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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12) 제2부 하지태왕의 성장 7

작성일 : 2021.04.05 07:58

2부 하지태왕의 성장(7)

김하기

수경과 꺽감은 고구려 패강(대동강)에서 가야배를 타고 서해안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사람과 물화를 실은 가야배는 서해안과 남해안 연안을 따라 강화 당진 보라(나주) 사물(사천) 고사포(고성) 골포(거제)를 지나 금관가야(김해)에 도착했다.

화려했던 금관가야는 고구려군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종발성의 함락으로 외국과의 통상은 중단되었고, 금관가야의 왕은 병석에 누워 있고 마을은 역병이 돌아 백성들의 시체가 처처히 쌓여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금관가야를 떠나 산으로 들로 먹을 것을 찾아 유랑하고 있었다. 가야배는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아라(함안)와 비화(창녕)를 지나 한 밤중에 회천으로 들어갔다. 미리 연락이 닿은 후누 장군이 꺽감과 수경을 마중하러 나왔다.

후누는 제 부인인 수경은 보는둥 마는둥 하고 꺽감을 보자마자 바닥에 엎드리며 큰절을 하였다.

마마, 저희들이 부족해 선조들이 피로 지켜온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강한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가 어찌 쉽겠어요. 그래도 후누 장군은 이번 전쟁에서 적화에서 아신왕의 백제군을 물리친 유일한 장군이라 들었소.”

과찬의 말씀입니다. 이제 꺽감왕자님이 돌아왔으니 병력을 다시 모아 백제군을 쳐 대가야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오랜만에 해후해 반가웠지만 곧 대가야가 놓인 엄혹한 현실 앞에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후누장군은 이들을 가야산에 동쪽 설치한 후누장군의 군영으로 안내해 가야산 군막에 머물면서 대가야를 지배하고 있는 백제 장군 목만치를 물리칠 일을 논의했다.

가야산 서쪽에 군막을 치고 있는 박지 집사는 가능한 빨리 목만치와 협상해 대가야를 찾자는 협상파였고, 가야산에 동막을 치고 있는 후누 장군은 무력으로 어라성을 치고 들어가자는 주전파였다.

수경과 꺽감은 후누 장군의 주장대로 무력을 키워 대가야를 찾는 입장이었다. 박지가 주장하는 협상으로는 완전한 독립을 얻을 수 없으며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욱이 협상의 담보물인 포로로 잡고 있는 목라근자는 비중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포로 한 명으로 나라와 바꾸는 것은 무슨 엿장수 맘대로도 아니고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협상이 진행되려면 단순히 부자간인 목라근자와 목만치, 그리고 포로로 잡고 있는 박지 사이의 협상 문제가 아니고 이들 뒤에 있는 보다 근본적인 패권국가 고구려와 백제의 합의와 결정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매우 복잡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박지는 협상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목만치에게 당신의 아버지 목라근자를 포로로 잡고 있으니 가야산 군막으로 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박지의 전갈을 받은 목만치는 먼저 집사 염사치를 불렀다.

염사치 집사, 그대는 후누 장군과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들었소.”

고구려가 대가야를 지배할 때 후누 장군과 함께 고구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함께 싸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적이 되어 싸우고 있어 각별함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 염사치는 후누 장군과 함께 고구려로부터 대가야의 회복을 꿈꾸는 동지였으나 가는 길은 판이하게 달랐다. 후누 장군은 뇌질왕가의 힘으로 고구려로부터 대가야를 찾겠다는 일념이었다. 그러나 염사치는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염사(김해)의 소금장수로 대가야에 소금을 팔러 왔다가 정착을 해 후누장군과 고구려와의 전쟁에도 출전했다. 고구려와의 전쟁 당시 염사치는 가야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백제의 힘을 빌려 대가야를 찾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소금실이 장수였던 염사치는 백제와 강력한 끈이 있었다. 염사치는 미리 백제의 진무장군, 목만치와 손잡았고 백제군이 대가야를 칠 때 길을 열어주는 길라잡이가 되었다. 목만치가 대가야를 점령해 도독이 되자 그는 염사치에게 대가야 최고의 지위인 집사와 한기의 자리를 주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근육질인 목만치가 땅딸막하고 피부가 검은 염사치에게 말했다.

집사, 가야산으로 들어가서 박지와 후누를 만나 목라근자가 잘 계신지 알아보고 송환 협상을 해주게. 아울러 적들의 근황도 알아오게.”

알겠습니다, 도독.”

염사치는 호위무사 없이 단기필마로 가야산 박지의 군막으로 찾아갔다.

