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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4.02 10:08
유미주의, 상처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3
『금각사』는 40년 동안 내 곁을 지킨다. 스무살에 만나서 지금까지 함께 한다. 이제 나이 들어 활자는 스스로 작아져 그들을 만나려면 돋보기를 갖다 대고 한 줄 한 줄 확대해야 한다. 그렇게 안간힘을 다 써서 ‘추억의 기차 여행’을 하는 것을 보니 이 소설이 내 ‘상처’가 애용하는 편한 공간, 때때로 햇볕을 쬐는 볕바른 테라스나 되는 모양이다. 우이꼬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마산의 무학산, 마이쯔루(舞鶴)도 여전하다. 마산의 명주 무학소주는 이제 이름을 ‘좋은 데이’로 바꾸었다. 몽고간장도 자리를 옮긴지 오래되었다. 모두 마이쯔루(무학산) 아래에 있던 것들이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나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안긴 곳이 바로 그 마이쯔루였다. 무학산 기슭에서 중학생으로 보낸 그 기간을 평생 잊지 못한다. 아름다운 학 한 마리처럼 우뚝 솟은 산기슭이 급하게 바다로 이어지는 그 작고 아름다운 항구 도시에서 나는 아직도 젊었던 어머니와 사별을 했고, 하얀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우이꼬도 만났다. 아직 차마 밝히지 못한, ‘반전의 상처’가 하나 더 있다. 그 내용은 밝히지 않는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아직은 ‘상처’로 그냥 두라고, 우이꼬는 우이꼬가 아니라고, 미시마 유끼오의 상처나 훔치라고, ‘그날의 상처’가 그렇게 아우성친다. 『금각사』를 만나기 전 이미 내 안에서는 유미주의가 싹트고 있었다. 그것이 『금각사』를 그렇게 반갑게 맞이했던 이유인 것이다.
금요일 저녁, 오래된 친구의 음성을 들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이니 35년이나 훌쩍 건너 뛴 셈이다. 퇴근길에 선물로 받은 ‘가고파’를 듣고(옆방의 동료 교수가 몇 장 구웠다며 선물했다) 무학산(舞鶴山)과 합포만, 그 남쪽 바다, 눈에 어리는, 잔잔한 물결을 추억하며 그때의 죽마고우들을 그리워했는데 마치 무슨 운명처럼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반드시 떠오르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변하지 않은 음성을 들으며 그 친구의 집에서 보낸 따뜻한 시간들을 함께 떠올렸다. 그대의 추억들이 염분기 진하게 묻어나는 바다 바람처럼 내 뺨을 어루만졌다. 변변한 ‘내 집’이 없었던 그때 거의 매일 찾다시피 했던 그 친구의 집은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송림(松林) 언덕 위에 있었다. 그 일대는 아름다운 해송 군락지였다. 급격한 경사로 내리꽂던 무학산 학봉의 산줄기가 거기에 와서 갑자기 크게 주춤거리며 완만한 평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편하게 입은 앞치마처럼 넓게 펴진 평지 주변을 보기 좋은 해송들이 빽빽하게 도열하고 있었고 그 아래로 국민주택 몇 채가 들어서 있었다. 친구의 집이 그중의 한 채였다. 아마 중학교 2~3학년 무렵 그 집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그 집을 생각하면 같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젊은 시절 언젠가 천승세 선생의 「혜자의 눈꽃」이라는 소설을 읽고 잠시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었다. 아마 무슨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오줌 누고 나면 표 안 나게요, 눈꽃을 만들랬어요...”라고 말하던 혜자가 지금도 눈에 선한데, 그 혜자를 만나던 주인공의 들창이 그 친구 집에서 내다보던 그 해송 군락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아마 두 장면이 서로 오고가며 내 안의 어떤 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눈물은 여러 가지 원천(源泉)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그 소설에게만 너무 많은 부담을 안길 수는 없는 일이지만, 혜자가 엄마 뒤를 바짝 따라 걸으며 그려내는 눈꽃을 생각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어떤 슬픔이 밀려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그 송림(松林)이 함께 생각난다. 그때 나는 아직은 젊었던 어머니를 여의고,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예고 없이 안내자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길손처럼, 늘 허망한 마음으로 그늘을 피해 다니곤 했었다. 때 없이 추위에 시달렸고, 양지바른 곳만 보면 얼른 그 안으로 찾아 들어갔다. 그 시절, 그 송림의 양지바른 풍경이 그렇게 나를 끌어당기던 것도 모두 어머니 때문이었던 것이다.
