇌옥에서 밝은 곳으로 갑자기 나오자 눈이 부신지 손등으로 햇빛을 가리며 사마천에게 말했다.
“하늘이 눈부시군요. 이제부터 우리의 운명을 시험해 봅시다.”
“좋소, 한 가지 뜻을 이루고자 결심하면 남의 조소가 부끄럽기는커녕 힘이 되겠지요.”
사마천은 궁중의 환관이 되어 역사를 편찬하는 춘추관으로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오래 사는 것이 필부의 소원이긴 하지만 그는 역사를 위해 사형 대신 궁형을 택해 잠시 부끄러운 생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남은 생을 오로지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인 미완의 ‘사기’를 완성하는 데 불사르기로 하고 사초를 써내려갔다.
한편 김일제는 곧바로 궁중 마방의 말구종으로 갔다. 그는 어려서부터 흉노족의 풍속인 말달리기와 매사냥을 즐겨했다. 김일제는 말을 타고 달리며 매사냥을 했기에 말달리기와 매사냥은 조련의 원리에 있어서는 한 몸처럼 똑 같았다. 상매꾼인 그는 매잡이의 성품인 매눈 같이 날카로운 관찰력과 사나운 매를 훈련시키는 조련술, 매를 날려 보낼 때를 아는 판단력과 매를 제어하는 통제력은 말을 조련하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될 능력이었다. 어릴 때부터 말과 매의 조련술을 익힌 그는 마방에서 말을 다루는 능력을 쉽게 인정받았다. 사나운 야생마도 그의 손을 거치면 순한 말이 되었고 순한 말은 명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하찮은 하급 말구종에서 마관으로 승진하더니 마침내 말을 돌보는 총감독인 마감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한무제는 정기적으로 마방의 말들을 불러내어 사열하였다. 말을 사열할 땐 왕의 아리따운 비빈들도 이끌고 나와 어대 상석에 함께 앉아 말의 행진을 구경했다. 마관 수십 인이 차례로 말을 끌고 나와 늠름하고 당당한 자세로 어대 앞을 통과했다. 그런데 김일제만이 어대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무제가 어대 보좌에서 소리쳤다.
“거기 고개 숙인 말몰이꾼은 행진을 멈추고 짐에게 다가오라!”
김일제는 말의 고삐를 잡고 황제 앞으로 다가가 읍을 했다.
“모든 마관들은 모두 짐과 짐의 후궁들을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들은 짐을 보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의 아리따운 비빈들의 모습을 훔쳐보려고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네 놈만은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고 지나가니 무슨 까닭인가?”
“소인은 비빈이 아니라 오로지 마마의 말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보지 않았사옵니다.”
“음, 일개 말몰이꾼인 네 놈의 행동이 범상치 않도다. 너는 누구인가?”
“소인은 흉노국 김일제 왕자이었으나 포로가 되어 지금은 말을 돌보는 마감입니다.”
“오, 그런가. 그러고 보니 짐이 흉노왕은 죽이고 왕자는 살려 뇌옥에 넣은 적이 있었지. 그 왕자가 너란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마마. 실은 소인이 고개를 들지 못한 것은 마마의 좌우 어대의 앉은 비빈들은 모두 한 때 제 아버지의 비빈들이어서 제 어머니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져 말몰이꾼으로 전락한 아들이 무슨 면목으로 어머니들을 대할 것이며, 어찌 감히 어머니들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겠습니까.”
김일제의 말에 한무제의 짙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한무제는 흉노족 김일제의 말과 행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기 있는 나의 비빈들은 내가 전리품으로 취한 네 아버지의 후궁들이니 네 어머니들이 맞지. 어찌 고개를 들 수 있었겠는가.’
그가 흉노왕을 죽이고 그의 아리따운 비빈들을 모두 자신의 비빈으로 삼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김일제가 어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을 몰고 간 행위는 도리가 반듯한 것이지 불만의 표출은 아닌 것이다. 한무제는 그에게 측근에서 보좌할 수 있는 시중의 자리를 주기로 했다.