염사치는 군영을 둘러보며 박지에게 물었다.

우리 도독의 부친 목라근자 장군은 어디 있소?”

무엇이 그리 급하오, 집사. 고령주나 한 잔 하며 천천이 보아도 될 것을.”

박지가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럴 시간이 없소이다. 난 지체 없이 목장군을 모셔오라는 도독의 명을 받고 왔소이다.”

허허, 우리가 잘 보호하고 있으니까 먼저 술이나 한 잔 하시죠.”

일 없소이다. 빨리 목라근자 장군의 얼굴부터 보고 싶소.”

허면.”

노회한 박지는 몸을 일으켜 수하에게 눈짓을 했다.

염사치, 오랜만이오.”

장군!”

막사에서 얼굴이 초췌한 목라근자가 나오자 염사치는 목라근자의 손을 잡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목라근자가 누구던가. 근초고왕 때부터 활약한 백제의 장군이자 일본군을 끌어 모으는 용병대장이었다. 키는 9척 장신에다 눈은 고리눈이며 팔다리가 근육으로 채워져 있어 갑옷을 입고 창을 잡고 서 꼿꼿이 있을 때는 잘 빚어놓은 늠름한 청동상처럼 보였던 그였는데 지금은 마치 수숫단으로 만든 키 큰 허수아비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백제왕에 의해서 임명된 종발성의 성주이자 임나왜소의 주수였던 그가 처참한 몰골로 포로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침묵으로 손을 잡고 난 뒤 염사치가 박지에게 말했다.

저는 이 목장군을 모시고 이 군영에서 나가겠소.”

박지 집사가 말했다.

그냥은 안 되는 걸 삼척동자도 알 것이오.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 들어왔으면 목숨을 내놓거나 두둑한 선물을 가지고 왔을 터.”

선물은 가지고 왔소이다.”

염사치는 황금 백 냥이 든 주머니를 박지에게 주었다. 박지의 입이 벌어졌다.

이건 그냥 목라근자 장군이 이곳에 머무는 숙식료로 목만치 도독이 주는 것이오.”

, 고맙소. 잘 받아 놓겠소.”

그럼 몸값으로는 황금 만 냥이면 되겠소?”

황금 만냥이라, 귀가 솔깃하긴 하오만 목라근자의 몸값은 당신들 백제가 뺏어간 우리나라 대가야요.”

대가야를 달라......”

염사치는 말문을 잃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목라근자도 말문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황금 백 냥도 감격스러운 일이거늘 자신이 황금 만냥, 아니 한 나라와 바꿀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었던가. 사람이란 온갖 잡생각을 다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 자기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대한 더없이 자연스러운 관심과 흥미에 대해선 별생각이 없다. 특히 그동안 포로로 잡혀 개, 돼지 취급을 받으면서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으로 살아온 목라근자는 자신의 몸값으로 은 30십량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대가야의 도독 목만치는 종발성 전투에서 이사품왕과 목라근자가 광개토왕의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즉시 위례성의 아신왕을 찾아갔다. 아버지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따랐던 목만치는 모든 수단을 다해 포로가 된 아버지를 송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신왕은 이번 전쟁에서 소백산맥 이서의 가야 6국과 대가야를 차지하여 한수 이남의 대제국을 건설한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목라근자는 한 때 휘하에 둔 훌륭한 장군이고, 가야제국의 무역과 교역을 관장하는 유능한 관료였지만 지금은 전쟁에서 패해 잡혀간 일개의 포로에 불과하다. 현 상태에 흡족해하고 있는 아신왕으로선 목라근자의 일로 더 이상 국제관계의 질서가 복잡하게 헝클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신왕이 목만치에게 말했다.

목장군, 슬프고 힘든 일이겠지만 아버지는 잊어버리고 대가야를 지키는 데 힘써 주게.”

목만치는 눈물로 아신왕에게 호소했다.

제 아버지는 평생 대왕마마와 백제를 위해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아들에게 아버지를 잊어버리라고 하십니까. 목장군의 송환을 통촉하여 주십시오.”

그대가 효심이 지극하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호랑이도 잡히면 개 취급을 당하는 것이 전쟁터의 법칙이다. 게다가 때가 좋지 않다. 지금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요동에서 후연의 모용성과 전쟁으로 정신이 없을 텐데 어떻게 광개토왕과 포로협상을 한단 말인가.”

하오면 저를 칙사로 보내주십시오. 제가 전장터 어느 곳이든 찾아가서 광개토왕을 만나 협상하겠습니다.”

