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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4.04 06:45
[율려신서 읽기] #1. <율려신서>는 어떤 책인가?
/제민이 가곡전수자
조선 시대에 국악을 크게 발전시킨 왕은 세종과 성종입니다. 세종은 박연에게 명하여 율관을 제작하게 하였습니다. 율관은 대나무 관입니다. 관을 불면 소리가 납니다. 성종은 성현 등에게 명하여 <악학궤범>을 출간하게 합니다. <악학궤범>은 음악이론을 설명하고, 악기와 노래, 춤, 음악의 작품들을 서술합니다. 이 두 가지 업적 뒤에 <율려신서(律呂新書)>가 있습니다. 박연은 <<율려신서>>를 참고하여 12개의 율관을 제정하고 그 소리에 맞추어 악기를 제작하였습니다. <악학궤범>의 제1권은 음악이론인데 그것의 핵심은 모두 <율려신서>로부터 받아들인 것입니다. <율려신서>는 국악 발전의 기초입니다.
1187년 남송(南宋)의 채원정(蔡元定)은 <율려신서>를 완성하고 스승 주자(朱子)에게 서문을 부탁합니다. 주자는 유명한 성리학자입니다. 주자는 “<율려신서>의 법도가 매우 정교하여 최근의 어떤 학자들도 거기에 미칠 수 없다”고 칭찬하며, 서문에 이렇게 씁니다(1). “내가 읽어보니, 글은 명백하고 깊으며, 꼼꼼하며 순조롭고, 억지로 끌어댄 이야기가 아니다.” 채원정은 공부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며, 굉장한 집중력으로 많은 책을 구해 읽었습니다. 그는 예전 학자들의 연구에 바탕을 두고 <율려신서>의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책에는 채원정 자신의이론 뿐, 아니라 그 이전의 중요한 악론이 모두 모여있습니다.
<율려신서>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의 제목은 율려본원(律呂本原)입니다.
여기에는 13편이 들어 있습니다. 2권의 제목은 율려증변(律呂證辨)입니다. 여기에는 10편이 들어 있습니다. 두 권 모두 다루는 내용은 동일, 합니다. 그런데 구성은 차이가 납니다. 1권은 채원정의 견해를 중심으로 서술하여 논의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반면 2권은 여러, 학자들의 악론을 소개하면서 채원정이 검토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2권은 1권의 서술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음악의 가장 기본 이론을 <율려신서>는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려신서>>는 국악의 가장 근본적 토대입니다. 그러니 <율려신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국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제민이의 국악 세계”는 10여 회에 걸쳐 <율려신서 >를 처음부터 읽어가며 해설할 것입니다. 기존의 영상이 다소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지금부터는 국악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국악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해설할 것입니다. [율려신서 읽기] 시리즈 영상을 보고 <율려신서>를 더 공부하고 싶은 분은 이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미지 :국역 율려신서]
<율려신서>가 논의하는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12율, 둘째, 오성과 2 변성, 셋째, 변율, 넷째 악조, 다섯째 도량형. 처음 4개는 음악이론의 핵심입니다. 마지막의 도량형은 율관을 기준으로 삼고 무게와 길이, 부피를 재는 척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악론 자체와는 크게 관계가 없으므로 [율려신서 읽기]에서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1415년 명(明) 성조(成祖)는 송나라 때의 주요 학술 저서를 모아 <성리대전>(性理大全)를 편찬합니다. 여기에 <율려신서>가 포함되었습니다. <성리대전>을 명 성조가 1419년에 명나라로 파견된 조선의 사신에게 선물하여 사신들이 귀국할 때 들고 들어왔습니다(2).
이 해는 세종대왕이 즉위한 세종 원년입니다. 1419년에 <율려신서>는 처음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입니다.
이로부터 11년 후 세종대왕은 경연에서 <<율려신서>>를 배우기 시작합니다(3). 경연(經筵)이란 ‘경전(經典)을 공부하는 자리’란 의미입니다. 조선 시대 왕은 고위 관리들에게 유교 경전을 강의하게 하였습니다. 1430년(세종 12년)에 <율려신서>가 경연의 교재가 된 것입니다. 아마 정인지가 강의를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4).
이보다 오래전부터 세종대왕은 <율려신서>를 혼자서 읽고 있었습니다. 세종 3년 8월 18일 임금은 <율려신서>(律呂新書)에 대하여 주변 신하에게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신하들이 검교 의정부 찬성(檢校議政府贊成) 조용(趙庸)만이 안다고 대답하자, 세종은 집현전(集賢殿) 교리(校理) 유상지(兪尙智) 등에 명하여 조용에게 가서 배우도록 하였습니다(5). 1421년 당시 <율려신서>를 이해하는 사람은 조용이 유일하였습니다. 조용(趙庸)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활동한 문신이며, 1424년(세종 6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아마 조용이 살아있었다면 그가 경연에서 세종대왕에게 <율려신서>를 강의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의 홍문관(弘文館)은 성종 대에 이르면 경연을 주관하는 기관으로 격상합니다. 성종은 홍문관 관원들이 <율려신서>을 공부하도록 명합니다. 그리고 성종 자신도 경연에서 <<율려신서>>를 신하에게 강의하게 합니다(6).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이보다 앞서 《상서(尙書)》의 율려(律呂) 격팔상생법(隔八相生法)을 강의하였는데, 임금이 본원(本原)을 찾아 규명하고자 하여 김응기(金應箕)에게 명해서 《율려신서(律呂新書)》를 진강(進講)하게 하였다. 이날 김응기가 진강(進講)하고, 조강이 끝난 뒤에 임금이 여러 번 그 뜻을 물었는데, 김응기는 구체적인 말로써 대답하였다.”
율려란 도레미파처럼 음을 말합니다. 격팔상생법이란 기본음인 황종으로부터 다른 음들이 생기는 방법입니다. 조강이란 아침에 신하들이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講論)하던 일을 말합니다. 성종은 이날의 조강 이전에 율려(律呂) 격팔상생법(隔八相生法)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그것의 본질을 알고 싶어서 이날, <<율려신서>>를 신하에게 강의하게 하였습니다.
주자는 <율려신서>의 서문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을 보니, 글은 간결하고 논의는 분명하고, 처음 읽어도 어렵지 않은데 독자들이 가끔 끝까지 읽지 않고, 문득,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펴고 졸아서, 책의 취지로 돌아가지 못한다.” 주자는 <율려신서>가 읽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일반인 에게는 그렇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민이의 국악세계”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율려신서>를 처음부터 읽어 나가며 해설할 것입니다. [율려신서 읽기] 프로젝트를 기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채원정. 국역 율려신서.이후영 역주. 도서출판 문진. 2011.
(2)정윤희(Yun Hui Chong). 1999. 세종조 『 율려신서 』 의 수용문제 고찰. 한국음악학논집, 3(0) : 481-564. p.489.
(3)세종실록 49권, 세종 12년 8월 23일 辛卯 2번째기사 1430년. “윤대(輪對)를 행하였다. 경연에서 《율려신서(律呂新書)》의 강의를 시작하였다.” ○輪對, 經筵。 始講《律呂新書》。
(4)정윤희. 519-520쪽.
(5)세종실록 13권, 세종 3년 8월 18일 무신 2번째기사 1421년. 검교 의정부 찬성 조용에게 전토와 곡식을 하사하다.
(6)성종 15년 갑진(1484) 5월 12일(무술). ○戊戌/御經筵。 先是講《尙書》律呂隔八相生法, 上欲尋究本原, 命金應箕, 進講《律呂新書》。 是日朝講後, 應箕進講, 上屢問其義, 應箕具辭以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