시중이 된 김일제는 사마천과 뇌옥에서 맺은 인연으로 인해 춘추관을 자주 출입하며 금난지교의 교분을 쌓았다.
어느 날 김일제가 춘추관으로 사마천을 찾아가 물었다.
“며칠 전부터 황궁에 웬 낯선 한혈마 한 마리가 보이던데 누구의 말인지 아는가?”
“오, 마하라가 타고 다니는 그 말을 말하는 건가?”
“그래, 역시 마하라였군!”
“그 말은 지난번 역모 사건의 주범 강충이 타고 다니던 말이란 말이야.”
“그런데 그 날쌘 한혈마를 왜 마하라가 타고 다니는 것인가?”
마하라에게 뭔가 역모기운을 느낀 김일제가 궁중의 인물과 사건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사마천을 일부러 찾아가 물은 것이다.
사마천은 새로운 역모의 기미를 김일제에게 넌지시 알려주었다.
“마하라에게는 마통이란 동생이 있네. 이 마통이 역적 강충을 처단하고 말을 빼앗아 형에게 주었지. 마하라는 거짓된 자로 동생의 공으로 벼슬을 해먹고 있는데 사실 역적 강충과 가장 친한 자인 게 문제지. 폐하는 강충과 친했던 마하라에게 의심의 칼끝을 겨누고 있어.”
김일제가 사마천에게 말했다.
“그 때문에 여차하면 달아나려고 한혈마를 타고 다니는 건가?”
“그렇지. 마하라를 주의 깊게 잘 지켜보게. 왕은 의심을 하고 마하라는 곤경에 처해 있네. 하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
“알겠네.”
김일제는 경호무사를 변복시켜 마하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했다. 역적의 거사일은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어느 날 변복을 한 부하의 보고가 김일제에게 다급하게 올라왔다.
“오늘 마하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마하라의 한혈마가 황제의 침전 가까이에 매여져 있고 궁궐 밖에는 마하라의 군사들이 떼로 몰려 있습니다.”
‘말이 침전 가까이 매여져 있는 건 암살이 실패할 경우 도망가려는 것이다. 오늘밤이 위험하다.’
날이 저물자 한무제는 침전에서 새로 들인 두 궁녀들을 검열하고 있었다. 한 명은 명문귀족의 딸이고 한 명은 황후가 몸종으로 데리고 다니는 천한 노비출신이었다. 황제는 두 명의 궁녀를 벗겨놓고 여인의 몸이 펼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음, 알몸에는 신분의 귀천이 아무런 소용없구나.”
한무제는 한꺼번에 두 여자를 껴안고 접문했다.
“으음.”
이어 두 여자를 한꺼번에 엎드리게 하니 십장생 병풍이 세워진 맞은편 팔각창이 비치는 달빛이 두 여인의 엉덩이골 사이를 은은하게 흘러내렸다. 바닥에는 페르시아 융단이 깔려 있었고 황금 침대 위로는 투명한 물 비단이 찰랑찰랑 드리워져 있었다. 두 여인을 후배위로 차례로 갈마드는 황제의 이마와 가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더니 그예 지리하게 흘러내렸다. 신라 백수지로 꾸민 팔각창 너머에는 불을 켠 석등이 무지개 석교를 비치고 있었고 그림자 하나가 재빨리 움직였다. 그 그림자가 침전의 비단 창문에 일렁거리더니 복면을 한 자가 열린 창문으로 잠입했다.
“죽어랏!”
마하라는 시퍼런 단검으로 황제의 목을 겨누어 찔렀다.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 침전 문을 박차고 비호처럼 뛰어들었다. 김일제는 대도로 마하라가 찌르는 단검을 쳐 옆으로 흘리면서 단칼에 놈의 목을 댕겅 베어 버렸다. 그리고 궁궐 밖에 대기하고 있던 마하라의 군사들도 자신의 부하를 풀어 모조리 잡아 처단했다. 암살 직전에 침전으로 뛰어들어 황제의 목숨을 보전한 자는 바로 시중 김일제였다.