현실은 냉엄한 것이라 감정에 흔들리면 패배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아니 된다.”

한번만 더 통촉하여 주십시오.”

목만치는 납작 엎드렸으되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아신왕이 거듭 목만치에게 아버지 목라근자 송환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목장군, 포로송환 협상은 아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제 아버지는 근초고대왕 이래 5대에 걸쳐 백제의 왕업을 이룬 충신입니다. 제발 한번만 더 통촉하여.”

아신왕은 목만치의 말을 끊으며 위례성 대정전이 울릴 정도로 호통쳤다.

왕명을 거역해 반역할 텐가! 그만 돌아가서 대가야나 잘 지키도록 하여라.”

목만치는 아신왕에 사추리를 발에 걷어차인 듯한 굴욕감을 느끼며 위례성 대정전에서 물러났다.

목라근자는 백제의 대성팔족 중의 으뜸인 목씨 출신으로 옛 마한 땅의 목지국 진왕의 후손이었다. 근초고왕 때부터 근구수왕, 침류왕, 진사왕, 아신왕 5대왕을 섬긴 장군이자 재상이었다. 한 때 가야 십이국 중 칠국(근초고왕 때 목라근자가 평정한 일곱 가야의 지역은 비자벌(창녕) 남가라(김해) 탁국(경산) 안라(함안) 다라(합천) 탁순(대구) 가라(고령)으로 추정된다.)을 평정했고, 남만의 침미다례(남만의 침미다례는 류큐, 왜의 후쿠오카 등으로 추정되었으나 최근에는 전남의 해남, 광주 등으로 비정되기도 한다.)까지 도륙한 대장군이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강한 무력을 갖춘 장군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외국과의 교역과 무역의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이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틈바구니에 있는 가야를 백제의 영향권에 두면서 왜와의 교역창구로 삼았다. 신라와의 교역 규모도 꽤 컸고, 그는 신라를 중시하여 신라여인과 결혼해 아들 목만치를 두었다. 목씨 부자는 애당초 이 전쟁에 반대하고 신라와의 평화를 원했다. 목라근자는 아내의 나라인 신라를 사랑했고, 목만치도 어머니국인 신라를 그리워해 외가인 금성을 여러 번 방문했다.

그러나 야심 많은 백제 아신왕은 금관가야의 이사품왕을 부추기고 목라근자에게 공격 명령을 내려 신라를 친 뒤 배후에서 가야의 땅을 집어삼킨 것이다.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이사품왕이었고 그 다음으로 목라근자였다. 목라근자는 왜와 가야와 신라에 대한 교역 독점권을 몽땅 잃어버린 임나왜소의 주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신왕은 목라근자를 이번 전투에서 바둑의 사석으로 사용하고 미련 없이 버렸던 것이다.

대가야나 잘 지키라고? 호랑이도 잡히면 개 취급을 당하는 것이 전쟁터의 법칙이라고?’

목만치는 눈물이 번진 눈으로 아리수를 젖줄로 번창한 위례성을 보았다.

, 아버지가 어떻게 이룩한 백제인데 이제 와서 아버지를 개 취급하다니!’

전쟁에서 이익과 전리품은 모든 윤리를 대신하였으며 윤리를 결정하였으며 이익 그 자체가 바로 윤리였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세상의 삼강오륜과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으며 생명과 존재 따위의 모든 문제들도 죄다 부정되었다.

아신왕의 차가운 냉대에 목만치는 분루를 삼키며 대가야로 돌아왔다.

목만치는 위례성에서 돌아와 대가야를 보위하고 국정을 바로 잡으려고 해도 아신왕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반역죄를 덮어쓰더라도 왕명에 의존하지 않고 내 스스로 협상의 출구를 찾을 것이다.’고 결심하던 차에 포로로 잡힌 아버지 목라근자가 광개토왕의 수하에 있다가 박지의 수하로 옮겼으며, 박지로부터 목라근자의 송환 협상 전갈을 받았다. 그는 만사휴의하고 먼저 심복인 염사치를 단기필마로 가야산 적장의 군막으로 보낸 것이다.

박지는 황금 백량을 취한 후 목라근자를 다시 가야산 군영의 뇌옥에 가두었다.

염사치가 박지에게 말했다.

박지, 목라근자를 담보로 해 나라를 찾겠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요.”

본래 그 나라가 누구의 나라였소? 내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데 무엇이 무리하단 말이오?”

나라를 찾는 데는 협상이 아니라 힘이 필요하오. 후누 장군의 군대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과연 있기나 한 것이오?”

