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양왕용의 시 읽기
작성일 : 2021.04.08 11:52 수정일 : 2021.04.08 11:56
귀가. 철야당번 /탁 영 완
하나 아들 빼고 딸이 다섯이라 그래도 다행
미국서 온 막내딸 예순, 그래도 젤 젊어 나흘은 밤낮으로 간병하고
칠십 넷, 남해 사는 큰 언니는 매주 닷새 집 떠나 보조 간병하고
둘째 셋째 넷째 딸, 나머지 하루하루 철야당번 하기로
답사한 요양병원 돌아 나오며 그래야 자식노릇 하는 거지
척추 다쳐 중한자실서 한 달을 통증에 헛소리 재우는 신경안정제
떼고 소변줄은 달고
차마 요양병원으로 보낼 수 없다고 유월 장마 폭우는 숨도 안 쉬고
퍼부었다
구급차로 다시 집으로 오시는 날 먼지 한 톨 없이 대청소릏 하고
환자침대도 넣어
돌아오시지 못할 것 같았던 어머니의 설레는 귀가
“집에 돌아오시니 편안하니 좋지요.” 달력을 보며 “한 달 만에 집에
돌아 오셨네
자개장농도 있고 아버지 사진도 있고 엄마 구순잔치 가족사진도 있네”
빙그레 웃으시며 “기기라 쓰라 연필 가져와 마 한글로 써라.”
“무슨 말?”
아, 벽 달력 오늘 날짜에 어머니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 날,
‘귀가’라고 크게 적어 드렸다
유월 초이틀 ‘응급실’이라 적어둔 글자, 철야당번을 일깨우며 불 켜져 있다
-《부산시인》2017. 가을호-
*탁영완(부산, 부산진구) 시인, 진주 출생,1986년 《詩文學」천료 등단, 시집『녹색 광선』 외
탁영완 시인은 해외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2015년에는 여행을 제재로 한 시집 『시월 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를 엮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해마다 빠지지 않던 한국문인협회 해외한국문학심포지엄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 까닭은 90을 넘으신 탁 시인의 자당 때문이었다. 효성스러운 딸의 심정으로 혹시나 여행 중 세상을 떠나시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 때문에 해외 나들이를 당분간 자제한 것이다. 그 자당께서 최근에 별세하셨다.
이 작품에는 탁 시인을 포함한 다섯 자매들의 어머니 간병계획과 간병기가 직접 시적 제재로 등장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동사의 시제는 마지막 한 행을 제외하고는 전부 과거시제이다. 따라서 탁 시인의 자당이 척추를 다쳐 6월 2일 응급실로 실려가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후 한 달 만에 퇴원하면서 요양병원으로 모실까 하다가 그곳으로 모시는 것이 자녀들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집으로 모셔와 간병하면서 그 동안을 회상하는 시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시는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일종의 헌시獻詩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은 적절히 배제되어 있다. 다만 군데군데 등장하는 모녀간의 대화를 직접화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독자들을 실감나게 한다. 특히 대화의 마지막 부분 “기가라 쓰라 연필 가져와 마 한글로 써라” 하는 어머니의 대화는 미소까지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중환자실에서 투병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미국에 사는 막내딸까지 귀국하여 자매들이 헌신적으로 간병하는 모습들이 충분히 짐작된다. 요양병원으로 보낼 수 없다고 집으로 다시 모시는 점도 요즈음의 풍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행의 함축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에서 탁 시인과 자매들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은근히 느껴지면서 시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마 탁 시인의 자당께서는 모든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한 미소를 짓고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다. <양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