「혜자의 눈꽃」은 결국, 그것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들(딸)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 경지는 한국 소설이 이룩한 보기 드문 쾌거이다. 아마 이청준 선생의 「눈길」과 함께, 현재로는 ‘어머니 소설’의 최고봉을 이루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어떤 원형적인 모성(혹은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판타지)의 두 측면을 이 두 소설은 성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좋은 ‘어머니 소설’을 한 편 쓰고 싶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글감을 충분히 삭힐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머니와 너무 일찍 헤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 소설’이라는 말이 나오니 오정희 소설의 ‘모성 콤플렉스’가 문득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오정희 선생도 ‘어머니 소설’의 대가이다. 「저녁의 게임」도 따지고 보면 ‘어머니 소설’이다. 그러나, 앞의 두 작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오정희 소설(특히 초기 소설)에는 이른바 ‘아자세 콤플렉스’와 같은 것이 있다. 아자세는 불교 설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출생의 비밀을 알고 부모를 원망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유폐시키지만 결국 참회하여 불교교단을 위해 일한다는 이야기다. ‘아자’는 ‘태어나지 않은’, ‘세’는 ‘원한’의 뜻으로 아자세는 ‘태어나기 전에 원한을 품은 아이’라는 뜻인데, 전후 일본 정신분석학계에서 착상(着想)된 개념이다. 이 아자세 이야기는 오코노기 케이고(小此木啓吾)에 의해서 ‘자식을 갖는 것에 대한 어머니의 갈등, 박해적인 상상에서 비롯된 아기를 둘러싼 양가감정, 영아(아기) 살해’등을 이해하는 개념으로 활용될 것이 권장되었다.(후쿠시마 아키라/고은진 역,『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의 인간 드라마』, 이손, 225 쪽 참조)
오정희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그로테스크한 요소들(영아살해, 부성증오, 위대한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 등)은 이 ‘아자세 콤플렉스’의 측면에서 보면 일목요연하게 설명될 수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뒤에서 다루어 질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 정도로만 요약하기로 한다.
이야기가 조금 샛길로 흘렀다. 다시 「혜자의 눈꽃」으로 돌아가자. 작중 화자가 혜자를 만나는 들창, 눈밭 위에 그려놓은 혜자의 ‘눈꽃’을 내려다보는 들창, 나는 그 친구 집의 송림 쪽으로 난 들창을 연상하며 그 대목을 읽었다. 그리고 너무 일찍,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너무 일찍, 세상을 버린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혜자의 눈꽃」이 동시에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 때 내가 떠올리는 어머니라는 기호행위는 오직 ‘불쌍한 우리 어머니’라는 기의만을 생산할 뿐이다. 내가 가진 ‘들창’은 아직도 그게 전부다. <양선규, 『풀어서 쓴 문학이야기』, 푸른사상, 2005, 18~20쪽.>
세월은 가고, 무학산의 송림도 사라졌다. 지금은 몇 그루의 장식만으로 남아 있다.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산복도로가 나고 높고 낮은 아파트들이 그 도로를 가운데 두고 우후죽순처럼 서 있다. 그나마 손바닥만한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해서 옛날의 해송 군락지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 가상하다. 상징적으로 공원을 만들어 몇 그루는 남겨두었다. 오랜 만에 그곳을 찾았어도 그것을 보고 옛날 그 자리를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기억 속에 고착된 상처만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처는 환상이다. 그 환상이 내게 묻는다. 지금도 너는 양지 바른 곳을 찾아 헤매지 않느냐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무학산과 마이쯔루, 그리고 해송과 혜자의 눈꽃... 그것들이 없었다면 애초에 내 글쓰기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나는 그것들로 내 상처를 완벽하게 훔치고 있는 중이라고.
<양선규 소설가 /대구교육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