염사치가 슬쩍 말을 꺼내자 박지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염탐하러 온 염 집사께 보여줄 게 있소. 후누 장군과 염 집사, 둘은 오랜 친구로 알고 있소. 후누 장군, 염 집사를 안내하시오.”

후누는 염사치를 만나 적이지만 서로 포옹했다. 둘은 함께 고구려와 전투를 치른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다. 후누는 염사치를 가야사의 넓은 절 마당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철갑옷으로 무장한 군사 오백여 명이 질서정연한 대오를 이루고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전의가 번들거렸고, 얼굴에는 대가야를 찾으려는 기개가 서려 있었다.

후누장군이 목만치에게 말했다.

우리의 군사를 보시오. 전투 명령만 기다리고 있소. 대가야 회령대왕의 아들 꺽감이 온 이래로 대가야군의 사기는 충천해 있소.”

후누의 말대로였다. 꺽감이라는 투쟁의 구심점이 생기니 사방팔방에서 대가야를 구하기 위해 가야산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꺽감을 보고 사기충천해 언제라도 대가야로 쳐들어가 백제군사를 몰아내고 어라성에서 꺽감을 왕으로 모실 각오를 하고 있었다.

염사치는 깊은 산속에 예상외로 많은 군대의 규모와 규율에 속으로는 깜짝 놀랐으나 겉으로는 홍소를 날리며 말했다.

하하하, 각 지방에서 농투성이를 끌어 모은 이런 오합지졸로 어떻게 우리 백제 정규군을 상대하겠소? 우리 백제군은 훈련이 잘된 병사로만 만 명이고, 그 중 삼천 명은 기병이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될 것이오.”

길고 짧은 것은 대어봐야 알 수 있소. 목라근자를 내주지 않고도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당신의 군대를 물리치고 대가야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소.”

언제든지 쳐들어오시오, 후누장군. 나와 다시 일합을 겨루어봅시다.”

첫술에 배부르랴, 첫 협상은 결렬되어 염사치는 단기필마로 다시 어라성으로 돌아갔다.

 

광개토대왕은 후연의 모용성을 고구려 밖으로 쫓아내고 곧바로 평양으로 돌아왔다. 후연의 수도인 용성으로 진격하지 않은 것은 후방에 있는 백제의 아신왕으로부터 언제 뒤통수를 얻어맞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가야로 내려 보낸 수경과 꺽감의 일도 염려스러웠다.

태왕은 백제의 아신왕에게 사신을 보내 친서를 전달했다.

짐의 노객, 아신왕은 들어라. 노객은 이번 전쟁을 부추겨 가야 일곱 나라를 뱀처럼 삼켰으니 그 행위가 교묘하고 참으로 사악한 일이다. 짐이 너를 응징하려고 평양으로 내려왔으니 가야 땅을 원상회복하도록 하여라. 특히 짐은 대가야에서 뇌질왕가를 회복시키기를 원하노라. 이를 위해 짐이 종발성에서 포로로 잡은 목라근자를 대가야의 박지 집사에게 내주었으니 속히 대가야에서 목만치의 군대를 철수하라.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나의 군대는 목라근자와 함께 노객의 군대를 진멸할 것이다.’

광개토대왕의 위협적인 친서를 받은 아신왕은 대가야에서 발을 뺄까 말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신왕은 광개토대왕의 서신을 읽고 육가야에 내려간 병관좌평 진무를 위례성으로 불러 올렸다.

진무 장군, 우리가 차지한 가야 땅은 평안한가?”

원래 마한에 속했던 백성들이라 쉽게 우리 백제의 풍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덕유산 너머 대가야의 민심이 불안할 따름입니다.”

과인도 대가야 때문에 장군을 부른 것이야.”

아신왕은 진무에게 태왕의 서신을 주었다. 진무는 글을 읽으면서 숯덩이처럼 짙은 눈썹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진무가 주먹을 부르쥐며 말했다.

우리가 애써 점령한 대가야를 내놓으라는 이런 오만방자한 글을 감히 대왕님께 쓰다니요!”

하지만 지금 고구려가 쳐들어온다면 우리가 당키나 할까?”

대가야로 쳐들어오는 일은 천만 없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천하의 광개토라 한들 두 번의 전쟁에서 지친 병사들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올 수는 없습니다. 내려오더라도 우리의 무력으로 충분히 쳐부술 자신이 있습니다. 이 서신의 글은 아무리 잘 봐주어도 삼진칠허(三眞七虛)의 허풍에 불과하옵니다.”