마하라의 암살사건은 김일제가 황제로부터 신임 받는 큰 기회가 되었다. 한무제는 눈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김일제에게 사성(賜姓)을 해주고, 관직도 시중에서 제후인 투후에 봉하고 청주를 식읍으로 주었다.
투후의 작위를 받은 후 김일제는 막역지우인 사마천의 집을 찾아갔다.
“투후가 된 것을 감축하네.”
“다 중서령, 자네 덕분 아닌가.”
“무슨 소릴.”
둘은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술을 권커니잣커니 하는데 사마천이 문득 생각난 듯 한 마디를 꺼내었다.
“헌데 주역의 점괘를 보면 이곳 장안 땅 기운은 불이야. 김일제, 자네는 쇠이고.”
김일제가 사마천에게 말했다.
“장안과 내가 불과 쇠라면 어떻다는 것인가?”
“불과 쇠는 처음에는 사이가 좋다가 나중에는 서로를 죽이는 상극이 되지.”
“그럼, 수도 장안을 떠나야 한다는 것인가?”
“지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네. 김씨 성은 자네 혼자이지 않는가. 자네 후손인 김씨는 7대까지 장안에서 크게 번성할 것이네. 하지만 김씨가 많아져 쇠의 세력이 강하게 형성되는 7대에 어쩔 수 없이 불의 화를 입을 것이네. 그 때는 장안을 떠나게 될 거야. 그땐 물의 땅인 동쪽인 조선으로 가면 자네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할 거야.”
사마천은 뇌옥에서 주역을 익혔다. 사서삼경 중에 특히 주역을 택한 이유는 자신의 운명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에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어떤 운수의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 주역의 이치와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그는 뇌옥에서 주역을 읽고 또 읽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말이 있듯이 주역을 백 번 읽으니 그 의미가 자연히 드러나고 우주와 인간, 과거와 미래, 사주와 운명이 하나로 엮어져 일통해 있음을 깨달았다.
“운명은 피할 수 있지만 숙명은 피할 수 없지. 김씨 가문이 장안을 떠나는 건 운명이 아니라 숙명이야.”
김일제는 명리에 밝은 사마천의 말을 새겨두었다가 그가 죽기 전 김씨의 시조로서 후손들에게 유훈을 내렸다.
“사람이 부지런하고 겸손하고, 인내로 노력하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그러나 숙명은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만약 후대에 이르러 우리 김씨 일문이 큰 화를 입게 되면 동방예의지국인 동쪽 조선 땅으로 피하라. 그곳만이 살 길이다.”
김일제와 사마천의 교류는 사마천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마천은 마침내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태사공서(사기. 사마천은 태사공서라 명명하였지 스스로 ‘사기’라 한 적이 없다. 후대에 이르러 ‘사기’로 불리워졌다)’를 완성한 뒤 죽었고, 김씨의 시조 김일제도 눈을 감았다.
김일제와 그의 아우 김륜의 후손은 7대에 걸쳐 제후를 비롯한 중앙요직을 누렸고, 한때 중국 전역의 열 제후 중 다섯 제후에 김씨가 책봉될 정도로 김씨 일족은 번성했다. 더욱이 김씨는 한 황실과 대대로 혼인을 맺어 외척으로서 큰 세력을 이루어 중국 천하를 떡 반죽 주무르듯 주물럭거렸다.
BC 8년, 원제의 황후 왕씨의 친정 조카인 왕망이 대사마가 되어 정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왕망은 김일제의 증손 김당의 이모부(왕망은 성씨가 왕씨가 아니라 김씨이며 김일제의 손자라는 설이 있다. <한서 김일제전>에는 “김당의 어머니는 남씨인데, 곧 망의 어머니이다(當母南卽莽母)”라는 기록이 있어 당시 투후 벼슬을 가지고 있던 김당과 왕망은 같은 형제임을 알 수 있다.-‘흉노인 김씨의 나라’, 서동인, 주류성출판사.)였다. 왕망은 서기 5년에 평제를 살해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신’이라 했다. 왕망이 황제가 되자 외가인 김씨 가문은 권력의 정점을 이루었다. 김씨들은 토지의 국유령과 노비의 금지령을 내려 대토지 소유자인 기존의 귀족 세력가들을 단숨에 해체시키려는 혁명적 개혁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내부에서는 귀족 세력가들이 반발하고 북방에서는 흉노가 쳐들어오고 도적떼가 창궐하고 황하가 4차례나 범람하였다. 왕망과 김씨의 권력이 흔들렸다.
