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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11.30 01:06
<양왕용 문학칼럼 4>
왜 시를 쓰고 시집으로 엮는가?
/양 왕 용
2015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 단체의 임원을 맡아 2023년 현재까지 자리에 있는 덕택에 전국 각지의 시인으로부터 많은 시집을 기증받는다. 나는 시집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속포지에 기증자의 서명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다. 서명의 유형은 다양하다. 가장 정성을 드린 것은 붓펜이나 붓으로 내 이름을 쓰고 저자 이름 뒤에 낙관을 찍는 경우이다. 그 다음은 붓펜이 아니라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필기구로 정성스럽게 서명하는 경우인데 그 동안 여러 권의 책을 주고받은 경우에는 그것이 대필로 서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받은 책 가운데 최근의 것으로 가장 감동적인 서명은 내 보다 10년 선배이자 1962년 《자유문학》 신인상으로 데뷔하여 시력 60년이 넘은 최원규(1933-) 시인의 시집 『아예 하나였던 것을』(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2020.)의 서명이었다.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인 최 시인과도 교류한지 50년이 되어 가고 있지만 그 동안 시집과 시론집을 낼 때마다 서로 교환하였는데 이 시집에 적힌 서명은 그의 연륜이 담긴 정성이 기득 했다. 오랜 세월 동안의 필체는 변함없이 힘이 있었고 ‘저자 드림’ 다음에는 낙간에 가까운 도장이 찍혀 있었다.
최근에 나는 이윤옥 평론가가 쓴 『이청준평전』(문학과지성사,2023)을 감명 깊게 읽었다. 이청준(1939-2008) 작가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10월 초였다. 그 해 11월 부산대학교 부대신문사 주최 문학강연에 김춘수(1922- 2004) 시인과 함께 초청하기로 결정하고 마침 집 사람 이종사촌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는 상경 길에 종로예식장 근처 다방에서 만났다. 그 당시 결혼식 주례가 국회의원 하다가 야인이 된 시절의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결혼식 마친 직후 이 작가를 만났는데 나는 이 작가와 김영삼 대통령이 닮아 깜짝 놀라 이 작가에게 오늘 두 번째 만나다고 하니 당장 “김영삼 씨를 만났느냐”고 응수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후 부산대학교에 문학강연을 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번 평전을 읽고 나서 가지고 있는 이 작가의 소설집을 찾아보니 세 권이 이 작가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단편 소설집 『예언자』((문학과지성사,1977)가 그 첫 번째인데 <양왕용 선생님 /즐거운 새해 맞으십시오./77년 12월 20일 /이청준 올림>이라는 내용으로 사인펜의 단정한 필체가 서명으로 들어 있었다. 다음이 소설집 『살아 있는 늪』(홍성사,1980)과 장편소설 『자유의 문』(나남,1989)인데 붓펜으로 내 이름과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고 있으면서 연월일을 반드시 쓰고 있었다. 이 작가가 출판사에서 받은 저자 증정본이 얼마 많지 않았을 터인데 10년 동안 우리는 서로 책으로 교류하였다. 그리고 평전에 있는 이 작가의 사진 가운데 서예를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그 솜씨로 정성스럽게 증증본에 서명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요즈음 나에게 배달되어 오는 시집 가운데는 저자의 서명이 없는 것이 제법 있고 심지어 주소도 프린트된 라벨이 붙어 있는 것도 있다. 말하자면 저자의 필체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저자의 서명을 인쇄하여 낙관만 찍은 것도 있고, 아예 받는 사람의 이름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특히 부산 지역의 시인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나는 안타깝기도 했다. 필자를 존경한다는 부산의 모 중견 시인의 시집 역시 그런 상태로 배달되었다. 그래서 그 시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앞으로 시집을 내는 경우 그리하면 안 된다고 일종의 지도조언을 했다. 그런즉 변명이 걸작이었다. 모협회에다 발송을 의례했더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다른 시인들도 발송명단을 주면서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여러 해 동안 쓴 시를 시집으로 엮어 아는 분들에게 보내면서 그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집을 증정하는지 왜 이런 행태를 하는지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오늘날 심지어 소설집도 일부 작가를 제외하고는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시집이나 수필집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시인은 시를 쓰는가? 각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가장 상식적인 이유는 시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 편의 작품을 쓰는 과정은 그 작품의 시적 형상화 성공 여부를 떠나 시인 개개인에게는 산고의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시 한 편 한 편은 자녀들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집적된 시집을 이렇게 성의 없이 보내버리고 마는 시인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문단 행사 때에 자기 시집을 가져와 아무 서명 없이 가져가라고 전시하는 시인들은 도대체 왜 그러하는가? 그들은 왜 시를 쓰는가? 그들은 시를 어떻게 쓰는가? 그들이 시인으로 데뷔한 과정은 어떠했는가? 등등의 물음을 던져본다.
시의 위의威儀를 회복하기 위하여서는 시인들이 무엇보다 자기 작품 하나를 사랑하고 시집 한 권 한 권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시인/ 부산대명예교수>