진무는 광개토왕이 바보가 아닌 이상 병사를 마소 다루듯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신왕은 안심할 수 없었다. 광개토대왕은 상식을 뛰어넘는 기이한 병법으로 늘 승리를 구가해왔다. 남쪽 끝의 종발성을 치는가 했더니 어느새 북쪽 끝의 남소성을 쳤다. 역병 같은 그의 군대가 지금이라도 당장 아리수를 건너 대가야를 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아신왕은 이제 광개토 군대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났다.

이 서신 중에 가장 염려스러운 말은 대가야에 뇌질왕가를 회복시키겠다는 말이야. 꺽감이라는 회령왕의 아들이 가야로 내려가 군사를 지휘하고 있다는 말이 있네. 그렇게 되면 민심이 사백 년 종통의 뇌질왕가로 급격히 기울게 되지. 민심이 떠난 땅에서 객장인 목만치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아신왕은 남쪽 하늘을 바라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목만치와 염사치로부터 하 세월 답을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꺽감이 후누장군을 불렀다.

후누 장군. 차나 한 잔 하시죠.”

좋습니다, 마마.”

침묵이 감도는 가야산 군막에서 둘은 조용히 차를 마셨다.

후누 장군이 말했다.

차 맛이 맑고 향기롭습니다.”

물맛이 다를 겁니다. 제가 가야산의 샘을 찾아 품천을 했습니다.”

물을 맛보고 물맛의 우열을 가리는 것을 품천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가야산 감로수의 물맛만큼 좋은 물을 맛보지 못했어요. 맛과 향기도 으뜸이지만 온갖 번뇌와 묵은 때를 씻어내지요.”

꺽감의 말대로 맑고 향기로운 찻물에 속에 쌓인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한 잔의 차가 백일 점찰(참회) 기도보다 더 많은 번뇌를 씻어내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꺽감아 차분하게 말했다.

장군께선 협상보다는 무장투쟁을 원하신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헌데 협상도 백년하청이고, 군사의 움직임도 없으니 대가야를 찾을 날은 언제일지 답답합니다.”

여자처럼 단아하던 꺽감의 얼굴은 지금 고뇌와 피로가 역력히 그려져 있다. 가늘고 선명한 눈썹과 흰 살결도 오늘따라 푸석푸석하게 보인다.

죄송합니다. 모두가 저의 불찰입니다.”

후누는 바닥모를 무력감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여기 군막의 어두운 방은 지금 후누가 헤매는 미궁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군사조련을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적을 쳐야할지 지금 자욱하게 낀 안개처럼 막막하기만 했다.

장군, 천문과 지리와 인시를 보니 지금이야말로 적을 치기에 딱 좋은 시기인 것 같소.”

어째서 그렇습니까?”
지금 소백산맥 너머 6가야에서 여전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백제군 군사 대부분은 지리산 너머 육가야로 넘어가고 대가야에 남아 있는 백제의 잔병이 5천도 안 됩니다.”

그러하지요.”

어라성은 공격하기가 쉽지 않지만 2천명이 주둔하고 있는 관문성인 주산성(주성이라고도 한다)은 충분히 공략할 수 있습니다.”

저도 주산성을 공략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산성은 지리적으로 어라성을 내려다보는 요충지로 이곳을 점령하면 어라성을 바로 턱밑에 놓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지금은 가야산의 안개비가 주산성으로 이동하는 시기입니다. 이 안개를 이용해 어라성의 관문인 주산성을 기습 공격해 점령하는 게 어떻습니까. 주산성을 점령하면 왕가의 무덤들이 있기에 백성들에게 주는 상징성도 큽니다. 이후 기회를 봐서 어라성으로 쳐들어가 점령하면 백제군들도 어쩔 수 없이 항복할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남문 하나는 비워 놓으시고, 큰골에 매복병을 숨겨 놓으십시오. 잔적들이 우왕좌왕하다 남문으로 나오면 매복병으로 섬멸하면 됩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후누는 꺽감이 겨우 차 한 잔 마시는 끽다경의 시간에 일일이 맞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상대를 설득해 내다니 기이하고 놀라웠다. 그동안 신라와 고구려에서 생활하면서 선진적 전술과 전략 등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힌 결과가 아니겠는가. 후누는 특히 고구려 태학에서 체계적으로 익힌 학문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꺽감에게는 광개토대왕으로부터 배운 실전 제왕학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꺽감은 어떤 책이나 훌륭한 견해가 있다면 그것을 매우 잘 섭취해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한밤 중 가야산의 군막에서는 은밀한 군사들의 이동이 있었다.