하지왕은 우사에게 받은 가야의 뿌리, 김일제전을 여기까지 읽으며 적이 당혹스러웠다. 가야의 왕족의 선조가 흉노족 김일제인 것도 모자라 중국의 대역적으로 간주되고 있는 왕망의 일가와 엮여져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김씨 일가의 역사이자 족보군. 그럼, 김수로왕과 김알지 천신 이비가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왕은 새로운 조상 김일제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 책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하지왕은 우사와 함께 말을 타고 담장이 허물어진 금관성을 찾았다. 금관가야는 전쟁의 상처를 딛고 조금씩 일어서고 있었지만 400년 김수로 왕업이 하루아침에 광개토대왕군의 말발굽 아래 짓밟혀 폐허로 변한 모습이었다.
하지왕이 낙동강과 넓은 평야를 두르고 높은 산들과 야트막한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는 금관평야를 바라보며 우사에게 물었다.
“그럼, 왕망의 신이 멸망하자 왕망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렸던 김씨 일족이 중국에서 이곳 조선의 남부 가야로 도망 왔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김씨 일족은 왕망 때까지 제후 70명을 내면서 사실상 중국왕조를 대신했습니다. 왕망이 망하자 철기를 가지고 조선으로 온 김씨 일족은 청동기를 사용하는 이곳 변진의 토착민을 정복하고 가야왕국을 세웠지요. 가야왕국은 철의 왕국이자 해상왕국이었지요.”
낙랑과 대방,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의 물산이 철의 항구 금관항으로 들어왔고, 가야의 철은 동아시아로 퍼져나가 문명의 중심이 되었던 풍요로웠던 땅이었다. 금관항에는 중국선과 왜선, 멀리는 류큐와 타이완, 베트남과 인도의 배까지 드나들었다.
“지금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해자를 두른 금관성 앞에는 넓고 시원한 주작대로가 나 있었고 그 좌우로 기와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지요. 도로의 끝 금관항에는 고상식 수상가옥과 창고들이 즐비했고, 멀리서 온 이국인들로 넘쳐났죠.”
“금관가야가 몰락한 뒤 많은 금관가야 백성들이 우리 대가야로 이주해 온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희 가족도 살 길을 찾아 이곳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이주했습니다. 이제 가야의 중심은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이번 전쟁에서 고구려의 도움을 받은 신라는 변방의 약소국에서 벗어나 가야와 백제를 누르고 한반도 남부의 패자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시산국 항구가 금관항을 대신해 해상의 중심 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김일제전에 따르면 신라의 김알지도 김수로왕의 후손이 아닙니까?”
“김수로왕 김알지 둘 다 김일제의 후손입니다. 신라 김씨는 먼저 한반도에 도착한 가야 김씨에서 나왔으며 김수로왕은 한반도 김씨의 조종입니다.”
하지왕은 금관가야가 400년 동안 가야연맹의 맹주 자리를 유지한 뿌리를 알게 되었다. 우사는 신라도 가야연맹체의 하나로 출발했다고 했다. 가라(야), 안라, 다라, 삽라, 신라 등 ‘라(야)’로 끝나는 나라는 모두 가야연맹체의 국가였으며 신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왕은 다소 불만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김수로왕이 한반도 김씨의 조종이라, 우사 선생은 금관가야의 태사령으로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하다보니 아무래도 금관가야 중심의 사초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마마, 그렇지 않습니다. 대가야의 시조 뇌질주일은 금관가야 뇌질청예(대가야의 초대왕 뇌질주일이 금관가야의 초대왕 김수로왕(뇌질청예)라는 기록은 최치원(857~?)이 쓴 ‘석이정전’에 나온다. ‘석이정전’은 전해지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 내용의 일부가 기록되어 있다.)라 불리던 김수로왕의 형입니다. 때문에 대가야는 신라뿐만 아니라 가야의 어른이 될 자격이 없진 않습니다.”