꺽감과 후누 장군이 박지 집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후누 장군은 꺽감의 말대로 천험한 요새이자 어라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주산성을 공격 목표로 정하였다. 주산성이 에워싼 주산 능선에는 뇌질왕가의 무덤들이 늘비해 있어 상징성이 있었다. 대가야 병사들은 모두 미늘갑주 융복을 입었다. 주산성에는 백제군들이 이천 명 가량 주둔해 있었다. 이들은 점령군의 습관에 젖어 오늘도 마을에서 잡아온 돼지를 삶아 안주로 해 막걸리를 마시고 늘어져 자거나, 반 주취상태로 번을 서고 있었다.

검은 융복을 입은 가야 병사들의 고양이처럼 은밀한 움직임은 어두운 안개의 흐름에 섞여 안개와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가야군사들은 북문 성벽에 사다리를 놓고 마지막 병사 한 명까지 성안으로 잠입할 때까지 백제의 번병들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가야군사들이 기습적으로 공격하자 그제야 창과 칼을 들고 일어나 싸운 백제병사들은 대패를 했다.

아뿔사

기습공격을 당한 적장은 신음소리와 함께 완전히 얼이 빠진 얼굴이 되었다.

대형은 무너지고 안개 속에서 각자 도생으로 우왕좌왕하다 운 좋아 빈 길이 걸리면 남문을 향해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나 남문 큰골에 매복해 있던 가야군은 백제군이 오는 족족 베어버렸다. 대가야광복군은 야간 기습작전으로 단숨에 백제군을 제압하고 주산성을 점령해 버렸다. 성에 대가야의 깃발인 삼엽기가 걸리고 횃불이 오르자 사기가 충천한 병사들은 대가야 만세! 꺽감왕 만세!’를 불렀다.

목만치는 대가야의 목줄인 주산성이 무너졌다는 말을 듣자 화살이 자신의 심장을 쏜 듯 아팠다.

목만치는 즉시 아신왕 앞으로 보내는 글을 썼다.

 

대왕마마,

적들의 공격으로 뇌질왕가의 무덤이 있는 주산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들은 포로 목라근자를 송환하는 조건으로 대가야의 회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저는 부자의 정보다 나라의 이익을 앞세워 단번에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어라궁을 사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뇌질왕가를 등에 업고 주산성을 차지한 적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고 우리 백제군은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하에 점점 고립무원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대왕마마, 전에도 아뢰었듯이 저의 요청은 분명합니다. 적과의 협상입니다. 제 아버지 목라근자를 송환받고 저희 부자가 다시 종발성을 차지하는 조건으로 대가야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처럼 원상회복이 되고 대신 백제는 서가야 6국을 얻게 되어 우리 백제는 이번 전쟁에서 큰 이익을 얻게 되는 셈입니다.

가야산에서 진을 치고 있는 꺽감과 후누의 군사들과 전쟁을 선택하게 되면 우리가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들의 수는 점점 많아지는데 아군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가야의 어라성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진무 장군 휘하에 잘 훈련된 정규군 일만 명이 필요합니다. 적들은 광개토왕의 고구려군보다 뇌질왕가군을 더 신뢰하고 왕가의 문장인 오동나무 삼엽창기 아래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게도 구럭도 다 잃기 전에 대왕께서 광개토왕과 협상해서 종발성을 회복하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창을 베고 칼 위에서 잠을 자고 있으며 대왕마마에 대한 충성심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명령만 기다리겠습니다.

대가야 도독 목만치 배상

 

목만치는 비장하게 글을 마무리하고 서신을 위례성의 아신왕 앞으로 보내는 한편, 집사인 염사치를 불러 명했다.

염사치 집사, 적들이 어라성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주산성의 적 진영으로 가주어야겠네. 벗이 되는 후누장군을 만나 목라근자 송환 협상을 해주게. 아울러 적들의 근황도 알아오는 걸 잊지 말게.”

알겠사옵니다.”

이르게 찾아온 여름은 땡볕과 습한 바람을 몰고 와 무더위에 길거리의 강아지들도 혀를 빼물고 있었다. 염사치는 말 대신 커다란 누렁개 한 마리를 데리고 주산성으로 찾아갔다. 대가야 병사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무거운 철갑을 벗고 가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염사치가 후누 장군을 만나 말했다.

후누 장군, 오랜만에 벗을 보니 반갑네.”