우사는 대가야의 시조 뇌질주일과 뇌질청예라고도 불리는 김수로왕은 형제간이며, 뇌질주일이 뇌질청예의 형이어서 대가야는 금관가야의 형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왕이 말고삐를 잡으며 우사에게 말했다.
“대가야가 금관가야의 형님 나라라는 사실이 기분 좋긴 합니다만.”
“사실 그것은 대가야가 팽창하던 금림왕, 회령왕 시기에 만들어진 향토 신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로만 존재하지 실제 역사적 증거가 부족합니다.”
금석문을 신뢰하고 실증사학을 고집하는 우사의 말은 날카롭고 냉정했다.
하지왕이 우사에게 말했다.
“가야와 신라의 왕족이 모두 흉노족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글로만 기록되어 전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 역시 믿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자의적일 수 있는 사관의 사초만으로는 우리가 흉노족의 후예라는 사실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지요. 처음엔 저도 의심을 했으니까요. 그럼, 제가 결정적 증거를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사는 말을 끌고 금관성 대정전으로 들어갔다. 하지왕도 말에 내려 뒤따라 들어갔다. 아라가야 장수와 수병들의 감독 하에 금관성이 서서히 복구되고 있지만 여전히 폐허상태였다. 왕실의 상징인 쌍어문 문양은 깨어지고, 건물의 절반은 불이 타 검게 변해 있었다.
광개토대왕은 군사를 이끌고 이곳 금관성을 짓밟고 마지막으로 종발성을 향했다. 종발성으로 도피한 이시품왕은 목라근자와 함께 마지막까지 광개토대왕에게 저항했으나 성은 함락되고 둘은 포로가 되어 평양까지 끌려갔다. 이시품왕은 광개토대왕에게 철정 만 정을 바치고 굴욕적인 신속의 노객이 되어 귀국해 지금은 고구려와 신라, 아라가야의 간섭 하에 간신히 왕위만 유지하고 있었다.
둘은 품계석을 지나 대정전 앞으로 갔다.
우사가 대정전 옆에 놓인 청동 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리로 가시지요.”
둘은 세 발로 선 청동 솥 앞에 섰다.
“이 솥이 흉노인들이 제천금인의 의식 때 사용하던 솥입니다. 흉노족 김씨들이 중국 서원궁에서 이곳 가야로 올 때 가져다 놓은 것이지요. 여기에 새겨진 명문을 한 번 볼까요.”
청동 솥에는 한자로 쓰여진 명문이 있었다.
‘西苑宮鼎 容一斗 幷重十七斤七兩七’
“‘서원궁의 솥, 용량은 한말이며 무게는 17근7이다’라는 뜻입니다. 왕망 당시 중국 서원궁에 살던 김씨들이 사용하던 솥입니다.”
“서원궁 솥이라, 정말 그렇군요.”
하지왕은 손으로 청동솥을 어루만져 보았다. 차갑고 매끄러운 기운이 손바닥에서 등줄기를 지나 온몸으로 퍼져갔다. 이 솥 하나만으로 왕망 시대 김씨 일가가 서원궁에서 솥단지를 지고 바다를 건너 가야로 건너온 것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둘은 대정전의 청동 솥 앞에서 북방의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청동 빛처럼 시리디시릴 대로 푸르고 청동 솥처럼 깊고 웅숭했다. 어디선가 멀리서 유목민의 말발굽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듯했다. 머나먼 청동의 시간과 푸르른 기억들이 무덤 속의 부장품처럼 따라 나오는 듯했다.
우사는 청동 솥뿐만 아니라 왕들이 차는 쓰는 황금대구와 환도대도, 장군과 병사들이 입는 철갑옷과 투구, 심지어 말 뒤에 싣고 다니는 동복까지 모두 흉노족의 유물이라고 했다.
우사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지금 가야철로 만든 모든 것은 철기 민족 흉노족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선조 김씨들이 흉노의 땅에서 철기를 가져와 청동기를 사용하던 선주민을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옮기는 것입니다.”
출생의 문화, 죽음의 묘제, 혼인의 풍습, 제사의식, 음식, 의복, 주거 모든 것이 배와 수레에 실려 함께 온 것이다.
하지왕이 우사에게 물었다.
“태사공, 그렇다면 원래 있던 이곳 선주민인 변진인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단군 왕검께서 신시에 도읍한 이래로 이어져 내려온 웅녀의 후손, 조선의 역사가 부인되는 것 아닙니까.”
“선주민의 역사는 날줄과 씨줄로 짠 베와 같습니다. 본바탕이지요. 본바탕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위에 아름다운 무늬를 놓는 것이 새로운 정복민의 문화입니다. 저쪽으로 가보시죠.”
우사는 하지왕을 애꾸지(애꾸지는 애초, 애당초 구지라는 뜻이다. 김해 대성리의 중심에 있으며 이곳에 이주민들의 가야 철기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다.)로 안내했다. 애꾸지는 작은 언덕이어서 말을 타고 오를 만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무덤들이 있었고 비록 작은 언덕이지만 사방이 트여 있어, 가까이는 대성의 금관성과 멀리는 양동 마을이 한꺼번에 보이는 눈맛이 시원한 곳이다.
“여기가 바로 김수로왕이 가야에 도착해 구지가를 불렀던 자리입니다.”
우사는 작대기로 땅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이는 가미로 선주민의 신, 또는 우두머리이고, 머리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결국 양동리 쪽에 있는 선주민의 수장이 항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대성리 수장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참고로 대성리 고분에는 대부분 후기 철기유물이 나오고 양동리 고분에는 전기 청동기 유물이 출토된다.)’
“구지가는 나도 어릴 때 자주 불렀던 노래요.”
“이 노래는 철기를 가진 김수로왕이 양동에 근거지를 둔 청동기 변진 선주민 추장에게 항복하라고 협박하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구지가를 들은 변진의 추장과 선주민들은 김수로에게 항복하고 김수로를 새로운 왕으로 섬기게 되는 것이죠. 조선으로 흘러들어온 김씨가 처음 세력을 펼친 곳이 바로 이곳 애꾸지입니다.”
하지왕이 우사로부터 역사의 현장에서 금관가야의 역사를 배우고 있을 때, 대가야 박지 집사로부터 전갈이 왔다.
‘하지왕 전하, 대비마마가 위독하니 태사령 우사와 함께 즉시 귀국바랍니다.’
하지왕은 전갈을 받고 놀랐다.
“젊고 건강하신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니.”
우사가 전갈의 내용을 읽은 뒤 신중하게 말했다.
“건강하신 대비마마가 위독하다는 게 이상합니다. 전하뿐만 아니라 저까지 귀국하라니 뭔가 께름칙하기도 하고요. 음모가인 박지 집사가 보낸 전갈이라 그대로 믿고 따랐다간 덫에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들인 나에게는 덫이나 변명 따위 필요 없소.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면 지금 당장 가야 하오.”
하지왕이 급하게 말머리를 북쪽 대가야로 돌렸다.
“마마, 호위병 모추를 먼저 보내 정확한 궁내 상황을 알아본 연후에 들어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우사가 거듭 신중하게 말했다.
“음, 일단 비화가야(창녕)까지 함께 갑시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말을 타고 금관가야에서 비화가야로 달려갔다.
비화가야 절골에서 검바람재(현풍)로 넘어가려는데 한 떼의 비적들이 앞을 막아섰다. 이들은 금관가야 백성들이었다. 한때 화려했던 금관가야는 고구려군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금관성과 종발성의 함락으로 집들은 불타버렸고, 역병이 돌아 백성들의 시체가 처처히 쌓여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금관가야를 떠나 산으로 들로 먹을 것을 찾아 유랑했다. 굶주린 사람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었고, 그나마 칼을 쓰거나 힘이 있는 젊은 남자들은 녹림 산적이나 명화적이 되어 행인들의 봇짐을 털거나 마을을 노략질했다.