벗이라고? 누렁개는 왜 데려왔는가. 백제의 개가 되었다고 자랑하러 개를 몰고 왔는가! 나라를 바꾼 사람을 어찌 벗이라 하겠는가.”

후누 장군은 더위에 혀를 빼물고 있는 누렁이를 보며 염사치에게 퉁을 놓았다.

이 누렁이는 우리 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키우던 개네. 날도 덥고 옛날 자네와 함께 개고기를 먹던 생각이 나서 데려왔네.”

추운 겨울, 아리수 전투에서 고구려군에게 패해 눈이 흩날리고 매서운 바람이 불던 산 속에서 후누와 염사치가 굶주려 시체처럼 죽어가고 있을 때 들개 한 마리가 시체를 뜯어먹으려고 나타났다. 후누가 칼을 빼어 개를 죽였다. 둘은 잡은 들개를 구워먹고 힘을 내어 간신히 기력을 차려 생환할 수 있었다. 이후 둘은 만나면 그 때를 생각해 자주 개고기를 먹으며 우의를 다졌다.

후누는 희미한 옛 미소를 지으며 부하병사에게 개를 잡아 삶아오라고 지시했다.

염사치, 개고기를 같이 묵자고 온 것은 아닐 터,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가?”

이번 전쟁에서 두 번을 이긴 자네의 군대가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전쟁 경험이 많은 목만치 군도 호락호락하지 않네.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게 무엇이 좋겠는가.”

염사치는 목만치가 아신왕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을 말하고, 아신왕으로부터 답신이 올 때까지 전투를 중지하자고 휴전을 제의했다.

사실 후누도 협상파인 박지 집사의 명을 거역하고 독단적으로 이번 전투를 치른 것에 대해 약간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겼기 망정이지 졌더라면 그는 역적으로 참수되었을 것이다. 후누는 이번 승리로 협상의 우위를 점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무술주와 함께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개고기가 나왔다.

후누가 염사치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술이나 한 잔 하고 얘기하세.”

둘은 술잔을 뒤집은 뒤 씨익 웃으며 개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광개토대왕과 아신왕은 아리수의 하구에 있는 관미성에서 협상했다. 아신왕이 한때는 백제의 성이었던 관미성에 온 것만으로도 태왕의 노객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태왕은 술과 음악과 여자로 아신왕을 극진히 대접했다.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일사천리로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의 골자는 모든 것을 전쟁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목라근자와 목만치는 종발성으로 돌아가고, 포로인 이사품왕도 금관가야로 돌아가고, 수경과 꺽감은 대가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합의하여 천하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다만 서가야 6성은 아신왕의 전리품으로 인정해줌으로써 협상의 발길이 헛걸음이 되지 않도록 만족감을 주었다. 태왕은 아신왕이 돌아가는 길에 열 대의 수레에 고구려 미인과 진귀한 선물을 잔뜩 실어 보냈다.

광개토대왕과 백제 아신왕의 관미성 대협상으로 한반도의 남부의 경계선은 여·가 전쟁 전의 구체제로 돌아왔다. 그러나 변화도 많았다. 소백산맥 이서 옛 마한 땅 6가야은 백제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신라왕은 내물 마립간에서 실성 이사금으로 바뀌었고, 임나왜소가 있는 종발성의 주수는 목라근자에서 그의 아들 목만치로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대가야에 있었다. 대가야의 지배자는 고구려의 고상지, 고숭 도독에서 백제의 목만치로 바뀌었다가 마침내 대가야 뇌질왕가의 적자 꺽감이 대가야의 왕으로 입성했다. 나라를 잃고 외세에 시달리던 대가야 백성들은 꺽감 왕자를 맞이하며 대가야 만세! 꺽감왕 만세!’를 외쳤다.

목라근자를 포로로 건네받아 이번 협상을 주도해 왕가를 복원한 일등공신 박지는 다시 2인자인 집사직에 취임했다. 박지는 집사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백제의 부역자와 잔재를 없애겠다며 살생부를 만들었다. 살생부 명단 중 제 일번은 목만치 아래서 최고직인 집사를 한 염사치였다. 염사치는 이번 전쟁에서 목만치의 길라잡이가 되어 대가야의 최고직인 집사가 되었으나 박지가 어라궁에 입성하자마자 제일 먼저 염사치를 잡아 삭탈관직시키고 뇌옥에 가두었다.

박지과 똑 같은 일등공신인 후누 장군은 염사치를 비롯해 자신과 친한 자들이 살생부 명단에 들어 있어 못마땅했다.

후누가 박지에게 말했다.