고리눈에 창대수염이 난 자가 칼을 들고 하지왕과 우사를 겨누며 말했다.
“장사꾼이 타고 다니기에 아까운 말이군. 셋 다 말에서 내리시지.”
우사가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 말을 타고 이 고개를 넘어야 하오. 통행세는 낼 테니 이 말만은 봐주시오.”
“통행세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난 네 놈들의 말과 봇짐을 모두 원해. 목숨이 아깝거든 후딱 말에서 내려!”
그때 장사꾼으로 변복을 하고 뒤따르던 호위무사 모추가 칼을 빼며 앞으로 나섰다.
“우린 갈 길이 바쁜 사람들이다. 어서 길을 비켜라!”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자식이 검바람재 두령인 나에게 감히 명령을 해!”
창대수염이 천둥과 같은 고함소리를 지르며 모추의 허리를 베어들었다.
말 위에서 모추가 칼로 내리치자 창대수염은 칼로 이마를 막았다. 모추가 잇달아 목울 겨누며 말에서 몸을 날렸다. 창대수염이 피하며 칼로 모추의 어깨를 베었다. 칼날이 모추의 어깨에 걸친 미늘 견갑을 베었지만 뚫지는 못했다. 둘은 서로 소리를 지르며 무려 이십여 합을 겨루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칼이 부딪혀 챙챙 소리가 날 때마다 창대수염의 칼날은 이가 빠지고 검병이 휘어졌다. 모추가 힘을 다해 창대수염의 목을 치자 창대수염이 칼로 막았으나 중동이 부러져 뎅겅 날아가 버렸다. 모추의 검은 가야산 밑 야로마을 쇠둑부리에서 나온 생철을 단야 대장간에서 백 번을 벼린 대가야 백련검이었다.
모추가 발로 다리를 걷어차 무릎을 꿇리고 칼로 목을 겨누며 말했다.
“칼솜씨가 제법이군. 산도둑놈이 어디서 무술 흉내를 배운 거냐?”
“갈 길이 바쁘다는 놈이 무슨 잔말이냐. 어서 죽여랏!”
“오냐, 죽여주마!”
모추가 칼로 산적두목의 목을 날리려는 순간, ‘멈춰랏!’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왕이 모추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죽이긴 아까운 자이다. 모추, 너의 속 갑옷이 없었더라면 네 목숨이 먼저 날아갔을 것이다.”
“네, 주인님......”
모추도 산적의 칼솜씨에 놀랐다. 모추는 대가야 군에서 무예가 가장 출중해 군신지 후누 장군의 호위무사로 뽑혔다. 백제군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 후누 장군을 그림자처럼 호위하면서 덤벼드는 적들을 수십 명이나 해치운 역전의 용사였다. 웬만한 놈이라도 삼합에 떨어져 나가는데 이 녀석에게는 삼합에 어깨를 당했다. 이십 합을 겨뤄 놈을 간신히 제압했지만 검술 실력보다는 검의 성능으로 이긴 것이다.
하지왕이 창대수염을 보며 물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이오?”
창대수염이 하지왕을 보며 대답했다.
“이름은 구투야(구투야는 흉노어 구트야에서 나왔는데 개라는 뜻이다) 헌데 어린 분이 이 상고의 주인이신가 보네.”
“그렇소. 보아하니 검술실력이 보통이 아니신데 어디 군문에 있었소?”
“나는 금관가야군의 중군으로 있다 왕이 잡혀가고 나라가 망한 뒤 산적이 되었지.”
“중군이면 계급도 높고 귀한 신분인데 어떻게 산적이 되었소?”
“고구려군에 끝까지 맞서다 광개토에게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했지. 군대는 해산되고 이곳에서 잠시 이 짓을 하고 있지만 난 당신이 타고 있는 그런 말만 있으면 당장 고구려 국내성으로 떠날 거야.”
검바람재는 금관가야에서 비화가야를 통해 대가야와 성산가야로 넘어가는 관문이다.
“왜 국내성이오?”
구투야가 고리눈을 번들거리며 말했다.
“그곳에 죽일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