집사, 경사스런 꺽감 왕자의 즉위식을 앞두고 살생부에 의한 피의 숙청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소. 뒤에 하는 게 어떻겠소?”

후누 장군의 뜻이라면 존중하겠소. 하지만 즉위식 이후에는 부역분자들을 그대로 둘 순 없소. 국간들을 숙청해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고 새로운 왕업이 순조롭게 출발하게 되는 것이오.”

노회한 박지는 판단력이 빠르고 말도 사개가 딱딱 들어맞았다. 무골인 후누 장군은 박지의 논리적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대가야 어라궁에 꺽감 왕자의 즉위식이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과 지배로 오랫동안 단절된 왕위였다. 대정전에는 대가야 왕실 문양인 오동나무 삼엽창기가 높이 솟아 펄럭이고, 그 주위로 각 부처와 문의 오색 깃발들과 나부꼈다. 나라와 왕실을 찾은 백성들은 새로운 왕의 즉위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궁궐밖에는 호족과 하호, 노비들까지 몰려들었다.

껵감은 수경과 함께 대정전 뜨락으로 나왔다. 자색 곤룡포와 찬란한 금빛 모관을 쓴 꺽감이 보좌에 좌정하자 둥둥 북소리가 울리고 나발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박지 집사가 대소신료와 백성들 앞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가야의 신, 이비가와 정견모주이시여, 그의 아들이신 시조왕 뇌질주일왕이시여. 오늘 꺽감왕자가 대가야의 하지왕으로 즉위하였음을 고하나이다.”

수경은 꺽감의 왕명을 하지(荷知)라고 지었다. 하지는 한자음으로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긴 하지 날처럼 한 밝음의 뜻이 있고, 한자 훈으로 하지는 연잎()을 아는 사람으로 불교에서 극락세상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수경은 우리말로 하늘의 지(, 수장)’란 뜻으로 하지라고 지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던 꺽감이 왕이 된 것은 하늘이 내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왕의 즉위식이 끝난 뒤 박지 집사는 조정회의를 소집해 3품 이상의 대소신료들을 어라궁 대정전을 불러들여 피바람의 숙청을 했다.

먼저 숙청된 살생부 일번인 염사치는 원래 염사(김해)사람이었으나 고구려와의 전쟁에 출전해 후누 장군과 맺은 인연으로 외관직 8관등인 중척으로 임명되었다. 전쟁 후 그는 소금실이 장사를 하면서 신라의 달천, 가야의 종발성, 백제의 위례성까지 거래를 트면서 세력을 키웠고, 내관직 4품인 검말까지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염사치는 대가야의 귀족이 아닌 외지 출신이기 때문에 당상관인 3품까지 입는 홍색포는 입을 수 없었다. 염사치는 청색포를 입고 조정에 출입하는 것에 불만을 품다가 위례성에서 백제의 목만치와 만나 돌아서서 그 수하가 되었던 것이다. 박지의 첫 먹이가 된 염사치는 후누의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백간(백제의 간신)으로 낙인 찍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지의 살생부에는 염사치처럼 적극적인 부역분자도 있었으나 백제의 침입 시 미처 어라궁을 빠져나오지 못해 목만치 휘하에 그대로 눌러앉아 벼슬을 하게 된 자들도 있었다. 군신지 후누 장군과 반고구려의 뜻을 같이 했던 호신지 법신지 공신지가 그런 자들이었다. 염사치의 관이 마르기도 전에 이들을 비롯해 1품 신지와 2품 축지 3품 번지가 박지의 칼에 처형되거나 뇌옥에 갇혔고, 외관직1,2,3관등인 상한기, 차한기, 한기 등도 숙청되었다. 숙청으로 빈 고위 품계와 관등, 중요보직에는 속속들이 박지의 심복과 부하들로 채워졌다.

하지왕은 즉위했지만 친정을 하기에는 나이가 어리다고 박지는 판단했다. 지혜와 지식은 있으나 판단력은 여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 어린 왕을 대신하여 중요한 결정은 노회한 박지 집사가 도맡아 하며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수경이 박지를 찾아가 물었다.

집사,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입니까?”

그야 하지왕의 나라가 아니겠소.”

아닙니다, 박지의 나라입니다. 조정의 중직들은 박지 집사의 심복들로 채워져 있고, 중신들은 왕이나 나의 말보다 집사의 말을 더 따릅니다.”

당신은 장차 저와 꺽감을 죽이고 아들 구야를 왕으로 삼으려는 음흉한 자입니다. 지금 내치지 않으면 큰 화가 될 것입니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